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노 게이치로 "김연수 작가가 깊이 있게 이해해줘서 고맙다"
지난 9월 28일, ‘파주북소리 2013’가 펼쳐지고 있는 파주 출판도시의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에서는 『일식』 『달』 등으로 국내에도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히라노 게이치로가 나타났다. 『결괴』 출간 기념으로 김연수 작가가 초대손님으로 등장, 히라노 게이치로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글ㆍ사진 김이준수
201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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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의 첫 인상은 어땠나? 시간 지난 뒤 오늘 다시 만났는데, 어떤지도 듣고 싶다.

히라노 게이치로: 처음 만났을 때 김연수 작가가 부끄러운 듯 인사하고 어색해서 머뭇거렸는데, 말을 나누면서 잘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웃는 모습이 굉장히 좋다. 화통하게 웃진 않지만 부끄러운 듯 미소 짓는 모습이 좋다(웃음). 김연수 작가와는 문학 심포지엄에서 만날 일이 있아서 문학에 대한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비슷한 동년배 작가이자 한국 작가 중에 문학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서 굉장히 좋았다. 김연수 작가의 장편은 일본에 번역돼 있지 않지만, 번역된 두 편의 단편을 읽으면서 역시 그 답다고 생각했다. 내년 즈음 김연수 작가의 장편소설 번역집이 나올 거라고 얘기를 들었다. 그의 장편소설을 드디어 읽을 수 있어서 기대하고 있다. 내 작품 『결괴』 를 읽고 감상평을 보내줘서 기뻤는데, 이런 자리가 생겼으니 다시 여쭤 봐도 될까?

김연수: 히라노 게이치로 작가가 등단했을 당시 나는 출판 잡지 기자로 있었다. 일본에서 한 대학생이 소설을 써서 큰 상을 받았고, 신주쿠에 큰 서점이 있는데, 그의 사진이 크게 걸려있다고 풍문으로 들어서 기대가 있었다. 그의 2기인 문명 비판적인 소설이 나오고 『결괴』 를 읽어보는데, 처음엔 히라노 작가의 소설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문명을 비판하는 내용도 있지만, 이 소설이 긴데도, 굉장히 잘 읽힌다. 문체나 전개가 이전 작품과 달리 이야기를 전달하는 도구처럼 느껴지더라. 펼치면 계속 읽게 되더라. 그러다 살인이 벌어지는데, 그 이후는 깊이 들어간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그동안 써온 질문의 연장선상이다. 대단하다고 느꼈다. 굉장히 집요하게 사건을 바라본다.

소설을 쓰는 입장에서 속도가 빨리 진행되는 것을 참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역설적으로 천천히 진행되는데, 빨리 읽힌다. 모르긴 해도 예전보다 가독성 측면에선 쉽게 읽혀도 작가 본인은 힘들게 썼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작품은 악을 응시하는 소설이다. 현대 사회에서 악이 무엇인가는 오래된 주제인데,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도 있다. 그렇게 오래된 주제인데, 이 작품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면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답하게 해준다. 악은 행복하지 못한 경우를 악이라고 본다. 그게 참신한 생각이었다. 힐링, 요즘 많이 얘기하는데 힐링이 안 된 사람은 문제가 있다는 뜻이잖나. 힐링 안 된 사람들은 나쁜 거고 악이 된다. 악의 반대가 선이 아니고, 악의 반대는 행복이다. 이 결론이 맞는지 모르겠으나 그런 식으로 읽혔다. 물론 내가 더 적극적으로 해석했을 수도 있다. 잘 읽히고 깊이 들어가고 독자에게 뭔가 질문을 던지는 이런 소설은 정말 쓰기 어렵다.


가독성 높은 문장으로 악과 선, 행과 불행, 인간의 정체에 대해 노골적으로 묻는 소설은 근래 드물었다고 본다. 이 소설을 읽고 악의 반대어가 행복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김연수 작가가 그랬는데, 히라노 작가는 행복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나?

히라노 게이치로: 김연수 작가가 깊이 있게 이해해줘서 고맙다. 현대 사회는 다양화 돼 있고, 하나의 사회로만 향해 달려가는 사회는 아니다. 가치관이 총체화 되면서 허무주의적인 시대가 되지 않았나 싶다. 여러 가치관 중에서 이것이 맞니, 저것이 맞니 의심을 하게 되면 끝이 없는 시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국가가 중요하다고 외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국가가 뭐가 중요하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일도 마찬가지다. 일본에 살면서 부정할 수 없는 가치관 두 개가 있다. 행복과 건강. 누구나 행복해지고 건강해지고 살고 싶다는 소망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 소망, 좋다. 문제는 더 건강해지고, 더 행복해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행복은 어려운 개념이고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행복해지고 싶다고 느끼는 것, 그렇게 돼야 한다고 말하는 게 문제가 아닐까! 더 행복해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더 행복한 쪽이 있음을 뜻한다. 행복 안에서도 서열이 생겼다. 21세기 일본에서 격차사회가 주목받고 있고 경제적인 격차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절대적으로 부정하지 못하는 긍정과 행복의 가치관이 확산된 가운데, ‘나는 저들만큼 왜 행복하지 못할까’ 생각하면서 반발을 하는 누군가가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만약 현재의 나와 사회에 만족한다면 이런 사회가 계속 진행되기를 원하겠지. 그렇지만 사회에 만족하지 못하고, 행복 피라미드의 맨 아래 있다면 이런 사회가 지속되는 것에 반발할 테고, 반발의 한 형태가 테러가 될 것이다. 일본은 버블 붕괴이후 불황이 오래 되고 초고령 사회가 됐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일본의 미래가 밝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미래가 밝지 않음에도 더 행복해야 한다고 몰아세우니 모두가 지쳐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행복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다음 작품에서도 계속 다룰까 생각하고 있다.

일본은 불황이 지속되고 디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있는데, 행복도 디플레이션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싶다. 예전에는 큰집, 자동차, 화목한 가족 등 행복의 이미지를 크게 잡았다. 그러나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행복을 사치라고 생각하고, 일이 있고 친구가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행복 자체가 디플레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특히 2년 전 동북부 대지진이 발생하면서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이라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그렇지만 살아있는 것만으로 만족스럽다는 경지는 종교인이 아니면 어렵지 않을까. 그래서 내 마음 어딘가에선 ‘좀 더, 좀 더’라며 원하는 것 같다. 행복은 굉장히 어려운 성질인데, 같은 상태라도 자발적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할 때와 다른 이로부터 강요를 당할 때는 다르다. 이 소설에선 ‘악마’라는 등장인물이 요스케에게 정말 행복하냐고 따져 묻는 장면이 나온다. 요스케가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책을 통해 읽어봐 줬으면 좋겠다(웃음).





김연수 작가는 언제 행복하다고 느끼나?

김연수: 현대문학이라는 것은 곤란한 것을 참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모더니즘 문학은 난해하고 상대방을 이해하기 어렵고, 텍스트가 참 곤란한데, 모르는 분야에 대해 알아가려는 태도가 들어 있다고 본다. 다른 사람을 굉장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을 감수하고 견디는 것이 문학의 행위라고 본다. 올바른 문학인의 자세라면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를 놔두는 것, 못 받아들여도 없애려고 하지는 말자는 것이 내 생각이다. 현대의 문제는 균을 제거하듯 불행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가지려고 하는 행복은 올바른 문학적인 태도가 아니고, 견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히라노 작가가 말한 행복 역시 그런 측면인 것 같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박멸하려고 하는 것, 그것이 매스미디어가 주는 환상이다. 문제가 생기면 그걸 없애면 된다고 말하는데, 인생 살면서 알잖나. 없앨 수 없다는 걸 알잖나. 환상에 젖어 있으면 자신의 정체성마저 부정해버리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언제 행복을 느끼느냐면 언제나 느낀다. 모든 것을 나는 다 견딜 수 있다. 웬만한 것은 다 견딘다(웃음). 그래서 항상 행복을 느끼고 있다.

『결괴』 를 보면 다카시는 하나라기보다 복수형의 나이고 싶다고 말한다. 현대사회의 몰개성적인 개인들, 반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런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히라노 게이치로: 내가 지금까지 계속 느끼는 모순은 이런 것이다. 인간은 한 명 한 명 모두 각각의 개성을 갖고 있고 그 개성을 관철해야 한다고 들어왔다. 모두가 개성적이라 다른 사람에 대해 이렇게 받아들여달라고 하면 반발을 하겠지. 다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지 않으면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는다. 출판사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와 아내와 이야기할 때,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그런데 사회는 개성은 하나뿐이고 하나뿐인 개성을 관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에 따라 자신을 바꿔나가는 것이 좋지 않다고 이 사회는 본다.

그런데 이런 생각과 사고방식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어떤 친구와 술을 마시는데, 이렇게 친구와 술을 마시는 모습이 나의 본디 모습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술을 즐거이 함께 마신 친구도 가면을 쓴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허무해지지 않을까. 반대로 집에 틀어박혀 누구와도 만나지 않는 것이 내 본 모습이라면 그것도 너무 불행하지 않는가.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대등하지 않다. 자신을 잘 표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성적인 사람도 있다. 다카시가 고민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남에도 상대방에 따라 말을 잘 하고 못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 정말 인간의 사고방식인가 고민을 한다. 인간은 내 안에 중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따라 달리하는 여럿의 내가 있고, 그런 여럿의 나와 동거 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루에도 인간은 여러 모습을 가진다. 가족, 직장 등 여러 모습의 내가 있고, 개성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개성, 그것이 개성이다. 내 진정한 모습을 여러 개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분인’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개인은 분인의 집합체다. 분인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기까지 『결괴』 는 정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연수: 여러 명의 자아를 가진 사람이 현대인이라는 것에 무척 공감한다. 그것이 소설을 쓰게 하는 원천에 가깝다. 그 주제와 관련, 나는 무엇이고, 내가 경험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을 주제로 쓸 것 같다. 히라노가 쓰기 전에 내가 먼저 써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웃음). 소설 쓰는 입장에서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소설을 쓸 때, 어떤 소설을 쓰느냐가 중요하다. 사실 쓸 수 있는 소설이 많지 않다. 50편을 맥시멈으로 치고, 가면 갈수록 무엇을 쓸 것이냐가 더욱 더 중요해진다. 그러다 보면 피하고 싶은 것이 생긴다. 살인 같은 끔찍한 일이 그렇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끊임없이 몰입해 들어가야 하는 것인데, 마음을 하나하나 들어가서 봐야 하는 게 정말 힘든 일이다. 히라노 작가는 『결괴』 를 쓰면서 그런 힘든 작업을 했다. 심리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을 텐데, 쓰면서 몸의 이상 같은 것 없었는지, 쓰는 과정이 어땠는지 듣고 싶다.

히라노 게이치로: 소설가가 머릿속으로만 테마를 생각해서 끄적거리면 독자가 공감해주지 않는다. 소설가는 등장인물이 되어 써야 해서 굉장히 힘든 부분이 있다. 단순히 괴롭고 힘들어하면서 쓰는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 인간은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싶어 하는 부분이 있지 않나 생각도 한다. 내가 좋아한 소설 중 19세기 소설을 보면 주인공이 고민하고 힘들어했다. 그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읽으면 힘들긴 해도 굉장히 좋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을 좋아하는데, 주인공이 살인을 하고 죄의식으로 고민한다. 나도 그 주인공이 돼서 힘들고 고민하면서 쾌감을 느끼곤 했다. 쾌감이라는 단어가 좋은 단어가 아닐 수도 있지만 힘들고 고통스러워하는 것 자체가 인간을 좋게 만드는 것 아닐까. 이런 식으로 인간을 구원하는 부분이 있어서 희극뿐 아니라 비극도 있는 것 같다. 『결괴』 를 통해 현대적 모순에 대해 썼는데, 고민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더 큰 고민과 번뇌가 오지 않나 생각했다. 비극적 문학 작품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면,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문학을 읽어가면서 살겠다는 힘이 끓어오르는 것 아닐까.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봤을 때 행복해 보이지만 어두운 부분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은 소설을 통해 대리체험을 하면 좋지 않을까.




Q&A

히라노 게이치로 작가의 이전 작품은 어렵게 읽혀서 좋았다. 이번 작품은 쉽게 읽히는데, 집필 동기가 궁금하다.

히라노 게이치로: 『결괴』 를 쓰기 전에 사전조사를 철저히 했다. 이런 사건에 말렸을 때 비일상적인 시간이 일상적인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간다는 이야길 들었다. 그것을 반영한 결과, 잘 읽히는 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시간의 변화에 흥미가 있어서 또 이렇게 썼다. 김연수 작가의 장편을 못 읽어봤지만, 김연수 작가와 이야기해봤을 때 우리 둘 모두 소수적인 사람이 아닐까 본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밝다는 것에 이질감을 느끼는. 그런 것이 소설로 표현되는 것이 아닐까.

소설을 보니 행복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 같다. 이번 소설처럼 치밀한 느낌뿐 아니라 가벼운 느낌으로 순수한 행복의 개념에 대해 써 줄 의향이 있는지 묻고 싶다.

히라노 게이치로: 행복 그 자체가 의식의 문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행복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현대사회의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을 생각하지 않고 개인의 행복에 대해서 쓸 수는 있다. 그런데 이런 쪽으로 강요하는 현상이 지금의 이 소설이다. 지금 말한 부분도 이런 시스템에 휩싸여 있는 우리의 모습을 나타내는 한 가지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소설은 모두가 행복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은 사람들, 강요당하는 상황에 대해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개개인이 행복한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 행복해하는 것을 그려도 재미없지 않을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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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괴 1 히라노 게이치로 저/이영미 역 | 문학동네
지방도시에서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회사원 사와노 료스케와 엘리트 공무원인 형 다카시. 어느 날 출장지 오사카에서 갑자기 실종된 료스케가 얼마 후 의문의 범행성명문과 함께 일본 각지에서 토막사체로 발견된다. 동생을 마지막으로 만났다는 이유로 다카시는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고, 비슷한 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범죄의 파문은 사회 전체로 번져나가는데…… 걷잡을 수 없는 악의와 도쿄를 덮친 무차별 테러, 마침내 드러난 살인자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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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노 게이치로 #결괴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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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강이 숨트는 새벽

2014.12.12

이런 식의 의식도 좋지만 두 작가가 사회 전반에 가지는 공통된 결여에 대한 통찰이 통쾌 하다.
기성세대. 기성 복. 기성 식품.등등 너무나 찍어 놓듯 통제하려는 통제 사회(딴 은 흐름?)가
어째서 행복을 가르는 가늠쇠가 된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즐거운 글을 읽게 돼서 기쁘다.그럼
계속 읽어 가겠습니다..흠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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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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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노 게이치로

명문 교토 대학 법학부에 재학중이던 1998년 문예지 『신조』에 투고한 소설 『일식』이 권두소설로 전재되고, 다음해 같은 작품으로 제120회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 당시 최연소 수상 기록으로, '미시마 유키오의 재림'이라는 파격적인 평과 함께 예리한 시각과 전위적 기법으로 차세대 일본문학의 기수로 자리매김했다. 아쿠타가와 상의 대학 재학생의 수상은 무라카미 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이후 23년 만의 일이었다. 섬세하고도 날카로운 시각으로 현대사회의 문제점들을 바라보는 신세대 작가인 그는 1998년 스물셋의 나이에 '일식'으로 아쿠타카와상을 수상할 당시 화려한 한문투 문체와 장대한 문학적 스케일로 주목을 받았다. 일본소설하면 흔히 떠올리는 '가벼움'과는 거리가 있는 작품으로 많은 국내 고정팬을 확보하고 있다. 밝은 문장으로 죽음을, 무거운 문체로 연애를 그릴 순 없냐는 그의 말에서 순문학 작가로의 포부와 자부심이 묻어난다. 1975년 6월 22일 아이치 현에서 태어났다. 중학생 시절 '금각사'라는 명작을 남긴 미시마 유키오(1925~1970)에 푹 빠져 지내면서 미시마가 책에서 조금이라도 언급한 작가는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때 접한 작가가 도스토예프스키, 토마스만, 괴테 등이다. 어린 시절의 독서가 오늘날 그를 소설가로 성장하게 한 든든한 자양분이 되었다. 교토 대학 법학부 입학하여 소크라테스에서 자크 데리다에 이르는 정치사상사를 공부했다. 문예창작과의 제도적인 문인교육을 받은 적은 없으며, 정치사상사를 문학 공부와 병행하는 것이 작가적 성찰을 얻는데도 도움이 됐다고 한다. 문학 교육이 아닌 다른 경험으로부터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흥미가 많은 그는 재즈 대담집을 발간하고 건축잡지의 책임편집을 맡는 등 문학 외적인 방면에서도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2008년에는 모델 겸 디자이너인 하루나와 결혼했다. 이제는 등단 10년이 넘는 중견작가로, 1993년과 비교해 70% 정도로 규모가 줄어든 일본 순문학 시장에서 소설의 힘을 믿고 소설을 통해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하며, '공감'을 통해 독자와 만나고자 한다. 해박한 지식과 화려한 의고체 문장으로 중세 유럽의 한 수도사가 겪는 신비한 체험을 그린 『일식』 작품은 '미시마 유키오의 재래(再來)'라는 파격적인 평과 함께 일본 열도를 히라노 열풍에 휩싸이게 하며 일본 내에서 40만 부 이상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99년 메이지 시대를 무대로 젊은 시인의 탐미적인 환상을 그려낸 두번째 소설 『달』을 발표한 이후 매스컴과 문단에서 쏟아지는 주목과 찬사에도 불구하고 3년여 동안 침묵을 지키며 집필을 계속해, 2002년 19세기 중엽의 파리를 배경으로 낭만주의 예술가들의 삶을 그린 대작 『장송』을 완성한다. 같은 해 특유의 섬세하고도 날카로운 시각으로 현대사회의 문제점들을 바라본 산문집 『문명의 우울』을, 2003년에는 이윽고 현대 일본으로 작품의 배경을 옮겨 젊은 남녀의 성을 세심한 심리주의적 기법으로 추구하는 등 실험적인 형식의 단편 네 편을 수록한 『센티멘털』(원제:다카세가와)을 발표한다. 2004년에는 더욱 심화된 의식으로 전쟁, 가족, 죽음, 근대화, 테크놀로지 등 현대사회의 여러 테마를 아홉 편의 단편으로 그려낸 『방울져 떨어지는 시계들의 파문』을, 2006년에는 인터넷 성인 사이트를 소재로 삼아 현대인의 정체성을 파헤친 『얼굴 없는 나체들』을 연달아 발표하여 왕성한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