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련 “20대 박서련의 소설 걸작선 같은 거죠”
이 글은 자존심이 가장 강하고, 자존감이 가장 높고, 좌절을 아직 맛보지 못했고, 이제 곧 등단할 거라고 자신만만하게 생각했던 시절의 제가 쓴 글이에요.
글ㆍ사진 신연선
2021.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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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모호해도 아름다운 문장을 쓰고 싶었고 감히 아무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짓고 싶었다. 지금은 정확한 문장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며 누구에게나 공감의 여지가 있는 이야기를 찾아다닌다.(121-122쪽)

박서련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이자 <트리플>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인 『호르몬이 그랬어』에 실린 에세이에서 작가는 20대의 자신과 30대의 자신이 얼마나 다른지 설명한다. “공동 저자로 승인받는 것 같은 기분”(122쪽)을 느끼며 20대에 쓴 수록작들을 다시 썼다는 박서련 작가는 이이서 또 말한다. 이 작품들이 미웠다고. 수록작은 모두 2008년에서 2010년 사이에 쓴 작품이다. 미숙하고 은밀하고 강렬했던 사랑을 기억하고(「다시 바람은 그대 쪽으로」), 엄마의 남자친구를 충동적으로 만나고(「호르몬이 그랬어」), 죽은 연인의 유골함을 훔치는(「총 塚」) 이야기들에는 20대의 작가가 많이 담겨 있었다. 세상을 다 안다고 여기며 취하는 위악적인 태도, 거기서 발현되는 거친 생각과 말들이 거기에 살아 있었다. 미움은 그런 과거의 자신을 “지나치게 잘 알아볼 수 있어서”(120쪽) 오는 감정이었다. 

이런 감정과는 별개로 작가는 이 세 작품을 “20대 박서련의 걸작선”이라고 말했다. 내보일 기회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내보이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박서련 작가는 그렇기 때문에 등단 여부와는 상관없이 더 많은 작가들이 더 많은 작품을 세상에 내보일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문학플랫폼 던전>에 연재하기도 했던 이 작품들과 괴롭게 대면하면서도 벅찬 마음으로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은 이유다.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인정하고 싶진 않았던

수록 작품은 모두 20대에, 그러니까 등단 전에 처음 쓰신 것들인데요. 책 뒤에 실린 에세이를 보면 이 작품들을 많이 미워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이 작품들에 대한 복잡한 마음을 갖고 계셨던 것 같은데요. 

이 작품들은 <트리플> 시리즈에 앞서 <문학 플랫폼 던전>에 연재하려고 추려둔 것들이에요. 제가 상상한, 『던전』에 소설을 내려는 분들은 ‘재고 원고’가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호르몬이 그랬어』에 실린 것들 역시 모두 저의 재고 원고였고요. 조금 부끄러운 면이 있긴 하지만 내보일 수 있는 정도의 퀄리티는 되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연재작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렇긴 한데 막상 열어보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연재 준비를 하면서 내가 이걸 미워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럼에도 연재는 해야 하니까 어떻게 고치면 연재할 수 있는 작품이 될까를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재고 원고로 갖고만 있었고, 그동안 열어보지는 않았던 거군요? 

네, 물론 아깝긴 했지만 그 전까지는 아예 생각을 안 했어요. 이번에 고치면서 다른 작가의 글이라고 상상하니까 조금 수월해지더라고요. 다른 작가가 이 글을 썼다면 전혀 미워하지 않았을 텐데 이 글의 저자가 나라는 사실 때문에 미워한 거니까요. 거기에는 타임캡슐처럼 내가 묻어둔 20대의 제가 있었고요. 그때의 저를 미워하느라 글을 미워한 것 같아요. 최규석 만화가가 홈페이지에 일기를 연재하던 때가 있었는데요. ‘과거의 자신을 깔보면 안 된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흔히 ‘내가 옛날에 왜 이런 걸 좋아했지? 촌스럽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때의 자신이 만들어진 일련의 과정이 있고, 여러 경험이 만들어준 자신이잖아요. 그런 과거의 자신을 깔보는 것은 안 좋은 태도라는 내용의 말씀이었는데 그 말을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났어요. 나보다 어린 타인을 대할 때 그를 존중하는 태도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나도 어느 정도의 존중을 품고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작품들에는 20대의 작가님이 얼마나 많이 담겨 있나요? 

세상을 안다고 착각하고 말하는 태도 같은 게 그때의 저와 닮았어요.(웃음) 특히 되바라지고, 까지게 말하는 위악적인 부분이 그래요. 

작가님 스스로는 그때와 지금의 글을 쓰는 나는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시는지 직접 듣고 싶어요. 에세이에는 또 “이 책의 세 작품을 쓴 나와, 그것들을 고친 나는 분명히 연속적이고 동일한 존재지만 또 이토록 다르다.”(122쪽)고 하셨잖아요. 

좌절을 맛보기 전이라는 점을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글은 자존심이 가장 강하고, 자존감이 가장 높고, 좌절을 아직 맛보지 못했고, 이제 곧 등단할 거라고 자신만만하게 생각했던 시절의 제가 쓴 글이에요. 지금 벌어지고 있는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해고 사건과 아주 비슷한 일이 2010년 홍익대학교에도 있었는데요. 그 일이 제가 그간 사회에 관심이 없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 최초의 사건이었어요. 그때까지도 학생회 활동 등 이런 저런 활동을 했었지만, 그 즈음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인정하고 싶진 않았던 저의 계급적 성격을 깨닫는 시기였던 거죠. 아마 「총 塚」을 쓰던 시기일 텐데요. 그 전에는 사회적 흐름과 상관없이 미학적인 걸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예술가적 자의식이 지나치게 과잉된 사람이었고요.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그게 깨지기 직전, 또는 깨져가면서 느낀 혼란을 겪으면서 쓴 글들이에요. 

2010년 홍대 청소노동자 해고 사건은 저도 기억이 나는데요. 그 사건이 작가님에게는 얼마나 영향을 준 걸까요? 말하자면 작품의 방향을 바꿔놓은 셈이잖아요. 

홍대 로비에서 숙식을 하며 농성을 했을 때가 있었어요. 저도 함께 밤샘 농성을 했었죠. 여러 장면이 떠오르는데요. 지금 생각하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예술적인 자의식에 매몰되어 있는 어린 여자를 약간 깔보는 진보 중년 남성도 많았고요. 그런데 그때는 그것이 불쾌하다는 생각은 못 하고 그저 ‘내가 진짜 닫혀 있었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지금은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옳지 않다는 것도 알지만요. 결국 어떤 균형에 다다르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까지의 세계관을 바꾸는 체험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상당히 큰 체험이었어요. 

『체공녀 강주룡』을 2011년 김진숙 위원의 고공농성에 대한 기사들이 함께 언급하던 강주룡을 알게 되면서 쓴 작품이라고 밝히기도 하셨죠. 작가님의 변화들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해요. 

아까 말한 위악적인 태도라는 게 ‘내가 다 안다’고 착각하는 태도이기도 하잖아요.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눈치 채지 못하겠지만 저한테는 아주 큰 변화예요. 어떻게 비유를 해야 할까요. 가령 점 빼는 수술을 받은 뒤, 점이 있던 나와 없는 나는 완전히 다른 나잖아요. 큰 사건이라고 말해놓고 점 빼는 일에 비유하게 됐는데요.(웃음) 그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내가 된 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세계에 대해 모르는 게 정말 많구나, 라는 걸 절감했으니까요.


 

누가 책을 낼 자격이 있는가

작품을 고친 과정도 궁금한데요. 어느 정도 균형을 잡고 수정을 하신 건가요? 작품을 다시 쓰면서 고민했던 것은 무엇인지 들려주세요. 

가장 뚜렷한 태도를 갖고 수정했던 건 「다시 바람은 그대 쪽으로」였어요. 작품 자체가 30대 초반의 화자가 20대 초반의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소설을 쓴다는 내용의, 일종의 메타픽션을 30대가 되어 실제로 고치고 있는 설정이거든요. 그런데 실제로도 그랬잖아요. 이 글을 쓰던 때가 20대 초반이었는데요. 지금의 제가 고친 것이죠. 이 소설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를 이 글을 쓰던 20대 때의 저는 몰랐지만 지금의 저는 아는 거고요. 그 점을 더해주는 쪽으로 수정을 했어요. 「호르몬이 그랬어」와 「총 塚」은 아까 말씀 드린, 제가 미워했다는 그 태도를 조금 덜어냈어요. 까진 척 하느라고 반여성주의적인 태도로 썼던 부분들을 많이 고민하고 고친 것 같아요. 무조건 고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왜 그렇게 썼을까를 생각하면서 고쳐나갔어요. 

표현 하나를 그냥 지워버리는 방식으로 수정하지 않고 어떤 맥락에서 화자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인지 분명한 이유를 붙여주어서 좋았어요. 그 시기의 그 인물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서요. 

예를 들어 「호르몬이 그랬어」에서 주인공이 ‘자버리겠다’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원래 버전은 그에 대한 별다른 설명이 없었어요. 위악적이고 철없는 모습이 그냥 있었던 건데요. 수정하면서 왜 그런 생각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더 넣었어요. 인정하기는 싫지만 자신이 무력하다는 걸 아는 20대 여성이 섹슈얼리티로나마 자신의 유능감, 효능감 같은 것을 확인하려는 태도가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쪽으로요. 그냥 삭제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건 기만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런 때도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지금은 그것이 잘못된 것도 안다는 걸 그때의 나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에세이는 아니지만 소설에도 그때의 제가 있기 때문에요. 

그 마음은 지금 20대의 작가님과 같은 시기를 보내는,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분들에게도 닿을 수 있는 부분일 것 같은데요. 작가님도 그런 독자를 의식하지는 않으셨나요?

그렇진 않았어요. <던전>에 연재할 때는 그냥 ‘재미있겠지?’라는 생각까지는 했었는데요. ‘공감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은 거의 안 했던 것 같아요. 처음 이걸 쓰던 20대 때를 돌아본다면 ‘나 소설 잘 쓴다, 이거 봐라’ 하는 오만한 태도, 그래서 더더욱 심상해 보이지만 심상치 않은 것들을 찾아 다녔던 것 같고요. 

수록작들이 지금 작품들에 비해 ‘돌출된다’고도 표현하셨는데요. 그런 작품이 또 있나요? 이 세 작품을 선정한 이유도 궁금해요. 

선정한 이유는, 제가 잘 썼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요.(웃음) 2008년, 2009년, 2010년의 박서련 대표작 같은 느낌이죠. 이를 테면 ‘20대 박서련 걸작선’(웃음) 같은 거예요. 제가 뽑으니까 좀 이상하긴 하지만요. 

이 작품에 담긴 과거의 내가 갖고 있던 태도 때문에 이 작품들을 미워하긴 했지만 작품 자체에 대해서는 큰 애정을 갖고 있었던 거네요. 앞서 ‘재고’라고 표현하셨지만 언젠가 발표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쓰면서 애정을 안 가질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그냥 막 쓴 게 아니니까요. 내보일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글인가, 하는 것과는 별개로 어쨌든 내보일 기회가 없을 거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사실 이런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 믿기지 않기도 해요. 

말씀 들을수록 등단이라는 것의 문제를 계속 생각하게 돼요. 작가는 계속 쓰고 있었는데 등단을 하고, 수상을 해서 이름을 알린 다음에야 보여줄 수 있는 작품들이 있다는 것, 그 환경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들어요. 

저는 저 같은 사람들이 되게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단행본으로 엮기에 충분한 원고를 갖고 있는 사람이 굉장히 많을 거라고요. 그런데 제도를 탓할 순 있지만 한 사람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어서 누구의 책임도 결국은 아니게 되어버리는 등단이라는 문제가 있는 거잖아요. 등단은 누가 책을 낼 자격이 있는가의 얘기가 되는 것 같은데요. 이렇게 훌륭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엄청 많다는 것을 저는 보여주고 싶었고요. 그런 창구의 하나로 <던전>이 기능할 수 있다면 저는 <던전>에 합류해 그 창구를 만들기로 했을 때의 목표를 이룬 셈이에요.


 

언제든 추위를 기억해낼 수 있는

수록된 세 작품 중, 작가님이 제일 좋아하는 장면을 하나 꼽는다면요? 저는 「총 塚」의 마지막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고, 슬프면서도, 황당하고, 웃겼어요. 정말 좋았어요.

그 작품을 쓰기 전에 본 내용이 있었어요. 2007년인가 2008년에 일본 철도청에 접수된 이색 분실물 목록이었는데요. 유골함이 7건인가 있더라고요. 그걸 보고 ‘7건이나 된다고? 하긴 뭐 철도 이용자가 많은 걸 생각하면 예닐곱 건은 많은 것도 아니겠다, 그런데 그 중에 일부러 두고 내린 사람도 있을까?’ 하는 식의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가 「총 塚」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고 거기서부터 쓰기 시작했어요. 저도 「총 塚」에서 그 장면을 좋아해요. 

또 하나 약간 짓궂게 답하고 싶은데요.(웃음) 「호르몬이 그랬어」에서 주인공이 아빠 차를 타고 가다가 심심해서 콘솔박스를 열어봤는데 거기서 이상한 쿠폰이 나오잖아요. 그 장면도 꼽고 싶어요. ‘아비’에게 일종의 연민을 갖고 있었는데 그게 와장창 무너지는 장면이라서 좋아해요. 

윤경희 평론가의 해설에 “작가에게 겨울은 적어도 지난 10여 년 동안 지속된, 아니면 가장 강렬하게 체감된 계절”(132쪽)이라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이런 해석을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생각해보면 작가님은 항상 프로필 첫 줄에 ‘철원에서 태어났다’는 문장을 넣었어요. 

꽤 그런 것 같아요. 지인들에게도 추위 ‘부심’을 종종 부려요. “벌써 롱패딩 꺼냈어?” 하면서요.(웃음) 사람이 몸을 움츠리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추위에 떨며 다니다가 따뜻한 곳에 들어가면 온 신경이 녹으면서 긴장이 풀리잖아요. 과장하자면 추위 속에서는 무장을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저는 그 감각을 되게 오래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 감각이 제게 중요하기도 했고요. 사실 자각하진 못했고, 그냥 소설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윤경희 선생님께서 써주신 글을 보고 깨달은 게 있어요. 세 작품 모두 겨울의 하루를 썼더라고요. 저는 그걸 몰랐어요. 저한테는 왠지 내내 겨울처럼 느껴졌던 것 같아요. 여름에도 겨울을 쓰는 게 너무 자연스럽고요. 땀을 흘리며, 에어컨을 틀기 직전에 있으면서도 손으로는 추위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는 건데요. 저한테는 추위가 아주 생생하고, 몸에 새겨 있는 느낌이 있어요. 언제든 추위를 기억해낼 수 있죠.


 

『호르몬이 그랬어』는 단편집 시리즈인 <트리플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에요. 장편과 단편을 쓸 때 어떻게 다른가요? 

다른 것은 잘 모르겠는데요. 규모 면에서 아무래도 차이가 있다고 느껴요. 단편은 구상을 구체적으로만 해두면 초고는 한달음에 쓸 수 있거든요. <월간 채널예스>에 연재했던 ‘짧은 소설’의 경우 조금 새로운 시도였어요. 원래 단편이 80매에서 100매 분량인데요. ‘짧은 소설’로 쓴 작품들은 50매였거든요. 내가 이 소재로 과연 50매를 쓸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들을 그 분량으로 쓴 거예요. 20매로 예상했던 게 50매로 부풀려지거나 80매를 예상했던 걸 50매로 쓰는 식이었는데요. 재미있더라고요. 제한된 분량 안에서 독자가 최대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구조 같은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고요. 장편은 주로 풀게 되는 것 같아요. 




*박서련

철원에서 태어났다. 2015년 「미키마우스 클럽」으로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체공녀 강주룡』과 『마르타의 일』을 썼다. ‘암흑의 한국문학 카운슬’의 일원, ‘문학 플랫폼 던전’(www.d5nz5n.com)의 운영진이다.



호르몬이 그랬어
호르몬이 그랬어
박서련 저
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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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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