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 전담 변호사는 형사 재판에서 변호인이 꼭 필요한 사건이지만 스스로 변호인을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을 피고인으로 만난다. 형사 법정에 선 피고인은 돈이 없어도 변호인의 도움을 충분히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헌법의 뜻은 준엄하나, 잘못한 개인에 대한 당연한 처벌 그 너머 취약 계층의 변하지 않는 현실은 여전히 가혹하다. 실형을 받은 전력이 있으면, 단순 절도도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 이른바 '장발장법' 위헌 결정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저자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이들의 말을 듣고, 그를 둘러싼 가족과 소외된 이웃과 우리 사회의 이야기를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에 담았다.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의 사연들이 '디즈니+'의 오리지널 시리즈의 법정 에피소드 원작으로 다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이야기가 소개되고, 어떤 독자님들을 만나오셨나요?
다양한 독자분들을 만났어요. 감옥에서 제 책을 읽고 출소 후 저를 찾아온 분도 있고, 장래 진로를 고민하던 중 우연히 제 책을 보고 국선 변호에 관심을 두고 변호사가 되고 싶다며 연락해 온 대학생도 있었습니다. 일반 변호사 일을 하다가 제 책에 영향을 받고 국선 전담 변호사가 된 변호사 독자님들도 만났고요. 별일 없는 일상이 정말 감사한 거구나 느끼며 삶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는 평범한 독자분들이 가장 많긴 했습니다.
저자님께 피고인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다가갔고 어떤 의미가 됐던 것 같나요?
국선 변호를 받는 분들 중 상당수는 생활 능력이 부족하고 삶이 항상 위태로운 소외 계층입니다. 제가 그동안 살아온 제도권 주변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이들이 많았지요. 그래서 처음엔 그들을 저와 매우 다른 사람들이고 국선 변호라는 제 일만 아니라면 그들과 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 사회는 다 연결되어 있잖아요. 만날 일이 없다고 상관없는 게 아니고요. 저도 그들의 이야기에 한 걸음씩 더 들어가 보면서 제가 살고 있는 이 사회와 그들의 이야기가 분리될 수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그들의 상처 난 삶의 이야기가 우리 삶과 동떨어진 타인의 삶이 아니라, 그들과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저와 우리 시대의 이야기임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책 속 에피소드들을 함께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해요. 에피소드 「장발장법, 그 뜻밖의 인연」은 저자님께서 위헌 결정을 받아낸 법안과 관련된 사건이라서 더 특별하지 않을까 합니다.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재범을 저지르지 않으리라고 낙관하신다고 하기도 하셨는데요.
사실 재판이 끝나면 대개는 피고인과 다시는 연락할 일이 없습니다. 그들이 형사 처벌 이후에는 어떤 삶을 살아갈지 잘 모른다는 이야기죠. 「장발장법, 그 뜻밖의 인연」에 썼던 이는 출소 후에도 종종 저를 찾아왔고, 이제는 편한 지인이 됐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국선 변호의 인연으로 만났지만, 사건 종료 이후 서로 연락하는 사이는 정말 드물죠. 사실, 그 사람에게 제가 특별한 변론을 한 건 아닌데, 그 사람이 제 변론을 너무나 고마워했어요. 같은 국선 변론을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그 변론이 피고인의 삶을 바꾸는 변론이 될 수도 있고 형식적인 변론에 머물 수도 있는 거죠. 평범한 저의 변론에 정말 감사하는 그런 마음이 있는 사람이니 재범은 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하는 거죠. 누군가 자신을 믿어준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가족이든 친구든 자신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진심을 담은 관계가 있다면 재범의 가능성은 낮아지리라 생각합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은 기적」, 「이웃집 아줌마의 가르침」에 언급된 피고인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피고인의 부정적인 이미지와는 결이 다른 듯합니다.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에 이러한 분들의 사연도 담았던 이유가 있을까요?
두 에피소드에 나온 이들은 결국 범죄자가 아닌 사람들이죠. 범죄라고 하면 우리는 모두 나쁜 것만을 생각하지만, 실은 그 자체로 나쁜 행동은 아닌데 국가가 자신의 편의나 질서 유지를 위해 어떤 행위를 범죄로 정해놓았기 때문에 범죄가 되는 그런 것들도 있거든요. 우리가 형사 처벌을 받는 사람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범죄에도 이와 같이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어요. 제가 처음부터 그렇게 의도한 것은 아닌데 그런 다양성을 보여 준 게 됐네요.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를 통해 이야기가 우리 사회의 '불완전하고 조각난, 미완의' 경계를 조금씩 넓힐 수 있다고 전하셨습니다. 그런 면에서 드라마의 법정 에피소드 원작으로 책 속 이야기가 소개되는 일이 저자님께 어떤 경험이실지 궁금합니다.
제가 쓴 글이 드라마 소재가 된다는 건 특별한 경험이긴 합니다. 양가감정이 들어요. 일단은 기쁘죠.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국선 전담 변호사이고 그 세계의 디테일이 제 책을 통해 구체화하였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물론 드라마의 큰 줄기는 제 책과 완전히 다르고 제 글이 에피소드 원작에 머물긴 하지만요. 하지만 책의 운명이 드라마 흥행에 좌우된다는 분명한 사실이 저를 조금은 슬프게 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야기가 얼마나 독자에게 다가가느냐는 책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그 본질 때문이 아니라 그 글의 일부가 드라마 소재가 됐다는 '우연한 사건'에 의해, 그리고 그 드라마의 흥행 여부에 따라 책의 운명이 달라지는 현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것 같거든요.
확실히 그런 현실을 무시할 순 없겠습니다.
그래도 책에 실린 이야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그리 서글퍼할 일만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세상에 나왔지만 별로 알려지지 못한 이야기가 드라마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 같거든요. 책으로 엮은, 세상에 갓 나온 이야기는 책의 독자들에게 읽히고 때로는 그들 중 일부의 마음에 남겨져 한때의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책의 독자들은 드라마 시청자들에 비하면 아주 극소수일 테니까요. 제가 '사소하고 조각난 이야기들'이라고 불렀던,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이야기들이 드라마를 통해 널리 알려진다면, 그것으로 제 글은 나름 역할을 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드라마 시청자들이 역으로 책의 독자들이 돼, 그 이야기들을 마음에 품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으신가요?
책의 에필로그에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이라는 책에 나오는 잠든 새의 눈물을 마시고 날아가는 나방 이야기를 인용했는데요, 그 이야기를 다시 하고 싶습니다. 주는 행위는 능동적이고 받는 것은 수동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눈물을 '주는' 새는 잠들어 있고, 그걸 마심으로써 '받는' 나방은 깨어 밤을 가로지르며 날아갑니다. 그러므로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우리의 자아의 가능성을 넓히는 것이라고 그 작가는 썼어요. 그 말 그대로였죠. 사건으로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 즉 타인들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저는 변호사 이전에 한 인간으로 조금이나마 더 성장한 것 같아요.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임으로써 자아도 넓어지는 거죠. 독자님들도 피고인들의 사연이 그들을 변호한 어느 변호사의 이야기가 되고, 그 변호사의 이야기가 책을 읽으시게 된 독자분 각자의 이야기가 되어가는 그런 과정, 타인의 이야기가 나를 변화시키는 과정을 생각하시면서 읽어주신다면 제 책이 더욱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혜진 법학전문대학원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15년의 기자생활을 접고 대학원에 입학해 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제1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고 서울고등법원 재판연구원을 거쳐 9년째 국선전담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세상에 들려지지 못한 사소하고 작은 이야기들을 법의 언어로 풀어쓰며 사람과 법을 공부하며 살고 있다. |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