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지나』에는 끊임없이 사랑과 복수를 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혹한의 땅 ‘그롬’에 살며 문화적으로 큰 발전을 이룩한 민족 ‘로미’와 그롬을 침략해 3일 만에 멸망시킨 정복 국가 ‘아큔’의 아큐리안들. 이들은 얽히고 설킨 사랑과 증오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한다.
수많은 판타지 만화 덕후들에게 ‘인생 만화’로 손꼽히는 『메지나』가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죽어도 좋아’ ‘순정 히포크라테스’ 등 탄탄한 스토리텔링으로 사랑받는 웹툰을 그려온 골드키위새 작가의 십년 전 데뷔작이다. 2011년 시작되어 2014년 연재를 종료한 만화는 그동안 연재처가 바뀌고, 계약했던 출간이 무산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팬과 작가 모두에게 ‘아픈 손가락’인 작품. 만화가 처음 연재된 날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메지나』에 매료된 독자들은 계속 탄생하고 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모두가 복수와 사랑을 하는 이야기
10년 만에 출간된 단행본입니다. 팬들에게도 그렇겠지만, 작가님께도 의미가 큰 작품일 것 같습니다.
종이책 출간은 작가로서 늘 의미하는 바가 큰데, 10년 전 데뷔작이 시간을 뛰어넘어 2021년에 출간될 수 있다는 게 그저 놀라워요. 꾸준히 『메지나』에 관심을 갖고 사랑해주신 독자분들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독자 여러분들께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 출간소식을 알리는 공지에 “메지나 칭칭나네”라고 달린 댓글을 보고 웃었어요. 작가님의 기억에 남는 반응은 무엇인가요?
활동 연차가 길어지면서 작품에 관련된 팬 여러분의 드립이 쌓여가는 게 재미있어요(웃음). 저는 “골드키위새가 그리는 금발 쓰레기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과 이어지지 않는다”는 드립을 좋아합니다. 언젠가 이 점을 소재로 한 만화를 그려보고 싶기도 해요.
헤르만 헤세의 단편 「난쟁이」를 보고 영감을 받으셨다고요. 『메지나』는 어떤 생각에서 출발한 이야기인가요?
헤르만 헤세의 「난쟁이」가 시발점이었던 건 사실이지만, 막상 다시 읽어보니 제가 어느 구절에서 영감을 받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다른 이야기더라고요. 과거의 저는 대체 어디서 초안의 영감을 얻었던 걸까요(웃음). 영감의 시작은 또렷이 기억나지 않지만 『메지나』를 그릴 당시 ‘복수’와 ‘사랑’의 균형을 굉장히 고심하면서 그렸던 기억이 나요. 모든 등장인물이 복수와 사랑을 하고 있는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어요.
특히 모든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독자로서 안타까웠습니다. 작가님은 개인적으로 어떤 인물의 사랑과 복수가 가장 안타깝게 느껴지시나요?
과거 편에서는 한결같이 왕 ‘루테’를 사랑하다가 비극적 결말을 맞은 여왕 ‘벨라’, 현재 편에서는 체자를 사랑한 난폭한 왕자 ‘퀼라’가 아닐까 싶어요. 전자의 경우는 사랑에 헌신적인 벨라를 애잔하게 보시는 독자분들과 비슷한 마음이고요. 후자는 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먼저 목숨을 잃은 퀼라가 가장 안쓰럽게 느껴집니다. 사랑을 느껴보지도 못한 채 ‘이게 사랑인가? 사랑이겠지?’ 하고 죽어버렸으니까요. 퀼라의 타고난 기질이 호전적이긴 하지만, 무언가를 배우거나 변화할 여유도 없이 너무 짧은 시간을 살다 가버린 것 같아요.
사랑받는 캐릭터에 눈길이 간다
작가님의 작품에는 진취적인 매력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돋보입니다. 『메지나』에서는 종양을 가진 로미 ‘체자’가 그렇죠. 여성인 데다, 장애를 가졌다는 점에서 체자가 더욱 특별하게 보였어요.
과거 『메지나』 연재 초기에 저를 담당했던 피디님이 체자의 종양 디자인을 크게 반대하셨어요. 여주인공이 되기에 외모가 흉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죠. 그래서 디자인을 여러 번 다듬긴 했지만, 체자의 종양은 이야기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었고 체자 삶의 일부분이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체자는 아큔에 잡혀오기 전부터 끊임없이 자기의 얼굴을 덮어오는 종양과 싸우며 분투하던 아이였으니까요. 체자는 결국 ‘생존자’라고 생각해요.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이 있을까요?
저는 만화를 그릴 때 일부러 애착이 가는 인물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묘하게 제 취향과 빗나가게 등장인물을 설계하죠(웃음). 제가 아끼는 캐릭터가 욕을 먹으면 너무 마음이 아프거든요. 애착 있는 캐릭터가 작품에 있으면 스토리를 만들 때 괜스레 몸을 사리게 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사람 마음이 간사하게도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캐릭터에 또 눈길이 갑니다. 『메지나』의 경우는 ‘벨라’였죠.
이번 단행본에 실린 외전 「힛클리마의 포로들」도 인상적이었어요. 십 년이 지난 후, 다시 독자들 앞에 찾아온 노령의 힛클리마는 이제 증오를 내려놓고 평안해졌다고 볼 수 있을까요?
단행본의 소제목은 문학동네 편집자님이 붙여주셨는데, 이 단편의 제목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힛클리마의 포로들’은 말 그대로 힛클리마가 잡아온 로미 혼혈 포로들을 뜻하기도 하지만, 늙어서도 씻어내리지 못한 감정과 복수에 얽매여 사는 힛클리마 본인 역시 그의 포로라는 의미로 생각했어요. 죽음으로써 현실에서 해방되어 평화로워졌을 수도 있지만, 아마 죽는 순간까지도 머릿속이 복잡했을 것 같아요.
『메지나』는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여러 이야기 중 하나라고 말씀하셨어요. 이 세계관을 공유하는 다른 작품은 언제쯤 탄생할까요?
사실 몇 번 시도했는데, 기획에서 장렬하게 탈락했습니다. 독자 분들이 언제 그리냐고 물어보시는 작품의 대다수는 기획에 있어 프로탈락러인 제가 기획을 통과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랍니다. 사실 그려나가면서 점점 더 재미있어질 만화가 많은데, 연재처에서는 초반의 몰입감과 상업적 가치를 중시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제가 연재처를 꼬실 수 있는 매력적인 기획안 만드는 법을 좀 더 연마할게요(웃음).
이야기의 끝없는 생명력
단행본 편집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메지나』는 다른 출판사에서도 여러 번 출간 제의가 있었지만, 편집 도중 계속 파토가 났던 작품이라 끊임없이 편집자님을 의심했던 것 같아요. 책 작업이 잘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와서 왜 이걸 책으로 내겠다는 거지? 책이 진짜 나오는 거 맞나? 중간에 못 내겠다고 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계속 했거든요. 실물 책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찾았어요. 『메지나』를 정말 예쁜 책으로 만들어주신 김지애 편집자님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문학동네는 정말 좋은 출판사입니다!(웃음)
웹툰 작가로 데뷔하신 지 10년이 지났어요.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나요?
어릴 때는 생각 없이 만화를 그렸던 것 같아요. 오직 재미만 추구해서 그림을 그렸죠. 지금은 잃을 게 많다는 생각이 드는 건지, 덜컥 겁이 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림이나 연출이 묘하게 경직되는 느낌이 들어요. 예전처럼 재미라는 본질에만 충실하고 싶은 순간이 있죠. 물론 지켜야 할 건 지켜가면서요.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게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메지나』 단행본 출간을 오래 기다려 온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메지나』를 보고 감상을 올려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뒤늦게 들려오는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한 이야기가 끝을 맺어도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재생산되며 생명을 얻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메지나』가 머물 책장 한 칸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해요. 무한한 영광입니다.
*골드키위새 (글·그림) •2010 : 「완전한 인간」 발표 •2011~2014 : 「메지나」로 데뷔, 연재 •2013 : 「우리집 새새끼」 연재, 단행본 출간 •2015~2016 : 「죽어도 좋아♡」 연재 •2015 : 「죽어도 좋아♡」로 <2015 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 •2016~2017 : 「망고의 뼈」 글 연재 •2018 : 『죽어도 좋아♡』 전3권 출간 •2019~2021 현재 : 「순정 히포크라테스」 연재중 •2021 : 『메지나』전5권 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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