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회문화적 갈등의 성격이 예전과 달라졌음을 느낀다. 소셜 미디어의 등장으로 커뮤니케이션의 기술이 진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소통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 그런가? 소통의 도구도 다양해지고 일상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간편해졌는데도 말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관계의 단절은 물론 개인 대 개인, 집단 대 집단은 제각각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한다. 가짜뉴스의 등장은 진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어떤 게 진실인지 알 수 없고 수많은 시선만 난무하는 사회다.
정인규 저자는 책 『시선 과잉 사회』에서 소셜 미디어, 즉 인터넷에 만연해진 디지털 관계가 오히려 관계의 단절은 물론 진실을 왜곡하고 조종하는 문제를 아이콘택트, 시선을 통해 진단한다. 특히 돌연변이 시선, 관음, 조명 중독, 뜯어보기, 전문가의 시선 등 시선에 관련된 일상적인 개념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통해 포스트모던 사회의 문제를 비판하며 함축적 대안을 제시한다.
독자들을 위해 작가님과 책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첫 책 『시선 과잉 사회』로 독자 분들께 인사드리게 된 정인규입니다. 글쓰기와 철학을 즐기는, 그리고 아직은 20대 중반이라고 우기고 싶은 로스쿨생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잡념이 많은 편이라 자연스럽게 철학에 끌렸던 것 같아요. 미국의 예일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며 철학이 단순한 지적 놀음에 그치지 않고 사회와 문화의 변화를 이끄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시선 과잉 사회』도 그런 믿음을 바탕으로 쓴 책입니다. 오늘날 현대인이 인간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 진실을 탐구하는 태도 등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시선’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그 변화에 대한 성찰해보고자 했습니다. 난해한 철학적 이론에 기대기보다는, 누구나 쉽게 공감하고 관찰할 수 있는 현대사회의 현상을 위주로 쓴 내용이라고 덧붙이고 싶네요.
『시선 과잉 사회』를 집필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시선’이라는 단어가 참 매력적이라고 느꼈습니다. 문맥에 따라 관심, 감시, 편견, 규범 등 여러 의미를 내포할 수 있잖아요. 친구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눈을 맞추는 것도 시선, 소위 프레임 씌우기도 시선이죠. 특히 오늘의 사회에서는 개인이 SNS를 통해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문화가 발달해 있기 때문에, 그만큼 타인의 시선에 더욱 민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시선의 다양성에 대한 생각을 발판 삼아 현대인의 삶을 성찰해보고 싶었습니다.
'시선'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필수적인 본질이라고 하셨는데,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주신다면요?
두 사람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 번도 서로를 쳐다보지 않는다면 많이 이상하겠죠.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우선 그를 인간으로 인정하는 행위이고, 동시에 나 역시 인정해달라는 요구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상호인정은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칠 때, 즉 아이콘택트가 이루어질 때 가능해집니다. 바꿔 말하면, 시선은 관계의 시작을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관심의 표현인 셈입니다. 우리가 말도 섞기 싫은 사람과는 눈길도 주지 않으면서 관심이 가는 사람과는 자꾸 눈을 마주치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사회 소셜 미디어의 등장으로 커뮤니케이션의 기술이 진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소통과 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요. 왜 그런 걸까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소셜 미디어는 2인칭 소통을 최대한 3인칭화하기 때문이지요. 소셜 미디어는 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제3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간에 가깝습니다. 2인칭 소통에는 기본적인 이해의 책임이 따릅니다. 상대방과 마주한 채 이야기를 하는 동안만큼은 그에게 귀 기울이려는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반면에 SNS에서 댓글을 달거나 ‘좋아요’를 누를 때 우리는 그러한 대화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됩니다.
소셜 미디어는 이질성을 추방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만 친구로 삼고, 내가 좋아하는 영상만 시청하고 싶게 되지요.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똑같이 닮은 사람들일수록 소통은 어려워집니다. 정확히는 소통의 필요성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미 나와 똑같은 사람들과 소통을 해서 얻어갈 게 무엇이 있을까요? 소셜 미디어에 중독될수록 우리는 소통의 기본 조건인 이질성을 대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셈입니다.
'진실은 자신에 대한 시선을 느끼고 그 시선을 닮아간다.'라고 하셨는데, 이것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주신다면요?
오늘날 진실은 위험할 정도로 유연한 개념이 되어버렸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그리고 나와 같은 것을 보고 믿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극단적인 성향을 지닌 개인이라도 인터넷에서 손쉽게 비슷한 성향의 커뮤니티를 찾을 수 있습니다. 내 주변 사람들이 믿는 진실을 나 또한 믿는다면, 그들이 속한 커뮤니티에 나 또한 속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듯 진실의 취사선택은 곧 개인의 소속감과 연결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무언가를 기정사실화할 때, 개인 역시 그 무언가를 진실로 여기고 싶게 되고, 그럴수록 그 ‘진실’은 더욱 ‘진실다워’지는 것입니다. 설령 그 ‘진실’이 가짜라고 하더라도 말이죠.
이 책을 통해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었던 얘기는 무엇이며, 어떤 분들이 읽으면 좋은 책인가요?
이 책의 종착점은 관계의 회복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양성에 대한 관용을 강조하는 사회일수록 나와 다른 이에 대한 이해심을 등한시하기 쉽습니다. 관용을 핑계로 이해에 무책임해질 수 있거든요.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로만 스스로를 둘러싸기보다는, 자신과 다른 시선의 타인을 찾아나갈 수 있는 이해의 용기를 함께 실천하자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습니다.
최근 몇 년간 많은 사람들이 각종 정치ㆍ사회적 이슈에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이 심화되는 과정을 피부로 느꼈을 것입니다. 특히 젊은 층의 청년 세대가 대립을 위한 대립에 고착된 기성세대를 바라보며 건전한 가치관의 양성에 어려움과 회의감을 느끼기 쉽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독자 분들께 책을 추천합니다. 또 평소에 철학에 대해 관심은 없었지만 너무 어렵다, 또는 일상과는 관계 없는 학문이다, 등의 이유로 멀리했던 분들께도 권하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일단은 재학 중인 로스쿨에서 학업에 집중할 것 같네요. 차기작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지만, 다음에는 언어 철학을 더 집중적으로 다룬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머릿속에 굴러다니는 잡념이 충분히 철학으로 정제될 때 또 차기작으로 독자 분들과 만나보고 싶습니다.
*정인규 1996년생으로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현재 하버드 로스쿨에 재학 중이다. 일상언어 철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면서 이를 도덕 심리학과 정치철학에 접목하여 인터넷 문화, 프로파간다 등의 주제를 연구했다. 예일대 최고 권위 문예창작상인 월리스상(Wallace Prize)을 수상했다(2020년). 예일대 학부 철학 에세이 공모전 공동 1등(2019년)과 서양 인문학 심화 코스(Directed Studies Program) 철학 에세이 1등(2015년)을 수상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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