열한 번째 책을 펴내며 이슬아는 생각했다. '길고 뿌리 깊은 역사의 흐름을 명랑하게 거스르는 인물들을 앞으로도 쓰고 싶다.' '아비 부(父)'의 자리에 '계집 녀(女)'를 넣어 탄생시킨 소설 『가녀장의 시대』는 이슬아의 영원한 뮤즈이자 모부인 '장복희'와 '이상웅' 그리고 낮잠 출판사를 운영하는 이슬아 대표의 가족 드라마다. 독자들은 작가에게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이거 작가님 이야기예요?" 그런데 기자들은 자꾸 물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실제 이야기가 몇 퍼센트 담겨 있어요?” 언제나 독자들이 앞서간다. 작가가 창조한 흥미로운 질서를 부지런한 사랑으로, 새 마음으로.
글 써서 먹고살 수 있다는 말
경기도 파주에서 서울 정릉으로, 출판사 주소가 바뀌었더라. 첫 소설이 출간되고 두 달이 지난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나?
어제는 신문 칼럼을 쓰느라 분주했다. 쓰면 쓸수록 칼럼이 정말 멋진 장르라는 생각이 든다. 딱딱하고 건조한 신문 지면에서도 성취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는 것 같다. 다음엔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마감 때마다 한다. 마감이 없을 땐 책 관련 행사를 하느라 분주했다. 행사는 글쓰기와는 또 다른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독자님들께 좋은 기운을 드리고 싶다는 생각에 어쩐지 머리를 굉장히 공들여 감게 된다.(웃음) 말을 빨리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집을 나선다. 허튼소리를 최소화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슬아 작가는 다소 어려운 인터뷰이다. 책이 나오고 인터뷰를 상당히 많이 한 편에 속하니까.
그래도 <월간 채널예스>의 연락을 가장 고대했다. 출간 후 한 달 반 동안 인터뷰를 많이 했다. 진보, 보수 가리지 않고 다양한 신문과 잡지로부터 연락이 와서 반가웠는데, 일정이 허락하는 한 대부분 진행했다.
인터뷰를 골라서 해도 될 텐데?
첫 소설이 나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보수 매체에서 제안이 오면 어떤 의미에선 더 반갑다. 비슷한 배경에서 자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만 만나면 안 될 것 같아서,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내 책이 자꾸 전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되게 열심히 했다. 또, 여성 독자들이 출판계를 먹여 살리고 있으니까 남성 독자들을 유입시킬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왜 이런 건 안 물어보지?'라고 생각한 질문이 있었나?
책을 함께 만든 이들에 관해 더 물어봐 주기를 바랐다. 출판이라는 게 결코 작가 혼자 해내는 일이 아니지 않나. 나에게는 '이야기장수'라는 너무 웃기고 유능한 팀이 있다. 이연실 편집자님과는 벌써 네 번째 책 작업이고, 마케터분들과도 각별하게 협업하며 책을 홍보했다. 또한, 궁극의 표지를 만들기 위해 한수진 작가님과 아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의 머릿속에만 존재했던 가녀장의 형상을 정확히 구현하기 위해서였다. 이 모든 팀워크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책의 영광이 작가에게 집중되는 것이 때때로 아쉬웠다. 인터뷰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나중에 드라마로 쓰려고 한다. 그 드라마에서는 작가가 조연이고 편집자와 마케터를 비롯한 출판사 일꾼들이 주연이 될 예정이다.
영상물을 염두에 둔 작업인가?
일단, 『가녀장의 시대』처럼 소설로 먼저 쓰고 그걸 드라마화하는 야망을 갖고 있다. 그런데 아직 한 줄도 못 썼다.(웃음)
인터뷰를 하러 오면서 이슬아 작가의 출간 목록을 쭉 훑었다. 만화 에세이를 시작으로 수필집, 서간집, 서평집, 소설까지 썼는데, 혹시 르포를 쓸 생각은 없는지 궁금했다.
모든 장르를 섭렵할 욕심 같은 건 감히 부리지 못하겠다. 게다가 시를 빼고 문학을 말할 수는 없을 텐데, 나는 시 읽는 걸 좋아하지만 쓰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온 장르를 섭렵할 일은 아마 없을 것 같다. 소설도 이제 겨우 첫 작품일 뿐이다. 언젠가 발표하게 될 두 번째 소설도 좋은 평을 받길 희망하며 준비 중이다. 르포는 언젠가 쓰게 되리라는 느낌이 든다. 살면서 르포로만 이야기할 수 있는 사건을 통과하게 될 것 같다는 직감이다. 인터뷰와 칼럼이라는 장르를 무척 좋아한다. 이 장르에서 연습한 것들을 그때 발휘할 수 있다면 좋겠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와 닮은 르포를 쓰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왜 르포를 떠올렸는지 나 역시 궁금하다.
인터뷰 작업을 좋아하는 작가 아닌가?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땅의 문제에 관해서도 꾸준히 발언하고 있고. 문학을 무척 사랑하는 작가니까.
얼마 전 소설이 나오고 인터뷰를 하는데, 어느 기자분이 물었다. "이제 본격 문학을 하는 거냐?"고. 사실 내가 에세이뿐 아니라 인터뷰 작업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마치 두 장르는 진짜 문학이 아닌 것처럼 이야기되는 것 같아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에세이와 인터뷰를 위한 변호를 열심히 했다.
<일간 이슬아> 연재를 시작하고 2015년 무렵 "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소설가가 되는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더라. 2022년 겨울, 그 꿈이 이뤄졌는데.
이럴 수가.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이다. 생각해 보니 이때 글쓰기 교사 일뿐만 아니라 웹툰도 연재하면서 정말 바쁘게 대학을 다녔다. 월세랑 생활비 버느라 고생이 많았던 것 같다. 창작물로 먹고사는 것을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구나... 어쩐지 울컥한다. 사실 전업 작가가 되고 나서도 창작으로 먹고사는 것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 전업 작가라는 건 일종의 상태라고 생각한다. 공무원이 되는 것과는 다르다. 언제든지 또 다른 일로 돈을 벌어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2015년의 나에게 돌아갈 수 있다면 말해 주고 싶다. 아주 많은 독자를 만나게 될 거라고. 그래서 글쓰기를 더 어려워하고 사랑하게 될 거라고. 사실,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글쓰기를 배우는 10대들이나 동생들에게도 해주고 싶다. 글 써서 먹고살 수 있다는 말을 진심으로 건네고 싶다. 출판계의 일원으로서 이 말이 현실성을 지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갈 것이다.
와, 내 마음도 뜨거워진다. 글쓰기를 더 어려워 하고 사랑하게 된 건 어떤 마음인가?
윤하의 노래 '사건의 지평선'에도 그런 가사가 나오지 않나. '소중한 건 언제나 두려움'이라고. 누군가를 깊이 사랑할수록 두려움이 커지듯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여러 독자들이 생기면서, 때로는 내가 문학의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많은 시선과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또한, 내 글에 직간접적으로 등장시키는 타자들에 대해서도 더 신중하게 적어야 한다. 함부로 쓸 수 없는 말들이 점점 더 늘어난다. 타자에 대해 쓸 때 실수하지 않으려면 정말 열심히 헤아리고 공부해야 한다는 걸 전보다 절절히 실감하고 있다. 또한, 동시대 다른 작가들의 성취를 보면서, 같은 이야기도 얼마나 첨예하게 쓸 수 있는지 알게 된다. 나 역시 열심히 해오긴 했지만 앞으로는 더 치열해야 할 것이다. 글쓰기 스승 어딘이 오늘 아침에도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젠더와 계급과 언어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하지 맙시다." 그런 말을 들으면 정신이 번쩍 난다. 스스로 부족하다는 걸 아니까. 나아지고 싶다는 조바심이 나를 부지런히 움직이게 한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은 어쩐지 멈춰지지 않는다. 평생 노력해도 더 노력할 부분이 문학에는 남아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가녀장의 시대』에도 썼지만, 책을 사랑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이 가진 힘은 아주 세기 때문이다.
가세를 일으키고 싶었다
소설의 모티프가 된 이슬아 작가가 실제 운영하는 출판사 '헤엄'의 직원 인터뷰를 요청받지는 않았나?
요청이 있었지만 모부님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정중히 사양했다. 책에도 적었지만 소설 속 복희, 웅이 캐릭터와 실제 나의 모부님은 다른 사람이니까. 물론 동료로서 인터뷰를 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 속 복희는 티끌만 한 유명세도 원하지 않는다. 대단한 사람 취급받는 것을 정말 불편해하는 사람이다. 웅이는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데, 작가인 딸의 인터뷰에 모실 경우 그의 삶에 어떤 제약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일부 독자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윤리적 기준 같은 것에 웅이가 영향받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이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살길 바라므로 인터뷰는 함께하지 않는다. 소설과 달리 현실 속 웅이의 본업은 뛰어난 프리다이빙 강사다. 그는 프리다이빙이 얼마나 우아한 스포츠인지 자주 설명한다.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웅이를 추천해 주곤 한다.
소설을 읽고 나니 이슬아 작가에게 있는 '자식'으로서의 정체성이 궁금해졌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가세를 일으키고 싶었다.(웃음) 모부님이 정말 산전수전 겪으며 열심히 살았다. 그들을 보면서 생계를 유지한다는 건 엄청 고단하고 숭고한 거구나 생각하며 자랐다. 내게 물려줄 부 같은 건 없는 모부니까 이 집안의 새 희망은 나이지 않을까 싶었다.
작가의 가족이 되면 직간접적으로 작품의 소재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가녀장의 시대』는 '장편 소설'이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지만, 가족이 모티프가 되었기 때문에 갖게 되는 각자의 부담은 없나?
우선 나의 모부는 책 속의 복희, 웅이를 자기 자신이라고 딱히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가녀장의 시대』도 드라마를 시청하듯이 읽어줬다. 그들이 그런 식으로 내 문학을 존중해 주는 게 너무 고맙다. 웅이, 복희 캐릭터가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식의 의견을 덧붙일 때도 있었다. 복희 캐릭터한테 괴팍함도 넣었으면 좋겠다고 엄마가 말했던 게 기억난다.
복희에겐 다정이 어울린다. 무척 투명하고 솔직한 다정.
맞다. 다정함을 빼놓고 어떻게 복희 캐릭터를 설명하겠나. 이 소설은 잘난 딸이 혼자 집안을 굴리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복희야말로 가녀장 체제의 집안을 굴러가게 하는 핵심 인물일 것이다. 아마도 슬아보다 더 사랑받는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냉소와 허무와는 아주 거리가 먼 사람. 잘 듣고 잘 변하고 잘 웃고 잘 우는 사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고 왠지 식욕이 돌고 살맛이 나는, 바로 그런 사람이 복희다. 우리 엄마의 많은 부분을 차용해서 썼다. 엄마는 나의 가장 오래된 뮤즈인 것 같다. 그러나 실제 엄마는 훨씬 더 복잡하고 예측 불가하다. 소설 속 복희가 조금 더 일되게 다정하고 코믹하다.
그런데 좀 신기하기도 하다. 가족들이 열렬한 독자라는 사실이.
<일간 이슬아>를 연재할 때도 글을 보내면 가장 빨리 보는 사람들 중 하나가 모부님이다. 지금은 따로 살지만 같이 살 때는 메일을 발송하고 엄마, 아빠 방에서 웃음소리가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를 확인했다. 『가녀장의 시대』 원고를 <일간 이슬아>에 연재할 때도 읽으셨는데, 책이 나오고 나서 다시 읽을 때도 엄청 웃으면서 읽어주셨다. 그게 너무 좋았다.
어떤 마음일까?
내 글을 기다려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두 분 다 책을 완독하는 일이 거의 없지만, <일간 이슬아>에서 연재하는 글 한 편 정도는 후루룩 읽고 주무셨던 것 같은데, 이게 어떤 지표이기도 하다. 책을 열심히 읽지 않는 독자도 매일 읽을 수 있는 글이라면 가독성은 확보되지 않았을까, <일간 이슬아>를 연재하며 상상하는 독자들에 모부님도 포함돼 있다.
평소 궁금했다. 학창시절을 대안학교에서 보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경험들이. 대안학교를 진학한 배경을 알려줄 수 있나?
초등학교 고학년 때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이라는 시골에 살았었는데, 마침 집 근처에 대안학교가 생겼다. 그래서 가깝길래 다니기로 했다. 당시엔 일반 중학교에 단발 규정이 있었다. 머리를 강제로 자르기 싫어서 선택한 것도 있다. 모부는 학교에서 유기농 급식을 준다고 해서 추천했다. 그리고 딸아들이 입시 교육에 너무 시달리지 않기를 바랐던 마음도 있었다. 나는 대안학교에 대해 주로 좋은 기억만을 가지고 있다. 선생님들 그리고 친구들이랑 아주 내밀했고, 기숙사 생활도 복닥복닥 즐거웠다. 책 읽고 글 쓸 시간도 많았다. 자기주도적 학습이 나에게는 잘 맞았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청소년이 대안교육과 잘 맞는 것은 아니다. 대안학교 역시 유토피아일 수 없으니까 섣불리 권유하진 않는 편이다.
좋아하는 마음을 지켜내는 일
듣기로는 『가녀장의 시대』의 영상 판권 계약이 논의 중이라고. 드라마나 시리즈물로 확장될 때, 원작자로서 지키고 싶은 것이 있나?
주인공인 슬아 캐릭터가 남성과의 사랑을 통해 성장하는 서사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러브 라인이 들어가더라도 되게 조심스럽게 그려졌으면 좋겠고. 하지만 아주 큰 조직과 자본이 투입되는 장르이기 때문에, 혼자 글을 쓸 때만큼 자유롭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본에 아첨할 준비를 하고 있다.
언젠가 "자본에 아첨하지 않아도 되는 장르라서 지금까지 글을 쓰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드라마는 내가 너무 고집부리면 일이 진행될 수 없는 세계니까, 필요하다면 아첨도 잘할 수 있다.(웃음) 물론, 정말 넘지 않아야 될 선이 있겠지만 이야기를 잘 지키기 위해서는 나도 많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아티스트를 관리해 주는 매니지먼트에 소속됐다. 작가 활동도 서포트를 해주고 있는지?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는 원래부터 쭉 좋아하며 지켜봤던 회사다. 뛰어나고 고유한 아티스트들이 소속되어 있고, 대표님과 팀장님과 실장님을 비롯한 직원분들을 내가 참 좋아하고 신뢰한다. 방송이나 광고나 화보 촬영 같은 일이 있을 때 주로 협업한다. 출판계의 일들은 나의 소관이다.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일들과 그들이 도와주었으면 하는 부분을 잘 나눠서 계약했다. 느슨하게 소속된 든든한 팀이라고 할 수 있다.
작년 이맘때 출간된 인터뷰집 『새 마음으로』와 『창작과 농담』은 헤엄 출판사에서 작업한 책이다. 직접 편집, 유통까지 하는 책과 외부 출판사와 협업하는 책의 기준은 무엇인가?
조금 느슨하게 내 마음대로 만들고 싶은 책은 헤엄에서 직접 작업하고,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아야만 하겠다 싶은 책은 경험이 많은 편집자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는다. 내가 편집자 정체성이 더 컸다면 헤엄 출판사에서 실력을 더 키우려고 할 텐데 아직은 작가 정체성이 더 큰 것 같다.
헤엄 출판사에서 작업하는 후속작은 무엇인가?
『지구 걱정에 잠 못 드는 이들에게』라는 책이다. 프랑스어로 된 원고를 번역해서 작업했다. 무엇보다 내가 읽고 싶은 마음에 프랑스에서 판권을 사 온 것이다. 오랫동안 환경 전문 기자로 일해 온 프랑스의 작가 '로르 누알라'가 썼다. 기후위기 시대에 어떻게 절망감을 다루며 나와 이웃과 세계를 돌볼 것인지를 질문한다. ‘생태 불안’이라는 개념이 지금은 생소하게 들려도 점점 더 보편적인 화두가 될 거라고 본다. 내가 가르치는 10대 제자들이나, 기후위기 활동가로 일하는 친구들이나, 출산 혹은 비출산을 결심하는 나의 동료들 모두가 크고 작은 생태 불안을 겪는다. 앞으로는 더 심해질 텐데 이 절망감을 다루는 데에도 어떤 지침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지구 걱정에 잠 못 드는 이들에게』는 아주 유의미한 책이다. 번역 출간은 처음이었는데 새롭고 재밌었다. 나의 든든한 동료인 곽성혜 번역가와 함께 작업했다.
좋은 출판사 대표가 되기 위한 노력이 있을까?
일단 내가 좋아하는 편집자분들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많이 보려고 한다. 그리고 외주 작업을 요청드릴 때는 일이 완료되면 24시간 안에 돈을 지급한다. 왜냐하면 내가 외주 작가로 일할 때 일은 끝냈는데 돈이 한두 달 뒤에 들어오면 초조했다. 그래서 글이나 사진 작업을 요청드렸을 때는 작업물을 받으면 바로 비용을 지급하고, 디자인처럼 큰 작업은 계약하는 날 50%를 드리고 작업이 완료되면 나머지 50%를 드리고 있다.
글을 오래 쓰기 위해서 하는 노력이 있다면?
예전에는 운동, 건강 이야기를 많이 했다. 지금도 물론 운동의 중요성은 여전히 실감하는데 가장 중요한 건, 글쓰기를 계속 좋아하는 마음인 것 같다. 좋아하는 마음을 지켜내는 게 어렵다. 왜냐하면 일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도 어렵고 속상한 일을 많이 겪기도 하지만, 가장 힘든 건 내 글이 내 작업이 마음에 안 드는 일이니까. 그게 가장 괴로운 일이니까. 스스로가 싫을 때조차 글쓰기를 잘하고 싶은 마음을 지켜내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이슬아 작가가 꿈꾸는 세상이 궁금하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 장혜영 의원의 노래 가사를 자주 생각하는 날들이다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요새는 정말 그것이 쉽지 않은 일처럼 느껴진다. 무사히 할머니가 되려면 아주 많은 운이 따라야 하는 것 같다. 한국처럼 사회 안전망이 취약한 사회에서는 특히 그렇다. 나 역시 그토록 불안정한 사회의 구성원이며 점점 더 기성세대가 되어갈 것이다. 바뀌어야 할 문제들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하고 힘을 보태는 어른이 되고 싶다. 글쓰기 수업을 통해 어린이들을 정기적으로 만날수록, 친구와 연인과 동료와 가족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어떤 문제들이 그냥 넘어가지지 않는다. 사랑과 우정의 폭이 넓어진다는 건 그만큼 많은 고통을 보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세상과 나 자신을 좋은 쪽으로 변하게 하는 데 힘을 쓰면서 할머니가 되어가고 싶다. 지금보다 훨씬 좋은 글을 쓰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그런 세월이 내게 허락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것은 제가 아직 본 적 없는 모양의 가족 드라마입니다. 늠름한 아가씨와 아름다운 아저씨와 경이로운 아줌마가 서로에게 무엇을 배울지 궁금했습니다. 실수와 만회 속에서 좋은 팀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TV에서 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썼습니다. 작은 책 한 권이 가부장제의 대안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저 무수한 저항 중 하나의 사례가 되면 좋겠습니다. 길고 뿌리 깊은 역사의 흐름을 명랑하게 거스르는 인물들을 앞으로도 쓰고 싶습니다.
*이슬아 작가. 199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일간 이슬아>를 발행하고 헤엄 출판사를 운영한다. 지은 책으로 에세이 『일간 이슬아 수필집』,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깨끗한 존경』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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