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삼혜, 청소년이 행복해지는 이야기
외롭다고 느끼는 청소년 퀴어들이 ‘이어져 있다’는 감각의 부드러움을 느끼는 책이 되었으면 합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1.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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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혜 작가는 그간 청소년SF소설이라는 한길을 부지런히 걸어왔다. 현재의 시공간에 매이지 않고 앞으로 뻗어 나가기 위해 더욱 치열하게 현재를 파고들어야 하는 SF문학,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소년들과 호흡해야 하지만 동시에 청소년이 살아갈 미래를 염두에 두어야만 하는 청소년문학. 닮은 데가 있는 두 영역의 교집합에 전삼혜 소설이 있다. 세계의 진보와 인물의 진보를 동시에 그려내기 위해, 작가의 상상력은 주류로 일컬어지는 질서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도구로 기능하며 반드시 청소년이 처한 현실을 관통하며 나아간다. 특히 사회적 소수에 해당하는, 주류의 궤도 밖으로 밀려난 청소년들의 현실은 전삼혜 작가가 오랫동안 집중해 온 테마다. 

『궤도의 밖에서, 나의 룸메이트에게』는 전삼혜 작가에게도, 그의 작품을 오래 지켜봐 온 팬들에게도 각별할 것이 틀림없다. 작가의 전작 『소년소녀 진화론』(2015)에 수록되었던 단편 「창세기」를 씨앗 삼아 탄생한 소설이기 때문이다.



『궤도의 밖에서, 나의 룸메이트에게』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소년소녀 진화론』에 실렸던 단편 「창세기」를 씨앗 삼아 탄생한 작품이니, 무려 6년이란 세월을 건너 찾아온 책이네요. 책의 탄생 비화가 궁금합니다. 

「창세기」를 확장시키자고 마음먹게 된 계기의 절반 정도는 뒷이야기가 궁금하다는 독자분들의 말이었어요. 제 이름이 좀 특이하잖아요? 그래서 이름으로 에고서칭을 하면 독자분들의 반응이 잘 보여요. 「창세기」의 마지막 문장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꽤 많더라고요. 나머지 절반은 번역가 허정범 선생님인데요, 서로 일면식도 없었는데 갑자기 메일을 보내오셨어요. 「창세기」를 번역해 외국 웹진에 소개하고 싶다고요. 덕분에 글로벌 문학 웹진 〈Words Without Borders〉 2016년 6월호 퀴어 특집에 「창세기」가 실렸어요. 그 후로 6년 동안 사회에 많은 일이 일어났어요. 주로 사람이 연대할 수밖에 없는 일, 또는 연대해서 이뤄 낸 일들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제네시스’에도 결코 리아와 세은만 있는 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리아를 생존시키는 일도 세은 혼자서는 어려웠을 테고요. 

제 친구들이 이제 대부분 30대가 되었어요.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친구들을 보니 ‘이런 아이도 제네시스엔 있겠지.’ ‘그렇다면 이런 일도 제네시스엔 있겠지.’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어요. 하지만 쏟아낼 데가 없어서 주저하다가 마침 『여성작가SF단편모음집』에 참여하게 되었고, ‘등장인물 성별을 밝히지 않고 써 보자’라는 생각으로 두 명을 추가했지요. 그 뒤로는 등장인물들이 알아서 자기 친구들을 데리고 나타난 셈이에요. 

작가님이 스스로를 소개하실 때 “주로 청소년 로맨스를 쓰고 있지만 해피엔딩을 어려워한다”고 말하신 걸 봤어요. 그러고 보니 이번 책도 청소년 로맨스라 말할 수 있겠는데요, 엔딩은 어떤가요? 독자들이 해피엔딩으로 읽어도 되는 걸까요?

정말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는 ‘청소년이 행복해지기’라는 게 이 사회에서 가능할까, 종종 생각을 해요. 왜냐면 저도 그랬고, 청소년기에 ‘실패’를 한 번 하면 그걸 극복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구조인 것 같거든요. 시험 한번 망치면 그게 기록에 남고. 이 세계에서 행복한 청소년을 그리는 건 어쩌면 독자에게 거울을 들이대고 웃으라고 다그치는 일인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요. 그래서 SF로 넘어왔어요. 가상의 다른 세계에선 ‘청소년이 행복해지는 이야기’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이 책에는 ‘다행이다’라는 말이 자주 나와요. 그건 자신이 원한 바가 전부든 일부든 이루어졌을 때 할 수 있는 말이죠. 모든 인물들은 ‘한 사람의 생존’을 위해 단결했고, 그 단결은 성공했어요. 그 부분에서 각자는 어느 정도 해피엔딩을 맞았다고 생각해요. 가장 중요한 리아의 경우에는 의견이 좀 갈리더라고요. 이런 지구로 돌아오는 것이 리아에게 과연 행복인가? 「창세기」를 처음 쓸 때의 저는 그건 행복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그냥 이 말씀만 드리면 될 것 같아요. ‘세계를 주겠다’는 리아의 말은 이루어졌고, 그것은 세계를 받은 수신자가 있다는 뜻이에요.

작가님 소설을 말할 때 흔히 언급되는 키워드들이 있어요. 청소년, SF, 그리고 소수자. 특히 퀴어 청소년, 장애를 가진 청소년이 소설에 자주 등장합니다. 작가님이 집중하는 테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 이야기를 하려니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당사자성’이에요. 저는 소수자 당사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내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직 소수자에게 마이크가 넘어가지 않은 영역도 있고, 먼저 ‘소수자가 여기 있다’고 인식시키는 것이 필요한 지점도 있어요. 그래서 늘 조심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작업해요. 당신이 여기 있다고, 당신이 존재한다고 제가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낼 테니 언젠가 당신이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세계가 오길 바란다는 마음을 담아서요. 책이 나온 다음에는 괜한 오지랖을 부린 게 아닌가 고민하기도 하지만요. 또 하나 주목하는 세계는 ‘착하지 않은 소수자’가 등장하는 세계예요. 리아는 싸우고, 단은 거짓말하고, 제롬은 도둑질을 하죠. 완전무결하게 착한 인간을 저는 상상하기도 힘들고, 완전무결하게 착한 소수자여야 인정해 주는 현실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해요. 소수자 중에도 성격이 까칠한 사람이 있고, 폭력적인 사람이 있어요. 소수자 아닌 사람들과 마찬가지로요. 저는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들이 세상에 먼저 소리칠 수 있다는 ‘편견’이 좀 있어서, 그런 인물들을 곧잘 등장시키곤 해요. 

소설 속 ‘문라이터’가 인상적이었어요. 달의 표면에 메시지를 새겨 주는 유료 서비스라니, 어쩐지 언젠가 이루어질 것만 같은 상상이에요. 어떻게 이런 서비스를 떠올리게 되셨어요?

낭만적인 이야기와는 거리가 먼 대답이 되겠네요. 제가 실수로 컴퓨터에 저장한 파일을 복구 불가능하게 날려 버린 것에서 생각이 시작되었거든요. ‘이 많은 걸 손으로 다 써서 어디 저장할 수도 없고……’라고 괴로워하다 ‘어디에 기록을 해야 영구저장이 가능한가’를 고민했어요. 물론 지금은 이중, 삼중 백업을 하고 클라우드 서비스를 쓰기 때문에 파일을 다 날릴 걱정은 조금 덜었습니다. 하지만 문라이터 이야기가 처음 시작된 것은 2010년경이기 때문에 저는 백업의 중요성을 아직 잘 몰랐어요. 컴퓨터 하드가 완전히 깨졌다는 얘기를 듣고 하늘을 보니 낮달이 떠 있었어요. 달에 새기면 지워지지는 않겠네 하는 생각을 시발점으로 ‘그럼 달 평탄화 작업부터 해야 되지 않나?’ ‘돈은 엄청 들겠지만 우주 범위의 클라우드라면 분명 수요가 있겠지!’라는 쪽으로 뻗어나갔어요. 지금 이 자리를 빌려 살짝 고백하자면, ‘달 표면에 얼마나 빠르고 크게 글자를 새겨야 지구에서 실시간 관측이 되냐’라는 질문에는 아직까지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궤도의 밖에서, 나의 룸메이트에게』에는 매력적인 인물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독자들의 리뷰를 보면 ‘최애’ 캐릭터가 모두 다르더라고요. 작가님의 마음에 특별히 남는 인물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루카요. 루카는 원래 ‘제네시스 바깥세상의 시선’을 보여 주려고 만든 캐릭터인데 이야기를 쓰고 보니 정이 많이 가요. 천재들의 학교에, 천재가 아니라 ‘연구원 자녀’로 입학한 특수 케이스고, 그나마 같은 처지인 단에게마저 뒤처지고 말죠. ‘나 빼고 다 잘해’라는 상황에서도 단에게 날선 말을 내뱉지 않아서 루카가 좋아요. 저도 주변 사람들에게 열등감이 강한 편이거든요. 그 열등감을 잘 정리하고, 떠날 이유가 있다면 모든 걸 버리고 떠나버리는 단호함이 좋아요. 나중에는 슈메이커-레비 혜성의 공동발견자인 ‘캐롤린’으로 이름을 바꾸고 살죠. 바깥세상에서 살아가기를 결심했으면서도 여성 천체과학자의 이름을 자신의 새 이름으로 고른다는 점에서, ‘나는 과거를 부정하지 않을 거야’라는 각오가 서려 있다는 것도 좋고요. 내가 속했던 세계가 바깥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걸 직접 확인하는 유일한 인물이라는 점도 ‘외부 관찰자’ 루카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예요. 

작가님이 SNS에서 『궤도의 밖에서, 나의 룸메이트에게』의 테마 BGM을 추천해 주신 걸 봤어요. 독자들에게도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제롬과 리아가 광장에서 춤추는 장면은 〈인터내셔널가〉 리믹스 버전입니다. 정말 유튜브엔 다양한 리믹스가 있더라고요! 한국어 가사 2절인 ‘어떠한 높으신 양반 고귀한 이념도 허공에 매인 십자가도 우릴 구원 못 하네’라는 부분이 제네시스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우리 것을 되찾는 것은 강철 같은 우리 손’이 제네시스의 미래를 보여 주는 듯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 가사가 나라마다 달라요.

「창세기」의 BGM은 러블리즈의 〈Destiny(나의 지구)〉입니다. 금환일식을 상징하는 가사를 듣고 진짜 놀랐어요. 아니, 2016년에 나온 노래가 이렇게 소설과 찰떡일 수 있다니. 제롬의 BGM은 마미손의 〈사랑은〉이에요. 듣다 보니 공동세탁실에서 의자에 앉아 잠든 리아와 막 세탁실에 들어온 제롬이 그걸 물끄러미 보는 모습이 그냥 떠올랐어요. 정말로 그냥. 리우와 슈는 오마이걸의 〈불꽃놀이(Remember Me)〉입니다. 불꽃놀이는 눈으로도 보지만 귀로도 듣는 재미가 있잖아요. 내전 지역이라는 ‘폭탄’ 가득한 곳에서 두 사람이 한 번쯤 같이 ‘불꽃놀이’를 즐기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편집자 주: 작중 ‘슈’는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인물이다.)

단은 이소라의 〈Track 9〉이에요.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강하게 하고’라는 부분이 단의 어깨 위에 얹힌 짐을 보여 주는 것 같아서요. 루카는 유아의 〈숲의 아이(Bon voyage)〉입니다. 다른 존재가 된 지금, 나는 가장 자유롭고 가장 나답다는 메시지가 루카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전체적으로는 페퍼톤스의 〈긴 여행의 끝〉과 (제가 페퍼톤스 팬입니다) 하현우의 〈Home〉, 국카스텐의 〈Pulse〉를 계속 들었어요. 돌아가겠다는 약속, 돌아가야 하는 곳, 존재하려 애쓰는 아이들을 생각하기 좋은 곡입니다.

이 소설을 읽은 혹은 읽게 될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증정본을 청소년 단체, 퀴어 인권 단체 쪽으로 많이 보냈어요. 사실 책보다 후원금을 내야 더 도움이 될 텐데……. 당사자들에게 많이 닿았으면 좋겠고,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도 많이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혐오가 완전히 사라진 세상이 올 거라는 확신은 들지 않아요. 길을 막고 있는 거대한 바위를 깨고, 조금 작아진 바위를 또 깨는 걸 반복해도 바닥엔 부스러기들이 남겠죠. 하지만 거대한 바위 같은 혐오와 차별도 인식하지 못하는 것보단 부스러기처럼 산재한 혐오와 차별에 대해서 ‘이건 옳지 않아’라고 말하는 상황이 좀 더 낫지 않나요. 우리 그때까지 같이 바위 깰래요? 세은이가 그랬잖아요. ‘뺏기지 말라’는 리아의 말을 잊지 않았다고. 최후의 최후의 최후까지 싸울 거라고. 깨는 게 힘들다면 깨다가 다친 사람들에게 붕대를 감아 주고 약을 발라 주고 따뜻한 차를 대접하는 후방 지원군이 되어도 좋고요. 저 붕대 잘 감거든요.




*전삼혜

1987년 서울에서 태어나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걷다가 보니 어른이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인 2004년에 덜컥 [마비노기]를 깔았다가 많은 게 변한 사람. 게임 팬픽을 공식 카페에 연재하다 지망 대학을 정했다. 2016년부터 게임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또 청소년 SF의 길을 힘차게 달리고 있다. 목표는 ‘한국 청소년들이 한국 SF를 더 많이 접하게 하는 것’.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SFWUK) 2기 부대표이며, 2010년부터 겸업 작가 생활을 충실히 유지하고 있다. 전직 판교의 등대지기. 아메리카노를 물처럼 마시며 노동 중.



궤도의 밖에서, 나의 룸메이트에게
궤도의 밖에서, 나의 룸메이트에게
전삼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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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