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중 “모험이 어린이들의 본능”
모험이 어린이들의 본능이기도 해요.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에서는 안전이 확인된 길로만 가는 게 아니죠. 아이들한테 모험하는 즐거움을 보여주고 싶고, 스스로 나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글ㆍ사진 신연선
2015.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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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멀리 보는 시야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린이든 어른이든 간에 말이다. 비행기로 세계 어디라도 짧은 시간 안에 갈 수 있는 세상에서, 인터넷으로 세상 모든 소식을 찾아볼 수 있는 현재에서, 멀리 보는 시야를 갖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여수 바닷가 작은 마을에 살던 13살 소년 해풍이는 마을에 터를 잡고 살던 하멜과 홀란드 사람들이 배를 타고 떠난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 이들이 떠나는 날 몰래 배에 잠입하는 데 성공해 이들과 함께 세상으로 나가는 주인공 해풍이. 어리고, 자기가 살던 작은 마을이 그가 아는 세계의 전부였던 해풍이는 이후 일본, 인도네시아를 거쳐 유럽을 여행하며 상상할 수 없는 모험을 겪는다.


총 11권으로 기획된 김남중 작가의 『나는 바람이다』가 그리는 드물게 큰 이야기를 따라 세계를 돌다보면 발 딛고 선 세상이 전부라고만 생각했다는 사실이 따갑고 가깝게 다가온다. ‘성공한 삶’의 기준, 성공하기 위한 무수한 조건들 안에 모두들 짓눌려 살아온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되는 것이다. “요즘 같이 뒤엉키고 엉망이 된 세상에서는 어린이문학이 주는 메시지가 정말 강력”하다는 사실을 이 작품이 보여주는 것 같다. 세상의 바다에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마침내 큰 사람으로 돌아올 해풍이가 무척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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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이 보장되어야 건강한 사회


2013년 1, 2권 출간 후 이제 5권이 나왔고, 총 11권 기획이죠. 어떻게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는지가 가장 궁금했어요.


처음엔 이렇게 큰 작업일 거라 생각을 못했어요. 1, 2권으로 정리가 되는 계획이었고요. 바다 이야기를 좀 써보고 싶어서 시작한 거였어요. 우리나라가 너무 바다로도, 대륙으로도 공간감이 확대가 안 되고 있잖아요. 우물 안 개구리처럼 말이죠. 특히 아이들한테 좀 심해요. 아이들에게 공간감을 확대시켜주고 싶어 바다 이야기를 쓰려고 했어요. 우연치 않게 코리아나 호라는 배를 타고 나가사키에서 열리는 국제범선대회를 가게 됐는데요. 그곳에서 하멜의 흔적을 발견했어요. 하멜이 1666년 여수를 탈출해 도착한 곳이 나가사키예요. 나가사키 항구에 데지마(出島)라는 인공섬이 있는데 네덜란드 사람들의 상관(商館)이 있던 곳이에요. 데지마에 가면 네덜란드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거죠. 하멜은 우리와 관련이 깊은 사람이어서 취재를 하다 보니 이걸로 바다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겠다 싶었어요.

 

처음부터 11권으로 계획한 건 아니라고 들었는데 그 얘기도 해주세요.  


1, 2 권은 조선과 일본이 주 배경인데 일본을 떠나는 장면으로 이야기를 끝내고 나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주인공인 열세 살 해풍이가 유럽을 향해 떠나는데 배웅만 하기가 아까운 거예요. 목숨을 걸고 모험을 떠난 아이가 만나게 될 세상이 궁금하기도 했고요. 많이 망설이다가 출판 기념 간담회 때 좀 더 쓰겠다고 일단 터트렸죠.(웃음) 그 뒤로 계속 이어지는 작품을 쓰기 위해 취재, 작업을 병행하고 있어요. 5부, 11권으로 전체 작품이 정리될 거예요.

 

힘들 것 같아요. 쉬운 작업이 아니잖아요.


힘든데 재미있어요. 동화를 쓰다가 슬럼프가 좀 길게 이어졌어요. 내가 쓰는 동화가 이 시대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민하던 시기였죠.『나는 바람이다』가 호흡이 긴 작품이라서 여기 매달려 정신없이 작업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시기를 잘 넘기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작품을 하면서 그 사이에 다른 작품도 출간이 되었죠. 굉장히 바쁘게 작업하고 계신 느낌이거든요.


1년에 몇 권씩은 내고 싶다는 작업 목표가 있는데 그 목표가 변하지는 않았어요. 서너 권 씩 내고 있는데 거기에 이 작품의 비중이 커지면서 다른 책들이 조금씩 뒤로 순서가 밀린 거죠. 내년에도 비슷하게 나올 것 같아요.

 

하루 작업량이 얼마나 되세요? 꾸준하게 작업하시나요?


책상 앞에 오래 앉아있는 게 힘들어서 짧은 기간 동안 몰아서 작업을 해요. 취재와 구상을 오래 한 다음 글을 쓸 때는 외진 곳에 들어가서 한두 달 안에 집중해서 쓰는 식이에요. 구상을 충분히 하면서 머릿속에서 이야기가 완성이 되었을 때 책상에 앉아서 빨리 써내는 거죠.

 

국내 문학의 공간에 대한 상상력이라는 게 말씀처럼 협소한 것 같긴 합니다. 그에 비해 『나는 바람이다』의 세계관은 꽤 넓어요. 이전부터 ‘작은’ 이야기에 대한 아쉬움이 있으셨던 걸까요?


크고 작은 이야기가 다양하게 나왔으면 좋겠어요. 다양성이 보장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잖아요. 그런데 현실이 각박하고 힘드니까 사람들이 점점 더 고개를 숙이는 느낌이 들어요. 자기 앞만 보고 가는 거죠. 문제는 아이들한테도 그런 걸음걸이를 강요한다는 거예요. 보폭이 짧아지고, 길게 보지 못하고, 검증된 대로만 가게 하고요. 하지만 그렇게 산다 해도 결과가 모두에게 보장된 건 아니죠. 결국 변화를 위해서는 좀 더 멀리 보는 시야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른들에게도, 아이들에게도요.


함축적으로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은 이해하기가 힘들어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직접 가보고, 만나고, 꿈꾸면서 아이들 머릿속 세계를 조금씩 넓히면 시야도 자연스럽게 넓어지고, 그것이 결국은 모두의 삶과 미래를 바꾸는 결과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해요. 아이들한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같이 가보자고 유혹을 좀 해보고 싶었죠. 그런 이야기가 우리에게 좀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모험을 지양하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있기 때문에 주인공 해풍이의 모험 이야기가 낯설고도 의미가 있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어요.


모험이 어린이들의 본능이에요. 삶이란 게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인데 모두가 안전이 확인된 길, 다른 사람이 갔던 길로만 가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몸으로 부딪치고, 넘어지고, 생채기도 나면서 하나씩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해요. 그것이 평생 잊지 못할 방법이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도 크죠. 우리 사회가 모험하는 즐거움, 기회 등을 아이들한테서 많이 뺏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우리는 어렸을 때 지금처럼 자라지 않았잖아요. 지금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 집이라는 강철 삼각형을 벗어나기 힘들어요. 아이들한테 모험하는 즐거움을 보여주고 싶고, 스스로 나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지나치게 안전한 세상은 오히려 안전하지 않은 거겠죠.


어른들은 현실을 미화해서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데요. 아주 어릴 때는 그럴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자란 아이들에게는 방법이 달라져야 해요. 아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자연스럽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화장하지 않은 모습들, 날 선 모습들을 보여주고 판단하게 해야 하죠. 그런 부분들을 창작 동화들이 상당 부분 감당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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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의 즐거움을 되찾자


작가의 작품 목록을 보면 그런 생각이 작품 전반에 담겨있는 것 같아요. 주인공들의 모험, 도전에 대해 관심이 많이 있으신 거죠?


제 작품 가운데는 현실적인 소재를 다룬 작품들이 꽤 있어요. 거기에 더해 공간의 확대와 모험에 대해 좀 더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몇 년 전부터예요. 그 전부터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했던 부분이 이쪽으로 확대되고 연결 되는 것 같아요. 현실적인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고민하다가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다른 각도에서 우리가 가진 문제를 바라보자 그런 생각을 했어요. 물론 이런 의도는 안 드러날수록 좋아요. 아이들이 빼앗긴 모험의 즐거움을 되찾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체화되었으면 해요.

 

방금 말씀하신 ‘현실적인 문제’는 경쟁이나 통제된 상황에 놓인 삶 같은 것들일까요?


인간성을 포기하게 강요하는 모든 것들이죠. 지금까지 써온 작품들을 정리하면 자연, 역사, 보통 사람 등의 주제를 통해 현실적인 문제를 반영했는데 지금도 그 관심은 계속되고 있어요. 그걸 표현하는 방식을 달리해 모험을 통해서도 그런 이야기를 써낼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독자들에게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단 생각도 들고요. 제 자신도 모험 이야기를 쓸 때 즐겁거든요. 동화가 반드시 밝고, 즐겁고, 따뜻한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에요. 힘든 동화를 쓸 때는 쓰는 사람도 힘든데요. 모험 이야기를 쓸 때는 저도 두근거리고, 즐겁고, 기대가 되는 부분들이 있어요. 이런 것들이 독자들에게 자연스레 연결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현실적인 문제를 다른 방법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모험으로 영역이 확장 된 것 같아요.

 

작가가 생각하는 아동문학의 역할이 궁금해요. 어떤 소명의식을 가지고 아동문학을 하고 계시는지 본질적인 질문을 잠깐 드리고 싶네요.


어린이문학의 역할이 문학의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어린이문학만의 특수성이란 게 있어요. 그 특수성 가운데 교육적인 측면에만 방점을 두면 교조적이 돼요. 어린이들이 꼭 배워야 할, 어른이 되기 위해 알아야 할, 사회 구성원으로서 습득해야 할 규범과 가치를 녹여내는 게 어린이문학이라고 착각하기가 쉽거든요. 그러나 어린이문학의 가장 큰 역할이 저는 특유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해요. 어린 아이들에게 세상을 보여줄 때는 날 것 그대로 줄 수 없어요. 아직 소화시킬 능력이 안 되니까요. 그럴 때 어린이문학이 아이들에게 문학적인 완성도가 주는 고유의 즐거움을 전제로 사회와 접점을 찾게 해주고, 시야를 넓히는 역할을 하는 거죠. 혀의 즐거움, 눈코의 즐거움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역시 아이들이 바르게 설 수 있고, 스스로 달려 나갈 수 있도록 뼈와 근육을 튼튼하게 해주는 거죠. 성인들에게도 문학이 그런 역할은 일정 부분 하겠지만 아이들이 보여주는 반응과는 큰 차이가 있어요.

 

가능성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아동문학이 훨씬 넓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단 생각이 들어요.


그래요.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어린이문학이 오밀조밀하고, 지엽적이고, 성장하며 지나가야 하는 단계이긴 하지만 머물러서는 안 되는 과정으로 생각되기 쉬운데요. 사실 어린이문학의 영역은 그보다 훨씬 넓어요.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함께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장르가 어린이문학이거든요. 흔히 학년별로 구분해 놓은 필독 동화를 보게 되는데 그런 접근법이야말로 어린이문학을 단순하게 내려다보는 거라고 생각해요.


모든 어른들 몸속에는 어린이가 들어 있어요. 그 어린이를 소중히 간직하고 기억하는 분들에게는 어린이문학의 느낌이 전해지죠. 어린이었던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슬픈 어른들에게는 어린이문학이 느낌을 주지 못하는 거고요. 어린이문학을 어린이와 함께 읽는 어른들이 늘어날수록 함께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기준을 가질 수 있게 될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도 의미를 갖고 있네요.


어린이문학이 우리 사회 문제에 대한 해답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가진 문제들 대부분은 아이들에게 가르친 대로 어른들이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거든요. 과정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사람이다, 최선을 다했으면 만족하자, 모두에게 지켜야 할 규범이 있다, 사람은 평등하다, 생명은 소중하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얘기하죠. 하지만 어른들의 행동은 그 반대예요.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사람일수록 그래요. 사람보다 돈이 우선이고, 차별은 당연한 게 됐어요. 요즘 같이 뒤엉키고 엉망이 된 세상에서는 어린이문학이 주는 메시지가 정말 명료해요. 아이들에게 가르친 대로 어른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면 많은 문제들이 풀릴 것 같아요. 문제가 복잡할수록, 복잡하게 만들어서 그 안에 숨는 사람들이 있을수록 원론적인,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원칙을 제시한다면 숨기고 싶은 꼼수들이 드러나게 되는 거죠. 요즘 같은 시대일수록 어린이문학이 주는 메시지가 정말 크다고 생각해요. 그 메시지를 반드시 들어야 하는 사람들이 어린이 문학을 안 읽는다는 게 슬플 뿐이죠.

 

자연스럽게 처음 아동문학을 쓰겠다고 다짐한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스물여섯 살에 동화를 처음 시작했어요. 우연찮은 계기로 어렸을 때 읽은 동화를 다시 읽는데 좋아요. 행복해요. 그때 내가 동화에 반응하는구나, 이걸 느꼈고요. 그럼 이걸 쓰는 게 맞겠다 싶어서 그때부터 동화를 썼죠. 행복한 글 읽기에서부터 글쓰기가 시작되는 거잖아요. 저한테는 그게 동화였어요.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미하엘 엔데 좋아해요.  요즘도 힘들 땐 가끔『끝없는 이야기』를 읽고 충전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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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어디 있는지


프라무카 섬에서도 해풍이에게 ‘작가의 말’을 통해 편지를 쓰셨고, 해풍이의 여정 곳곳을 함께 따라 가셨어요. 취재하면서 겪은 에피소드가 궁금해요. 어려운 일들은 없었나요?


해풍이가 세계를 한 바퀴 돌아요. 어린 나이에 선원이 되어 범선을 타고 도니까 아주 힘든 여정이죠. 저도 가급적이면 그렇게 한 번 돌아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어서 주로 해풍이가 찾아가는 지역에 점을 찍고 선을 잇듯이 취재를 하고 있어요. 프라무카 섬은 자카르타, 예전 바타비아 앞 바다에 있는 섬이에요. 그 곳을 지나갔을 해풍이의 마음을 느껴보고 싶어서 배를 타고 작은 섬에 가본 거죠. 3부에 등장하는 네덜란드의 텍셀 섬도 해풍이를 생각하면서 돌아봤고요. 작품도 쓰기 전에 미리 찾아가서 둘러보고 작가의 말을 쓰는 게 재미있어요.(웃음) 그래도 뭐 주인공만큼 고생하진 않죠. 돌발적으로 생기는 일들은 있지만요. 1부  취재 때는 배가 고장 나서 하룻밤 정도 바다에 표류한 적이 있었는데 일본 해경이 출동해서 예인선을 불러 나가사키까지 끌어줬고요. 자카르타에서는 코디네이터와 연락이 안 돼서 혼자 돌아다녀야 했고 한 달 전에는 멕시코와 쿠바를 다녀왔는데 그쪽 취재가 좀 힘들었어요. 치안이 안 좋은 지역을 가야하는데 멕시코인 코디네이터가 취재 일정을 몇 달씩 연기하며 만류를 했거든요. 결국은 만나서 둘이 머리를 싸매고 작전 짜듯 계획을 세운 다음 잘 다녀왔어요.

 

해풍이 덕분에 작가도, 독자도 세계 여행을 하고 있어요.(웃음)


해풍이와 함께 여행을 하는 거죠. 17세기의 대양 항로는 세계사적으로도 많은 의미가 있어요. 그런데 21세기의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 입장에서는 역사적으로 어떤 접점이 있는 항로가 아니거든요. 17세기에는 세계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무역 항로가 이미 개통이 돼 있었고, 세계가 그 항로로 교역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만 울타리를 닫고 아시아의 변방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시기였어요. 우리만의 상황이 있기는 했지만 결국 근대화를 자주적으로 해낼 시기를 놓친 결과가 되었어요. 해풍이가 여행한 경로를 통해 독자들, 특히 어린이들이 우리가 그냥 흘려보냈던 그 시기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지금 우리는 세계사의 흐름 가운데 어디에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우리 아이들이 미칠 듯이 공부하는 목적이 결국 좋은 학교, 좋은 직장, 넓은 아파트, 대형 자동차 같은 것들이잖아요. 그렇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그걸 다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결국 다른 사람을 위한 경쟁에 매몰돼 인생에서 놓치는 부분들이 많아서 안타까워요.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말이에요.

 

그만큼 세상에서 생존하는 게 힘들어졌다고 하면 어떨까요?


정확히 말하면 우리나라가 유독 힘든 거죠. 어느 사회든 경쟁은 있고, 경쟁한 결과에 따라 삶의 내용이 달라지는 건 같은데요. 우리나라는 그 경쟁이 비정상적이라는 게 문제에요. 우리나라가 예전처럼 배 곪아가며 못사는 나라도 아니고, 세계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나라거든요. 그런데 우리의 삶, 우리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을 보면 이게 정말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방향이 맞는지 의심스러워요. 눈이 좀 열렸으면 좋겠어요. 이 경쟁은 경쟁을 시키고 있는 부모 세대도 안 해본 경쟁이란 말이에요. 더 나은 다른 사회, 혹은 더 힘들게 살고 있는 사회를 보고, 저들은 어떻게 해서 저렇게 살고 있는지 고민한다면 시행착오를 직접 겪지 않고도 우리는 좀 더 행복한 미래에 가까이 갈 수 있거든요. 지금 우리는 발가락 앞만 보고 티격태격 하느라고 놓치는 게 많아요.

 

다름 아닌 이 시기에 유년 시절을 보내야 하는 삶이라는 게 참 우울한 시작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요.


참 딱해요. 우리 어렸을 때와 비교하면 아이들에게는 인터넷, 스마트폰, 먹고 소비할 여유가 있지만 대신 자유를 놓친 것 같아요. 빈둥댈 수 있는 자유, 상상하고 뛰놀고 모험할 수 있는 자유가 없는 거죠. 잘 먹지만 가장 중요한 걸 빼앗긴 사육장의 동물들 느낌이 들어서 안타까워요.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에 굉장히 소극적이거나 거의 무능력해진 것 같단 생각이 드는데 해풍이는 무척 주체적이고, 용기 있거든요. 작가가 기대한 해풍이의 모습, 해풍이를 통해 그리고 싶은 아이들의 모습이 있었을 것 같아요.


해풍이가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해서 스스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그런 완벽한 아이는 아니에요. 중요한 결정이 본인 의지 외에 주변 환경에 의해 결정되기도 하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충동적으로 결정하기도 해요. 중요한 것은 그 경험들을 통해 해풍이가 성장한다는 거죠. 장사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홀란드 사람들을 통해 배우는 것처럼 말이에요. 자신이 결정한 선택의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 다음 선택의 위치에 가기까지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 것인가 이런 부분들이 계속 펼쳐져요. 결국 성장의 기록이죠.


해풍이의 마음가짐도 계속 달라져요. 해풍이가 13살에 떠나서 17살에 돌아오거든요. 초반의 선택이 충동적이었다면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 세계를 한 바퀴 돈 해풍이는 아주 큰 사람이 되어 돌아와요. 요즘 아이들은 사실 대학생이 되어도 경제적으로 부모님에게 예속되어 있다 보니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잖아요. 스스로 결정할 줄 알고, 책임질 줄 아는 어린이들이 되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뭔가 자꾸 저질러봤으면 좋겠어요.(웃음) 부모님들이 별로 안 좋아하시겠지만요.

 

 

울고 있는 모습들


무엇보다 장면들이 생생해요. 좀 더 선명하게 보여줘서 공간에 대한 상상을 넓히고 싶다는 앞의 이야기와도 의도가 닿아있을 것 같아요.


네, 저는 그림이 분명히 떠오르는 게 좋아요. 주위의 상황들이 해풍이의 마음속에 있는 뭔가를 움직이게 되는데 그게 독자들에게 전달이 되기를 원해요. 내면의 이야기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해풍이를 둘러싼 세계의 그림을 좀 많이 보여주고 싶어요. 사람 사는 모습은 기본적으로 어딜 가나 똑같은데 그것이 다채로운 색깔, 환경을 통해 해풍이에게 다른 자극으로 다가와요. 일본,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쿠바, 멕시코, 태평양의 이름 모를 섬을 지나는 모험을 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세상을 이해하는 마음이 되죠. 독자들이 해풍이의 시점에서 상상하도록 돕기 위해서 좀 더 다양한 모습을 담고 싶었어요.

 

이 생생한 장면들은 이곳이 다른 세상임과 동시에 다르지 않은 세상임을 느끼게 해주죠. 해풍이가 각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외모, 삶의 방식은 다 달라도 엄마 같은 사람도 있고 친구가 되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이 세상 사람들을 크게 누군가의 위에 있는 사람과 밑에 있는 사람으로 나눈다면 해풍이는 밑쪽에 있는 사람이에요. 해풍이가 여행하며 만나는 사람들 역시 다 누군가에게 눌리고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일본 도예촌의 도공들이 그랬고, 인도네시아의 주민들이 그랬고, 멕시코와 쿠바에 가게 되면 흑인 노예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 역시 그렇죠. 이들을 누르고 이들로부터 뭔가를 강제로 빼앗아가는 일본과 네덜란드, 스페인 사람들조차 그들 안에서 높고 낮은 위치로 나뉘게 돼요. 해풍이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누르니까 나쁜 놈’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기보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죠. 피부색이 다르고, 먹는 음식이 다르고, 처한 상황이 다르지만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이라는 것, 이런 부분을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떤 장면, 어떤 이야기가 작가를 사로잡나요?


아픈 사람들을 봤을 때 마음에 울림이 커요. 즐겁고, 예쁘고, 행복한 사람들도 좋지만 힘들고, 아프고, 울고 있는 모습들을 봤을 때 뭔가가 마음을 흔들고 그 느낌이 작품을 쓰게 만들어요.

 

그게 해풍이가 만나는 사람들이네요. 도예공, 흑인 노예처럼요.


그러게요.(웃음)

 

역시 작가란 좀 약하고 비주류의 존재들에 관심을 두게 마련인 것 같습니다.


작가가 그 중 하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웃음) 대통령이나 재벌이 글을 쓰면 또 그들만의 이야기를 쓰겠죠. 작가가 찾으려는 건 어디까지나 사람 자체잖아요. 인간성인데요. 그걸 찾아내기 쉬운 곳이 보통 사람들 가운데고요. 아픈 사람들 이 그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지고 있는 인간의 어떤 모습들이 있으니까요.


문학의 기본적인 접근 방법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생각이 들어요.

 

바다 이야기 외에 꼭 써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나는 바람이다』말고 또 다른 바다 이야기가 내년 여름쯤에 책으로 나올 예정이에요. 내년 하반기쯤『나는 바람이다』시리즈 집필이 끝나면 모험이나 공간감의 확대와 관련된 또 다른 시도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작가들은 작품 나오기 전에 구상하고 계획하다 보니까 대부분 몇 년을 먼저 살아요. 저도 3~4년 쯤 뒤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대륙 쪽에서 또 다른 모험을 해보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계획만 세우고 있는데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대양이거나 바다거나 어쨌든 우리나라의 지리적인 한계를 벗어나 달려보고 싶고, 그런 글을 앞으로도 더 쓰는 게 목표예요. 그러다 쉬고 싶으면 생각을 깊이 할 수 있는, 내면으로 파고드는 작품도 쓰게 되겠죠. 그것 역시 새로운 도전이니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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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람이다 1 김남중 글/강전희 그림 | 비룡소
17세기 일본으로 가려다 제주도에 난파당해 오랜 세월 조선에 살았던 네덜란드인인 하멜에게서 영감을 받은 동화입니다. 이른바 "하멜 표류기"로 불리는 조선에 대한 그의 자세한 안내서도 있었는데 작가는 하멜이 조선을 벗어나 나가사키로 탈출할 때 함께 배에 올라 떠나게 된 조선의 아이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력에서 이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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