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작가] 소설가 문지혁 “미련한 작가로 남고 싶다”
긍정적으로 보면 미련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도 있잖아요. 계속 미련한 작가로 남고 싶어요.
글ㆍ사진 김윤주
2022.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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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으로 알게 된 건 재난이 국경을 넘는다는 사실이다. 이 시공간에서 내가 겪는 일이 당신의 삶을 파고들 수 있다는 것. 소설가 문지혁의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는 서로 다른 재난의 경험이 교차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미국 뉴욕에서 한국어 강사인 ‘나’와 일본인 유학생 ‘아야’는 우연히 만나 다리를 건넌다. 성수대교 붕괴와 동일본 대지진, 9·11 테러. 서로의 삶에 새겨진 균열을 알아볼 때, 문지혁의 이야기는 조용히 폭발한다.



13년 차 소설가

소설을 쓰고 강의를 하고, 유튜브 채널 〈문지혁의 보기드문책〉을 5년째 운영하고 있죠. ‘꾸준하다’는 말이 떠오르더라고요.

솔직히 저는 전략적으로 영리하게 써온 작가는 아니에요(웃음). 유일한 재능이 있다면 한자리에 오래 버티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계속 쓴 것 같아요.

유튜브 채널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문예 창작 대학원에서 만난 한 선생님이 “21세기 작가는 글만 써서는 안 된다. 문학적 경험을 어떻게든 나눠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문학 강의를 할 때 느끼는데요. 학기 초가 되면 수업을 수강하게 해달라는 학생들의 메일을 많이 받아요. 왜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원하는 수업을 듣지 못할까 안타깝더라고요. 제약 없이 문학의 즐거움을 알리고 싶어서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죠.

소설가를 꿈꾸는 분들이 물었죠. “어떻게 오래 쓸 수 있나요?” 작가님의 답은 “모두가 월드컵에 나갈 필요는 없다.”였어요.

글을 오래 쓸 수 없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현실 감각’이라고 생각해요. 통장 잔고나 사회적 위치를 따지면 오래 못 쓰죠. 그래서 재능 있는 친구들이 금방 이 판을 떠나요. 저는 반드시 월드컵에 우승하겠다는 목표보다는, 재능이 있다는 착각 하나로 그냥 써온 거예요. 긍정적으로 보면 미련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도 있잖아요. 계속 미련한 작가로 남고 싶어요.

PC통신 하이텔 ‘과학소설동호회’에 소설을 쓰면서 창작을 시작했죠.

중학생 때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파운데이션』에 푹 빠졌어요. SF 소설을 더 즐길 방법이 없을까 찾고 찾다가 ‘과학소설동호회’ 게시판을 발견했어요. 사람들이 열심히 소설을 쓰고 감상평을 나누는 거예요. 당시 듀나, 장강명 작가님도 활동하고 있었고요. 중학생인 저도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설을 써서 올리기 시작했는데 진지하게 답글이 달리더라고요. 현실과 달리 나를 어른으로 생각해 주는 세계를 발견한 것 같았어요. 거기에 매혹되어서 계속 써왔죠. 그렇게 13년 차 소설가가 됐네요.


시공간을 넘어 교차하는 재난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는 2016년부터 최근까지 쓴 소설을 묶은 책입니다. ‘이민자 소설’이라 는 키워드가 눈에 들어왔어요. 뉴욕에서 공부했던 작가님의 체험이 기반이 된 건가요?

미국에서 3년밖에 머무르지 않았지만, 정말 중요한 경험이었어요. 과거의 삶에서 막연히 느껴온 질문들이 ‘이민자’라는 키워드와 만나서 폭발하는 느낌을 받았죠. ‘이민자 소설’의 핵심인 정체성의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해 왔어요. 성장 과정에서 저는 평범한 편이었는데, 어느 시절엔 잘사는 동네의 가장 못사는 아이이기도 했고, 못사는 동네에서 잘사는 축에 드는 아이이기도 했어요. 그 과정에서 ‘나는 어디에 속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던 것 같아요.

‘이민자’라는 범주로 묶여도 그 안에는 다양한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같은 ‘이민자’라고 해도, 구체적인 입장과 배경은 다 달라요. 제 소설 『초급 한국어』에는 유학생으로서의 모습이 많이 담겼는데요. 유학생은 잠시 머무르다 가는 입장이라 이민자의 가장 끝에 위치하는 사람일 수 있거든요.(웃음) 뉴욕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실제로 1세대, 2세대로 간단하게 규정할 수 없다고 해요. 어디로 이민을 했는지, 시기는 언제인지에 따라서 다르고, 심지어 한 가족 안에서도 경험이 다르죠. 딱 잘라서 보기보다 연속된 스펙트럼으로 봐야 해요.

‘이민자 소설’이 재난 이야기와 만나 특별한 지점을 만드는 것 같아요. 보통 재난은 특정 국가의 문제가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에서는 성수 대교 붕괴와 동일본 대지진 같은 재난의 경험들이 국경을 넘어 교차돼요.

장르 소설을 쓰면서 얻은 장점은 시공간의 제약에서 훨씬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많은 리얼리즘 소설이 현실을 핍진하게 그리지만,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눈앞의 시공간에 얽매인다는 느낌도 들거든요. 그렇지만 재난은 한 국가의 일만은 아니잖아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나면 전 세계의 물가가 오르고, 일본에서 지진이 나면 한국도 영향을 받죠. 그렇다면 소설에서 어떻게 이 사건들을 엮을 수 있을까. 서로 다른 경험들이 어떻게 한자리에 모일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래서 한국인 유학생인 ‘나’와 일본인 ‘아야’가 뉴욕의 조지 워싱턴 브리지를 함께 걷는군요.

맞아요. 뉴욕은 전 세계의 이민자가 모이는 공간이잖아요. 하나의 공간에서 서로 다른 시간이 어떻게 쌓이는지 보여주기 위해 '조지 워싱턴 브리지'라는 역사적인 장소에서 동양인 두 사람이 만나는 상황을 만들었어요. 대화를 통해 다리와 물과 관련된 재난의 경험이 교차하도록요.

“불행은 언제나 패턴이 깨지는 순간에 찾아온다.”(26쪽)라는 문장처럼, 작가님의 소설은 인물의 일상에 균열이 닥쳐왔을 때부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사실 그게 모범 답안이기 때문이에요(웃음). 스토리텔링 창작 수업을 오래 해왔는데요.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어떻게 시작하고 끝내야 할지 궁금해하거든요. 그러면 말하죠. 이야기는 지하철을 3호선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는 것이라고요. 3호선을 쭉 타고 가는 건 일상의 패턴일 뿐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닌 거예요. 타고 있는 지하철에서 내려서 환승 통로를 막 헤매다가 4호선이라는 새로운 패턴으로 진입하면 매력적인 이야기가 되는 거죠.

태어나서 처음으로 쓴 소설은 ‘미래에 종이책이 금지되면 어떨까?’ 하는 상상에서 시작됐죠.

어릴 때 집에 책이 많아서 막연한 동경과 환상이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책이 금지된 세계를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일찍부터 했죠. 그 아이디어로 습작을 시작해서, 계속 옷을 바꾸어가며 「서재」라는 단편 소설이 됐다가 장편 소설 『비블리온』으로 이어졌어요.

‘결말이 안 나는 책’의 모티프가 자주 나와요. 소설에서 딸은 아빠가 남긴 책의 빈 페이지를 이어서 써 내려가죠. 

어쩌면 구체적인 내용보다 책의 물성이 지닌 가능성이 더 중요할지도 몰라요. 어떤 종교에서는 경전을 읽는 게 아니라 경전을 짊어지고 산을 다 오르면 깨달음을 얻은 걸로 인정해 준대요. 경전을 한 글자도 읽지 않았지만, 그 사람은 책을 경험한 거죠.

끝까지 읽는다고 해서 그 책의 모든 것을 아는 건 아니니까요.

맞아요. 저희 아버지는 책을 좋아하는 분이었지만, 제 책을 한 번도 읽지 않으셨어요.(웃음) 그래도 늘 “잘 읽었다” 하시거든요. 어느 순간 그게 정말 읽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도 몇 년 뒤면 기억이 안 나고 희미한 감각만 남잖아요. 오히려 중요한 건 책을 감각하는 손과 책과 함께 살아가는 시간 아닐까요. 책이 끝나더라도 실제 삶은 이어지기 때문에 끝나지 않는 책의 모티프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쓴 소설

「애틀랜틱 엔딩」은 한동안 소설을 쓰지 못할 때 전환점이 되어준 이야기라고요.

2년 정도 슬럼프가 크게 왔어요. 한국에서 장르 문학을 쓸 때 어려운 것 중 하나는 비평이 쌓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무도 평론을 해주지 않으니까, 꾸준히 소설을 발표해도 커리어가 쌓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지면을 얻기도 힘들고 소설을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감이 들었어요. 이렇게 파트타임 작가로 잊히는 게 아닐까 싶었죠.

당시의 심정이 주인공 ‘박’에게 많이 들어갔다고요. ‘박’은 아내와 부하 직원을 죽이고 애틀랜틱시티로 도망쳐요.

현실에서 제가 소설을 그만 쓸지 고민하고 있으니, 주인공도 계속 주저하는 거예요. 트렁크에는 시체 두 구가 있는데, 제가 써온 소설들처럼 느껴졌죠. 마지막 남은 총알 한 발을 쏘고 글 쓰는 삶을 멈춰야 하나, 도망쳐야 하나 결정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한 평론가님이 제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쓰라.”고 하시더라고요. 오기 반, 내려놓는 마음 반으로 소설을 끝낼 수 있었어요. 처음에는 다 죽는 비극적인 장면을 떠올렸는데, 생각지도 못한 결말이 나타났죠. 그 과정이 제게는 치유이자 화해였어요. 마지막 한 발이 제게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초급 한국어』로 이어진 것 같고요.

『초급 한국어』의 작가의 말에서 “소설을 쓴다는 건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버튼을 누르는 행 위”(184쪽)라고 했어요.

전 사실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중독자예요 (웃음). 소설을 수정하다가도 이전 버전이 좋을 수 있으니까 별도로 저장해 두는데요. 문득 소설 쓰기가 우리의 삶을 끊임없이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어요. 밀란 쿤데라가 “내 소설의 인물들은 실현되지 않은 나 자신의 가능성”이라고 했는데요. 삶도 결국 영원히 써 내려가는 거대한 소설이 아닐까요? 마치 우리가 모르는 평행 우주가 있는 것처럼요.

다음 소설이 궁금해지는데요.

『중급 한국어』가 나올 예정이에요. 『초급 한국어』가 ‘문지혁’의 유학 시절을 다뤘다면, 이제 한국에 돌아와서 어떻게 사는지를 보여주죠. 육아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요. 그간 여성의 육아는 당연시되는 반면, 남자가 하는 육아는 과대평가되는 문화가 있었잖아요. 그렇게 읽히진 않는지 편집자님과 열심히 고민했죠.(웃음)

마지막으로, 어떤 작가로 남고 싶나요?

시간을 오래 견디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문학이 트렌디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시대를 넘어 살아남는 작품들도 있잖아요. 저는 워낙 트렌디한 사람은 못 돼요. 그러니 시간을 견디는 힘이 제 이야기에 있었으면 좋겠네요.



*문지혁

13년 차 소설가. 장르를 넘나들며 소설을 쓰고, 이민자 소설과 재난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 글쓰기와 소설 창작을 가르치고, 유튜브 채널 〈문지혁의 보기드문책〉을 운영 중이다.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문지혁 저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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