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마니아들의 전유물이었던 ‘좀비물’이 대중문화의 핫 아이템으로 급부상하게 되리라는 것을 정명섭 작가를 알고 있었을까. 역사 미스터리와 역사 인문서, 청소년 소설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활약 중인 정명섭 작가는 MBC 예능 프로그램 <능력자들>에서 좀비 능력자로 출연한 바 있는 자타공인 국내 최고 ‘좀비 전문가’다. 좀비를 소재로 한 소설이기에 오랜 시간, 수차례 수정을 거듭하면서도 즐겁게 완성했다는 신작 장편소설 『달이 부서진 밤』 . 본격 괴이 시대극을 표방하는 신작과 작가의 좀비론을 들어본다.
‘고구려 부흥군이 안시성 성주 양만춘을 찾아가는 과정 중 인간이 아닌 정체불명의 괴물을 만나는 이야기’라니, 그 조합이 상당히 신선했습니다.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나요?
초창기 습작 작품들은 대부분 삼국시대 고구려를 배경으로 했습니다. 그중에 고구려 부흥군을 이끌었던 검모잠에 관한 얘기가 있었고, 세활은 조연 중의 한 명이었죠. 소설의 설정상 세활이 요동을 떠나야만 했는데 명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바로 사라진 양만춘 장군을 찾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설 내에서의 묘사는 그걸로 끝이었지만 내내 그들이 정말로 양만춘 장군을 찾아냈을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조합해볼까 궁금해하면서 이야기를 한 조각씩 붙여나간 것이 『달이 부서진 밤』 으로 이어진 것이죠.
다양한 역사 인문서도 출간해오셨는데요, 대중이 좋아할 만한 성공담이 아닌 망국의 장군인 양만춘과 역시 패망한 고구려 부흥군을 소재로 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글은 남들이 볼 수 없는 은밀하거나 사라진 공간을 얘기할 때 빛이 난다고 믿습니다. 성공한 역사는 누구나 기억하고 존중하지만 그렇지 못한 역사는 기억되지도 존중받지도 못합니다. 저는 그렇게 기억되지 못하고 상처받은 역사들을 조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고구려가 668년에 멸망한 것으로 오해하지만 이후에 아주 오랫동안 끈질기게 저항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고구려의 후예를 자처한 발해가 탄생한 것이죠.
사실 정명섭 작가님은 MBC 예능 프로그램 <능력자들>에서 좀비 능력자로 출연하셨고, 영화 <부산행> <월드워Z> 등 관련 작품에 패널로 참여하는 등 국내 최고의 좀비 전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달이 부서진 밤> 외 다수의 좀비 소재 책을 쓰셨는데요, 특히 좀비에 관심을 두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언제부터 좋아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건 보는 순간 푹 빠졌다는 점이죠. 좀비는 죽음과 삶, 인간과 괴물의 경계선에 선 존재입니다. 불확실하고 불분명하다는 사실이 저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좀비는 사실 아무 생각 없이 소비를 하는 익명의 대중부터 기계 같은 삶을 강요받은 노동자까지 여러 가지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좀비에게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후기를 보니 <용재총화>라는 책에 좀비 비슷한 존재가 등장한다고 하셨는데, 이 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고려 때의 재상 한종유가 젊은 시절이 저지른 짓을 소개하는 대목에서 등장합니다. 한종유는 나쁜 무리들과 어울리면서 온갖 사고를 치고 다녔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재차의 흉내였습니다. 양손에 검은색 칠을 하고 남편이 죽은 빈소의 병풍 뒤에 숨습니다. 그러다가 아내가 와서 남편을 부르면서 하염없이 울면서 “나 여기 있소!”라는 말을 하며 병풍 밖으로 기어 나왔다고 합니다. 그걸 보고 겁이 난 부인이 도망치면 제사 음식들을 훔쳐 패거리에게 돌아갔다고 합니다. 직접적으로 재차의가 나오지는 않지만 그 흉내를 냈다는 것은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했다고 믿은 증거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다는 것은 좀비의 고향인 아이티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났던 현상이기도 합니다.
결말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요, 2편을 염두에 두신 건지 그 의도가 궁금합니다. 스포일러가 안 되는 선에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실은 오랫동안 쓰고 손을 본 것이라 결말도 여러 버전이 있는데요. 소설에 나온 버전은 가장 마지막에 쓴 버전입니다. 사실 저는 속편이나 스핀오프에 관해서 아주 관심이 많은 편이라 가급적 확장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쓰는 편입니다. 『달이 부서진 밤』 이 많은 사랑을 받는다면 다음 편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목은 아마 『달이 사라진 밤』 정도가 되겠네요. 소설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발해가 될 수도 있고, 이전 시대로 돌아가서 스핀오프 형태로 쓸지 아직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습니다.
장르소설 외에도 청소년 대상 역사소설, 역사 인문서, 범죄학 인문서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출간하셨는데요, 소재를 어떻게 모으고 발전시키시는지요.
소재는 찾는다고 찾아지는 건 아니라고 믿습니다. 끊임없이 자료를 찾고 답사를 하면서 시대상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다보면 결국 좋은 소재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글을 쓰는 시간을 제외한 남는 시간은 자료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록이나 예전 신문기사 혹은 친구와의 대화 같은 다양한 창구를 통해 소재를 얻고 있습니다.
곧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는 드라마 <킹덤>도 그렇고, 좀비물이 마니아의 장르로 인식되었던 과거와는 그 위상이 달라진 것을 실감합니다. 작가님의 차기작에서도 좀비를 소재로 한 이야기를 계속 만날 수 있을까요?
어쨌든 저는 영원히 좀비와 함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SF 좀비물을 써보고 싶고, 좀비 탐정 같이 추리물 역시 구상 중입니다. 작가에게 평생을 두고 매달릴 주제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달이 부서진 밤정명섭 저 | 시공사
한번 읽기 시작하면 눈을 떼기 힘든 강력한 페이지 터너로, 마지막 진실의 문턱을 넘었을 때 독자가 느낄 재미와 쾌감은 상당하다. 한국 장르문학의 성장과 다양성을 스스로 증명할 것으로 기대되는 역작이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