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즐거움을 잘 표현한 조각 작품이 미륵반가사유상이다. 책을 읽고 느끼게 되는 희열감이란 바로 저 부처의 미소라는 생각이 든다. 그 순간에 책이 사람처럼 느껴진다. 책장을 넘기고 페이지가 거듭될수록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이 말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나의 성장기에 최초의 독서라고 할 수 있는 소월 시집이 그러했다. 그때 소월의 시들은 미소를 지으면서 나에게 말을 걸었고, 시인에게 대답을 하면서 나는 문학의 길을 걸었다. 그 순간의 즐거움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독서도 사람처럼 생로병사가 있다. 소월을 통해 태어난 나의 독서는 점점 성장하기 시작한다. 고교시절 문학반에서 읽은 문학 작품들을 시작으로 지금까지도 고전이 된 문학 작품들을 읽는 시간이 가장 즐겁고 행복하다. 독서의 생로병사는 육체와는 반비례한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젊어지고 힘 있는 독서. 독서는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젊어서 천재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여, 독서를 통하여 위대한 거장이 되라.
요즘의 주된 관심사는 내년에 출판을 할 장편소설을 퇴고하는 일이다. 매주 마감을 하기 위해 밤을 새워 작업을 했지만, 연재를 마치고 나니 다시 쓰는 기분으로 퇴고를 하고 있다. 초고를 쓸 때보다 더 힘들다. 이 소설은 드라큘라의 연대기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에 드라큘라가 등장해 문명과 인간이 감염되어 몰락하는 과정을 이야기로 엮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중세의 분위기를 이해하기 위해 존 줄리어스 노리치의 『비잔티움 연대기』를 비롯해서 단테의 『신곡』과 ‘드라큘라’ 관련 서적을 주로 읽고 있다.
최근 『고독의 힘』을 썼다. 세상의 모든 일은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모양을 달리한다. 고독을 외로움이나 방치된 상태로 바라본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이다. 하지만 고독을 인생의 자양분을 섭취하는 절호의 기회로 여긴다면 삶이 행복하다.
그동안 내가 읽고 동경한 작품을 만든 사람들은 모두 ‘고독’한 사람들이었다. 진정한 고독의 가치를 깨닫는 순간 사람은 성숙해 진다. 우선 자신만의 방을 만들고 그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길러야 세상에 나가 당당하게 살 수 있다. 고독은 교만한 사람에겐 겸손을, 불행한 사람에겐 행복을, 외로운 사람에겐 풍요로움을 가져다 주는 묘약이다. 우선 독서도 고독한 순간에 해야 효과적이다. 더 이상 고독을 두려워하지 말고 다정한 친구처럼 여기시길 바란다.
나는 도스토예프스키, 괴테, 토마스 만, 카프카와 까뮈를 비롯한 소설 작품들과 단테와 보들레르같은 시인들의 시 작품을 가장 인상 깊게 읽었다. 우리나라의 소월과 백석 그리고 윤동주와 미당의 시편들, 최인훈, 조세희의 작품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그 다음으로 인상적인 책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실 그 다음 이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지금 소개하는 책들에게서 나는 무한한 자양분을 섭취하기 때문이다.
이 자양분은 문학의 숲에 내리는 비와도 같다. 이 책들은 문학의 풍미와는 다른 지적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선정했다. 인생과 문학의 밭을 일구는 도구와 같은 책이라고나 할까?
명사의 추천
육조단경
원순 역해 | 법공양
내 독서의 중심에 있는 책이다. 육조 혜능의 말씀과 그의 이야기는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나무처럼 흔들림이 없다. 단경을 펼쳐들면 잠시 몰아의 경지에 빠지기도 한다.
단테 『신곡』 강의
이마미치 도모노부 저/이영미 역 | 안티쿠스
세계적인 동양 미학자인 저자의 15회에 걸친 강의를 통해 고전 읽기의 전범을 보여주는 탁월한 저서이다. 강의를 하고 청중과의 수준 높은 질의응답 역시 단테의 신곡을 읽는데 큰 도움이 된다. <신곡>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도 나는 이 책을 먼저 권하고 싶다.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지그문트 바우만 저/조은평,강지은 공역 | 동녘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라보고 읽어내는 44개의 창문과 같은 책이다. <고독의 힘>을 쓰기위해 참고도서로 선택한 책이었는데 고독과 더불어 엄청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저자는 우리가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관계와 세상을 찾아가는 즐거운 지성의 책이다.
오주석의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
오주석 저 | 솔
우리 전통 문화를 회화작품을 중심으로 풀어낸 탁월한 저서이다. 오주석의 문장을 보면, 뼈를 깎아 글을 쓴다는 말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더불어 우리 작품을 보는 혜안은 작가로서 정말 부러운 재능이었다. 그는 이미 오래 전에 아까운 나이로 고인이 되었다. 너무나 간절하게 집필을 한 탓이 아닐까? 하지만 그의 저서들을 통하여 내 마음속에서 불멸로 남아 있다.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문학수 저 | 돌베개
고독한 시간에 위안을 주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인문학 책이다. 음악 듣기의 궁극을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저자의 통하여, 우리는 바흐와 베토벤을 만난다. 살아있는 사람과 조우하는 느낌을 주는 음악 듣기.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아는 만큼 들린다.’로 적어도 될 것이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한다면 꼭 곁에 두어야 할 책이다.
영화
5일의 마중
장예모 / 공리, 진도명, 장혜문 | 콘텐츠게이트
시네마 거장의 작품답게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깊고도 넓어 아름답다. 마치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그네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사람이 사람을 기다리고 사랑하는 일이 이토록 슬픈 일인지, 가벼운 재능이나 감상적인 생각으로는 근접할 수 없는 ‘깊은 인생의 맛’을 알게 하는 슬픈 영화다. <고독의 힘>에서도 다룬 작품이다.
비긴 어게인 : 블루레이
감독:존 카니 출연:키이라 나이틀리, 마크 러팔로 | 케이디미디어
아빠가 좋아할 것 같다고, 딸이 나에게 보여준 영화다. 대중음악의 힘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고, 좌절하고 불안한 현대인들에게 용기를 주는 영화였다. 딸과 나는 이 영화를 통하여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었고, 세대 간의 벽을 허물어 버릴 수 있었다. 한동안 이 영화의 OST를 반복해서 들었다.
상의원
감독:이원석 출연:한석규, 고수, 박신혜, 유연석 | 워너브러더스
조선시대 궁중 의상을 비롯한 화려한 ‘옷’의 세계를 보았다. 아름다운 작품과도 같은 옷의 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옷을 입는 사람들의 마음가짐과 권력과의 관계. 무엇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로 만들어 드리겠다.’는 장인의 사랑과 열정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여자는 아름다운 옷이라는 생각과 함께 순수한 예술가의 정열이 시대의 벽을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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