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하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상상해 보자. 반사 신경과도 같은 대답이 톡 튀어나온다. ‘왜긴요, 돈 벌려고 일하죠.’ 그런데 일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돈을 보고 시작한 일이 생계를 넘어 소중해지기도 하고, 반대로 성취감을 주던 일이 되레 내 삶을 좀먹기도 한다. 환경과 상황에 따라 ‘일의 파도’는 익숙하고도 낯설게 굽이쳐 온다. 그 속에서 우리는 종종 혼란스럽다가, 지쳤다가, 무뎌진다.
조민진 작가는 16년 차 현직 기자다. 신문사에서 방송사로, 출입처도 여러 번 옮기며 꼬박 달려왔다. 2018년에는 마침내 일하기에 쉼표를 붙이고 런던으로 연수를 떠났는데, 거기서 첫 책 『모네는 런던의 겨울을 좋아했다는데』(아트북스)를 썼다. ‘번아웃’이라는 걸 알까 싶을 정도로 그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나서기까지 한다. 대관절 어떤 마음가짐을 가졌기에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는 걸까? 다음은 작가와의 7문 7답이다.
첫 책을 출간한지 약 9개월 만에 두 번째 책 『진심은 보이지 않아도 태도는 보인다』를 출간하셨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담은 책인가요?
‘일하는 삶’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처음에 이 책의 편집자가 제게 제시한 화두가 ‘일을 통한 성장’이었어요. 그 주제를 염두에 두고 책을 써나갔습니다. 하지만 쓰다 보니까 결국은 ‘삶’에 관한 글들이 모이게 되더라고요. 학교를 졸업하고 계속 일을 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제 삶 속에서 일을 빼놓기가 어렵게 된 거죠. 특히 이 책에는 ‘발전하고 싶은 마음’을 다루는 자세에 관한 제 생각이 가득 담겨 있어요.
좁게는 직장인을 타깃으로 한 책일 수 있지만, 사실은 꿈이 있는 누구라도 읽으면 공감할 지점이 많을 거라고 홍보(?)하고 싶습니다. 제목을 보고 ‘인간관계’나 ‘심리’에 관한 책인 줄 알았다는 독자분들이 꽤 있더라고요. 그렇게 분류될 만한 책은 분명 아니라고 미리 말씀드릴게요. 아, ‘꿈 많은 나 자신을 어떻게 대하며 살아갈까’에 대한 힌트를 주는 책이 될 순 있을 것 같아요!
직장에 다니면서 글 쓰는 일이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두 시간 동안 원고를 쓰고 출근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인가요?
네, 사실입니다! 일단 ‘일’이라는 주제가 책으로 엮고자 할 만큼 직접 다뤄 보고 싶은 아이템이었고, 실제로 십수 년 동안 일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일에 관한 크고 작은 소신들이 쌓여 있었어요. 새 책을 쓸 동기나 콘텐츠는 충분하다고 자부했던 거죠. 하지만 하루 10~12시간씩 회사에 매여 있다 보니, 책 쓰는 데 필요한 물리적 시간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었습니다. 제 경우엔 하루 종일 너무 열심히(?) 일해서인지, 퇴근 후엔 생산적인 에너지가 거의 없는 상태거든요. 메인 뉴스 시간이 오후 8시라 방송국에선 퇴근 시간이 늦기도 하고요. 그러니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써야만 책을 만들 수 있겠다 싶었죠. 오전 6시부터는 출근 준비를 해야 해서, 매일 두 시간 정도를 확보하기 위해 새벽 4시에 알람을 맞춰 놓고 일어났어요. 그렇게 3개월 정도 투자해 원고를 완성했습니다. 책을 내고 싶으면 글을 써야 한다고 심플하게 생각하고 부지런히 실천한 결과랍니다.
회사 동료분들에게 출간 소식을 전했을 때 반응이 어땠나요?
다들 “언제 썼냐?”고 물어 왔죠. 왜냐하면 말씀드린 대로 모두 함께 하루 종일 회사에 매여 있는 처지이니까요. 그래서 “새벽 4시부터 두 시간 동안 썼다”고 답하면 다들 반응이 똑같았어요. “대단하다”고요. 여기서 “대단하다”는 건 아마도 회사 업무 외에 또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 낸 것 자체가 놀랍다는 뜻이겠죠. 사실 체력적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긴 하거든요.
그리고 또 다른 반응은 “혹시 내 얘긴 없냐?”, “태도 불량 직원이 누구냐?” 같은 농담(?)이었어요. 일에 관한 에세이인 데다, 제목 ‘진심은 보이지 않아도 태도는 보인다’가 직장인 대부분에게 어느 정도는 뜨끔하거나 찔리는 말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살짝 걱정되는 심정이었을까요? (웃음) 실은 저도 출판사가 제목을 이렇게 정했을 땐 솔직히 부담스러웠어요. 일터에서 매사 좋은 태도로 임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번번이 실패하곤 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요. 아무튼 이 제목은 어떻게 보면 조금 슬픈 것 같아요. 진심보다 태도를 본다는 건, 그만큼 우리 모두가 일터와 같은 조직에선 타인을 신경 쓰면서 어느 정도는 주눅 든 채 살고 있다는 의미일 테니까요. 조직은 아무래도 개인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곳입니다. 자신을 다 드러내며 지내긴 어렵죠. 마음을 감추고, 감추지 않는 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일 겁니다.
연차가 쌓일수록 ‘열심’과 ‘번아웃’의 관계는 2인 3각과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열심히 일할수록 빨리 지치는 것 같은데, 문제가 뭘까요?
열심히 일하는 건 사실은 기대하기 때문이에요. 책에서도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인용했지만, ‘노력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란 희망과 기대’가 있어서 열심히 하게 되죠. 그런데 기대하는 만큼 현실이 따라 주지 않으면 마음이 지칠 수밖에요. 일하는 데는 체력도, 정신력도 모두 필요하지만 ‘번아웃’을 느낄 땐 몸보다 마음이 지쳐 버린 경우가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자신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책에선 ‘방탄 믿음’이라고 표현해 봤는데, 언젠가는 내가 노력한 만큼 대가가 돌아올 거라는 믿음이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통해 힘을 키우고 있다는 자기 암시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노력에 따른 필연’을 믿으면 마음이 쉽게 지치는 걸 방지할 수 있더라고요. 생각보다 강해지는 거죠. 알고 보면 ‘스스로 생각한 것보다 강한 사람’, ‘다른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강한 사람’이 되어 있는 겁니다. ‘난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야’라고 되뇌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럼 힘든 시기에도 마음 상태가 차차 나아지더라고요.
성공과 성숙을 함께 추구한다는 건 어떤 건가요?
일하는 누구라도 성공을 원합니다. 바라는 성공의 정도에 차이는 있겠지만, 돈을 벌고 능력을 발휘하는 일을 하면서 기대와 이상을 충족하는 성공을 꿈꾸는 건 당연한 일이죠. 일단 성공을 추구한다는 건, 나름대로 지향점을 갖는 거예요. 가고자 하는 방향이 생기는 것이죠. 때문에 저는 모두가 각자 나름의 성공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걷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도달해야 할 목적지를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 그것이 성공을 추구하는 자세입니다.
다만 성공했다고 해서 성숙했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숙은 그 자체로 ‘자세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목적지까지 가더라도 곧은 마음으로 품위 있게 가느냐, 그렇지 않고 자신이나 주변에 해를 끼치며 가느냐는 차이가 있죠. 모두가 성공을 추구하는 사회에서도 각자가 최대한 좋은 태도로 목적지로 향한다면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지 않을까요? 서로 가는 길은 달라도 상대에게 보여 줄 수 있는 태도가 좋으면 결국 서로에게 힘이 되고 때로는 귀감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성숙한 사람이 성공하면 주변에 특히 좋은 에너지를 전해 주는 것 같아요.
일터에서의 마음가짐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그중에서 독자들의 마음속에 꼭 남았으면 하는 이야기를 하나 꼽는다면?
‘나는 나를 평가한다’는 자세입니다. 회사나 조직, 일터는 사실 ‘정글’과도 같잖아요. 냉정하게 말하면, 누구도 자신의 성공보다 다른 이의 성공을 더 바라진 않아요. 때로는 서로 칭찬해 주거나 축하해 주는 일에도 인색한 경우가 많죠. 그래서 역설적으로 다른 이를 진심으로 축하하고 칭찬해 줄 줄 아는 사람이 돋보이는 곳 또한 일터입니다. 그러니, 모두 각자의 성공을 향해 가는 곳에서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 중심을 잡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발전하기를 시도하되, 타인의 말이나 감정에서 비롯되는 평가에 지나치게 휘둘리지 않는 게 좋습니다. 번번이 타인의 잣대로 자신을 검증하게 되면 상처를 받거든요. 그리고 상처를 받았다고 느끼게 되면, 당연히 출근하기 싫어집니다. 버티기 힘들어진다는 얘기죠. 하지만 때로는 가기 싫어도 일단은 가야 하는 곳이 회사잖아요? 때문에 조직 안에서 상처받지 않고 자신을 지켜내는 자세와 노력은 언제나 중요하죠. ‘나는 스스로 평가하고, 개선하고, 발전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일방적이거나 비합리적인 타인에 의해 아무렇게나 흔들리지 않겠다’ 정도로 일하는 원칙을 정해 두는 겁니다. 물론 ‘자기 평가’나 ‘자기중심’은 일하는 자아를 컨트롤하기 위한 명분입니다. 결코 자아도취에 빠지거나 오만한 구성원이 되진 말아야 합니다.
내년에 세 번째 책을 만날 수 있는 건가요? (웃음)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음... 아마도요? (웃음) 첫 책 『모네는 런던의 겨울을 좋아했다는데』는 제가 직접 무대뽀(?) 정신을 발휘해 출판사(아트북스)를 노크해 만들어졌지만, 두 번째 책 『진심은 보이지 않아도 태도는 보인다』나 또 다음 책은 자연스럽게 출판사의 출간 제의에 응하면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오랫동안 막연하게 ‘책 쓰기’를 꿈꿔 왔는데, 막상 그 꿈이 실현되고 확장되는 걸 경험해 보니 정말 기뻐요. 무엇보다 제 책을 선택해서 읽어 주는 독자들과 소통하게 되는 건 더없는 행복입니다.
저는 하고 싶은 거나, 꿈꾸는 게 많아요. 그래서 기회가 찾아오면 나름대로는 항상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편이에요. 이번 책처럼 좋은 출간 제안이 들어온다면 아마도 마다하지 않고 또 응하게 되지 않을까요? 잠을 줄이고, 마감을 지키고, 다시 뿌듯해하겠죠. (웃음)
그 밖의 계획에 대해서라면... 이번 책에서도 제가 ‘더 많은 정체성을 원한다’고 썼잖아요? 그걸 보고 독자분들이 요즘 말로 ‘부캐(원래 캐릭터가 아닌 또 다른 캐릭터)’라고 해석하면서 인용하시더라고요. 기자가 원래 캐릭터라면, 현재로선 작가가 제 부캐인 셈이네요. 하지만 전 사실 더 많은 부캐를 꿈꿔요. 말이나 글로 하는 일들은 특히 저랑 잘 맞는 것 같아서 나중엔 멋진 강연가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과 친근하게 소통하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머지 또 다른 꿈들은 나중에 ‘짜잔!’ 하고 이뤄낼 때까지 미리 공표(?)하진 않을래요. 꿈이라는 게 이루고 나면 자랑스럽지만, 이루기까지 노력하는 과정은 힘들고 지루하죠. 저는 힘들고 지루한 여정에 대해선 가까운 이들에게도 침묵하는 편이에요! 이상하게도 그렇게 견뎌야 꿈이 현실이 되더라고요.
* 조민진 JTBC 기자. 정치· 사회· 국제 등 다양한 영역을 두루 취재하며 16년째 기자로 살고 있다. 2005년 《문화일보》에서 처음 시작해 2011년 JTBC에 개국 멤버로 합류했다. 저널리즘을 전공했고, 말과 글에 대한 애정이 깊다. 언제나 더 잘 말하고, 더 잘 쓸 수 있기를 꿈꾼다. 책과 그림, 이른 새벽과 커피를 좋아한다. 2018년 여름부터 2019년 여름까지, 1년간 영국 런던에서 연수하면서 첫 책 『모네는 런던의 겨울을 좋아했다는데』를 썼다. 아직 꿈이 많아서, 오래 일해 볼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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