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의 마지막 하나가 된 흰바위코뿔소 노든과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이 수없는 긴긴밤을 함께하며, 바다를 찾아가는 이야기 『긴긴밤』.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긴긴밤』이 출간된 지 2년이 채 되기도 전에 30만 독자와 함께하게 되었다. 세대를 막론하고 모두를 울린 감동적인 이야기의 힘, 코뿔소와 펭귄의 작지만 위대한 사랑의 연대를 그려 많은 독자들의 사랑과 지지를 얻어 왔다. 출간 이래로 줄곧 어린이 분야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켜 오며 이야기가 가진 저력을 보여 준 『긴긴밤』을 쓰고 그린 루리 작가를 만나 보았다.
『긴긴밤』을 출간한 지 어느새 2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 오셨는지 작가님의 근황이 궁금합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네요! 저는 여전히 회사에 가고, 집에 오고, 책 작업을 하고, 친구도 만나고, 주말에는 늦잠도 자고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저보다는 저희 아버지가 많이 바빠지셨어요. 아버지의 하루 일과에 매일매일 올라오는 『긴긴밤』 리뷰 및 관련 포스팅 읽기가 추가되었는데, 만나는 사람들마다 요새 그것 때문에 맨날 너무 바쁘다고 하시죠.
『긴긴밤』이 이만큼 큰 사랑을 받으리라 예상하지 못하셨을 것 같아요. 『긴긴밤』 출간 전후로 작가님의 삶에서 달라진 점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상투적인 질문이지만 『긴긴밤』이 어느새 30만 부에 도달했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가족, 친구들에게 축하를 받거나 기념하는 자리를 갖진 않으셨는지요?
달라진 점이 있다면, 책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인연이 생겼다는 것일 거예요. 『긴긴밤』을 함께 작업해 주신 편집자님을 만나게 된 것은 『긴긴밤』이 저에게 준 선물이에요. <비포 선라이즈>에 이런 대사가 나와요.
"이 세상에 어떤 종류든 마법이라는 게 있다면, 어떤 사람을 이해하고 그 사람과 뭔가를 나누려는 시도 사이에 있을 거야."
『긴긴밤』은 사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마법입니다. 제 이야기를 이해하고 나누려는 시도를 해 준 분들이 만들어 주신 마법이죠. 저에게는 너무 큰 숫자라서 30만 부가 어느 정도인지 감도 안 오지만 그 마법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긴긴밤』을 집필하던 때로 돌아가 그때 했던 고민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여러 고민이 있었겠지만 한 가지만 들려주신다면요?
가끔 힘든 날들이 찾아올 때가 있는데, 그럴 때가 저에게는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인 것 같아요. 노든의 이야기도 그렇게 시작되었어요. 2018년 3월 19일 아침 출근길에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수컷 북부흰코뿔소 '수단'이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접했어요.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어요. 45년이란 시간을 수단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처음에 구상했던 이야기는 복수를 다짐하고 실행하려는 코뿔소의 이야기였어요. 그냥 매일 출퇴근만 해도요, 길거리만 보아도, 세상에는 정말 억울한 이들이 많아요. 이렇게 억울한데 어떻게 살아야 하나, 소중한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세상에 남은 마지막 하나가 되었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나. 저는 '수단'이, 억울한 사람들이, 복수를 해도 마땅한 그들이, 복수를 할 수 없게 되는 이유가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복수보다 더 강하고 소중하고 아름다운 무언가가 부디 있었으면 했고 그게 제가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의 동화였던 것 같습니다.
『긴긴밤』은 연대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함께한다'는 것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갑자기 날씨가 추워진 날 명동 거리를 지나는데, 노점에서 옥수수를 팔던 아주머니가, 지나가는 노숙인을 불러세우시더니,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옥수수를 주시더라고요. 거칠게 "이거 먹어! 먹어야 살어!"하면서 주셨어요. 우리는 언제나 함께 살고 있어요. 다만, 세상에는 고통스러운 일이 넘쳐 나고, 살기에 급급하니 이런 광경을 놓치기 쉬운 것 같아요. 하지만 함께인 순간들은 있어요.
『긴긴밤』 속 노든과 어린 펭귄, 치쿠와 앙가부... 공평하다는 말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모두에게 긴긴밤은 찾아옵니다. 『긴긴밤』이 수많은 독자들에게 울림있게 다가선 것은 이 이유도 있을 듯해요. 작가님은 긴긴밤을 어떻게 견디시나요?
『긴긴밤』의 이야기 속에서는 허세를 부렸지만, 저의 긴긴밤도 다른 분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허우적거리면서, 온갖 감정에 휘둘리면서 힘겹게 보내요. 한창 힘들 때 쓰던 노트에, 일주일 중 30초만, 그 정도만 행복하면 살자, 라고 적어 놨었더라고요. 긴긴밤 속을 허우적거리다가도, 30초 정도 저도 모르게 아, 내가 이것 때문에 그 시간들을 견디고 살아냈구나, 하는 순간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 30초는 대개는 그렇게 대단한 순간들도 아니에요. 키우던 강아지가 자기 방귀 소리에 놀라거나, 동생이 머리를 망쳐서 웃긴 얼굴로 온다거나, 30초 정도 웃음이 터지는 그런 하찮은 순간들이 저를 살게 하더라고요.
그동안 세 편의 작품으로 독자들을 만나셨는데요. 글과 그림을 함께 한 『긴긴밤』은 물론이고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 그림 작가로 참여하신 『도시 악어』 모두 동물이 주인공인 책입니다. 특별히 동물을 소재로 한 작품에 더 마음이 기우시는지요? 작가님께서 다음 작품의 주인공으로 삼고 싶은 동물이 있다거나 '수단'의 이야기처럼 인상 깊게 보신 실제 사례가 있을까요?
저는 사람을 대하는 것이 어려워서 항상 동물을 대하는 것이 더 편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동물들은 저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요! 개를 너무 좋아해서인지, 어쩌다 보니 이번에 작업 중인 이야기에는 두 편 모두 개가 등장하게 되었네요. 그 후의 이야기에서 다루고 싶은 캐릭터들에는 큰 동물들도 있지만 거미나 바퀴벌레 같은 작은 동물들도 있습니다. 제가 무서워하지만 살면서 자주 보게 되는 친구들이죠. 언젠가 이 벌레 친구들의 이야기도 쓰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긴긴밤』에 이어 작가님의 또 다른 작품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독자들이 정말 많습니다. 이후, 구상하고 계신 작품이나 출간 계획이 있으실까요?
『파우스트』의 악마 '메피스토'가 검은 개로 등장하는 그림책과 전쟁 이야기를 담은 동화책을 작업 중입니다. 두 이야기 모두 다시 쓰기를 반복하고 있는데, 그래서 메피스토의 경우에는 처음에 구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부디 두 이야기 모두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서로 의지하며 수많은 긴긴밤을 나아간 코뿔소 노든과 펭귄 치쿠럼 작지만 위대한 사랑의 연대가 필요한 많은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남겨 주세요. 저는 계속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억울하고, 감당해 내고, 살아 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계속 담아내겠습니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니까요. 그러니, 제가 그 모습을 담아낼 수 있게, 또 하루 살아내 주세요.
*루리(글·그림) 미술 이론을 공부했다. 2020년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로 제26회 황금도깨비상 그림책 부문을, 장편 동화 『긴긴밤』으로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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