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째 관객과 만나는 노련한 작품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노련함’과 ‘저력’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 조금도 아깝지 않은 작품이다. 올해로 11년째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창작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웃음과 감동, 추리와 반전 등 흥행 요소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면서, 이들을 환상의 비율로 솜씨 좋게 배합해 놓았다. 관객을 미소 짓게 하는 배우들의 몸짓에는 과장됨이 없고, 코끝을 자극하는 서사도 억지스럽지 않다. 그렇게 이야기는 물 흐르듯 전개되고, 작품은 관객을 웃고 울리며 능수능란하게 주무른다.
이야기는 2005년 겨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분주한 작은 병원에서 시작된다. 가톨릭 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병원에는 “세상이 그들을 버렸는지, 그들이 세상을 버린 건지” 알 수 없는 이들이 모여 무료로 치료를 받고 있다. 경제 불황 속에서 지원금이 끊기고 기부금이 줄면서 병원 운영이 어려워지자, 새로 부임한 병원장 ‘베드로 신부’는 방송 출연을 결심한다. 크리스마스 특집 다큐멘터리를 통해 병원의 모습이 방영되면 기부금을 모을 수 있을 터였다. 계획은 순조로워 보였다. ‘최병호’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휠체어 없이는 혼자 움직일 수도 없는 반신불수 환자, 최병호. 그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당신들이 잠든 사이, 차량 통행도 어려울 만큼 눈이 쌓인 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당황한 베드로 신부는 최병호의 행방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이미 예고편을 통해 최병호의 모습이 TV에 나갔고, 방송국 촬영팀은 병원을 향해 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병호를 찾지 못한다면, 기부금을 모으겠다는 신부의 계획은 물거품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베드로 신부는 최병호와 한 병실에서 지내는 환자, 자원봉사자를 만나 사건의 실마리를 찾으려 한다. 그러나 신부와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한다. 무언가 감추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심증에서 그칠 뿐, 이렇다 할 단서를 찾을 수 없다.
당신에게도 숨겨진 상처가 있겠죠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건 저마다 다른 사연으로 병원에 모인 사람들의 상처다. 치매 환자 길례 할머니, 알콜 중독자 아가씨 숙자, 자원봉사자 정연... 인물들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아프게 기록된 한 페이지를 펼쳐 보인다. 한때 그곳에는 설렘과 희망이 있었지만 그것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쓸쓸하고 쓰라린 기억만이 남았다. “이곳에서는 숨겨진 상처 하나 없으면 간첩”이라는 닥터 리의 말처럼, 모두가 흉터처럼 남은 상처를 안고 병원을 찾아왔다. 그리고 서로에게 기대어 삶을 이어간다.
그들에게 최병호는 사람을 향해, 세상을 향해, 담을 쌓은 인물이었다. 같은 병실 안의 환자들에게조차 늘 날 선 반응을 보이는 그는 다가설 틈을 보이지 않았다. 자원봉사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부모 잘 만나 사지 멀쩡하게 사는 삶에 감사하려고 왔느냐”고 쏘아붙이고는 돌아누웠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스스로를 유폐시키게 만든 것인지, 왜 그는 이토록 삶을 아프게 앓는 것인지, 기댈 곳 하나 없는 그가 별안간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지, 관객은 끊임없이 질문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최병호가 깊이 감춰둔 사연을 향해 조금씩 다가선다.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누구와 함께 보아도 좋을, 더없이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삶이 녹록지 않고 그래서 ‘숨겨진 상처 하나쯤’ 안고 살아가는 건 작품 속 인물들이나 객석의 관객들이나 다르지 않은 까닭이다. 그 지난한 시간을 오래도록 버텨온 부모님과 함께, 혹은 다가올 날들에 기꺼이 동행할 연인, 친구와 함께 관람해도 좋다. 나와 같이 삶을 앓는 이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에 위안이 되고, 그들이 있어 오늘을 살아낸다는 깨달음에 마음이 따뜻해질 것이다. 공연은 2월 26일까지,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4관에서 만날 수 있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