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우 PD “진정한 성장은 타인의 세계를 듣는 일”
"자신을 표현하는 것만큼 타인들의 세계에 귀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두 가지 능력을 모두 갖추는 것, 그렇게 균형감을 지니는 것이 진정한 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1.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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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저자

하나의 논픽션과 하나의 다큐멘터리 현장을 엮어 쓴 김현우 PD의 독서 에세이 『타인을 듣는 시간』이 출간됐다. 총 열세 편의 에세이는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의 무게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어떤 언어로도 타인의 경험을 온전히 전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일을 계속해나가는 그를 서면으로 만났다. 우리에게 ‘머뭇거리는’ 언어가 필요하다는 그의 말에 ‘타인을 듣는 일’의 힌트를 하나 더 얻은 것 같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이번에 문학 잡지 <릿터>에 연재했던 글을 다듬어 독서 에세이 『타인을 듣는 시간』을 출간하셨습니다. 논픽션과 다큐멘터리 제작기를 엮은 총 열세 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요. 두 가지 주제를 어떻게 연결하게 되셨나요? 이 책에서 다큐멘터리와 논픽션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요?

<릿터>에서 제안을 받았을 때, 잡지의 성격을 보면 서평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나 소설에 대한 서평은 많은데 논픽션을 다룬 서평은 거의 없어서, 그걸 해보면 좋겠다고 판단했고요. 당시 제가 픽션에 조금 ‘지쳐 있어서’ 논픽션을 많이 읽기도 했습니다. 한편 저는 서평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피디이기도 하니까, 제가 쓸 수 있는 글이 뭘까 고민했어요. 제가 했던 경험들, 글을 쓰는 분들은 아마도 하기 어려웠을 그 경험들을 이으면 뭔가 차별성 있는 글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제 책에서 소개한 논픽션 책들은 모두 제게는 큰 인상을 남겼고, 일종의 가르침을 줬습니다. ‘그 가르침을 적용해볼 수 있던 다큐멘터리 제작 현장이 없었을까?’라고 떠올려보았고, 그렇게 책 한 권과 현장 하나씩을 이어나갔습니다.

'타인을 듣는 시간'이라는 제목이 인상적인데, 제목을 어떻게 결정하게 되었는지, 제목에 담고 싶은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여쭙습니다.

'타인을 듣는 시간'이라는 제목은 편집부에서 찾아주신 제목입니다. 연재 당시에 시리즈 제목은 ‘타인에 대하여’였고요. 제가 처음 생각했던 제목은 ‘우리는 남이다’였습니다. 함부로 ‘우리’를 칭하는 사람들이 불편했으니까요. 개인적인 불편함에 더해, 그렇게 함부로 우리를 묶는 행위는 또 다른 사회적 폭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말하는 법, 자신을 잘 드러내는 법 같은 것들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는 분위기도 불편했습니다. 자신을 표현할 필요가 없다는 게 아니라, 너무 한쪽으로만 기울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을 잘 표현하는 능력, 그에 따른 성공 경험과 이어지는 자신감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자신감이 지나치면 균형이 무너지고, 그렇게 일방적인 자신감은 타인에게는 폭력이 되기도 합니다. 자신을 표현하는 것만큼 타인들의 세계에 귀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두 가지 능력을 모두 갖추는 것, 그렇게 균형감을 지니는 것이 진정한 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최현숙 작가의 『할매의 탄생』을 다루면서 이 책이 인터뷰이인 할머니들의 사투리를 표준어로 바꾸지 않은 점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사투리가 낯선 만큼 서로의 세계가 다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면 우리가 그들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요.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에 있어 작가님께 언어는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많은 사람들이 언어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일 거라고 가정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지요. 힘을 가진 언어가 있고, 무력한 언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앤드루 솔로몬이 『부모와 다른 아이들』에 적은 것처럼 ‘언어에 굶주려 있는’ 경험들도 있습니다. 책에도 적었지만 2019년 성소수자 축제가 열리는 건너편에서 반대 집회를 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집회 이름을 ‘레알 러브’로 정한 것을 보고 정말 기운이 빠졌습니다. 화도 나고요. 내가 생각하는 사랑만이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자세로 어떻게 사랑에 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타인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언어를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합니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창한 설득의 언어가 아니라, 어쩌면 ‘머뭇거리는’ 언어가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머뭇거림이 배려의 다른 형태임을 상대가 이해할 때, 진정한 대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타인에 대한 혐오가 만연한 시대라 할 만큼 다른 세대, 인종, 계층, 성별 등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사람들을 쉽게 보게 되는데요.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가난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 책에서 읽었으면 하는 글을 하나만 꼽아주신다면요?

제 글에서 하나를 추천하는 건 쑥스럽고, 순서를 매기기도 애매합니다. 그보다는 소개된 책들을 차근차근 모두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앤드루 솔로몬의 『부모와 다른 아이들』은 읽기 전후로 사람이 달라질 만큼, ‘차이’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완전히 바꿔줄 수 있는 책입니다. 책 제목을 제가 제작한 프로그램 제목으로 가져다 쓸 정도로 저한테는 깊은 인상을 남겼기도 하고요. <부모와 다른 아이들>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캐나다에서 동성애자이면서 교회 목사를 하고 있는 분이 “우리가 모두 다르다는 것이 우리의 공통점입니다.”라고 하시더군요. 앤드루 솔로몬의 책은 차이가 발생하는 지점이 다를 뿐 개인 한 명 한 명은 모두 타인과 다르고, 그렇게 모두가 ‘다르다’는 사실이 오히려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는 판단이나 편견 없이 전해지는 ‘모두 다른 개인의 이야기’를 맛보기에 좋은 책입니다. 

논픽션, 또는 논픽션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열세 가지 작품을 소개해주셨어요. 많은 문학작품을 옮겨온 번역가로서의 이력을 생각하면, 논픽션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책을 쓰신 것이 의외이기도 했는데요. 평소 어떤 책을 즐겨 읽으시고, 어떤 작가를 좋아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요즘 가장 즐겨 읽는 책은 경제사 책과, 주로 범죄 사건을 다루는 논픽션 혹은 장르 소설입니다. 정신이나 감정보다는 사람들이 현실 세계에서 먹고사는 문제에, 그리고 마음속이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보다는 그 감정이 행동으로 이어졌을 때 벌어지는 일에 더 관심이 있다고 할까요. 

로버트 하일브로너의 『세속의 철학자들』이나, 실비아 나사르의 『사람을 위한 경제학』 같은 책은 아주 좋았는데요, 경제 이론이 딱딱한 숫자놀음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기획임을 보여주는 책들이었습니다. 

요시다 슈이치의 『악인』과 『분노』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는데, 소위 일본의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들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들이나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 다카무라 가오루의 『레이디 조커』 같은 작품들, 그러니까 범죄를 그저 자극적인 흥밋거리가 아니라, 특정한 시대 특정한 사회가 낳은 갈등이 폭력적으로 드러나는 사태로 그리고 있는 작품들이 좋습니다.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정성과 노력을 통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거라고 믿고 계신다고 쓰셨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느 때보다 서로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지금, 타인을 잘 듣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무엇보다 내 쪽에서 말을 줄여야 하지 않을까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펄프 픽션>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상대가 말을 할 때 당신은 거기에 귀를 기울입니까? 아니면 당신이 다음에 할 말을 생각합니까?’라고요. 상대가 말을 할 때는 ‘나의 다음 말’을 미리 생각할 것이 아니라, 상대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보면 되는데…… 그게 의외로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가까이 가고 싶은 상대라면, 내 이야기를 잠시 물려두고 상대의 이야기를 한번 귀 기울여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듣는’ 습관을 익히고, 그런 나의 자세를 상대가 알아보고 마음을 열어주는 성공 경험들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많은 타인들과 좀 더 깊은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저라고 뭐 그런 듣기를 유난히 잘하는 건 아니겠지만, 그게 정답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수와 통계, 집단의 서사만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개개인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책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 PD이자 번역가, 작가로서 작가님이 하고 계시는 여러 일이 모두 ‘타인을 듣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현재 회사에서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강연 프로그램을 제작 중입니다. 여러 분야의 교수나 전문 강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것저것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번역은 논픽션이 아니라 폴 오스터의 아주 긴 소설 작품을 하고 있는데, 평소 좋아하던 작가라서 즐겁게 작업 중입니다. 다큐멘터리와 관련해서는 현재 확정된 계획은 없습니다. 자신 있게 ‘이러이러한 것을 계획 중입니다. 기대해 주세요!’라고 말씀드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그저 좀 열려 있는 상태라고 할까요. 많이 읽고, 보고, 듣고 그러는 중입니다.




*김현우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비교문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EBS PD로 일하며 전문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건너오다』가 있고, 옮긴 책으로 『스티븐 킹 단편집』 『멀고도 가까운』 『행운아』 『고딕의 영상시인 팀 버튼』 『G』 『로라, 시티』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A가 X에게』 『벤투의 스케치북』 『돈 혹은 한 남자의 자살 노트』 『브래드쇼 가족 변주곡』 『그레이트 하우스』 『우리의 낯선 시간들에 대한 진실』 『킹』 『아내의 빈 방』 『사진의 이해』 『스모크』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초상들』, 삼부작 ‘그들의 노동에’ 『끈질긴 땅』 『한때 유로파에서』 『라일락과 깃발』 등이 있다.




타인을 듣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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