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배경을 넘나들며 ‘민중’의 영혼을 되살려 온 비범한 소설가, 대하소설 『반야』 로 수많은 찬사를 받은 작가, 송은일. 그녀가 세월호를 계기로 우리 시대의 기득권을 고발한 장편소설 『달의 습격』 을 발표하였다. 집필 과정에서의 에피소드와 뒷이야기, 작품세계에 대한 흥미롭고 풍성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달의 습격』 을 집필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세월호 사건이었죠?
네, 이 소설은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직후에 시작됐습니다. 그 사건은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이 빚어낸 참사였잖아요? 온 국민의 눈앞에서 벌어진 참상을 목격한 후, 숱한 사람들이 그랬듯 저도 어떤 일이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함에 쫓겼어요. 그래서 당시 쓰고 있던 소설을 멈추고 새 소설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어요.
모두에게 정말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마음으로 집필 중인 소설마저 중단하셨던 건가요?
세월호 사건이 벌어질 무렵 제가 쓰고 있던 건 대하소설 『반야』 였어요.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 때문에 고통 받는 민중들의 이야기였습니다. 부와 권력을 가진 지배층에 맞서며 다 같이 잘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구현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지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을 아름답게, 문학적으로, 예술적으로 그리고자 애쓰던 중이었고요. 신화적인 요소를 곳곳에 펼치면서도 소설적인 개연성까지 갖추려고 욕심을 부리던 와중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을 목격하고 나니 다급하더군요. 작가로서, 욕심을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마음이 들면서 우선 급한 일부터 하자, 싶었습니다. 당시 각 분야의 숱한 작가들이 그러했듯, 그 참상에 책임이 있는 자들을 고발하고 이왕이면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 속죄하게끔 만들어야 한다고 여겼죠. 물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의 넋이라도 건져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이런 마음으로 처음에는 가제를 〈4ㆍ16〉로 잡고 한 달여 만에 1천 매 가량을 썼습니다.
한 달에 1천 매라니, 굉장히 많이, 빨리 쓰셨어요. 그런데 소설 『달의 습격』 은 세월호 사건으로부터 4년이 지나서야 발표되었잖아요. 어떤 우여곡절이 있으셨던 건가요?
우여곡절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보다는 써 놓고 보니 작품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글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거죠. 세월호 사건 직후에 쓰기 시작했지만, 희생자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사건 유발자들에 대한 분노에 쫓기며 쓴 탓에 너무 직설적인 글이 된 거에요. 그래서 〈4ㆍ16〉의 이야기를 결말짓지 못하고 일단 접었습니다.
당시에는 완결짓지 못한 걸 자책하고 부끄럽게 여기기도 했지만 요즘은 달라졌습니다. 세월호 사건과 같은 이야기는 ‘지나면 그뿐’인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삶에서 늘 공유되는 이야기여야 한다고 여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당시에는 이미 쓰고 있던 『반야』 에다 제가 〈4ㆍ16〉에 하고팠던 말을 하자, 했어요. 『반야』 가 조선 영ㆍ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일지라도, 18세기 조선시대나 21세기 대한민국이나 사람살이의 기본은 같다고 보았거든요. 단군시대부터도 마찬가지인 것이라고요. 그렇다면 소설을 쓰는 작가는 어떤 소재로 쓴 소설일지라도 소설답게, 문학답게, 예술답게 쓰는 게 맞지 않을까요? 그러다보니 이야기를 완결짓지 못하고, 수년이 지나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온 뒤에야 제목을 달리하여 다시 이야기를 쓸 수 있었습니다.
결국 〈4ㆍ16〉이 『달의 습격』 으로 거듭난 것이네요. 이 “달의 습격”이라는 제목도 무척 독특한 느낌입니다. 강렬한 충돌을 예감하게 하는데요. 어떻게 이런 제목을 짓게 되신 건가요?
2017년 12월, 대하소설 『반야』 를 출간하고 나서 접어 뒀던 〈4ㆍ16〉을 다시 꺼냈습니다. 발표하지 못한 원고는 어둠 속에서 혼자 낡아 버리기 마련입니다. 〈4ㆍ16〉도 그러했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지닌 엄중한 의미는 그대로이지만, 형식으로나 내용으로나 소설로 발표할 수 없는 문장의 나열 같더라고요. 다시 쓰기로 했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함축할 제목부터 궁리했습니다. 와중에 친구인 이태관 시인의 시집 『나라는 타자』 에서 “달의 습격”이라는 제목의 시를 발견하게 된 거에요. 순간 섬광이 지나는 것 같았습니다. “이거다!” 그랬죠. 달빛이 내포한 신비함과 인력(引力), 여기에 공격적 충돌을 예고하는 ‘습격’이라는 단어의 조합! 즉각 전화를 걸어 이러저러해서 “달의 습격”을 소설 제목으로 쓰고 싶다고 했어요. 시인은 망설임 없이 “물론, 얼마든지” 하고 답해 주었고요. 이렇게 제목이 순조로이 지어진 덕인지, 헤매지 않고 막힘없이 ‘새로운’ 소설을 쓸 수 있었답니다.
결국 〈4ㆍ16〉을 『달의 습격』 으로 다시 쓰기 시작하면서 직진한 셈입니다. 심지어 출간하는 과정에서 출판사가 제목을 두고 재고를 권하지도 않았으니까요. 십수 권의 소설을 출간 때마다 제목 때문에 출판사와 의논했던 것과 비교하면 특히 그렇죠. 이 대목에서 작품의 제목을 빌려준 시인 친구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움을 표현해야겠습니다.
『달의 습격』 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4ㆍ16〉을 다시 쓰시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처음 〈4ㆍ16〉에서도 주인공 휘와 혜우는 영화감독과 소설가였습니다. 각자 예술가로서 세월호 사건과 맞닥뜨려 자신들의 작품으로 그 참사를 표현하려 하고, 그러다가 만나 사랑하는 이야기였죠. 휘가 5ㆍ18항쟁 중에 부모를 잃었다는 배경이나 혜우가 이미 결혼한 상황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혜우는 많이 달라졌어요. 〈4ㆍ16〉에서는 단원고 학생의 이모이자 ‘평범한’ 집안 출신의 소설가였거든요. 〈4ㆍ16〉을 다시 쓰기로 한 순간, 혜우라는 인물이 스스로 다른 사람으로 변하더군요. 혜우가 변하자 소설 속 모든 것이 저절로 변화했고요. 작가로서 색다른 경험을 한 셈입니다.
혜우가 처음부터 명문가의 딸이었던 건 아니군요. 혜우나 휘가 흔히 말하는 ‘민중’이나, 권력에 저항하는 투사의 이미지는 아닌 것 같아요. 혜우가 명문가의 일원인 것은 물론이고 휘도 ‘잘나가는’ 유명 감독이잖아요. 또 두 사람 다 예술가이고요. 이러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휘와 혜우는 ‘권력에 저항하는 이들의 전형적인 모습’과 다르게 그린 건 저의 의도였어요. 『달의 습격』 이 되면서 달라진 점이 바로 혜우가 기득권 세력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 명문가의 딸이 된 점입니다. 기득권 세력을 눈에 보이도록, 현실적으로 드러낼 인물로 변화한 것이죠. 그 덕분에 평범한 사람들의 ‘적대 세력’으로서 기득권 집단을 그려낼 수 있었고요. 평범한 사람들이 굳건한 아성을 이룬 기득권 세력에 대항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다는 판단도 있었습니다. 그 아성은 〈4ㆍ16〉이 실패한 원인이기도 하죠. 기득권 세력을 향해 아무리 소리 질러도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으니까요.
휘와 혜우는 제 나름대로 기득권 집단의 실체를 묘사하기 위해 창조한 주인공들입니다. 권력에 대항하는 전형적인 인물들로는 ‘습격’이라는 의미를 확장시키기 어려우니까요. 그래서 그 권력 안에 들어있는 인물을 만들어냈죠. 또 혜우는 단순히 ‘거기에 속한’ 인물 정도가 아니라 그 세계의 ‘폭력적 메커니즘’에 치명상을 입고 신음하던 인물이어야 했던 거고요. 휘가 5ㆍ18항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유복자로 자라면서 겪어야 했던 그 모든 과정을 혜우도 나름대로 겪었지요.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이 다시 만난 순간부터 사랑할 수 있었고, 또 그들의 사랑으로 세상의 한 면이라도 아름답게 변할 수 있지 않을까요?
〈4ㆍ16〉을 『달의 습격』 으로 다시 쓰면서 세월호에 관한 직설성에서 벗어난 점도 있을 거예요. 사람살이의 ‘기본’을 이야기하면서 세월호 사건을 직접적으로 파고들지는 않았어요. 그렇지만 그 의미가 축소된 건 아니라고 감히 자부합니다. 5ㆍ18항쟁을 직접 다루는 대신 남자 주인공인 휘의 배경으로 삼게 되었지만 결코 그 뜻을 작게 만들었다고 생각지 않는 것도 물론이고요.
『달의 습격』 에서 세월호 참사뿐만 아니라 5ㆍ18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데요. 5ㆍ18로 아버지를 잃고 자란 휘의 삶도 아주 생생하게 그려지고요. 이런 묘사가 어쩌면 지금 광주에서 살고계신 선생님의 배경과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소설에 영향을 미친 경험이나 목격담 등이 있으신가요?
아, 5ㆍ18에 관한 직접 경험! 광주에 27년째 살고 있지만, 제가 언급할 수 없는 대목입니다. 그 무렵 저는 서울 서대문구에 살던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1980년 봄은 자취생 주제에도 구독하던 신문지의 시꺼멓게 칠해진 면면과 대학생들이 벌인 데모로 멈춰 서던 하교길 버스, 그 때문에 버스에서 내려 걸어야 했을 때 하필이면 겪고 있던 생리통, 같은 것들입니다. 그때 저는 ‘불순분자’들에 책동된 광주 시민들이 ‘불온한 난리’를 일으킨 것으로 알았습니다. 학교나 신문, 텔레비전 등 아무 곳에서도 광주에서 일어난 일의 의미나 시내 교통체증을 일으키는 시위의 진짜 뜻을 설명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죠. 스스로 알아채기에는 우둔했고요. 대학에 입학해서야 암암리에 상영되던 ‘광주 비디오’를 봤죠. 뜻도 모른 채 멀리서 겪은 5ㆍ18로부터 11년째 되던 만 27살에 배불뚝이 임신부가 되어 광주로 왔습니다. 아이 낳고 등단하고, 여러 광주사람을 만나면서 내내 살고 있습니다. 14종, 27권의 책을 내면서요. 올 가을이면 제 아이가 만 27살이 됩니다. 광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청년이니 당연히 광주 시민이죠. 그런데, 그 아이가 광주 시민이긴 하지만 ‘광주 사람 의식’은 없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 국민, 세계 시민 의식은 있는데, 태어나 사는 광주 사람 의식은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어째 그런가. 생각해 보니 어미인 제게 그 ‘의식’이 없기 때문인 듯합니다.
당시를 광주에서 보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기 어려운 그 어떤 의식! 이후 스물일곱 해를 살아도 알기 어려운 그 어떤 면면들! 그걸 알지 못한 저는 아이를 키우며 그 이야기를 할 수 없었고, 한다고 해도 단편적인, 아이가 교과서에서 읽었을 법한 내용 이상을 말할 수 없었던 것이죠. 아이와 더불어 ‘5월 광주’를 이야기해 보지는 않았을 지라도 제 인생의 딱 절반, 작가로서의 삶 전체를 여기, 광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개 그날을 직접 겪었고요. 그러니 이 소설 『달의 습격』 에서 묘사한 5월 광주는 지인들로부터 습득한 것과 살면서 체득한 것들이 모아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끄러움이 많긴 하지만요.
작가님 작품에서 일관된 테마가 바로 신화와 샤머니즘의 세계인 것 같아요. 『반야』 의 주인공인 반야도 무당이었고, 『매구할매』에서도 무속적 색채가 배어 있잖아요. 『달의 습격』 에서도 주인공 휘의 할머니가 무당이고, 두 주인공이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 계기도 바로 혼례굿입니다.
네, 맞아요. 『달의 습격』 , 『반야』 , 『매구할매』 뿐만 아니라 그보다 앞서 출간한 『천 개의 바람이 되어』 , 『왕인』 등에서도 무속적ㆍ설화적ㆍ신화적이라 할 수 있는 내용을 다뤘습니다.
2007년 2권짜리 장편소설 『반야』 에서는 아예 작정하고 무속과 신화를 강화한 셈입니다. 『왕인』 도 그렇죠. 3권으로 출간됐던 『왕인』 은 백제가 가장 강성했던 근초고왕 시대가 배경입니다. 주인공 왕인은 일본에 문자를 전파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죠. 저는 근초고왕 시대에 막강한 왕권에 못지않은 신권(神權)이 작동했으리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왕궁에 버금가는 신궁을 설정해 신녀들을 등장시켰고요.
소설들에서 무속과 설화와 신화성이 다분해진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제가 좋아하기 때문일 거예요. 모든 인간의 내면에 어떤 식으로든 신화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생각도 한몫을 했죠. 특히 여성의 신화성이 더 짙고, 그것이 바로 여성적 힘이며, 그 힘이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 왔다고 봅니다. 그 힘이 바로 제가 무속과 설화, 신화적 모티프를 통해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인 거죠.
신화적 모티프가 세상을 바꾸려는 여성들의 이야기로 변주되고 있는 셈이네요. 그런 점에서 『달의 습격』 에서 이미 돌아가신 휘의 할머니가 신화적 세계의 중심에 있었다는 설정도 독특합니다.
초기작에서부터 제가 드러내고자 의도했던 건 ‘여성들의 연대’, ‘여성의 힘’이었습니다. 『아스피린 두 알』을 시작으로 『불꽃섬』 , 『소울메이트』 , 『도둑의 누이』 , 『한 꽃살문에 관한 전설』 이르기까지, 언제나 여성의 주체성과 연대감을 이야기하려 애썼어요. 작품들마다 ‘할머니’들이 등장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그냥 ‘늙은 여성’으로서의 할머니가 아니에요. 여성의 힘으로 자신의 혈육과 식구를 넘어서 주변까지 널리 돌보는 큰 존재로서의 할머니입니다. 전 그러한 존재에게 무속적 속성이 내재되어 있고 신화성도 발현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비범한 할머니가 주인공으로 하여금 주체적 존재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죠.
그러고 보면 『달의 습격』 에서도 여성들의 모습이 많이 부각됩니다. 남성 캐릭터들에 비해 더 적극적이고 강하며 의지할 수 있는 인물로 그려져요. 선생님의 애정과 기대가 남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최근의 성평등 논의나 미투 운동을 보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셨을 거 같아요.
대학에 입학하던 해에 여성학 강의를 들었습니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고 봐야죠. “남자는 인간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여자는 인간에 이르기 위해서 기를 쓰고 산다!” 충격이었습니다. 그때로부터 30여 년이 지났습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듯 여성들의 의식도 변했지요. 눈물과 땀과 피를 흘리며 움직인 사람들 덕분에 이제 최소한 여성이 ‘인간에 이르기 위해’ 기를 쓰지 않아도 되는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소망해 봅니다. 성별을 떠나 '인간으로' 살기 위해 싸우는 숱한 사람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테니까요.
신화적 모티프에 대해 한 가지만 더 질문하고 싶어요. 『달의 습격』 에서 주인공은 한편으로는 사회가 정해준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싸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숙명적인 사랑을 하잖아요. 우리의 삶과 사랑에서 운명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질문이 어려우니 『반야』 의 말을 빌려와야겠네요. ‘여기’에 태어난 걸 운명이라 친다면, 태어남에는 이유가 없는 게 아닐까 합니다. 그러니 사람이 왜 태어났는지를 천착하려 들 것이 아니라 이미 태어나 주어진 그 삶을 어찌 살 것인지를 궁구해야죠. 고비마다 생기는 선택을 통해 자신의 삶을 만들어야 하고요. 사랑도 그렇겠지요?
선생님의 다음 작품도 몹시 기대되는데요. 혹시 어떤 내용을 준비하고 계신지 살짝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달의 습격』 안에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작가는 발표하기 전의 작품의 내용에 대해 누설하지 않는다고요. 그래도 다음 작품에 담을 소망을 말할 수는 있겠지요? 인간에 이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그려내고 싶다는 정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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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습격송은일 저 | 나남
‘정해진 대로 살라’는 권력집단과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는 주인공들 간에 팽팽한 줄다리기가 벌어지는 가운데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상처를 조금씩 드러내는 플롯은 정교하고 탄탄하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