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음악적 탐구 - 루시드 폴(Lucid Fall) <1집 : Lucid Fall> (2001)
나일론, 스틸 기타의 차이를 두는 것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나듯이 루시드 폴의 악기 연주는 적막한 다락방 안에서 연주를 하듯 조심스럽고 정성이 스며있다. 내밀한 언어와 쓸쓸한 목소리가 다치지 않게끔, 그는 차분히 악기들의 숨을 고른다. 스스로가 고백하듯 그의 연주력은 단박에 돋보일 정도로 뛰어나지는 않다. 그는 자신에게로 기대는 대신 전체로서의 조화를 꾀했다.
글ㆍ사진 이즘
2011.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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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 같은 가사, 명징한 기타위로 흐르는 감성적인 선율이 바로 ‘루시드 폴’ 음악의 매력이죠. 인디에서 출발한 밴드 ‘미선이’를 거쳐 <버스, 정류장>의 사운드 트랙, 개인 솔로 앨범을 거치면서 성장한 그의 음악은 ‘싱어 송 라이터’만의 감각을 느끼기에 충분한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가 있는 루시드 폴의 데뷔작입니다.


루시드 폴(Lucid Fall) <1집 : Lucid Fall> (2001)

지그시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귓등을 더듬었다. 그리곤 “새벽녘 내 시린 귀를 스치듯 / 그렇게 나에게로 날아왔던 그대”가 전하는 느낌을 생각했다. 「새」를 방안에서 혼자 처음 들었을 때 눈을 감았던 것은, 손가락으로 귓등을 매만졌던 것은 아름다운 선율 때문은 아니었다. 그건 또한 몸을 파고드는 강렬한 연주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단지 언어였다. 어느 사이 시나브로 빠져들어 그 근간을 짚어보게 했던 언어의 힘이었던 것이다. 루시드 폴(조윤석)의 음악은 그렇게 마음을 긁었고, 새벽녘 시린 귀를 스치는 바람처럼 시리게 유약하고 매섭게 섬세한 언어들이 귀를 훔쳤다. “모든 게 우릴 헤어지게 해”(「나의 하류를 지나」)라는 서러운 독백은, “난 가진 것도 없지만 / 내 노래보다 더 귀한 나를 죽일듯한 그대 이름”(「은행나무 숲」)이라는 지독한 자괴감은 그것이 자폐적인데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이상스레 듣는 사람을 홀리게 했다.

언어의 기묘한 울림은 내밀한 이야기를 전하는 목소리 역시 꼭꼭 감춰진 듯이 자폐적이라는 것에서 기인한다. “아, 이제는 울어도 난 울지를 않네”, “제자리 아무리 달려도 그대로네”(「풍경은 언제나」)를 부르며 한 번쯤은 감정에 파묻힐 법도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이따금 담백한 코러스를 덧댈 뿐 간결한 기교도, 음의 기복도 없이 목소리는 다만 쓸쓸하게 아래로 침잠해 간다.

은 그래서 미선이의 음악과 다르다. 그는 더는 둘이 아닌 하나가 되어 내면의 고백에 뺨을 대고 쿵쿵 박동 소리를 듣는다. 미선이 시절의 음악 역시 자폐적(「송시」, 「Drifting」, 「섬」, 「시간」 등)이어서 골방의 느낌이었으나 그곳엔 세상과 세상에 대한 분노(「Sam」, 「진달래 타이머」, 「치질」 등)가 더 강했다. 그러나 이제 홀로 선 자는 기타 몇 대를 손에 쥐고서 골방 어귀에 있는 다락방으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나일론, 스틸 기타의 차이를 두는 것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나듯이 루시드 폴의 악기 연주는 적막한 다락방 안에서 연주를 하듯 조심스럽고 정성이 스며있다. 내밀한 언어와 쓸쓸한 목소리가 다치지 않게끔, 그는 차분히 악기들의 숨을 고른다. 스스로가 고백하듯 그의 연주력은 단박에 돋보일 정도로 뛰어나지는 않다. 그는 자신에게로 기대는 대신 전체로서의 조화를 꾀했다. 그래서 늘 소리들의 중심에는 기타 소리가 배어있지만 그 자리를 때로는 혹은 오보에에(「풍경은 언제나」) 혹은 파도소리에(「나의 하류를 지나」) 혹은 색소폰(「은행나무 숲」)에 내어주곤 한다.

은 그래서 미선이의 음악과 다르면서도 또한 같다. 완연한 포크 앨범인지라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이 축을 이루지 못하고, 그 덕에 그런지 풍의 사운드와 분노서린 곡 전개, 세상에 일침을 가하는 노랫말을 찾는 것은 불가하다. 그러나 음악에 골몰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하는 방식과 태도에 있어서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앨범의 형식에서 가장 먼저 발견된다. 미선이 당시 랩 메틀 형식의 「두 번째 상상」에 놀란 기억이 있다면 이 앨범에서도 「Take 1」을 접했을 때 당황했을 것이다. 「Take 1」은 미선이의 멤버였던 김정현의 형인 김정찬과 작업한 힙합에 근접해 있는 곡이다. 포크 앨범에 랩이 흘러나오는 것도 생소한데, 이 곡은 더구나 다른 수록곡들과 배치되는 반사회적 메시지를 담고서 제목처럼 한 번에 녹음된 곡이니 그 놀라움이 더욱 배가된다.

일관성의 틀에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이질적인 것들의 공존. 이를 루시드 폴의 음악으로 풀이해 말한다면 아마도 감상자를 배려하지 않고서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추구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래서 조윤석 자신이 아끼는 곡이었을 「새」가 어쿠스틱 연주와 이규호의 목소리로 재해석해서 다시 수록되었을 것이며, 오보에와 아코디언, 색소폰, 어느 오락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라든가 비 소리 등을 곡에 가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건 가식 없는 정직함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강한 애착을 가졌지만 끝내 가사를 붙이지 못 해 그대로 연주음만 수록했다는 「Why do I need feet when I have wings to fly?」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만족치 못 하더라도 어떻게든 노랫말을 붙여볼 법도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감상자가 다르게 받아들일지라도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는 듯이.

루시드 폴의 음악에서 어떤 날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고, 시인과 촌장, 나아가서는 유재하의 흔적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조윤석 자신이 유재하 가요제 출신이라는 점과 그의 음악이 포크 음악이라는 점, 엷지만 클래식 적인 결합과 전개, 어쩌면 「새」를 다시 부른 이규호 또한 유재하 가요제 출신이라는 것을 연관지어볼 수 있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이다. 루시드 폴의 출신이 어떠하든 그의 음악적 색채가 무엇과 닮아있든지 간에 별로 중요하지 않다. 만약 과거 그들의 음악과 이을 수 있는 이음매가 있다면 그것은 순수함이다. 오로지 음악에만 골몰하는, 감상자보다도 자신 내면을 더 중시하는 외곬처럼. 그 음악이라는 하나의 길은 90년대와 후반의 진지했던 인디 씬을 추억하는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음악에만 매진했던 그 순진하기까지 했던 소리들을, 스스로를 속이지 않으려 했던 열정을 루시드 폴의 은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다.

글 / 배강범(oroosa77@naver.com)

#루시드 폴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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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rgil

2011.01.21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고 있다는 자부심과 안도를 루시드폴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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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