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태규 - 배우는 사람의 얼굴
MBC <전지적 참견 시점>의 한 장면, ‘경기도 라떼파파’ 캠페인 광고를 촬영하던 봉태규는 쉬는 시간에 자신의 매니저와 코디네이터에게 자신의 연기가 별로였는지 묻는다.
글ㆍ사진 이승한(TV 칼럼니스트)
2020.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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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 말을 즐겨한다.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어느 방향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 하는 ‘성향’은 바꾸기 쉬워도, 삶에 임하는 태도인 ‘기질’은 좀처럼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머리가 굵어진 이후엔 이미 형성된 자아를 바꾸는 일은 더 어려워지고, 주변에서 건네는 충고나 조언이 간섭처럼 들리는 순간 완고함만 더 굳건해진다.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어려워지고, 배우더라도 그걸 제 인생에 적용하는 건 더 어렵다. 정말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는 존재인 걸까?
 
인간의 개선 가능성에 대해 비관에 빠질 무렵이면, 나는 조용히 봉태규를 떠올린다. 스스로 “아들로서 엄마의 노동을 착취하며”[i] 그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살았다고 말한 봉태규는, 사진작가 하시시 박과 결혼한 뒤 아내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마음을 확장하고 확장한 끝에 “살림은 공짜로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에 도달했다. 그렇게 결혼을 계기로 가족을 만들고 지켜내는 것에는 끊임없는 배움과 노력이 필요하단 사실을 배운 봉태규는, “아마 이전의 그를 아는 사람들은 지금 모습이 가식이라 생각할 정도”[ii]로 180도 바뀌었다.
 
자신이 배우자를 편하게 부르는 일이 자칫 상대가 직업적으로 받아야 하는 존중을 훼손할까 두려워 공식석상에서는 한사코 “하시시 박 작가님”이라 부르고, 아들 시하가 세상이 익숙한 ‘아들 키우는 법’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양육을 받고 있는 것 아니냐는 주변의 우려에 “남자답게 키우는 건 뭐고 여자답게 키우는 건 뭔가요? 그냥 시하답게 키우면 안 되나요?”[iii]라고 말하는 그의 말들에서 읽을 수 있는 건 조심스러움이다. 세상에 흔하고 나에게 익숙한 것들에 확신을 가지는 대신, 그게 정말 맞는 일일까 조심스레 질문을 던져보고 다시 뜯어보는, 배우는 사람 특유의 조심스러움.
 
MBC <전지적 참견 시점>의 한 장면, ‘경기도 라떼파파’ 캠페인 광고를 촬영하던 봉태규는 쉬는 시간에 자신의 매니저와 코디네이터에게 자신의 연기가 별로였는지 묻는다. “그나마 마지막이 나았어요.” “초반(에 찍은) 장면은 안 쓸 것 같아요.” 사정없이 쏟아지는 냉정한 평가에 지켜보던 패널들은 경악하지만, 봉태규는 평온한 표정으로 말한다. “저도 이제 연기를 20년 하니까 사실 어딜 가도 다 어려워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제가 어떤 얘기를 하거나 하면 제 얘기에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가 되거든요. 얘는 거짓말을 할 친구가 아니니까, 정말 어땠는지 물어봐도 정확하게 얘기해줘요.” 마음 상한 적 없냐는 전현무의 질문에 봉태규는 답한다. “저만 ‘내가 형인데’ 라는 생각을 버리면 될 것 같아요.” 봉태규가 맞다. 누구에게서든 배울 수 있다는 마음만 먹는다면, 우리는 굳어지는 일 없이 꾸준히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i] 봉태규. 플레이보이 코리아 2018년 1월호 인터뷰 중.
[ii] 하시시 박. 노블레스웨딩 창간호 (2018년 10월) 인터뷰 중.
[iii] 봉태규. 에세이집 『우리 가족은 꽤나 진지합니다』 중.

 

 

 


 

 

우리 가족은 꽤나 진지합니다 봉태규 저 | 더퀘스트
모두 평등하고 서로 존중하며 각자 나답게 사는 것, 이 가치관을 위해 그는 매일 자신과 씨름하고 고민한다. 그 결과물을 글로 하나하나 써내려간 것이 이번 에세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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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