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 특집] 지구에 무해한 배송은 가능할까 - 예스24 친환경 배송
친환경 포장법을 보러 경기 파주에 위치한 예스24 물류 센터를 찾았다.
글ㆍ사진 황유미
202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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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택배를 뜯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스티로폼, 비닐처럼 버릴 것들이 쌓이고, 덕지덕지 붙은 송장과 테이프를 뜯다 보면 심란하다. 이런 고민을 덜어내고자 고안한 친환경 포장법을 보러 경기 파주에 위치한 예스24 물류 센터를 찾았다.

혹시 내가 주문한 책을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낭만적인 기대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접어야 했다. 30만 종, 500만 부의 책을 보관하는 거대한 창고에서 작업자들은 배송을 준비한다. 알파벳 A부터 Z까지 일련번호가 매겨져 있는 서가 앞에 서면 책에 집어삼켜지는 듯한데, 다른 창고엔 여분의 책이 더 쌓여 있다고 한다. 아직 놀라기엔 이르다는 얘기다.

곧이어 친환경 배송 상자를 재단하고 포장하는 기계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자마자 탄성을 내뱉었다. 기계가 테니스 코트 하나를 꽉 채울 정도로 거대했기 때문이다. 이 커다란 기계 위에서 어젯밤 주문한 내 책의 여행이 시작된다. 아직 모든 책이 친환경 배송 상자로 포장되는 것은 아니다. 2022년 10월 기준, 전체 물량의 30%가 친환경 배송 상자로 포장되고 있다.

책들은 먼저 밴드로 단단히 고정된다. 이때 밴드는 자연 분해가 되지 않는 비닐 대신 종이 밴드를 사용한다. 책들끼리 묶어 고정하면 배송하다가 책이 흐트러져 훼손될 일도 줄어든다. 작업자가 기계 밑에 책을 두고 버튼을 누르면 종이 밴드가 내려와 감싼다. 이곳에 5분만 서 있어도 어떤 책이 잘 팔리는지 알 수 있다. 놀라운 점은 꽂혀 있는 책, 새하얀 서가까지 먼지 하나 보이지 않았다는 것. 하루에만 30만 권의 주문을 처리한다고 하니 먼지 쌓일 틈도 없는 게 아닐까.

종이 밴드로 고정된 책 묶음은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다. 기계의 '스캐너'가 책 크기를 인식하자마자 재단기로 그 정보를 보낸다. 신호를 받은 재단기에서는 책에 꼭 맞는 크기로 종이 부재를 자른다. 자르고 남은 자투리는 따로 모아 버린다.

"보통 규격화된 상자에 포장을 할 때는 크기가 작은 책을 넣으면 여분의 공간을 충전재로 채워야 하는데요. 친환경 배송 상자는 책에 꼭 맞게 재단하니까 비닐로 된 충전재를 넣지 않아도 되는 거죠."

자루 안을 살펴보니 모아진 자투리의 크기도 작았다. 책에 꼭 맞게 재단된 종이 부재는 옆으로 이동하고, 접는 선이 즉석에서 만들어진다. 상자 모양으로 접을 준비가 끝난 것이다. 마침내 상자가 착착 접히며 책을 감싼다. 충전재 하나 없는데 책이 무사할까 걱정되어 물어봤더니, 종이가 책을 여러 번 감싸는 데다 박스의 모서리 부분이 튀어나와 있어 파손 위험이 거의 없다고 한다.

뒤이어 도장 같은 기계가 위에서 내려와 송장을 붙인다. 이제 이 상자는 배송 준비를 끝내고, 택배 회사 트럭에 들어가기 위해 작업장을 떠난다. 포장이 끝난 상자가 모인 컨베이어 벨트를 보니 일반 상자가 반, 책에 딱 맞게 즉석 재단한 박스로 포장된 친환경 상자가 반 정도였다. 부피가 일반 상자에 비해 작은 편이라 친환경 상자로 포장하면 같은 면적에 더 많은 양을 쌓을 수 있단다. 한 번에 더 많이 운반할 수 있다면 배송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 배출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앞으로 친환경 배송 상자의 비중을 늘리려 기계를 더 구매한다던데, 가격을 듣자마자 깜짝 놀라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다는 속물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기업이 비용을 부담하는 이유는 소비자가 반응하기 때문이다. 텀블벅 같은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에서도 최근 2년간 보다 친환경적인 제작, 배송 방식을 고려하는 창작자들이 늘어나는 추세를 반영해 플라스틱을 업사이클링하는 프로젝트인 'CLAP'란 기획전을 열기도 했다. 창작자들은 이제 자가 점착 포장지 하나로만 책을 감싸 포장에 드는 부산물을 줄이고, 냉장 유통이 필요한 식품은 세척한 재활용 아이스 팩이나 얼린 생수를 넣어 보낸다. 비닐 대신 신문지로 제품을 감싸는 창작자, "종이는 분리수거로, 생분해 비닐봉지는 일반 쓰레기에 버려주시면 됩니다."라며 포장재 분리 배출 방법까지 안내하는 이도 있다. "독립 출판을 시작한 이후로 코팅된 종이를 만들어내는 것에 다소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한 만화가의 고백에 내 지갑도 열린다.

배송에 대한 고민은 곧 파손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향수처럼 작은 액체류는 수건과 한지로 포장한 뒤 "과감히 포장재를 바꿨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주류처럼 무거운 것들은 에어캡을 사용해야만 파손을 방지할 수 있어 부득이하게 비닐을 사용했다며 양해를 구한다. 어쩌면 너그러운 소비자가 많아질수록 지구에 친절한 배송이란 모험에 나서는 생산자가 많아지는 건 아닐까.

전날 늦은 밤 주문한 책은 '배송 준비'라는 네 글자로 요약하기엔 억울한 긴 여행을 마친 뒤 오늘 아침 내 손에 들어왔다. 이제는 내 차례다. 스티커를 떼어내고 상자를 펼친 후, 상자의 두 번째 쓸모가 생기기를 바라며 재활용 수거함에 넣는다. 배송 완료.



*도움말

- 이영재(예스24 파주물류1팀 팀장)

- 황규희(예스24 물류지원파트 과장) 
- 권지연(텀블벅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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