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사진이 거짓말을 한다는 말을 들은 건 수업시간이었다.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을 때였는데, 다들 영어실력이 고만고만해서 그저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만 해도 도움이 되는 그런 때였다.
눈이 파란 필 선생님은 예전에 여행을 했던 얘기를 간혹 꺼내곤 했는데, 그 날은 사진을 한 장 보여줬다. 바다에서 돌고래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돌고래는 바닷속에서 머리를 한껏 빼들고 웃는 듯 입을 활짝 열고 있었고 그 옆에는 젊은 선생님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 사진을 어떻게 생각해?”
모두에게서 영어 문장을 하나씩 끄집어내는 게 직업이니만큼, 능숙하게 질문을 던진다.
“돌고래와 사이좋게 노는 모습으로 보여요.”
저마다 문장구조와 단어는 조금씩 달랐지만, 이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사진이었다. 선생님은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럼, 내가 돌고래와 얼마나 논 사진으로 보여?”
30분, 1시간, 하루 종일 등등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선생님은 조용히 고개를 젓고 말을 이었다.
“사실 나는 돌고래와 같이 논 적이 없어. 내가 한 거라고는 같이 사진을 찍은 것뿐이지. 바로 옆에서 돈을 주고, 재빨리 바다에 들어가서 카메라를 보고 사진을 찍은 것뿐이야. 그리고 내 앞으로도 뒤로도 긴 줄이 이어져 있었지. 내가 돌고래와 같이 있었던 시간은 1분도 안 됐어.”
그리고 표정이 다양한 캐나다인답게 한쪽 눈을 찡긋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진은 가끔 거짓말을 하지.”
그 말을 다시 떠올린 건, 아르헨티나의 루한 동물원에 도착했을 때였다. 사실 나는 남미에 오기 전까지 이런 곳이 있는지도 몰랐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인민박집에서 동글동글한 한글로 이 동물원에 대한 추천 글을 보곤 무작정 일정에 끼웠을 뿐이다.
사자와 함께 놀고 싶으세요? 어릴 때부터 개와 함께 자라 위험하지 않은 사자와 호랑이가 있는 루한 동물원을 꼭 추천합니다.
사자와 호랑이라면 아주 어릴 때, 그러니까 유치원에서 단체로 동물원에 갔다가 본 게 전부였다. 그것도 상당히 떨어진 거리에서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그 너머에서 어슬렁거리는 동물을 그저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어린 마음에 TV에서 보는 것보다 좀 못생겼구나 싶었다.
어쨌거나 사자와 호랑이와 함께 논다는 말은 내 마음을 상당히 들뜨게 만들었다. 멀찍이서 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맹수와 함께 있을 수 있다니! 동물원에 도착할 때까지 마음속에서 기대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사자와 호랑이와 마주치고 나서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기대가 너무 컸었다. 사자와 호랑이가 야생에서처럼 뛰어다닐 줄 알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맹수들은 철로 된 우리 안에서 조용히 어슬렁거리거나 낮잠을 자고 있었다. 개와 함께 자라 순하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사육사의 손짓에 따라 관광객인 내 앞에 턱하니 엎드렸다. 옆에서 사육사가 주의를 주었다.
“절대 머리나 꼬리를 만져선 안 됩니다. 등만 쓰다듬으세요, 위험해요.”
고양이과의 맹수 사자, 하는 짓은 털털한 것이 개 같다.
사자 털은 정말 거칠었다. 흔히 제멋대로 난데다 거친 털을 개털 같다고 하는데 개하고는 비교도 안 됐다. 싸리 빗자루를 만지는 느낌이었다. 행동이 꽤 크고 거칠어서, 한 번 움직이면 풀썩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의 모래가 날렸다.
누가 봐도 고양이과인 윤기 좌르르 호랑이
호랑이는 아주 유연하고 비단처럼 부드러운 털을 가지고 있었다. 움직임이 사뿐사뿐하고 소리를 거의 내지 않았다. 털이 좌르르 누워있어 만지는 촉감이 꽤 좋았는데, 냄새가 엄청 났다. 대형육식동물이 가진 누린내가 화악 풍기는데 사자보다 더 심했다.
루한 동물원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고, 다양한 동물이 있었다. 사자, 호랑이뿐만이 아니라 낙타와 코끼리, 원숭이 등 여러 동물이 있었으며, 그들과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다만, 코끼리와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는데 오늘 코끼리가 기분이 좋지 않다고 했다.
평일에 가서 그런지 다른 이용객도 별로 없어 한가하게 동물원 투어를 즐길 수 있었다. 원래 친절한 아르헨티나 사람들인 만큼 어느 우리에 가나 즐거운 농담을 던져가며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고 말이다.
내가 생각했던 동물과 함께 노는 경험은 새끼 사자와 할 수 있었다. 올망졸망 모여 있는 새끼 사자들은 로프를 물어뜯으며 데굴데굴 구르며 놀고 있었다.
데굴거리던 새끼 사자들
기대가 너무 커서 실망을 좀 하긴 했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동물원에서 사자와 호랑이와 함께 뛰어논다는 게 가당찮기나 한가. 몇 백 키로나 되는 맹수들과 말이다. 앞발을 살짝 잘못 휘두르기만 해도 인간의 연약한 목뼈 따위 또각하고 나가버릴 텐데.
의외로 사진을 찍기 힘들었던 것은 동물원을 자유로이 돌아다니던 오리가족과 라마, 알파카였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만큼 사람이 옆에 가면 슬쩍 도망가 버렸다. 어쩐지 아이러니했다. 우리에 갇혀 있는 맹수들과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정작 안전한 동물들에게는 가까이 가기도 힘들다니 말이다.
여행을 할 때는 터무니없이 높았던 기대 때문에 실망했던 루한 동물원이었지만, 집에 돌아오고 나니 이것만큼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진도 없었다. 두고두고 볼 때마다, 내가 정말 사자와 호랑이를 만지긴 했었구나 싶어지기도 하고 말이다.
볼리비아에서 초코바를 뺏어먹던 야생 비큐나
침을 뱉을까 무서워 살짝 떨어져서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야생동물과 함께 한 적이 있긴 하다. 볼리비아에서 만난 야생 비큐나인데 엄청난 녀석이었다. 차로 이동하는 도중에 들린 작은 마을이었는데 길 한가운데에서 비큐나가 슬렁슬렁 다가왔다.
사람이 익숙한지, 바로 여행자들에게 다가온 이 녀석은 사람들 사이로 킁킁 냄새를 맡고 다니더니 먹을 걸 강탈하기 시작했다. 여행자들이 들고 있던 먹을거리라고 해봐야 사탕이니 초코바니 하는 고열량 간식밖에 없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먹던 초코바를 주지 않자 그대로 침을 뱉어버렸다.
라마가 침을 뱉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눈앞에서 본 것은 처음이라 깜짝 놀랐다. 원형으로 분무기에서 뿜은 것처럼 분사되는 침은 적당한 점성과 냄새를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머리를 들이밀며 초코바를 내놓으라고 협박하기 시작했다. 크기가 그리 작지도 않은 놈이 작정하고 다가오니 손을 물릴까 겁나기도 하고, 또 침을 뱉을까 무서워 슬슬 도망갔다. 그래도 기념촬영을 할 때는 나름 얌전히 있어주는 등 먹은 만큼 서비스도 하고 가긴 했다.
어쩐지 이 성격 나쁜 비큐나를 생각할 때마다 동물과 사람 모두에게 공정한 만남이란 이런 게 아닌가 싶어진다. 물론, 이 라마과의 동물이 우리를 습격할 거란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좀 더 비큐나의 몸에 좋은 먹을거리를 준비하고 있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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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정
안녕하세요, 어쩌다보니 이곳저곳 여행 다닌 경험이 쌓여가네요. 여행자라기엔 아직도 어설프지만, 그래도 오래 다니다 보니 여행에 대한 생각이 좀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미국, 캐나다,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일본, 대만, 중국 등을 다녀왔습니다.
tomatoz7979
2019.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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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omiriz
2015.03.29
감귤
2015.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