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시민들이 ‘행복한 화가’라고 부르며 사후 70여 년이 지나도록 기억하는 화가가 있다. 그는 정규 미술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좋은 물감이나 캔버스를 살 형편이 되지 않아 늘 작은 크기의 종이에 무채색이 대부분인 그림을 그렸다. 소박하지만 따뜻하고, 서툴지만 인생의 단면을 드러내는 듯한 그의 그림들은 위안이 필요했던 시기 파리 시민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바로 그의 이름은 ‘루이 비뱅’이다.
『루이 비뱅, 화가가 된 파리의 우체부』는 어린 시절 화가의 꿈을 꾸었던 루이 비뱅이 현실적인 여건으로 인해 파리의 우체부로 살아가면서도 오래전 꿈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다. 파리로 이주한 뒤에는 61세 은퇴 전까지 직업인으로서, 가장으로서 평범하지만 성실한 삶을 살았고, 남는 시간에는 우체부로 파리를 누비며 눈에 담았던 풍경들을 그림으로 기록했다. 그 자체가 작품이자 일상의 기록인 셈이다. 그리고 은퇴한 뒤 더욱 그림에 전념하던 루이 비뱅은 우연히 근처를 방문한 유명한 화상 빌헬름 우데를 만나 전시회를 할 기회를 얻게 된다.
파리 외곽의 정겨운 전원풍경, 결혼식을 축하하는 하객들, 눈 오는 날 동심으로 돌아간 파리의 모습 등 파리 시민들은 자신의 일상이 주인공이 된 루이 비뱅의 그림을 보며 행복에 젖었다. 그리고 사후 2년 뒤 모든 화가들의 꿈인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화가로서 이름을 올리기까지, 이 책은 그런 루이 비뱅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의 일상 속 평범하지만 소중한 순간들에 대해 되새겨보게 해주는 감동 에세이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저는 이화여대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하고 100여 회 이상 국내외 전시를 한 화가이자 어려운 미술 이야기를 흥미로운 스토리와 함께 쉽게 풀어주는 에세이 작가입니다. 2014년부터는 일 년에 한 달은 해외에 살며 세계 미술관 탐방을 하는데요,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미국, 멕시코, 일본 등을 다녀왔습니다. 해외 미술관에서 얻은 지식과 정보, 화가들의 이야기를 혼자만 알기가 아까워 블로그 <화줌마 ART STORY>를 운영하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나누고자 시작한 블로그는 누적 방문자수 260만 명을 넘는 인기 블로그가 되었고 2021년, 2016년 네이버 미술 분야 〈이달의 블로그〉로 선정되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어쨌든 미술은 재밌다』, 『키라의 박물관 여행 10: 뉴욕현대미술관』이 있지요.
『루이 비뱅, 화가가 된 파리의 우체부』 제목만으로도 굉장히 감성적인데요, 루이 비뱅의 스토리가 궁금해요. 루이 비뱅은 어떻게 꿈을 이루게 되었나요?
루이 비뱅, 이름이 좀 생소하지요? 명품 루이 비통과 좀 헷갈리기도 하고요. 비뱅은 1861년 프랑스 아돌에서 태어나 성인이 되어서는 파리의 우체부로 일했습니다. 비뱅의 어린 시절 꿈은 화가였지만 아버지의 반대와 재정적인 이유로 화가의 꿈은 접고, 우체부가 되어 42년을 파리의 우체부로 근무를 합니다. 정년 퇴임한 비뱅은 마침내 오랜 꿈이었던 캔버스 앞에 앉아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이때 그의 나이는 62세, 비록 늦은 출발이였지만, 늦었기에 더 간절하고 가슴의 열정은 누구보다 뜨거웠지요.
비뱅은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늦은 나이에 미술에 입문한 소박파 화가였기에 주류 화풍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의 순수하고 독창적인 그림은 피카소를 놀라게 하고 관람자에게 당신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몽마르트르에 살았던 비뱅은 집 앞 전시장에 그림을 걸었고 마침내 미술사학자이자 화상인 빌헬름 우데에게 발탁되어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가하며 서서히 이름을 알리던 중 73세에 뇌졸증 으로 팔이 마비되고 2년 후 사망합니다. 비뱅은 생전에 크게 이름을 알리진 못했지만 사후 1년부터 뉴욕현대미술관, 런던 테이트, 파리 퐁피두센터 등에 초대 전시되며 소박파 화가로 영원히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
루이 비뱅의 대표작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대표작에 대한 설명과 함께 소개 부탁드려요.
비뱅의 대표작 <사크레쾨르 대성당>을 소개하겠습니다. 몽마르트르 언덕에 위치한 순백의 사크레쾨르 대성당은 바로크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결합된 파리의 대표 건축물 중 하나입니다. 아울러 비뱅이 가장 많이 그린 소재입니다. 이 작품은 비뱅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성실하고 세밀했던 비뱅은 건물의 외벽을 일일이 선으로 다 그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성당의 정면과 측면을 동시에 그렸고, 또한 옆의 건물들도 바짝 붙여 왜곡되게 그렸습니다. 즉 비뱅은 한시점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고 적어도 세 시점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는 전통적인 회화에서는 볼 수 없는 다시점을 추구한 입체주의와 같은 것입니다. 피카소가 소박파 화가들의 작품을 보고 깜짝 놀란 점이지요.
비뱅처럼 독학한 화가들을 아마추어 화가, 일요 화가, 아웃 사이더 화가라고 부르는데요, 비뱅의 작품에서 입체파의 화풍이 보인 점은 놀라운 일입니다. 실제로 사크레쾨르 대성당에 가서 정면과 측면을 번갈아 가며 살펴보시면 비뱅이 얼마나 창의적으로 그렸는지 알 수 있지요. 이런 발상은 사실주의를 뛰어넘어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코로나19로 여행이 어려워지며, 파리를 그리워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이 책은 루이 비뱅의 그림으로 파리의 곳곳을 만나볼 수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그림을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가 있을까요?
노트르담 대성당, 시청사, 뤽상부르 공원, 몽마르트르, 오페라 가르니에, 오르세 역 등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데요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소는 <오르세 역>입니다. 비뱅이 그림을 그렸던 시기의 오르세 역은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를 개최하며 신축한 최고급 근대 건축물이었습니다. 우편배달부였던 비뱅은 기차를 타고 시외 우편을 배달했기에 오르세역은 추억이 많은 곳이리라 생각됩니다.
1986년 미술관으로 바뀐 오르세 역은 인상주의의 천국으로 불리며 전 세계 미술 애호가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기차역 내부와 외관, 대형 시계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향수를 자극합니다. 시계마저 예술이 되는 오르세 미술관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네요. 1925년 비뱅이 그린 오르세 역은 약 100년의 시간이 흘려 기차역은 미술관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아름답네요.
루이 비뱅이 그림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요?
비뱅은 규정된 모습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우편배달을 하면서도 화가의 시선을 간직하고 있었고, 퇴직 후에는 버릴 쓰레기가 없을 정도로 가난했지만 새벽부터 저녁까지 그림에 몰두했습니다. 남들은 뭔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라고 말했지만 62세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비뱅에게 그림이란 삶의 과정이었습니다. 비뱅은 그 과정에서 행복을 찾았고 마침내 화가의 꿈도 이루었습니다. 비뱅은 자신의 그림을 통해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란 사실을 알려 줍니다. 당장 여건이 안되거나 부족하다고 섣불리 낙담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꿈을 꾸는 것 자체가 행복한 삶이며, 꾸준함은 어떤 재능보다 강력하다는 사실도 전해줍니다.
작가님은 미술관에 가면 미술을 감상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으실까요? 일반 독자분들이 그림을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정말 좋은 질문입니다. 제가 20대부터 미술관에 다니며 실제로 하고 있는 건데요, 그 전시장에서 집에 들고 가고 싶은 그림을 고르는 겁니다. 하하 물론 가상입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을 선택하고 그림값을 지불한다는 생각을 하면 전시장에 걸린 그림들을 더 진지하게 보게 됩니다. 또, 저는 전시장을 두세 번 이상 반복해서 봅니다. 처음 한 바퀴는 전체 구성을 보며 작품을 감상하고 두 번째부터는 제가 살 그림을 고르는 것이죠. 그렇게 하면 작품보는 안목이 상당히 높아 집니다. 전시장 관람을 마치고 난 뒤에는 아트숍에 들려 제가 고른 그 작품의 아트 상품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작품은 잊을 수가 없게 됩니다. 미술관 산책은 우리들의 삶에 재미와 의미 두 가지를 충족시켜 주지요.
마지막으로 독자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루이 비뱅은 피카소처럼 위대한 화가도 아니며 반 고흐처럼 전설이 된 화가도 아닙니다. 비뱅은 성실히 생업에 종사한 후, 60대에 독학으로 그림을 그린 비주류 화가입니다. 하지만 비뱅의 작품에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순수함과 따뜻함이 담겨 있습니다. 비뱅의 작품을 본 관람객들은 그의 작품을 보면 행복해진다고, 그를 '행복한 화가'라고 불렀습니다. 비뱅이 여건과 환경에 연연하며 우물쭈물했다면 오늘날 그의 사랑스런 그림과 감동적인 이야기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겠지요. 비뱅 사후 1938년부터 1976년까지 뉴욕현대미술관에서는 비뱅의 작품을 12차례 전시를 하였고 비뱅의 작품 2점을 소장하였습니다. 이는 비뱅을 진정한 화가로 인정한 것이며 또한 그의 독창성을 높이 평가한 것입니다. 이 정도면 멋진 인생이지요? 제가 쓴 비뱅의 이야기가 가슴 한편에 꿈을 품고 살아가는 분들에게 용기와 희망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박혜성 이화여대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100여 회의 국내외 전시를 한 화가자 어려운 미술 이야기를 흥미로운 스토리와 함께 쉽게 풀어주는 에세이 작가다.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미국, 멕시코 등 2014년부터 일 년에 한 달은 해외에 살며 미술관 탐방을 하고 있다. 아트 스토리텔러로서 미술 인문학 강의, 누적 방문자가 260만 명에 달하는 미술 분야 인기 블로그 <화줌마 ART STORY>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2021년, 2016년 네이버 미술 분야 <이달의 블로그>로 선정되었다. 지은 책으로는 『어쨌든 미술은 재밌다』, 『키라의 박물관 여행 10: 뉴욕현대미술관』이 있다. 2016~2006 이서전 (인사아트센터 외) 2016 이화크라프트 앤 아트페어 2003 재뉴질랜드 미술협회전 (오클랜드) 1995~1986 신이화전 (예술의전당 외) 한국미술협회전, 초대전, 단체전 100여 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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