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경 시인 “대상이 아니라 세계에 대해 말한다”
2017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 오은경의 첫 시집 『한 사람의 불확실』이 민음의 시 273번 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가만한 일상의 언어로 직조된 오은경의 시는 독자들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서늘한 감각의 장으로 데려다 놓는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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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영은


2017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 오은경의 첫 시집 『한 사람의 불확실』이 출간되었다. 처음 발표한 시 「매듭」에서부터 화자는 “나는 길을 잃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시인은 불확실을, 자신이 구축해 나갈 불확실의 세계를 처음부터 예감한 듯 보인다. 

차곡차곡 모아 온 불확실한 세계를 마침내 내보인 오은경 시인에게 일곱 가지 질문을 던졌다. 불확실을 직조해 내는 시인의 답변이 모두 단정적이고 힘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시인이 완성한 세계를 자연히 신뢰하게 되었던 이유를, 그 세계가 정확하게 불확실할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 본다. 




2017년에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출간한 첫 시집이에요. 첫 시집에 대해 구상하던 때의 생각과, 실제로 첫 시집을 출간한 이후의 생각은 서로 어떤 것이 비슷하고 또 어떤 것이 다른가요?

사실, 한 권의 책으로 시편들이 묶이기 전까지 시집에 대해 구상해 보지 않았습니다. 특히 시집이라면, 소설책과 비교해 보더라도 기획력이 보이며, 전체적인 통일감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요. 제 경우에는 시집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기로 약속된 날짜 이전까지 완성된 시집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해서 원고를 묶는 데에 고생했습니다. 막상 때가 닥치니, 책을 읽을 때도 영화를 볼 때도 전부 제 시집의 배치와 연관해 생각했습니다. 시집을 작업하는 동안, 이전에 없던 거리감을 갖고 저의 시편들을 낯설게 읽을 수 있어 좋았고, 또 좋은 만큼 고생했습니다.

오은경 시인의 언어로 시집 『한 사람의 불확실』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어떤 시집인지, 어떤 분께 가닿기를 바라는지 직접 설명 부탁드립니다. 

시집에 대해 피드백을 해 주신 분들은 대부분 제목의 ‘불확실’에 대해 언급해 주셨어요. 불확실이란, 불안을 가정하고 있는 단어인데요. 이 책은 모호하고, 부정확하며, 알 수 없는 지점에 대해 제 나름의 방식대로 맞서려고 했던 시도가 담겨 있어요. 저만큼이나 불확실한 상태를 경유하고 여러 이유로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분들에게 가닿기를 바랍니다. 저 또한 시를 쓰면서 이러한 불안을 해소했던 지점이 분명 있었거든요. 정체 모를 불안감을 느끼시는 분들, 자신이 혼자라고 느끼시는 분들이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시집에 수록된 대부분의 시가, 화자가 어떤 대상과 맺는 관계로부터 나오는 것 같아요. 평소 관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시는 편인가요? 관계의 이상향이 있으실지요?

저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익숙합니다. 제가 만난 사람들, 마음이 가는 대상들에 대해 기억하고, 각별히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따라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저와 상대가 함께했던 시간이나 관계의 성격, 상황이 연상되고요. 더불어 대상이 하나의 캐릭터로서 입체감을 갖고 시 속에 등장하는 것 같아요. 마치 극 중 인물처럼요. 이 대상을 작품 속에 등장시키는 순간, 인물은 설득력 있게 다뤄져야 합니다. 등장인물 모두 평면적이거나 일방적이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관계 또한 복잡해지고, 더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 같습니다. 관계의 이상향이라면, 대화가 잘 통하는 편이 좋습니다. 되도록 소중한 사람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언젠가 “제 시를 읽고 무섭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라고 말씀해 주신 적이 있어요. 시에서 오는 이 서늘함, 무서움은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요?

시를 읽고 감상을 전해 주시는 분들이 공통되게 서늘함에 대해 말씀해 주시는 것을 보면, 제 시는 서늘함이 특징적으로 발현되는 시는 맞는 것 같고요. 다만 이유라고 한다면, 저도 구체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시의 말미에 가서 저는 늘 대상이 아니라 세계에 대해 말하고자 했기 때문에, 세계에 대한 제 관점에서 전달되는 느낌이 아닐까 해요. 저는 세계가 차갑다고 인식합니다. 따뜻함과 차가움의 차원이라면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 따뜻해지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이번 시집에 「불면」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어요. 불면이나 불안을 다루는 시인님만의 방법이 있으신지요?

나가서 걷는 것, 환기를 목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 머리가 아니라 육체적 행동에 자신을 집중하는 일이 최선이고,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적절한 예로 다양한 운동들이 좋겠네요.

오은경 시인의 독서 취향을 궁금해하는 독자분들께 작품 세 편 정도 추천하신다면요?

윌리엄 포크너 『소리와 분노』는 모더니즘 문학이면서, 문학의 정수를 엿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소리와 분노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모두 한 가족이면서 가족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입니다. 가정부 딜시와 백치 벤지, 장남인 퀜틴, 동생인 제이슨의 섹션으로 나뉘는 각 4개의 장은 2장인 퀜틴 섹션을 제외하고, 각각 하루씩 차이가 납니다. 비극이면서 드라마가 이들 가정에 존재하며 동시에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지난 시간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나쓰메 소세키 『마음』은 화자인 나와 선생님, 나와 아버지, 선생님의 유서로 각 장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인공은 가마쿠라 바닷가에서 우연히 만난 선생님에게 반해 그를 선망하며, 수수께끼 같은 말씀에 크나큰 매력을 느낍니다. 화자가 아버지, 즉 가족사를 이야기하게 되는 2장에서 1910년대 메이지 천왕의 사망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드러나는데요. 급속한 근대화로 몸살을 앓는 일본의 상황과 가치의 붕괴로 인해 절망하는 개인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유서를 통해 그의 과거가 밝혀지면서, 겉으로는 아무런 접점도 없었던 화자와 선생님 간의 연관성을 납득하게 됩니다. 

비톨트 곰브로비치 『코스모스』는 주인공 비톨트가 시골 마을로 가면서 겪게 되는 혼란스러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낯선 마을에서 마주친 참새의 죽음과 매번 사건이 일어난 장소로 향하며,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소재와 신체 사이에서 유사성을 찾는 주인공은 대체로 독백을 이어나갑니다. 사유인데요. 이러한 독백은 전적으로 망상, 착각, 오해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런데 또 이 생각들이 매력적이고, 신선한 충격을 줍니다.  

다음 책은 첫 시집과 어떤 면이 달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대로 가져가고 싶으신 것과 변화를 주고 싶으신 것이 있을지, 있다면 어떤 것일지 설명 부탁드려요.

다음 시집은 좀 더 동적인 시집이 되길 바랍니다. 움직임뿐 아니라, 바라보고, 묘사하는 대상 역시 더 비현실적이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열린 시집이 되길 바라고요. 전체적으로는 감정적인 고조를 유발하기보다는 재미있고 흥미롭게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한 사람의 불확실
한 사람의 불확실
오은경 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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