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는 오래전부터 위기와 불황을 겪어왔지만, 여전히 뚜렷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 건설, 설비투자 성장세 둔화로 내년 경제성장률이 3%대가 무너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이지만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하다.
한국 경제가 위기를 극복하고 나아가 세계경제를 주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천년 전 한반도에서 글로벌 경영을 실현하여 오늘날에도 영감을 주는 인물이 있다. ‘해상왕’으로 잘 알려진 장보고이다. 『장보고의 글로벌 경영 혁명』은 교과서와 위인전, 드라마 등을 통해 친숙한 장보고의 삶을 경제?경영적 측면에서 역동적으로 재해석한 경영 전략서이다. 장보고의 세계화 정신과 성공 비결을 분석한 이 책은 21세기 한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준다. 저자 황상석은 장보고의 삶과 업적을 20여 년 동안 추적해왔다. 오랜 기간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현장에서 한국 경제의 어려움을 깊게 실감한 것이 장보고를 연구한 계기가 되었다. 저자를 서면으로 만났다.
장보고는 어떻게 글로벌 경영을 했나
2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장보고의 삶을 연구해왔습니다. 한국사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 중에서 장보고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IMF 경제 위기를 계기로 장보고 청해진 대사를 주목하게 됐습니다. 당시 한 중앙 일간지 경제부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대기업에서 경비를 제공하는 외국 취재를 많이 다녔습니다.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줄줄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일말의 ‘가책’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속죄하는 심정으로 암울한 경제 상황을 돌파할 방안을 고민하던 중 향후 동아시아의 경제가 하나로 통합되리라고 예상하고 ‘동아시아의 미래’를 조명하면 해법이 나오리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다가 한?중?일 3국이 역사적으로 벤치마킹해야 할 선각자가 장보고임을 간파했습니다. 그때부터 장보고 대사를 연구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여겼습니다. 이 책은 단순한 장보고 연구서가 아니라 경영 전략적인 관점에서 한?중?일 사료와 논문 등을 섭렵해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장보고 대사가 세계화 개념이 태동하기 훨씬 이전에 어떻게 글로벌 경영을 했었는지를 입증한 책입니다.
오늘날의 시대 상황은 장보고의 시대와 너무나 닮았습니다. 기업을 경영하는 CEO들이 장보고의 글로벌 경영을 본보기로 삼으면 얼마든지 세계화의 파고를 극복하는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도전과 개척 정신, 창조적 아이디어, 진정한 휴머니즘, 배려와 관용 정신 등으로 요약되는 장보고의 경영 철학은 기존의 관행이나 관습에서 벗어나 혁신을 주도하는 모델입니다. 더럽혀진 바다를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의 청해(淸海) 사상은 오늘날 세계화 정신과 일맥상통합니다.
이 책에서 장보고가 우리나라에서보다 중국, 일본 등 해외에서 더욱 추앙받고 있다는 사실도 소개했습니다. 일본 교토 상인들 사이에서 장보고를 부를 가져다주는 귀인으로 숭상하는 전통이 남아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동아시아에서 장보고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 정사에서는 장보고가 신라 왕조에 모반을 꾀했다고 기록했지만, 중국 정사에서는 장보고 대사를 안사의 난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운 곽분양에 비견하는 인물로 꼽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장보고를 재물신으로 추앙하고 있습니다. 일본 불교의 최대 종파를 이끌면서 탁월한 고승인 사이초, 엔닌, 엔친은 장보고와는 일면식이 없었으면서도 장보고를 신라명신의 화신으로 추앙했습니다. 엔닌이 남긴 기행문 『입당구법순례행기』를 분석한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라이샤워 교수는 장보고를 ‘해상상업제국의 총독’이며 ‘불세출의 영웅’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장보고의 삶을 경제?경영 측면에서 역동적으로 조명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특히 장보고를 1200년 전 글로벌 경영을 실현한 세계인으로 평가한 점이 눈에 띕니다. 장보고를 한반도 최초의 글로벌 경영인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금으로부터 1200년 전에 장보고가 실현한 글로벌 경영은 일종의 혁명적인 사건이죠. 장보고가 한?중?일 해상무역을 독점했을 뿐만 아니라 동서 교역에도 동참했다는 근거는 중국과 일본, 심지어 중동 지역의 사료에도 등장합니다.
장보고가 글로벌 경영인이라는 증거는 일본 지쿠젠(筑前) 태수를 지낸 훈야노 미야타마로의 국제무역 분쟁 사건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의 배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대 국제 무역이 상상 이상으로 체계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속일본후기』에 따르면 841년 장보고가 사망한 뒤, 이소정 등 신라인 마흔 명이 지쿠젠 오쓰(大津)에 방문하여 장보고 상단이 가지고 온 화물의 소유권이 장보고의 자제에게 있으니 속히 돌려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장보고가 청해진을 기반으로 한ㆍ중ㆍ일 삼국 간 무역을 수행했으므로, 미야타마로 태수가 장보고 상단에게 당나라의 물건을 구매해달라고 선금을 줬고 계약 불이행에 따른 배상금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물건을 압류했던 것입니다. 이에 일본 조정은 오늘날 상사 중재원처럼 공정하게 미야타마로의 분쟁을 중재했습니다.
또한, 장보고는 재외 신라인들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경영을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당나라에 이주한 신라인들은 조선업과 제염업, 선박수리업, 여객운송업, 목탄제조업 및 통역관, 승려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했습니다. 일본에 이주한 한반도 도래인들은 선진 기술을 일본에 이전해주면서 경제권을 장악했습니다.
장보고는 동아시아에서 민간무역을 활성화했습니다. 고대 동아시아의 무역이 중국을 중심으로 한 조공무역 체제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놀라운 성과입니다. 장보고가 고대 무역 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었던 주된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당시 동아시아는 당나라를 중심으로 한 책봉?조공 체제였습니다. 당나라는 주변국 왕들에게 ‘책봉’을 해주고, 주변국은 종주국에 ‘조공’을 하여 하사품을 받는 체제입니다. 절대 봉건 왕정 체제에서는 땅과 사람, 생산품 등 모든 것이 왕의 소유물이었으므로 사무역을 금지했습니다. 이런 시대에 장보고가 해상 무역을 독점한 비결은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음을 간파한 것입니다. 당나라와 신라, 일본 등 3국에서 중앙집권 체제가 쇠퇴하기 시작했고, 혼란기를 틈타 지방 호족 세력이 득세하면서 장보고의 무역 행위가 묵인되었습니다.
장보고는 흔히 ‘해상왕’이라는 수식어로 불립니다. 그러나 이 책에 따르면 장보고의 활동 영역은 해상무역과 경제 분야에만 국한한 것이 아닙니다. 이슬람 문화권까지 넘나드는 국제 교류를 주도하면서 한반도와 주변국의 정치?사회?문화?종교 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장보고의 업적을 독자들에게 직접 소개한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기존의 장보고 연구가 영웅주의 사관에 근거한 것이라면, 이 책은 장구한 역사의 흐름을 통시적 관점에서 분석한 것이 특징입니다. 통시적 관점이란 특정 시대 상황만이 아니라 긴 시간의 흐름을 고려해 역사를 해석하는 관점입니다. 역사는 맹목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목적과 방향성에 따라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간파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장보고를 재해석하면, 그가 단순한 해상 무역을 넘어 후손들에게 사회, 문화, 종교 등 전반에 걸쳐 많은 유산을 남겨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장보고는 고기를 주는 것보다는 고기를 잡는 기술을 후대에 남겼습니다. 당나라에서 생산된 햇무리굽 청자를 유통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강진과 해남에 도자기 산업 집적지를 만들었습니다. 이는 고려청자를 태동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다도(茶道) 문화 육성 등으로 한국의 정신문화 진흥에도 앞장섰습니다. 당과 신라 등지에 적산법화원을 창건하여 관세음보살 신앙을 전파하며 선종의 최대 후원 세력으로 활약했습니다. 이처럼 장보고는 정치,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민족문화유산을 남겼습니다.
이 책에서 장보고의 삶을 추적하면서 한민족 이주민의 역사까지 깊게 파헤쳤습니다.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아직 학계에서도 활발히 연구되지 않은 분야이기에 더욱 흥미롭습니다.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각지에 정착한 한민족 이주민들이 장보고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음을 이 책에서 밝혔습니다. 장보고와 한민족 이주민은 어떤 관계였나요?
장보고가 절대 봉건 왕정 체제에서 한ㆍ중ㆍ일 해상무역은 물론 동서 교역까지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수 세기에 걸쳐 타국에 정착한 한민족 이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입니다. 7세기 중엽에 수십만 명의 백제와 고구려인이 강제로 당나라에 끌려가서 집단 거주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백제는 5~6세기부터 첨단 기술을 보유한 장인들을 일본에 파견했고, 백제가 멸망하자 수만 명의 도래인이 일본으로 집단 이주했습니다. 9세기에 당나라로 밀항한 장보고는 신라방과 신라촌 등의 집단 거주지를 형성해 살던 재당 신라인의 전폭적인 도움을 받았습니다. 일본의 경제를 장악한 재일 신라인 사회는 장보고 상단이 유통하는 호화 사치품을 소비하는 시장의 역할을 했습니다.
현재 남북 분단 73주년을 맞이한 우리나라는 세계 8위의 수출국으로 부상했습니다. 재외 신라인 사회를 결속하여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한 장보고의 경영 모델은 한국이 세계 경제를 주도하기 위해 벤치마킹해야 할 전략입니다.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골품제 사회인 통일신라에서 섬 출신의 천민 장보고는 뛰어난 능력이 있었음에도 신분 상승의 길이 막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암울한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당나라로 밀항합니다. 서주 무령군에 배치되어 군중 소장으로 승진했으며, 제대한 뒤 문등현 초대 대사로 재직하고 828년 귀국 후에는 청해진을 설치하여 초대 대사가 됐습니다. 이처럼 장보고는 도전과 개척 정신으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민족의 사표가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청년들이 취업과 연애, 결혼, 출산 등을 포기한다고 하여 ‘4포 시대’라는 신조어가 유행할 정도로 암울한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장보고의 도전 정신을 본받아 절대 포기하지 말고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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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의 글로벌 경영 혁명황상석 저 | 푸른지식
20여 년 동안 장보고의 삶과 성공 비결을 추적해온 저자는 장보고를 단순히 영웅주의적 관점에서 조명하지 않고, 당시 동아시아 정세를 세밀하게 분석하여 장보고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통찰한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