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박미향 기자 제공
천만 관객 영화가 줄줄이 등장하고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는 한류 상품이 탄생하는 ‘콘텐츠의 시대’. 그러나 여전히 문화산업 분야에서는 종사자들의 ‘감’에 기대어 성공을 점치고, ‘운’에 기대어 흥행을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언제나 막연한 ‘감’을 명확한 ‘숫자’로 증명하고 싶어 하는 경제학자들은 오랫동안 문화산업이라는 풀리지 않는 블랙박스의 비밀을 탐사해왔다. 예측과 분석이 어려워 ‘숫자가 통하지 않는 산업’으로 악명 높은 업계지만, 최근에는 이들의 노력과 함께 시장에 관한 데이터가 조금씩 축적되면서 ‘운’의 영역이 ‘확률’의 영역으로 넘어오고 있다. 『박스오피스 경제학』 은 숫자와 데이터로 무장하고 ‘대중과 제작자들이 만들어낸 선택의 함수’에 도전한 경제학자들의 분투를 담은 책이다.
‘엑소’, ‘별그대’ , ‘강남스타일’ 처럼, 좀처럼 경제학 책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소재들이 눈에 띕니다. ‘숫자’를 다루는 경제학이 ‘취향’이나 ‘감정’을 다루는 문화상품들과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문화산업은 사람들의 ‘취향’과 ‘선택’에 대한 이해가 많이 필요한 산업입니다. 사람들의 ‘선택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선택’의 문제는 경제학의 가장 큰 화두이기도 하죠. 무엇이 사람들에게 ‘인센티브’가 되는지, 왜 사람들은 특정한 것에 ‘선호’를 갖게 되는지 등인데 문화산업의 중요한 문제들과 많이 연관되어 있어요. 지금까지는 문화산업 분야에서 선택과 선호의 문제를 전문가의 ‘감’에 의존해 판단해온 부분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문화산업이 점차 산업으로 성숙해지면서 많은 학자들이 이 분야의 비밀을 ‘경제학’적으로 벗겨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요. 그런 노력들을 조금 소개한다는 의미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콘텐츠 산업’에 주목하게 된 이유가 있으신지요?
문화콘텐츠 산업은 다른 산업들보다도 정책적인 지원이 많은 산업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류 열풍에서 볼 수 있듯이 문화콘텐츠 산업은 다른 산업으로의 파급효과 등이 높은데, 성공 가능성 여부에 대한 예측이 쉽지 않아 일반적인 시장 논리로 산업이 굴러가기가 힘들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정책적 지원을 결정하는 사람들에게도 이 파급효과라는 게 진짜 있는 건지, 있다면 그 크기는 얼마나 되는지가 늘 고민거리였습니다. 산업의 중요성을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지원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제가 몸담고 있는 한국수출입은행에서도 콘텐츠 산업에 지원을 늘리면서 그런 점들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한류 수출이 소비재 수출에 미치는 영향을 직접 추정하는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발견하게 된 내용들이 놀라웠어요. 책에도 소개했지만, 문화적 근접성이 높아지면 그 나라에서 판매하는, ‘취향’이 가미되는 소비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현상을 경제학적으로 설명하고 한류 수출의 효과를 실증할 수 있었거든요. 그때부터 문화콘텐츠 산업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최근 ‘<태양의 후예>의 경제효과가 1조원을 넘는다’는 기사가 화제였죠. 저자님의 연구 보고서를 기반으로 소개된 내용이라, 기사로 접하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경제효과 1조원’ 같은 숫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추정되는 걸까요?
얼마 전, 한 기자 분이 보고서 내용을 인용해 “<태양의 후예>의 경제효과 1조원 맞습니까?”라는 제목으로 이 책의 서평을 쓰셨더라고요. 그런데 그 보고서를 제가 직접 쓴 것이어서, 아, 전화를 해서 “맞다”고 말씀 드려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웃음)
일반적으로 특정한 상품 매출의 경제효과를 추정할 때는 ‘산업연관분석’이라는 것을 이용합니다. 어떤 상품이 판매될 때 그에 연관해 발생하는 간접적인 매출까지를 모두 포함해 계산하는 것으로,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방식이지요. 그런데 문화상품의 경우는 조금 독특해서 상품 자체 매출 말고도 다른 상품들의 소비에 영향을 주는 게 더 크거든요. 이런 부분은 산업연관표에 잡혀있지 않아서 따로 추정을 해줘야 해요. 그런데 이 부분은 매우 복잡한 가정과 추정, 조사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대부분 그런 계산 과정이 매우 복잡하니까 이를 건너뛰면서 아주 크다는 의미로 ‘1조원 효과’라는 이야기를 전문가들이 남발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의 경우는 앞에서 언급한 한류 수출이 다른 소비재 수출에 영향을 주는 효과에 대한 추정 연구를 기반으로 해서 <태양의 후예> 수출액과, 영향을 주는 간접상품 수출액, 관광유입액 등을 계산하고 그에 대한 산업연관효과 등을 포함해 경제효과를 산출했어요. <태양의 후예>의 경우는 자체 수출액이 약 100억 원 정도로 어느 정도 확보되었기 때문에 이 추정이 가능한 거였죠. 공교롭게 그 계산액이 1조원이 나오는 바람에 기자님들께 혼동을 드린 것 같아요.
인디밴드 ‘혁오’와 스노비즘, 아이돌 그룹의 해체와 ‘게임이론’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상품 속에 숨은 경제학 코드가 무척 재미있습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조금만 미리 소개해주신다면요?
초고를 원래 월간지에 연재하면서 쓰기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매달 한가지씩 그때 그때 뜨는 문화적 이슈들을 보면서 이와 연관된 이야기 거리, 논문, 경제논리가 뭐가 있을까 하면서 집필한 터라, 소개할 논리들이 머릿속에 먼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특집을 보면서 저 그룹들이 다시 재결합을 하는 데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논문을 찾다 보니, 그룹의 해체와 재결성을 게임 이론으로 풀어내는 논문을 찾게 된 거구요. 그룹이라는 것이 사람들이 협력을 하면서 자신의 이득도 얻으려는 구조이기 때문에 게임이론을 통해 그들의 유지와 해체를 설명할 수 있다는 거지요.
또 역시 ‘무한도전 가요제’에서 혁오라는 그룹이 뜨게 되자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논쟁하는 것을 보면서 왜 사람들은 저런 논쟁을 하게 될까 생각하다 ‘스노비즘’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어떤 문화상품을 소비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는 건데, 그 코드가 다른 소비자들의 유입으로 인해 희석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그런 논쟁을 낳게 된 것이라 본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 주변에서 경제학적 코드를 떠올릴만한 사건들은 많이 있는 것 같아요.
‘대박을 치는 시나리오의 조건’을 찾기 위해 시나리오 소개 글의 글자 수를 세어본 금융경제학 연구팀의 이야기처럼 책 속에 기발하고 영리한 연구가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요,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소개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요?
저 역시 시나리오 소개글 글자 수를 ‘신호이론’과 결합해 흥행 지표로 변환할 수 있다고 밝힌 연구가 참 인상적이었어요. 비싼 값에 팔린 시나리오들의 특성을 추적한 끝에, 이들 시나리오에는 제작자와 투자자를 유혹할 “강력한 한 줄” 설명이 있었다는 점을 포착해낸 연구팀의 접근이 흥미로웠습니다.
또 가수, 감독 등 대중문화인이 시간이 흘러가면서 팬을 모으고 유지하기 위해 변화하는 과정을 ‘하이먼 민스키’의 금융불안정성 가설에 비추어 설명한 논문도 있었는데, 이 역시 많이 생각나곤 합니다. 대중의 사랑을 받기 위해 작품의 개성과 창의성을 높여나가다 보면 어느 단계에서는 오히려 기존 팬들도 잃게 되는 현상을 설명한 연구인데요, 독자들도 실생활에서 쉽게 떠올려볼 수 있을만한 내용이에요. “아, 저 가수가 이제 퇴출 단계에 다 와서 저런 모습을 보이고 있구나, 저 감독이 저렇게 극단의 끝으로 갔다가 다시 새로운 팬들을 모으기 위해 다시 이전 단계로 가고자 하는구나” 하는 식으로요.
문화경제학 분야에서는 ‘실험’이 참 쉽지 않은데, 간단히 노래들을 들려 주고 가상으로 사고 팔게 하는 실험을 통해서 문화산업에서도 가격의 논리가 적용이 된다는 내용을 밝힌 논문이 있었어요. 이 논문의 경우는 예상이 가능한 평범한 현상에 대해, 해석을 전복적으로 한 것이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경제학에서 ‘가격’을 이야기하다 보면 다들 시장 시스템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치닫기 쉬운데, 거꾸로 보조금 등을 통해 가격을 보완하면 시장을 다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게 가능하다고 해석을 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전복적인 해석을 할 수 있는 게 학자의 역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화산업의 작동방식에 관한 분석이 많지만, 저자님의 초점은 복잡하고 까다로운 ‘인간에 대한 이해’에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많은 연구를 살펴보시고 또 직접 진행하시면서 복잡다단한 인간에 관해 어떤 힌트를 얻으셨을지 궁금합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문화산업은 사람들의 ‘취향’과 ‘선택’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특정한 시점에 A를 택했던 사람이, 왜 시간이 흐르게 되면 B를 택하게 되는가, 비슷한 A와 B가 있을 때 A를 택하게 되는 유인은 무엇인가와 같이요. 물론 이런 부분은 심리학의 영역, 인류학의 영역, 사회학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경제학에서도 이런 것들에 대한 해석의 실마리를 분명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쓰면서 제가 얻은 인사이트가 있다면 사람들은 아주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하면서도 새롭고, 또 새로운 가운데에서도 익숙함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많은 것 같아요. 또 여러 상품 속에서 보다 손쉽게 선택을 할 수 있게 돕는 ‘정보’에 목마르다는 것도요. 수많은 히트작, 히트 프로그램들이 그런 기반 위에서 설명이 가능한 것 같고요. 문화산업의 가장 중요한 ‘스타 시스템’ 역시 사람들이 보다 손쉽게 선택을 하고자 하는 마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구조입니다. 또 고정 불변한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도요. 비록 본인은 올림픽 참가가 좌절되었지만 ‘우리나라’ 선수들을 끝까지 응원하겠다던 ‘응팔’의 덕선이의 마음으로부터 러시아 귀화를 선택한 안현수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변하기까지, 사람들의 사고 구조의 변화를 어떻게 읽어낼 수 있는가가 그것을 문화산업에 어떻게 담아내는가의 핵심이 될 것 같아요.
물론 여기서 어디까지가 새로움이고, 어디까지가 익숙함인가, 어디까지는 변하지 않았고 어느만큼은 변했나 그 미세한 임계점은 현장에 계신 분들이 찾아 내야 할 지점이겠지만 사람들의 선택이 아주 예측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또 문화산업이 점점 더 우리 생활에 많이 등장하게 되면서 수많은 정보들을 어떻게 쉽게 얻을 수 있게 해줄 수 있는가 역시 문화산업 종사자들이 풀어내야 할 숙제가 될 것 같아요.
문화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일반 독자들에게도 통찰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떤 분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기본적으로 문화산업에 종사하고 계신 분들은 한번쯤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체득하는 정보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경제학 이론으로 뒷받침 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면 자신의 판단에 더 확신이 설 수도 있을 것 같고요. 또 요즘은 문화산업에 관심들이 높아지고 있어 일반 독자들도 편안하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경제학적 논리와 논증이 밝혀지는 것을 보시면서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경제학이 너무 어렵고, 거창한 주제들로 사람들을 주눅들게 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맛보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경제학을 배웠거나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아마 더 친근하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쉽게 소개를 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논문에 대한 소개들이 있기 때문에 최근 현대 경제학이 이런 식으로 연구를 해나간다는 것을 한번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예전에 미시경제학, 경제원론에서만 보던 논리와 수식들이 이런 식으로 응용되고 있는 걸 보시면 “경제학은 나랑 안 맞아”라고 하시던 분들도 한번 생각을 바꿔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박스오피스 경제학김윤지 저 | 어크로스
숫자와 데이터로 무장하고 ‘대중과 제작자들이 만들어낸 선택의 함수’에 도전한 경제학자들의 분투를 담은 책이다. 흥하고 망하는 콘텐츠의 비밀을, 복잡다단한 대중의 속마음을, 문화산업을 움직이는 스마트한 전략들을 꿰뚫어 볼 감각을 단련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jijiopop
2016.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