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본능이 아니다』는 언어와 인간 ‘본능’의 필연적인 연관성을 주장해 온 기존 언어학의 연구 흐름에 반기를 드는 책이다. 놈 촘스키 교수로 대표되는 ‘본능 중심의 언어 이론’이 아닌 ‘활용 중심의 언어 이론’을 새로운 언어학 방법론으로 제시한다. 이를 위해 인간의 언어 능력을 철저하게 재분석하고 본능에 기초한 언어 탄생을 지지해 온 주장의 모순점을 여과 없이 상세하게 소개한다. 역자 중 한 사람인 김형엽 교수에게 ‘언어학의 새 지평’에 대해 들어 보았다.
『언어는 본능이 아니다』는 제목처럼 언어와 언어학을 주제로 한 책인데요.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앞서 독자분들에게 ‘언어학이란 무엇인지’ 간단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언어학은 인간 언어를 음성, 음운, 단어 형태, 구절 구성 등 하부 분야로 분류해 핵심 특성과 속성을 설명합니다. 언어학이 독립 학문으로 생명을 얻은 시점은 20세기부터죠. 특히 언어학에서 널리 수용된 ‘생성문법’이 나타난 시점을 1960년대 이후로 본다면 매우 신생 인문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세기 말 소쉬르는 당시 학문의 주류 방식이었던 구조주의 방법론을 언어학에 도입했습니다. 촘스키는 인간이 언어를 습득하고 응용하는 능력을 애초 가진 채 태어난다는 언어능력의 ‘선천성’ 주장을 전개했습니다. 언어능력의 선천성은 인간이면 모두에게 해당한다는 ‘보편문법’으로 귀결되었고 현대 언어학의 주류를 이루었지요. 최근에는 생명의 발생과 발달 과정을 연구하는 진화론이 언어학의 주요 화두로 등장했습니다. 근래 언어학을 ‘생물언어학’이라 부를 만큼 최신 언어학자들은 인간 두뇌에 관심이 큽니다.
이 책은 언어학계의 주류 이론인 ‘본능 중심의 언어 이론’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언어는 본능이 아니’라는 책 제목도 여기서 따오셨죠. 그럼 먼저 본능으로서의 언어 이론이란 무엇인가요?
언어를 본능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언어능력 자체를 ‘선천적 소양’으로 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전제되어 있어요. 먼저 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인간 언어는 동물의 ‘의사소통’과는 전혀 다르다는 태도입니다. 그다음으로 언어 내부 체계의 복잡다단한 형태는 물론 활용에서도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상황을 인간 언어에서만 관찰 가능한 특징으로 생각합니다. 근래 주목받은 ‘아이들이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는 결정적 시기가 있다’라는 주장도 언어의 선천성에 비중을 둔 ‘본능 중심의 언어 이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언어학 방법론으로서 책에서 제시된 ‘활용 중심의 언어 이론’에 대해서도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언어 현상을 인간 두뇌의 독특한 특징만으로 관찰하면 다음의 두 가지 난관과 마주치게 됩니다. 첫째, 모든 인간이 언어능력을 갖고 있다고 보는 보편성을 인정한다면 무슨 이유에서 이 세계에 다양한 다수의 언어가 분포하는지 설명하기가 어렵게 되죠. 둘째, 진화론에서 인간 두뇌에 언어능력이 발생한 시점을 분명하게 명시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게 됩니다.
이와 다르게 언어가 인간이 역사 속에서 형성했던 사회 구조 속에서 상호 소통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동기에서 발생했다는 설명 시도가 있습니다. 인간들의 소통하에서 언어의 시발 가능성의 원인들을 상세하게 짚어가며 언어능력의 발생보다 언어능력의 응용과 적용에 초점을 맞추는 연구 방식을 ‘활용 중심의 언어 이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언어와 관련해 가지는 오해나 선입견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언어에 대한 일반의 오해는 이 책 ‘옮긴이의 글’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크게 네 가지인데 자세한 내용은 책을 통해 확인하시고 여기서는 간단하게 말씀드릴게요. 정치적 경계가 언어의 활용 경계와 일치한다는 오해, 언어는 상하를 구분해 양분화시킬 수 있다는 오해, 표현들을 정확한 것과 아닌 것으로 분리할 수 있다는 오해, 인간 언어를 논리 언어와 비논리 언어로 구분할 수 있다는 오해가 있습니다.
인간 언어와 동물의 의사소통 시스템이 연관되어 있다지만 사실 그 어떤 동물도 인간 언어에 근접하지는 못하잖아요. 책에서는 그 이유를 인간만이 가진 ‘문화 지능’으로 설명하는데요. 문화 지능은 어떤 개념인가요?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라는 말은 인간 지능의 탁월함에 근거하고 있지요. 그렇지만 동물의 의사소통 수단이 인간과 비교해도 매우 뛰어난 모습을 보이는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어요.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꿀벌의 춤’이 그러한 예죠.
그럼에도 동물과 인간의 의사소통에는 분명 여러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점들을 설명하려면 인간이 역사적 발달 단계들을 겪으며 언어 형태를 지금처럼 다양하게 구축하고 구성했던 결과가 문화의 상향적 발달 단계와 밀접하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즉, 인간이 문화를 발달시키는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인간만의 속성’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요. 이 속성을 다르게 표현한다면 ‘문화 지능’이라고 부를 수 있겠네요.
흥미롭게도 이 책은 선생님께서 2년 전에 번역하신 『왜 우리만이 언어를 사용하는가』(한울엠플러스(주), 2018)의 대척점에 서 있습니다. 서로 상반되는 주장을 담은 두 책을 출간하시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앞서 번역한 『왜 우리만이 언어를 사용하는가』의 내용은 제가 언어학 전공자로 학위를 받고 언어학자로서 연구를 수행했던 모든 과정의 기본이었습니다. 언어능력은 ‘선천적 요소’이며 언어 활용은 ‘본능’의 일환이라는 것이죠. 그렇지만 25년 넘게 대학교수로 강단에 서오면서, 특히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한국인 학생들에게 영어의 능숙한 활용에 요구되는 교육을 진행하면서 ‘본능으로서의 언어 이론’으로 학생들의 요구에 부응하기가 쉽지 않음을 수없이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언어는 본능이 아니다』를 옮기면서 언어능력을 ‘본능’이 아닌 기능을 수행하는 ‘활용’ 중심으로 옮긴다면 제 고민의 상당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물론 이 책의 초점이 언어교육에 있지는 않지만 ‘활용’의 강조는 언어교육을 ‘훈련’, ‘코칭’으로 재인식시키는 데 중요한 이론적 바탕이 되었습니다.
끝으로 선생님께서 언어학자의 길을 걷게 되신 동기나 언어학자로서 사시는 보람 등을 여쭙고 싶습니다.
고교 시절 한국어 고문(古文)을 읽고 해당 표현의 뜻을 이해하며 언어 분석에 큰 흥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대학 학부에서는 영어학개론, 영어음성학, 영어형태론, 영어구문론 수업을 들으며 언어학에 관심이 생겼지요. 대학원에서는 음운론에 관해 석사 논문을 썼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는 ‘음운-형태론의 이해’에 관한 박사 논문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언어학자로서 ‘본능 중심의 언어 이론’에 기초해 연구를 수행해 왔습니다. 보람찬 일이라 여겼지만 학생들에게 영어의 활용 부분과 연관해 강의를 진행할 때는 어딘가 아쉬움이 남기도 했어요. 물론 언어에서 ‘본능’이 중요한 부분임을 간과할 수는 없죠. 하지만 인간에게 언어의 사용 측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면, 이 책에서 강조하는 ‘활용’ 부분은 제가 ‘영어 교육자’에 머물지 않고 영어 활용의 실용성 확충에 이바지하는 ‘영어 학습 코치’로 새롭게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김형엽 고려대학교 글로벌학부 영미학 교수다. 고려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 학사학위,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영어학 석사학위,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주 연구 분야는 음운론, 형태론, 영어교육, 번역학, 언어철학 등이다. 주요 저서로는 『왜 우리 아이의 영어성적은 오르지 않을까?: 좌·우뇌 통합 영어독서법』(공저, 2016), 『인간과 언어: 언어학을 통해 본 서양철학』(2001) 등이 있고, 역서로는 『왜 우리만이 언어를 사용하는가: 언어와 진화』(2018), 『언어의 역사』(2016), 『언어의 탄생』(2013) 등이 있다. |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