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윤희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한국 전통 기담”
‘한’을 품은 귀신들.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듯하지만 현대적으로 새롭게 재해석한 기담을 통해, 한국 전통 기담의 가치와 다채로움을 소개하고 싶었어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1.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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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개주막 기담회』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익숙한 기담을 좀 더 복잡하고 현대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한 기담 소설이다. 역사라는 시간에 박제된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삶의 이치를 전하고 나아가 독자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고유의 정서까지 담아내고자 했다.

다른 나라와 한국 전통 기담의 차이는 귀신들이 가진 ‘한’이라고 생각했던 작가는, 다른 작품들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인물들의 애처로움과 슬픔까지 고스란히 전한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여섯 가지 기담을 통해, 한국 전통 기담이 얼마나 새롭게 느껴지는지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대형 언론사에서 기자로 15년을 근무하셨어요. 사회부에서 국제부까지 다양한 분야를 거쳤고, 동유럽과 미국에서 해외특파원 생활도 하셨는데요. 어떻게 기담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는지, 어떤 포인트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오랫동안 기자 생활을 하면서 ‘팩트’에 충실한 글을 썼습니다.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는 작업이었지만, 15년 넘게 하다 보니 내 상상력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갈망이 강해졌습니다. 주변에선 제가 기자 출신인 만큼 현실을 생생하게 그리는 스토리를 쓸 거라고 많이들 예상한 모양인데, 직장을 관두고 삼개주막을 쓸 무렵엔 오랜 기자 생활에 대한 반작용이었는지 오히려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무대, 현실에선 일어날 가능성이 지극히 희박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눈을 돌린 게 기담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전생’, ‘환생’ 같은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즐겨 봤고, 놀이공원 같은 곳에 가면 부모님이 두 손 다 들 정도로 ‘귀신의 집’을 좋아했습니다. 이런 제 취향과 글을 쓸 당시의 심리 상태가 맞아떨어져 기담을 쓰게 된 것 같습니다. 일본에는 왕성한 기담이라는 장르가 한국에선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게 안타깝기도 했었고요.

기담소설 하면 일본의 작가들이 능통하고, 특히 미야베 미유키 작가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이렇게 일본 기담류나 미야베 미유키 작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나요? 일본 말고도 다른 나라나 작가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더 있는지요?

미야베 미유키는 개인적으로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작가고, 삼개주막을 쓸 때도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에도 시대를 바탕으로 한 미야베 미유키 작가의 기담 소설은 갈래가 많은데, 그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것은 오치카가 주요 등장인물로 나오는 ‘흑백 시리즈’입니다. 고향에서 끔찍한 일을 겪은 오치카가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에도에서 장사를 하는 친척 집에 머무르다가 우연한 기회에 손님으로부터 기이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 일을 계기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기이한 사연을 갖고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접하며 차츰 인간적으로 성숙해 간다는 설정입니다.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등골이 서늘한 이야기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에도 시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도록 한 세심한 묘사에도 매료됐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조선 시대 서민들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한국의 정서를 기반으로 한 기담소설을 써보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은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사회여서 ‘이야기가 모이는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텔레비전 사극에서 주막이 나오는 장면을 보고 ‘이거다!’ 싶었습니다. 주막은 음식점, 술집, 여관, 심지어 우체국의 기능까지 담당했다고 하니 필연적으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 기이한 이야기가 꽃을 피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 기담 외엔 중국 ‘요재지이’도 제가 인상 깊게 읽은 기담집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걸 ‘기담’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셔 가의 몰락’처럼 기괴한 분위기가 압권인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도 좋아합니다. 대학원 때 제 논문 주제가 에드거 앨런 포의 공포소설 고찰이었습니다.  

한국 기담만의 특징이 있을까요? 있다면 어떤 특징들이 있고, 그것들은 『삼개주막 기담회』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의 기담은 한국의 문화, 사회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시댁 식구들 등쌀에 어쩔 수 없이 목숨을 끊고 ‘열녀’가 된 과부 이야기는 이런 악습이 없었던 일본에선 나올 수 없는 이야기이니까요. 

그리고 한국의 기담엔 ‘한’이라는 독특한 정서가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서양의 무서운 이야기를 보면 유령이 등장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더라도 아련한 슬픔이랄까, 억울함이랄까 이런 분위기를 연출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더라고요. 유령이 출현하는 이유도 대개는 복수인 경우가 많고요. 하지만 한국 귀신 이야기에 단골로 등장하는, 머리를 산발하고 소복을 입은 처녀 귀신은 대체로 한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풀기 위해서 산 사람들 앞에 등장하잖아요. 귀신을 만난 사람들이 간이 작아서 줄줄이 죽어 나가는 바람에 문제가 되긴 하지만요. 제가 한국 기담의 전문가라고 할 순 없지만, 귀신들이 ‘한,’ 혹은 가슴에 맺힌 억울함을 품고 있고 그것을 들어줄 사람을 찾는 설정이 많다는 게 한국 기담의 특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러한 독특한 한의 정서를 이야기 속에 녹이려고 노력했습니다. 

또 한국의 전통 기담이라는 설정에 부합하기 위해 이야기 속에 화자로 등장하는 보부상, 방물장수 할멈, 책 읽어주는 일을 업으로 하는 전기수(傳奇?) 등을 모두 조선 시대 사회상에 맞게 설정했습니다.

『삼개주막 기담회』는 ‘삼개주막’을 배경으로, 그곳을 찾은 손님들의 입을 빌려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책에는 모두 6편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중에서 작가님이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작품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이야기는 가장 먼저 등장하는 ‘그림 그려주는 노인’입니다. 사실 ‘그림 그려주는 노인’ 덕분에 『삼개주막 기담회』를 쓰게 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이 책을 쓰기 전에 다른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었는데, 생각대로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생년월일을 입력하면 소울메이트의 얼굴을 그려준다는 유튜브 광고를 접하게 됐습니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었지만, 은근히 호기심이 동한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문득 과학이 이토록 발달한 21세기에도 이런 종류의 광고가 먹힐진대, 조선 시대 같았으면 과연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 길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아 행인의 배우자 얼굴을 그려주는 기이한 노인 캐릭터가 머리에 딱 떠오르더군요. 그래서 원래 구상하던 걸 접고 아예 기담소설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미래가 어떨지 궁금해하고 때로는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점집을 찾아가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점쟁이에게서 안 좋은 소리를 들으면 어떻게 하나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이런 모순된 감정, 인간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운명의 가혹함을 신비한 힘을 지닌 노인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공감할 만한 주제인 만큼 독자들도 재미있다고 느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각각의 이야기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어쩔 수 없이 맞닥트린 운명 앞에서 고뇌하게 되고, 나름대로 결정한 선택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곤란을 겪기도 합니다. 애착을 느끼는 캐릭터들이 있다면 어떤 부분에서 그런지 같이 설명 부탁드립니다.

가장 연민을 느끼는 캐릭터는 ‘과거 보러 가는 길’에 등장하는 선비 세진입니다. 다른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운명 앞에서 괴로워하고, 갈등하지만 세진은 이야기 말미에 자신이 믿어온 모든 것을 송두리째 부정당합니다. 자신이 진실이라고 확신했던 것이 사실은 거짓이고, 내 눈으로 봐 왔던 세계가 허상이란 걸 알게 됐을 때의 충격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일 겁니다. 그 결과 세진은 진실을 깨달은 그 순간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가 없게 되죠. 

‘첩의 환생’에서 화자로 등장하는 할멈도 자신이 진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자 극도로 분노합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이러한 충격과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어쩌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숨 가쁘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이야말로 과거 내가 알았던 세계, 내가 가지고 있던 믿음을 부정당하기 쉬운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앞서 언급한 두 인물에게 많이 애착이 갑니다.

이 작품에는 후반부에 놀랍게도 연암 박지원이 주막의 손님으로 등장합니다. 즉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을 암시하기도 하는데요. 이렇게 역사적인 시기를 고른 이유가 있는지요? 그리고 기담소설에 박지원을 등장시킨 이유도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박지원을 등장시킬 의도는 없었는데, ‘열녀’를 쓰다가 박지원을 넣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지원의 작품이 기담소설과 어울리는 측면이 있고, ‘열녀함양박씨전’에서 조선 시대의 과도한 열녀 만들기 열풍을 직접적으로 비난한 적도 있으니까요. 실학자라 서민들의 실생활에도 관심이 많았고, 괴짜라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전형적인 사대부 유학자와는 스타일이 달랐으니 주막의 서민적인 분위기와도 잘 맞을 것 같았습니다. 신분과 나이에 상관없이 사람을 만나고 술을 즐긴 박지원이었으니 정말 삼개주막이라는 곳을 방문했더라면 분명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하고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썼습니다.

시대적 배경을 18세기 후반으로 잡은 것은 박지원과는 무관하게 처음부터 설정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주막의 모습은 18세기 이후 형성됐고, 주막이 전국 방방곡곡에 들어선 것도 18세기 후반이기 때문입니다. 마침 박지원의 활동 시기 역시 시대적 설정과 잘 맞아떨어져서 무리 없이 이야기 속에 등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작가님이 구상하신 많은 기담 중 여섯 가지만 이 책에 선별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두 번째 기담소설이 나온다면 어떤 작품들이 나올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선노미의 기담회는 어떻게 꾸려질지도 궁금하고요.

다음 기담소설이 나온다면 그때는 선노미와 박지원이 주축이 돼서 열리는 ‘삼개주막 기담회 시즌2’가 될 것 같습니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 이에 대한 암시가 들어가 있지요. 아마도 선노미가 주막에서 오가는 이야기들을 열심히 암기한 뒤(어쩌면 그때는 언문을 쓸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박지원의 주재로 모이는 모임에서 그 이야기들을 풀어나가는 형식이 될 것 같습니다. 

한국에도 많은 역사 기담이 있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풍부한데 그동안 이것들이 너무 소홀하게 여겨진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삼개주막 기담회』에 나온 것처럼 한국인들에게 익숙하면서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기담, 그저 기괴한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곱씹어볼 수 있는 기담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싶습니다.

  


*오윤희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코리아헤럴드>를 거쳐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2005년부터 사회부 경찰 기자를 거쳐 사회정책부(교육, 복지 담당), 산업부(유통, 부동산 담당)에서 근무했으며 동유럽 특파원을 거쳐 ‘위클리비즈’ 팀에서 해외 유명 기업인과 석학들을 만나 취재했다. 외국 석학과 기업인을 인터뷰한 경험을 살린 경영서 『정반합』(비즈니스 북스, 2015)을 출간했다. 동유럽특파원과 뉴욕특파원을 역임한 뒤 조선일보를 나와 글쓰기에 주력하고 있다.



삼개주막 기담회
삼개주막 기담회
오윤희 저
고즈넉이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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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