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광고가 아닌 영화, 드라마, 게임, 음반, 하이 페스티벌 등의 광고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카피라이터의 경력이 많아지면 흔히 하는 칸 광고제, CLIO, 대한민국광고대상의 수상을 받는 길보다는 크리에이티브 강사로서 강의를 하는 것과 책을 쓰는 일을 선택했죠. 화려하고 돈이 많이 오가는 광고계에서 일반적인 세상의 시각으로 보면 약간 바보 같고 삐딱한 길을 선택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선택한 길은 행복했고 지금 이 자리에 있어 저는 더더욱 행복합니다. 이 책은 제가 그동안 썼던 카피들과 그와 관련된 사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이 책을 쓴 이유는 살아온 시간들의 머리를 묶고 싶었기 때문인데요. 머리를 묶게 되면 부피가 느껴지고 비로소 그 사람의 얼굴 형태가 보이게 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한 줄로 사랑했다』는 책은 제 카피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고, 제가 살아온 시간의 기록이기도 하면서, 제가 한 시대에서 다음 시간으로 넘어가기 전에 묶었던 운동화 끈으로서 작업을 한 책입니다. 제가 어떤 카피를 쓰셨는지 알고 싶으신 분은 이 책을 보시면 아시게 될 겁니다.”
일하면서 내 자신이 타들어가는 게 좋다
짧은 인사말이 끝나고 그녀는 강연 대신 다른 방식으로 독자들과 소통한 길을 택했다. 4년 전부터 강연을 하고 있는 윤수정 작가에게 강연은 익숙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번 자리에서는 독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자 기꺼이 마이크를 독자들에게 넘겼다.
-
어떠한 계기로 카피라이터가 되신 건가요? 그리고 지금 이 분위기에 맞는 한 줄의 카피를 써주신다면?
-
우선, 두 번째 질문부터 답하면요. 저는 그 질문이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예전에 <브라보, 마이 라이프>라고 하는 라디오 생방송에서 그 방송을 'FM의 휴먼블록버스터'라고 표현했다가 혹평을 받은 나쁜 기억이 있는데요. 그 이후로 웬만해서는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카피라이터에 입문한 계기는 책에도 쓰여 있는데요. 싱겁게도 답은 광고대행사 공채에 붙어서 입니다. 대학에 다닐 때 '내가 잘난 사람이 아니라 난 안될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상처받을까 두려워서 말이죠. 그런데 우연히 제 눈에 들어온 추천서가 있었고 지원을 했고, 지금 카피라이터가 되었죠.
-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는 것과 프리랜서로서 일하는 차이는 무엇인가요?
-
광고창작학과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내용 중에 카피를 쓴다는 것은 어떤 시스템이나 회사를 선택하는가보다 더 많은 다른 것이 존재하는 행위라는 부분이 있는데요. 글은 나에게 나오는 것인데, 돈이 개입되면 굉장히 복잡해져요. 예를 들어 꿀라면이라는 상품이 있는데 그 카피가 대히트를 쳤지만, 사실 그 꿀라면에 나쁜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면 나는 무엇을 해서 돈을 번걸까요?
광고회사에서 입사해서 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문제는 타인을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은 타인에 대한 애정과 배려가 선행된 행위여야 한다는 거죠. 광고는 항상 '어떻게 되어야한다' 라고 소비를 조장하곤 합니다. 당신이 소유하는 것이 당신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고 말하는 것이 광고에요. 광고인의 일면에는 어쩌면 '공범자'라는 말이 행간에 숨어있는지도 몰라요. 언어를 판다고 생각하면 감성이 피폐해져요. 그러니까 언어를 팔 생각보다는 나눌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광고인은 널리 알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광고계에 관심이 있다거나 광고계에 일할 사람들은 뭘 널리 알릴 것인지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만큼에 책임을 가져주었으면 해요. -
마케팅과 학생인데, 전 색다른 광고를 만들고 싶은데요. 그렇게 하기 위해 대상을 삐딱하게 보는 노하우가 있다면?
-
처음에 있었던 광고업체 쪽에서는 제 광고 카피가 너무 추상적이라면서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는데요. 영화계 쪽으로 왔더니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질문하신 분의 느낌이나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이 틀리다고 해서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행복하다, 슬프다, 지루하다‘는 감정을 배우지 않아도 알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은 느낌을 스스로 깨우치는 천재들이죠. 그러나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고 해서 맞추려고 한다면 불행해집니다. 다만, 여러분 개인의 특별한 느낌을 교감하는데 사심이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마음으로 느끼는 법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17년간 카피를 쓰고 있는데요. 아직도 돈을 위해 쓰는 카피는 뭔가 석연치 않아요. 저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지인인 방송작가가 제가 썼던 '그래도…… 꿈꾸라고 말해줘'(p.157 참조)라는 카피를 보고 힘을 많이 얻었다고 했을 때 정말 행복했어요. 저는 여러분도 그런 기쁜 순간을 찾아주었으면 해요.
-
『한 줄로 사랑했다』라는 책 제목이 굉장히 인상적인데요. 이러한 제목이 나오게 되었나요?
-
제목은 이병률 대표님이 뽑으셨는데요. 가제는 '마음으로 광고하다'였어요. 수신 받은 입장으로서 '카피라이터로서의 한줄'이 아닌 한 줄이 얼마나 절박하고 위태로운가, 생각했어요. 순수하게 내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을 거란 생각했죠. 영화의 카피로 책을 구성한 건 크리에이티브 수업을 받던 학생의 아이디어였어요.
-
카피(Copy)는 간결하게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창작의 고통을 동반하는 존재인 것 같은데요. 데드라인에 대한 압박을 느끼시나요?
-
물론이죠. 광고계에서는 속어로 '똥줄이 탄다'고 표현해요. 몸 아래에서 머리 꼭대기까지 찌릿하게 느껴지는 감각이 있죠. 저는 철녀라고 불릴 정도로 워커 홀릭이었는데요. 카피라이터가 육체적으로 규칙적인 삶이 아니잖아요. 결과물도 All or Nothing이니까요. 심지어 광고대행사에서 일할 때는 스트레스로 살이 뜯어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고통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입맛에 맞으면 그 압박이 좋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저는 타들어가는 제 자신이 좋거든요(웃음).
-
가장 힘들게 작업한 카피는 어떤 것이 있었나요? 작업한 카피 중에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어떤 것이 있나요?
-
힘들 때는 ‘이 영화를 사람들이 보면 참 힘들겠다’ 싶은 작품을 만났을 때에요. 그래도 그 작품의 카피를 완성하면, 이후에 다른 영화의 카피를 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일해요. 가장 좋아하는 영화, 이 질문은 대답하기 힘든 것 중 하나에요. 영화에 대한 인상은 흘러가는 것이기 때문이죠. 요즘은 따뜻한 영화가 좋아요. 최근 본 영화 중에서는 <서칭 포 슈가맨>과 <사랑의 침묵>이 그렇죠. <사랑의 침묵>은 묵언수행을 하는 수녀님들의 다큐멘터리인데요.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침묵은 신과 대화하는 시간”이라고 대답하는 걸 듣고 많은 생각을 했어요. 제게 '돈을 벌지 않는 순간'은 '내가 나를 버는 순간'이고, '사람을 만나지 않는 순간'은 '나를 만나는 순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게 했죠.
-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창의력'이 카피라이터의 직업에서 굉장히 중요한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학생들은 입시 공부로 이런 능력이 키워지기 힘든 환경에서 살고 있는데요. 광고업계에서 일하고 싶은 학생들은 어떤 환경에서 공부를 해야 할까요?
-
최근 젊은이들은 남과 달라지길 두려워하면서도 남과 다른 내가 되고 싶어 해요. 남과 다르게 살고 싶다면 그렇게 살면 됩니다. 물론, 공통의 기호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각 개인이 다르다는 좀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에게 청춘을 위로하는 글을 써달라는 청탁이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요. 저는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태양계에서 살았다면 그들은 은하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죠. 각자 다른 시대가 살고 있기 때문에 같이 서로 고민하고 나누어야 할 문제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태어난 것만은 아니다
이렇게 독자들은 윤수정 작가와 도란도란 대화하며 질문과 대담의 시간이 끝났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진 않을까’했던 윤수정 작가의 우려와는 달리 독자들의 열띤 질문으로 계획된 시간을 훌쩍 넘어섰다. 그녀는 전 세계 네티즌이 뽑은 애니메이션 1위에 빛나는 「KIWI!」
“키위 새는 먹이와 천적의 걱정 없이 사는 새의 종인데요. 이 애니메이션에서 키위 새의 마지막 행위를 사람들은 추락 혹은 투신이라 하지만, 키위 새에게는 행복한 비행이었을 것입니다. 새는 먹이를 주워 먹으라고, 천적 없이 살라고 태어난 건 아닐 겁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벌라고만 태어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우리가 태어난 궁극의 목적을 찾아주길 바래요.”
- 한 줄로 사랑했다
- 윤수정 저 | 달
영화를 보기 전, 우리는 영화 포스터와 영화평을 살펴본다. 주변의 평가도 중요하겠지만, 영화 포스터의 한 줄을 보고 영화를 결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한 줄'을 쓰는 사람이 바로 저자 윤수정이다. 저자는 국내 유일의 영화 전문 카피라이터이다. 소가 나오던 영화도 그녀의 묵직한 카피 한 줄이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만큼 한 줄의 힘은 위대하다. 우리는 카피를 두고 보이지 않는 시공간 사이를 이겨내며, 그녀와 호흡하고 이야기, 그리고 감정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마치 그녀의 노트를 훔쳐보는 듯한 이 책은 그녀의 카피들의 이야기이자 저자의 이야기이다…
윤나리
스스로를, 물음표와 느낌표의 이성과 감성을 두루 갖추었다 자칭하는 일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라디오와 함께 생활한 탓에 책, 음악,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얇고 넓은 지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항상 다양한 매체를 향해 귀와 눈, 그리고 마음을 열어두어 아날로그의 감성을 잃지 않으려 합니다. 채사모2기.
voler08
2012.12.31
쿠쿠
2012.12.10
즌이
2012.12.10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