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의 방황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하지만 성인이라는 이름표를 단 후부터 겪는 질풍노도는 철없음과 나약함으로 여겨진다. 방황은 어느 한 세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고 나의 위치를 확인하며 살아가는 지금의 사람들 중 ‘방황’ 한 번 안 해본 이가 있을까. 여기, 다 커버린 어른들의 ‘방황’에 대한 허심탄회한 목소리가 담긴 신간 『방황의 조각들』이 출간됐다. 30대 화학연구원으로, 평범한 사회인으로 겪은 자신의 방황기를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아낸 작가 ‘온정’을 만나봤다.
작가님의 세 번째 책인데요. 출간한 소감이 어떠신가요?
몇 년 전만 해도 “평생 책 한 권 내는 게 나의 꿈이야.”라고 말하곤 했는데, 부지런히 쓰다 보니 어느새 세 번째 책을 내게 되었네요. 제 이름이 적힌 책이 세상에 나오는 것만큼 설레는 일이 또 있을까 싶어요. 무엇보다 『방황의 조각들』은 저의 인생과 가치관을 고스란히 담아낸 책이라서 감회가 더욱 남달라요. 에세이 『미서부, 같이 가줄래?』와 SF 단편선 『상실의 이해』를 낼 적엔 저의 글쓰기 생활에 부릉부릉 시동을 거는 기분이었다면, 『방황의 조각들』을 내면서부터는 정말 본편의 시작 같은 느낌이랄까요. 저를 많이 드러낸 만큼 반응이 가장 궁금한 책이기도 해요.
『방황의 조각들』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나요?
저는 십 대부터 삼십 대인 지금까지 안정적인 삶을 살고자 무던히 노력해왔어요. 하지만 그 바람과는 다르게 늘 실패하고 무너졌죠. 누군가가 저에게 “당신은 지금껏 잘 살아왔냐”고 묻는다면 대차게 고개를 저을 테지만 딱 한 가지만큼은 떳떳하게 말할 수 있어요. 저, 잘 살지는 못했어도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고요. 『방황의 조각들』은 열정적으로 살아온, 원치 않게 머물게 된 방황의 길조차 치열하게 걷고 있는 저의 기록이에요. 갈 곳을 몰라서 헤맬 때마다 주변 사람들을, 또 세상을 이해하려 노력하며 분투한 흔적이고요.
인생에서 ‘가장’ 큰 방황기는 언제였고,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네 번째 퇴사를 했던 때가 방황기의 정점이었다고 생각해요. 저의 경우 글쓰기가 그 시간을 극복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어요. 글을 쓰기 전에는 제 인생이 너무 어지러워 보였거든요. 제 인생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저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했죠. 하지만 제 이야기를 글로 정리하면서 저의 인생도 조금씩 정돈이 되더라고요. 특히 저는 글을 쓰고 나면 수십 번씩 퇴고하는 편인데요. 정성을 들여서 쓰고, 다시 읽고, 고쳐가는 과정에서 저의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었어요. 저를 잘 이해하고 나니 힘든 상황을 조금 더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아요.
이제 삶의 방황을 모두 정리하셨나요?
그랬으면 좋겠지만 저의 방황은 현재 진행형이에요. 하지만 확실히 예전과 달라진 점은 있어요. 원래는 ‘도대체 언제쯤 이 방황이 끝날까?’ 묻고 세상을 원망하는 쪽이었다면, 이제 ‘인생은 끝나지 않는 방황의 연속일 거야.’라고, 저 나름의 결론을 내렸죠. 어차피 평생 동행해야 할 방황이니 저 자신을 그 흐름에 조금 더 맡겨 보기로 마음먹었어요. 이처럼 ‘방황’을 마주하는 태도가 변해 가는 과정이 『방황의 조각들』 속에도 담겨 있는데요. 언뜻 보기에는 직업적인 면에서의 방황만을 뜻하는 것 같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인간관계 측면에서의 방황, 세상 속에서의 방황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어요. 아마 그 모든 부분들이 평생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방황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특별히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방황 길에서 자신을 가장 불안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건 타인과의 비교인 것 같아요. ‘세상은 왜 나한테만 그러는 거야.’, ‘왜 저 사람만 잘 풀리지?’ 하는 생각이요. 결국엔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성격상 그게 잘 안되다 보니 항상 몇 배씩 더 괴로웠거든요. 쉽지는 않지만 분명히 효과가 있어요. 방황을 겪으시는 모든 분들이 자기 자신을 더 소중히 생각하고 자신과 더 가까워지려 노력하셨으면 좋겠어요.
글 쓰는 이과생이신데, 혹시 인생을 화학식에 비유해본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인생을 ‘고분자’라는 화학 개념에 빗대어보고 싶어요. 분자들이 서로의 손을 맞잡고 긴 사슬처럼 연결된 물질을 고분자라고 하는데요(실제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지만 이 정도로만 설명할게요). 가장 흔한 고분자를 예로 들자면 페트병의 재료인 PET(C10H8O4)n가 있죠. 단분자일 때는 평범한 물질이지만 무수히 많은 C10H8O4가 서로의 손을 잡으면 물성이 뛰어난 플라스틱이 탄생하게 돼요. 투명하고, 가볍고, 열에도 잘 견디고, 잘 깨지지 않는 재료가 되는 것이죠. 인생도 단편적인 조각들의 연속이지만, 그 조각들이 서로 손을 맞잡고 길게 이어지다 보면 결국 물성이 달라지게 되잖아요. 조금이라도 더 굳건해지고, 덜 깨지는 모습으로요.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고분자 같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마침 『방황의 조각들』의 본문 마지막 글이 화학과 인생을 비유한 글이니 그걸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화학 싫다면서, 화학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렇게 달뜨는 걸 보면 저도 참 어쩔 수 없는 화학쟁이인가봐요.
다음 책을 기다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해주세요.
다음 책이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는 아직 미지수예요. 저는 글쓰기만큼이나 책 내는 것에 대한 욕망이 아주 큰 사람이라서, 아마 『방황의 조각들』 출간 후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면 또 열심히 출간 준비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딱 한 명의 마음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나의 글쓰기는 성공한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글을 써왔는데요. 저의 글을 읽어주시고 후기를 남겨주시는 독자분들을 볼 때마다 어찌나 뭉클한지 몰라요. 책 읽는 데 시간을 내는 게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잘 알거든요. 독자분들의 소중한 시간이 헛되게 쓰이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기에,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어요. 에세이든 소설이든 저만의 속도로 꾸준히 쓸게요.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온정 1990년에 태어났다. 평생을 역마살이 있는 줄로 착각하고 살아왔건만, 궁둥이 붙이고 글 쓰는 일이 체질임을 서른 언저리에 깨달았다. 여행, 남편, 글쓰기까지 세 박자를 모두 갖추고 나니 삶이 한결 충만해졌다. 남들 다 가는 길을 쫓느라 전력을 다하며 살았지만 이제는 작가라는 꿈을 그리며 산다. 매 순간이 불안하지만 꿈이 있기에 행복하다. ‘온정’이라는 필명에는 따듯한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 녹록지 않은 삶 속에도 자그마한 희망 한 움큼쯤 숨어있다고 믿는 사람. 그 신조를 글 짓는 행위로 지켜나가고 있다. 고분자공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여행 에세이 『미서부, 같이 가줄래?』를 썼고, SF 앤솔로지 『상실의 이해』에 단편 소설 「지구가 될 순 없어」를 실었다. ‘온정’이라는 필명에는 따듯한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 평생 글 쓰는 사람으로 사는 게 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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