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당연한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비혼 이야기
결혼제도를 무조건적으로 부정하며 “아냐, 저거 틀렸어.”라고 하기보다는, 최대한 많은 여성들이 “그건 그래.”라며 설득될 만한 정답을 찾고 싶었어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1.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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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결혼하려고 해요?”라는 질문을 받은 예비신부가 있다. 결혼할 남자와 집안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고민했지만 정작 결혼하려는 이유는 생각해본 적 없는 예비신부가 그제야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결혼 왜 하려고 하지?

2020년 독립 연재공간인 ‘딜리헙’에 연재되는 동안 각 장르 차트 1위, 누적 조회수 223만 뷰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사랑을 받은 웹툰 『B의 일기』 가 던지는 질문은 이처럼 단순하지만 심오하다. 전작 『탈코 일기』에 이어 ‘비혼’을 주제로 한 『B의 일기』 로 여성들에게 큰 공감과 울림을 전하고 있는 저자 작가1을 만나보았다.   



2020년 4월부터 연재를 시작한 『B의 일기』 가 단행본 출간으로 대장정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탈코’ 이후의 주제로 ‘비혼’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저에게 있어 탈코르셋과 비혼은 페미니즘 여성의제의 양대 산맥입니다. 그중 비혼 산맥이 아주 조금 더 커요. 그런데 마침 탈코르셋 소재로 만화를 그렸으니, 이제 더 큰 산맥인 결혼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것을 무조건적으로 부정하며 “아냐, 저거 틀렸어.”라고 하기보다는, 최대한 많은 여성들이 “그건 그래.”라며 설득될 만한 정답을 찾고 싶었어요.

“왜 결혼이 당연한가?”는 만화의 시초가 된 질문입니다. 이어서 ‘모두가 자연의 순리라고 여기는 결혼은 왜 제도화되어 있지? 그건 제도화되지 않으면 애초에 유지될 수 없기 때문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어요. 그리고 예감이 왔어요. 이걸 풀면 나는 정말로 결혼을 하지 않겠구나. 그래서 몰입했고, 만화로 만들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불확실한 미혼과 불확실한 비혼 사이에 서 있었거든요. 그리고 저와 같은 고민을 하시는 분들과 이 생각을 공유하고 싶었기에 수줍고 대담한 생각을 세상에 내보였습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어요.

‘비혼’은 이즈음에 잘 맞는 담론이라 생각되는데, 이야기 배경을 10년 전인 2011년으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2011년이 저에게 꽤나 기억에 많이 남은 해였기 때문이에요. 제가 ‘김치녀’, ‘된장녀’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해이기도 하고, 그런 단어를 들었음에도 아무런 생각 없이 넘어갔던 해이기도 하죠. 물론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여성분들이 그랬을 거예요. 아무도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으니 당연히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고, 화를 내기는커녕 투덜거리기만 해도 이상한 여자라고 낙인이 찍혔겠죠? 그런 상황에서 홀로 깨어 있다면 정말 지옥을 살아가는 기분일 거예요. 저는 그런 지옥 속에서 연대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기적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수리의 남자친구인 정도운은 자칭 타칭 ‘괜찮은 신랑감’으로 소개됩니다. 그러나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지독한 이기심과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데요. ‘정말 괜찮은 남자’로 평가되는 정도운 캐릭터를 통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수리의 남자친구인 ‘정도운’ 캐릭터는 사실 2011~2012년도쯤 제가 쭉 써내려간 ‘이 정도면 괜찮지.’ 하는 남성의 자격을 다 담았습니다. 『B의 일기』 를 구상하고 있을 때, 그 수첩을 다시 꺼내 보고 한참 웃었어요. 그 수첩을 본 친구가 “이런 사람 없어.” 하더라고요. 그렇게 정도운은 등장인물로 낙점된 거예요. (^ㅅ^)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제가 위에서 말한 모든 조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상적인 현모양처를 꿈꾸는 수많은 여성들이 갖추고 있는 조건이기도 합니다.

저 모든 조건을 갖추고도 하나 어긋나면 몰매를 맞는 여성과 달리, 남성은 저 모든 조건을 갖추기만 한다면 현실에는 둘도 없는 완벽한 판타지 남편감이 되는 거예요. 맞아요. 우리는 ‘괜찮은 남편감’의 허들이 너무 낮습니다. 그것이 답답했습니다. 제가 전달하고자 한 이야기는 그게 다예요.

수리와 도도 주변의 여성 캐릭터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느낌입니다. 도도 친구 은이는 충분히 똑똑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수동적인 여성을, 독서모임의 수연은 아주 평범하지만 그 누구보다 단단한 내면을 가진 독립적 여성의 모습을 대변합니다. 이러한 캐릭터는 주변 인물에서 참고한 것인가요?

만화를 창작한다는 소식이 제 주변에 퍼지자, 감사하게도 지인분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연락을 주셨어요. 그중에는 비혼을 결심하신 분, 결혼을 준비 중이신 분, 결혼해서 아이를 두신 분, 결혼했지만 딩크로 평생을 살아가시는 분, 그리고 이혼을 준비 중인 분도 계셨습니다. ‘나는 (비혼/결혼/딩크/이혼)을 결심하며 이런 기분이 들었고, 이런 감정을 느꼈어. 동시에 이런 생각이 났고, 이런 경험을 했어.’라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캐릭터의 성격, 그리고 서사가 완성되어 갔어요. :) 정말 고맙고 감사한 순간이었습니다.

도도가 독서모임에서 소개하는 책의 내용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특히 “나에게도 의자를 주십시오.”로 시작되는 인용 문장이 강렬한 울림을 주는데, 책의 내용도 작가님이 창작하신 건가요?

자랑 같지만 실제 있는 책은 아니고, 『B의 일기』 의 연출을 위해 만든 가상의 책입니다. ‘책’의 내용은 대부분 복선으로, 티나가 언급하는 ‘이름’ 부분과 ‘의자’ 이야기를 창작했습니다.

첫 번째, 이름. 호랑이가 멸종위기인 것처럼 여성의 발언권도 멸종되는 것만 같다는 티나에게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만약 호랑이라 가정한다면, 무력하게 사냥당하는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러자 티나는 웃으며 이렇게 답합니다. “남자들은 사냥꾼이 아니고, 나 또한 짐승이 아니다. 나는 지성을 갖춘 인간이기 때문에 그들과는 많이 다르다.”

그리고 B의 일기』  두 주인공 ‘도수리’와 ‘정도도’란 이름도 복선을 갖고 있어요. 정도도는 이미 멸종된 도도새를, 도수리는 현재 멸종위기종인 독수리를 닮았습니다. 그러나 티나가 ‘나는 인간이기 때문에 그들과는 다르다.’라고 말함으로써, 정도도와 도수리 또한 그 동물과는 많이 다른 엔딩을 맞이할 거라는 복선인 거죠. :) 어쩌면 2011년도에는 멸종위기종이었을지 몰라도 21년도인 지금은 아니니까요.

두 번째는 의자인데요. 『B의 일기』 의 후반부에 ‘의자’에 대한 상징적 의미가 드디어 서술됩니다. ‘의자’는 번듯한 ‘한 명의 자리’이자 ‘위치’ ‘지위’이며, 발언권입니다. 동시에 탁자에서 추락하는 누군가를 받아줄 수 있는 연대의 장소이기도 하죠. 그렇기에 티나가 “내가 의자에 앉지 못하는 이유가 오직 여성이라는 당신들의 주장은 불합리합니다. 나에게도 의자를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대사를 꼭 초반에 등장시키고 싶었어요.

주고받는 대사는 소름 끼칠 만큼 현실적이고, 내레이션은 그 어떤 철학책보다 사유적입니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폭풍 공감을 하고 많은 감동을 받는 것 아닐까 싶은데, ‘선례’ ‘등불’ ‘연대’ 등을 이야기한 내레이션들 중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 어디일지 궁금합니다. 

도도가 절벽에서 뛰어내린 다음, 등불을 들고 뒤를 도는 장면을 아시나요? “모두가 낭떠러지라고 외치는 불안의 연속 속에서 (…) 우리의 모습을 봐. 이곳에도 길은 있었어.” 저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가장 신경을 많이 썼어요. ‘연대’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쓰지 않지만, 이 내레이션을 보는 독자님들에게 이것이 바로 ‘연대’의 이야기라는 걸 전달하고 싶었거든요. 계속 구상하고, 컷을 분할하고, 대사를 수정해도 언제나 이런 부분은 어려운 것 같아요. 



페미니즘 소재를 가장 현실감 있고 가장 공감 가게 그려내는, 독보적 웹툰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탈코’와 ‘비혼’ 이후 더 다루고 싶은 주제는 무엇인지요?

차기작은 아직 스토리도, 최소한의 플롯도 정해져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여성의 도덕성을 주제로 잡고 싶어요. 아마 심리전이 난무하는 스릴러가 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그리고 싶은 건 많은데 왜 체력이 안 따라주는 걸까요(0<-<). 체력 열심히 쌓아서 다시 찾아뵐게요. 감사합니다. 




*작가1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통해 처음 페미니즘을 접했지만, 2018년 탈코르셋을 실천하면서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알고 싶지 않았던 답답한 진실을 마주했고 탈코르셋에 대한 오해로 가까운 사람들과 갈등도 많이 겪었다. 하지만 힘들다고 외면하거나 도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탈코르셋’을 주제로 한 만화를 한 카페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탄생한 첫 작품 《탈코일기》는 텀블벅에서 1억 9천만 원 펀딩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10대와 20대 여성이 열광하는 페미니즘 필독서가 되었다.



B의 일기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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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