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 김지우(구르님)의 첫 산문집 인터뷰
한 번 반성하고 마는 게 아니라 그러면 이걸 어떻게 메워나갈 수 있을지 눈물을 닦고 몸을 일으켜 생각해 보는 것이죠. 그럴 때 조금씩이라도 세상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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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우(구르님) 저자

구글코리아와 유튜브가 선정한 ‘유튜브와 함께 성장한 크리에이터 50인’으로 2017년부터 <굴러라 구르님 Rolling GURU>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김지우(구르님)의 첫 산문집,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가 출간되었다. 저자 구르님은 대학교에 재학 중인 22세 시민이자 뇌병변장애여성으로 고등학생 때부터 장애 이슈와 관련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 띠지를 보면 “어리고 장애가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많아지면 좋겠다”라고 쓰여 있어요. 미디어에서 젊은 세대의 장애여성 이야기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요, 어떤 바람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나요?

사람은 누구나 자라면서 자연스레 자신과 닮은 이들, 혹은 닮고 싶은 이들을 보며 성장해나가는 것 같아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미디어에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인물들은 왠지 한정되어 있을 때가 많죠. 그래서 저는 온전히 공감할 수 있거나 나와 같은 존재로 내면화할 수 있는 인물에 늘 목말랐어요. 

상상할 수 있고,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이 있으면 나도 그만큼 나아갈 원동력을 얻을 텐데, 나의 미래를 잘 상상할 수 없으니 삶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이 생기기도 했고요. 그래서 닮은 이들의 이야기가 늘 궁금하고, 듣고 싶은 것 같아요. 저보다 더 어린 이들이 좀 더 쉽게 그런 미래를 접해서 용기를 얻으면 좋겠고요.

프롤로그에서 “장애인 대표가 된 적도, 그럴 마음도 없는데 누군가는 나를 자꾸 그 자리에 앉혀버린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여러 매체에 자신을 드러내는 구르님을 ‘장애인 대표’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으세요?

개인은 모두 다른 몸으로 다른 삶을 살고, 각자의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로 뭉쳐 말하기에는 어려운 점들이 많아요. 하지만 소수자는 곧잘 어떤 하나의 이름으로만 불릴 때가 많죠. 그런 명명 속에서, 개인의 뾰족뾰족하고 다양한 정체성은 사라져버려요. 저 역시 누군가를 대표할 자격도 없고 그럴 수도 없지만, 자꾸 드러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대표가 되어버리곤 하는데요, 그저 하나로 퉁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을 거예요.

대표의 자리를 원하지 않는 사람을 자꾸만 대표로 보게 된다면, 생각보다 훨씬 더 그 존재와 그가 속한 집단에 대해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그만큼 더 알아갈 것이 많다는 신호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더 관심을 기울이고, 단정 짓기보다는 면밀히 살피고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주세요. 또 새롭게 알아갈 세계가 등장할 테니까요.

구르님이 직접 인터뷰한 가족 이야기가 나오는 ‘함께 사는 법을 관찰하는 존재들’ 장을 보면서 쿡쿡 웃기도 하고 마음이 찡하기도 했어요. 구르님의 글을 본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저의 양육자인 '현미'와 '태균'은 “이런 적이 있었어?” 하고 놀라기도 하고, “그래, 그땐 그랬지” 하면서 웃기도 했어요. 특히, 두 분의 러브스토리를 서술한 곳에서는 젊을 때의 사랑이 새록새록 떠오르시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순전히 제 입장에서 쓴 글이라, 사실 관계가 다른 일은 정정도 해주고, 각자의 인터뷰가 담긴 파트에서는 상대가 이런 대답을 했냐고 묻기도 하고요.

제일 기억에 남는 부분은 동생 '지원'의 이야기를 읽은 '현미'의 반응이었는데요, 현미는 정말 잘 울지 않는데 지원의 글 서두에서부터 울 것 같다고 하면서 울먹였어요. 제가 지원이에게 부채감을 가지는 것만큼 현미도 지원에 대한 마음이 남다르거든요. 지원이의 인터뷰 내용도 읽어보면서, “엄마가 언젠가는 꼭 미안하다고 전해야겠어”라고 감상을 남기기도 했고요. 저희 가족은 워낙 대화를 많이 하고 서로의 상황과 상태에 대해 잘 공유하는 집이지만, 그래도 말하지 못했던 부분이 책을 통해 조금은 드러난 것 같아요.

유튜브 영상과 책 모두 ‘만나는 사람’과 어떻게 소통할지 고민해야 하는 창작물이지만, 작업하는 방식은 많이 달랐을 텐데요. 왜 '책'이라는 매체에 도전하고 싶으셨나요? 작업 과정에서 어떤 소회가 남았는지도 궁금해요.

사실 글쓰기를 참 무서워했어요. 제법 자신 있는 '말하기'와 다르게, 금세 휘발되지 않고 활자로 정확히 기록되어 남는 글은 많이 다르잖아요. 제가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에서는 원하면 영상을 지울 수도 있지만, 책은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출판되는 것이기도 하고요.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영상으로 만나온 사람들과는 또 다른 이들에게 오래도록 남을 어떤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오랜 시간 도와주신 편집자님의 노고가 가장 크고요.

제 책에는 특히나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많은데,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출간 전 검토차 원고를 일부 보내주고 피드백을 받았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저는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얻어서 글을 쓴 것인데, 다시 이 글로부터 힘을 얻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전해주셨거든요. 글의 힘, 책의 영향력을 많이 느꼈어요. 아쉬운 부분들도 많지만, 첫 책이 가져다준 여러 의의를 기억하며 더 말과 글을 벼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성인 동시에 장애인인, 장애인이지만 비장애인 사회 속에서만 살아온, 휠체어를 타지만 조금씩 걸을 수도 있는 자신을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느끼던 때가 있었다는 내용이 나와요. 그런 시기를 지나 몸과 마음으로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경험은 어떤 것인지 듣고 싶어요.

많은 이들이 당연하게 자신과 닮은 이들에게 쉽게 마음을 주고, 연대하고, 그들과 자신을 연결해 내면화하는 것 같아요. 저 역시도 닮고 싶은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온전히 나의 삶과 닮아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이 없었어요. 특히 저는 ‘언니’가 너무 필요했는데요, 장애를 가진 여성으로 살아오며 겪는 많은 특수성을 물어볼 데가 없었거든요. 엄마인 '현미' 역시 비장애인이라, 다른 몸을 가진 딸에게 모든 것을 알려줄 수는 없었고요. 

그러다 책을 보고 ‘장애여성’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어요. 띄어쓰기를 하지 않고, 어느 한 단어가 한 단어를 수식하는 것이 아닌 합쳐진 하나의 정체성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이름을 알게 된 순간 이런 삶을 살아가는 게 나뿐이 아니라, 저 이름으로 불리는 수많은 ‘언니’들과 동생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름을 찾고 나니 조금 덜 외로워졌었어요. ‘나 역시 속할 곳이 있구나, 내가 삶에서 느꼈던 감정을 함께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고요.

구르님의 책을 보면서 소소하고 구체적인 장애인의 일상을 자기 삶과 연결해보는 독자들이 있을 텐데요. 특히 이 책이 구르님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장애아동, 장애여성에게 어떤 의미가 되기를 바라시나요?

책에서 ‘공명하는 신체’가 있다는 데서 오는 안도감이 있다고 서술한 부분이 있어요. 저는 그 안도감으로 정체성을 찾게 되었고, 그래서 그 느낌을 누구나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외롭고, 나의 미래를 상상할 수 없어 막연히 두려워지고, 막막해질 때 어딘가에서 같거나 비슷한 방식으로 삶을 이어가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되면 좋겠어요. ‘저 사람도 나와 같은 지점에서 고민했구나,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구나’를 알면 훨씬 더 힘을 내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참고할 수 있는 삶이 있다는 것은 참 안심되는 일이니까요. 각자의 나이 듦과 미래를 더욱 기대할 수 있게 만드는 책이 되면 좋겠어요.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에서는 사회가 ‘덜’ 준비해온 것들 탓에 같은 문제에 부딪히는 장애인 개인이 각자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 장벽을 넘어야 하는 현실을 짚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변화의 물꼬를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책의 프롤로그에 ‘누군가를 일깨우거나 반성하게 만드는 역할에는 이제 신물이 난다. 많은 이가 편안한 마음으로, 흐트러진 자세를 고쳐 앉지 않고 책갈피 사이로 들어오길 희망한다’는 문장이 있어요. 장애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그걸 접하는 많은 이들이 울먹이거나, 장애의 어려운 점에만 집중하거나, 반성하고 많이 배웠다는 이야기를 남기곤 하는데요. 딱 그 정도 선에서 모든 것이 끝날 때가 많아요. ‘장애’는 모두의 삶과 밀접하게 얽혀있는데도, 반성하고 배우기만 하면 되는 ‘무해한 것’으로 여겨지곤 하는 것이죠. 저는 이런 현상이 사회의 ‘덜’들을 묵인하고 숨기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그것을 우리의 삶으로 끌어올 때 변화하는 순간이 생기는 것 같아요. 한 번 반성하고 마는 게 아니라 그러면 이걸 어떻게 메워나갈 수 있을지 눈물을 닦고 몸을 일으켜 생각해 보는 것이죠. 그럴 때 조금씩이라도 세상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특히 저는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다 보니 미디어의 변화가 가장 반가운데요. 가장 처음 유튜브를 시작할 때 던졌던 질문이 “드라마, 영화, 예능에서 장애인이 출연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였거든요. 드라마에 장애 당사자 배우가 나오거나, 어린이 프로그램에 장애를 가진 인형이 고정 패널이 될 때, 삶 속으로 성큼 다가오는 장애가 반갑게 느껴집니다.



*김지우 (구르님)

김지우보다 ‘구르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더 익숙해진 22세. 6년 차 유튜버. 다중 페르소나의 혼란을 겪고 있다. 휠체어가 굴러서 구르님이라는 단순한 작명으로 인터넷에서는 구르님, 현실에서는 김지우의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다. 구르고 굴러 영상을 찍다, 연극을 하고, 책을 썼다. 또 어디로 굴러갈지 계획은 없지만 구를 의지와 바퀴만은 탄탄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
김지우 저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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