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낯선 동네에 들어섰을 때의 아득함. 목적지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한지 모를 때, 길은 한없이 낯설고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돌아올 때 보는 그 길은 한결 부드럽고 익숙해진다. 그렇게 시간은 이전보다 10도쯤 기울어 빠르게 흐른다.
밤새도록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전날 밤 뉴스에선 다음날 아침이면 비가 그친다고 예보하여 안심을 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더 퍼붓는 것 같았다. 비와 더불어 하는 여행이 가끔은 운치 있기도 하지만 너무 많이 퍼부으면 그것도 곤란하다. 은근 걱정을 하며 출발 장소로 나갔다. 가는 동안, 도착하고서도 그리고 드디어 출발을 했는데도 비는 그칠 줄 몰랐다. 2009년
올해로 세 번째 동반하는 캠프였다. 일이라고 생각하면 골치가 아프겠지만 휴가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제1회 금강산에서 시작한
첫째 날, 원주 박경리 선생의 토지 문학관과 봉평 이효석 문학관으로 떠나다
서울을 떠나니 비가 오락가락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는 숲들이 서울을 벗어나자마자 눈에 들어온다. 간만의 여행에 내 눈이 호사했다. 고속도로를 쌩하니 달리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나무들이 그렇게 싱그러울 수가 없었다. 두 시간 남짓 달리고 나니 원주다. 작년엔 박경리 선생의 고향인 통영으로 갔었다. 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배경이 되었으며 선생이 태어나 살았던 동네와 『토지』의 배경이 되었던 하동을 다녀왔었다. 그리고 묘소에 가서 참배도 했었는데…… 올해는 선생이 생전에 생활하시는 곳으로 왔다.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곳이구나. 후배 작가들이 오면 텃밭에서 싱싱한 야채를 뽑아 밥상을 차려주곤 했다는 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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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 있는 ‘박경리 문학공원’은 박경리 선생이 18년간 살면서 소설 『토지』를 완성한 곳이다. 선생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단다. 텃밭은 물론이거니와 나무와 꽃, 마당 군데군데 새들과 고양이 밥을 주기 위한 바위 하나까지도 선생이 손수 가져다 놓았단다. 지금은 박경리 문학공원으로 바뀌어 예전의 모습과 조금 달라졌지만 건물은 원형 그대로이며 내부와 외부는 보수했다. 1층은 선생이 생활하던 자취를 볼 수 있도록 가구나 집필 도구를 기증받아 전시관으로 조성하고, 2층은 문학 및 예술 동호인들의 사랑방으로 활용하고 있단다. 삼천여 평의 공원엔 선생의 옛집과 더불어 평사리 마당, 홍이 동산, 용두레벌 등 4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박경리 문학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나면 경남 하동 평사리에서 간도 용정까지의 삼천여 리를 무대로 하여 펼쳐진 대하소설 『토지』의 깊은 뜻을 느낄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토지』의 마지막 배경이 1945년 8월 15일인데 선생이 『토지』를 완성한 날이 1994년 8월 15일 새벽 2시라고 한다. 장장 26년에 걸친 집필 기간도 기간이지만 소설 속의 마지막 날과 집필의 완성의 날이 같은 날짜라는 것에 괜히 의미가 생기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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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에서 선생의 평소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보고 손수 만든 책장과 부엌, 집필하시던 곳을 둘러본 후 『토지』 관련 자료 전시실로 갔다. 관리사무소 2층에 자리한 전시실엔 박경리 선생의 연보에서부터 토지를 소개한 자료들(연도별, 출판사별 발행된 책자와 육필 원고, 완간본을 전시)과 토지의 줄거리와 연표, 토지의 공간지도가 전시되어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토지』를 접한 것이 정확하게 언제였는지 궁금했는데 전시되어 있던 책을 보고 금방 알아보았다. 난 4부까지 나왔을 때 읽었던 것 같다. 두터운 갈색의 양장본을 보니 정신없이 빠져들어 책을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났다. 점심을 먹기 전 동산을 산책하듯이 둘러보았다. 선생이 살아계실 때는 치악산 줄기가 눈에 들어왔다고 하는데 지금은 사방이 모두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다. 토지의 공간이 공원만 벗어나면 사라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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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은 후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 된 봉평으로 향했다. 오래 전, 이효석의 생가가 정말 생가 그대로일 때, 푯말 하나만 붙어 그곳이 이효석 생가라는 것도 겨우 알아챌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에 그곳을 찾은 적이 있었다. 생가 뒤쪽으로 늦여름 밤 이효석이 글을 쓰다가 마당으로 나오면 달빛에 환한 모습을 들이대었을 메밀꽃들이 너무나 아름다워 꽃밭 사이로 들어가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났다. 생가 부엌에서 만들어주던 잔치국수와 메밀묵의 맛도 잊을 수 없었다. 허나 지금은 그때의 모습은 사라져 버렸다. 이효석의 기와집 생가로부터 약 600m 아래에 초가집 생가를 만들어두었고 그 일대가 이효석 문학관을 비롯하여 물레방앗간까지 대대적으로 공사가 되어 하나의 이효석 랜드가 되어 있었다. 그 당시 공사 중이던 넓어진 길만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이효석의 작품을 기리고 그의 생가를 찾아 추모하며 이효석을 기억할 수 있어 좋겠으나 내 기억의 그곳은 어쩐지 꾸미지 않았던 그대로의 모습이 더 아름다웠던 터라 오랜만에 찾아갔음에도 낯설게만 느껴졌다.
이효석은 짧은 생애를 살다갔다. 우연히 그의 문학 전반을 교정했던 적이 있어 근대 문학가 중에 유일하게 전 작품을 완독하기도 했었다. 내가 우리나라 근대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 그건 이효석의 영향이 아주 크다고 하겠다.
이효석문학관에 들러 영상물을 보고 전시실을 둘러보았다. 의외로 작은 전시실이었지만 소장한 자료들을 보니 그의 작품을 하나하나 살펴보던 때가 기억났다. 근대 문학이라면 「메밀꽃 필 무렵」 같은 토속적인 농촌의 풍경과 애환들만 알고 있던 내게, 그 당시에도 크리스마스를 즐기며 여름휴가를 가고 쇼핑을 했으며 남녀의 삼각관계나 심지어는 동성애와 근친상간을 그린 작품까지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었다. 하지만 이효석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재능 있는 작가들이 더 많은 작품을 집필할 수도 있었을 텐데도 어이없는 질병과 정치적 상황에 내몰려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많이 떠났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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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을 나와 주위를 둘러보았다. 비가 내리는 마당엔 이효석의 동상이 책상에 앉은 채로 비를 맞고 있었다. 재빠른 사람들은 그 옆에 앉아 동상이 된 이효석과 나란히 사진을 찍었다. 문학관 마당에서 내려다보니 이효석의 생가 쪽 풍광이 눈에 다 들어온다. 꽤 넓었다.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작가로 살다간 것뿐인데 후세에 이렇게 큰 자리를 차지하며 고향을 빛내고 있는 것을 보니, 생가뿐이었던 그곳에 문학관을 조성하고 이효석이라는 이름을 빛나도록 했을 고향 사람들의 노고가 전해진다. 그 당시 구인회 소속의 문인들을 살펴보더라도 현재에 와서 자신의 이름으로 문학관을 가진 작가는 서너 명이 고작이니 말이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봉평장터로 갔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참석한 회원들이 조를 나누어 연극을 할 예정이었다. 작년에 회원들의 다양한 연기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올해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만들어내는 그들의 유쾌한 연극은 보는 내내 웃음을 멈추지 않게 했다. 김유정의 「봄봄」, 작년에 이어 올해도 등장한 박경리의 『토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시나리오가 전해졌고 1조에서 12조까지 어찌나 열정적으로 연극을 했는지 내가 상품을 주는 입장이라면 모두에게 골고루 상품을 나눠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법, 일찍 도착하여 심사위원을 맡아준 공지영 작가와 김선우, 백가흠 작가의 심사로 올해의 대상은 작년에 여우주연상을 받아갔던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한 부분, 그것도 작년에 “찢어 죽이고 말려 죽일 거야~”라며 열연했던 그 장면을 너무나 코믹하고(실제로는 비장하게 했겠지만) 천연덕스럽게 연기한 팀에게로 갔다. 여우주연상은 가장 나이가 많은 70세의 점순 역을 연기한 황안나 할머니에게(이분에 대해선 나중에 조금 더 소개를 하겠다), 남우주연상은 비옷을 입고 메밀꽃을 연기했던 팀들에게 넘어갔다. 비가 내려 넓은 마당을 두고 좁은 무대에 옹기종기 앉아 연극을 했지만 다들 너무나 질서정연하게 앉아 재미있고 흥겹게 참여를 해주었다. 한마디로 멋진 분들이었다!
연극이 끝난 후 숙소인 평창에 있는 보광휘닉스 파크로 갔다. 숙소를 배정받고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갔는데 우연히 백가흠 작가와 마주앉아 저녁을 먹게 되었다. 구면이었던 터라 무척 반가웠다. 혹시 그의 작품을 나처럼 기다리고 있는 독자라면 조금만 기다리면 만날 수 있을 거라 전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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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은 후에 공지영 작가의 강연회가 있었다. ‘제6회 네티즌 추천 한국의 대표 작가’로 뽑힌 공지영 작가는 얼마 전에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연재하던 『도가니』를 발표했다. 그동안 논픽션 형식의 사회 문제적인 작품을 발표했던 그는 이번에 발표한 『도가니』로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청각장애인의 아픔과 사회 권력자들 앞에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는 비참한 현실을 고발했다. 우리나라가 아직은 그러고도 남을 것이라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이런 소설을 접하고 보니 답답한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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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흠 작가의 사회로 진행된 강연은 신작에 관한 질문과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작가에 대한 궁금증들로 진행되었다. 『도가니』는 작가가 평소에 지배층끼리의 돈독한 결연에 대해 언젠가는 한번쯤 쓰고 싶어 했던 소설이었다. 어느 신문에서 마지막 선거 공판이 있던 날, 법정 풍경을 그린 기사를 보고난 후였다.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 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 그 ‘울부짖음’이라는 단어가 상상도 되지 않으면서 가슴부터 아파왔다. 그 후로 다른 소설은 쓸 수가 없었단다. 공지영 작가는 직접 피해자들을 만나 취재를 먼저 했다. 그전에 청각장애인에 대한 자료를 찾아 다 읽었다. 다른 장애인들보다 청각장애인들은 폐쇄적이다. 그들은 말을 못하기 때문에 그들만의 언어를 쓴다. 웬만한 비밀은 말하지 않으며 자기들끼리만 공유한다. 취재가 힘들었다. 그들의 세계에 작가를 들여보내지 않았던 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작가의 마음을 알게 되자 마음을 열어주었고 긴 시간 동안 자발적으로 많이 도와줬다고 한다. 『도가니』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연재하는 동안 많은 분들이 격려를 해주었으며 세상엔 아직도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해준 소설이었다.
제목은 아서 밀러의 17세기 말 세일럼 마녀사냥을 소재로 한 작품 『크루시블』(the Crucible, 도가니)에서 따왔다. ‘도가니‘라는 뜻이 ’혹독한 시련‘을 말해주니 나중에 마녀사냥과 같은 글을 쓸 때 꼭 사용하겠다고 25년 전쯤에 마음먹었다. 그것을 이번에 사용했다. 미친 듯한 현실이 ‘도가니‘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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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반가량 공지영 작가는 작품과 독자의 질문에 성실히 답변해주었다. 강연이 끝나고 작가의 사인회가 있었다. 공지영 작가는 사인을 받으러 온 독자들과 한마디씩 주고받으며 사인을 해주었다. 늦은 시간까지 독자도 작가도 피곤했을 텐데도 그런 기색 없이 하루의 일과를 마쳤다.
둘째 날, 푸른 하늘과 양떼 목장 그리고 하조대 바다
전날 피곤하고 힘들었을 텐데도 아침엔 일찍 눈이 떠졌다. 아마도 여행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콘도 전체를 감싸고 있는 안개와 그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이 환상적이었다. 남들보다 일찍 짐을 챙기고 밥을 먹고 어제와 다르게 1호차에서 3호차로 옮겼다.
3호차엔 많은 사람들이 알진 못하지만 이미 두어 권의 책을 내신 작가가 있었다. 올해로 일흔이 되셨다는 황안나 할머니시다. 전날 연극에서 가장 늙은 점순 역할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하고 여우주연상을 따신 분이다. ‘암벽 등반에, 무박 산행에, 온갖 산들 종주에, 네팔 트레킹을 하며 자신의 삶을 신나고 즐겁게 꾸려오던 안나 할머니.’ 황 할머니는 교사를 하시다가 정년퇴임을 하신 후 국토 종단을 하고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책을 내셨다. 일흔이라는 연세가 아무리 쳐다보고 있어도 거짓말 같아 믿어지지 않았다. 하조대 계단을 올라갈 때는 겨우 그 계단? 오르면서도 헉헉거리는 내가 창피할 정도였다. 다리 안 아프시냐고 물으니 나이가 있는데 그럴 리가 있겠냐고 반문하셨다. 운동을 오랫동안 하셨고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으므로 남들보다 덜 아프실 뿐이란다. 황 할머니는 책을 내고 여기저기 강연을 다니신단다. 곧 올레 다녀온 책도 내실 계획이라고 했다. 또 이날 <인간극장>을 찍자고 연락을 받아 조만간 브라운관에서도 황 할머니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를 보면서 난 미래의 나를 점찍었다. 자극을 받았고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며 살면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황 할머니의 연세가 되어도 젊은이들 못지않게 건강하게 살려면 말이다. 그러나 역시 돌아와 보니 말짱 도루묵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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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과 다르게 이날은 화창한 날이었다.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었고 덕분에 양떼 목장의 언덕 위까지 오르면서 바람 소리와 빠르게 지나는 구름들을 보면서 즐거웠다. 드넓은 목장과 저 푸른 초원을 산책하듯 돌았다. 내려가는 길엔 김선우 작가와 함께 걸었다. 작년 문학캠프에서 만나 쾌활한 성격에 쏙 반해버렸던 김선우 작가, 웹진 <나비>(http://www.nabeeya.net)에 연재하고 있는 『캔들 플라워』에 대한 이야기도 살짝 들었고, 곧 뉴질랜드 간다는 얘기도 들었으며 <나비>에 자주 들어와서 댓글도 많이 달라는 당부의 말씀도 들었다. ^^ 내려와 양에게 먹이를 주면서 그녀는 살아 있는 따뜻한 것이 손바닥을 핥아 깜짝 놀랐다고 나중에 얘길 했다. 사진을 찍는다는 핑계로 먹이를 주지 않았던 나는 조금 후회를 했다. 윗니가 없는 양이 먹이를 먹으면서 핥아주는 그 기분을 느껴봤어야 했는데 말이다. 역시 여행을 가면 가이드가 해보라는 것은 군말 않고 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웃겼던 것은 양이 하얀색이라 믿었건만 실제로 눈에 보인 양들은 모두 회색양이었다는 거다. 가이드가 그렇게 말을 했어도 설마 했는데 비대한 회색 양들을 보는 순간 ‘저건 양이 아니라 양의 탈을 쓴 돼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 목장을 나와 근처 식당으로 가서 황태 정식을 먹었다. 황태국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역시 본고장에서 먹는 음식은 뭐든지 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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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하조대로 향했다. 주차장으로 들어서자 오래전에 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현지 해설사의 하조대에 얽힌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경청하고 등대와 하조대에 올라 경치를 감상했다. 가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면 해외엔 왜 나가나 하는 생각이 든다. 등대에서 바라보는 바다도, 하조대에서 내려다 본 등대의 모습도 그 어느 외국의 풍광보다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하조대 해수욕장, 여름이 다 지나도록 바다 구경은커녕 바닷물에 발 한번 담그지 못한 아쉬움을 이곳에서 다 풀었다. 비록 수영을 하진 못했지만 부드러운 모래를 밟는 순간 그 아쉬움이 싹 사라지고 말았다. 이곳에서 우린 단체사진을 찍었다. 뒤에 숨어 그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재미도 나쁘지 않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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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선 둘째 날의 마지막 행선지인 낙산사로 출발했다. 몇 해 전 산불에 탄 낙산사, 사라진 문화재는 복구하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거의 복구가 되었다.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해수관음상과 그곳에서 바라본 바다와 낙산 해수욕장의 풍경들, 이곳에서 한 달 정도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바다만 바라보고 있어도 시간이 저절로 지나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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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숙소인 속초의 아이파크 콘도로 왔다. 객실을 배정받고 어제와 같이 저녁을 먹은 후 작가의 강연을 들으러 갔다. 오늘은 우리의 ‘백작’, 『다이어트의 여왕』의 백영옥 작가와 한국의 젊은 작가로 뽑힌 『그 여자의 침대』의 박현욱 작가, 현재 웹진 <나비>에서 『캔들 플라워』를 연재하고 있는 김선우 작가였다. 사회를 보신 분은 박진 문학평론가였다. 이날의 주제는 ‘젊은 세대와의 소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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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이들에 대해 김선우 작가는 그날 경험했던 양떼 목장의 양들을 예로 들며 윗니가 없는 양인 줄도 모르고 먹이를 주면서 당연히 이빨이 있을 거라 상상하다가 놀랐던 것처럼 지금의 젊은 세대들 역시 응당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감을 가지고 뛰어 들지만 막상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런 때 그들이 느낄 상실감이나 순간적 놀라움이 오늘 먹이를 핥던 그 양들을 보며 알게 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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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젊은 여성들의 트렌드에 맞는 글을 써온 백영옥 작가에게 젊은 여성의 진짜 관심사와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박진 평론가의 말에 백영옥 작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초식남이든 건어물녀든 간에 그래도 역시 20대에겐 사랑, 만남, 이별이 관심사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 역시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글을 써왔지만 패션이나 다이어트와 같은 표면적인 것들을 통해 내면의 고민이나 딜레마 같은 것을 써왔다고 했다. 모든 작가는 자신의 소설을 통해 자신의 자서전을 쓴다는 이승우 작가의 말처럼 그 역시 『다이어트의 여왕』에 나오는 연두를 통해 그와 닮은 모습을 찾아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한 앞으로 좀더 인간 본연의 것을 심도 있게 그려낼 소설을 쓰고 싶다며 21세기에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낼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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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욱 작가는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소설보다는 동명의 영화로 더 많이 알려진 작가다. 독특한 소재로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결혼관과 연애관을 보여주었다. 그는 예전과 다르게 우리의 의식구조는 달라지고 있으므로 그런 젊은이들에게 ‘너희가 틀리다’고 말을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올바르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안 된다. 또한 그는 원작 소설의 영화화에 대해 기본적으로 영화는 영화고 소설은 소설이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원작소설보다 나은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면 좋겠지만 대부분이 그렇지 못한다. 많은 부분에서 작가가 표현한 주인공들의 성격이 달라지고 장면들이 영화에선 다르게 표현이 되거나 잘라지고 만다고 했다. 그래서 원작을 영화로 만든다고 해서 환호하고 기뻐하는 작가는 드물 것이라며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을 보면 불만스러워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세 작가와 함께한 시간인데다 낭독의 시간이 있었고, 겨우 몇 개의 질문밖에 하지 않았는데도 두 시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사인의 시간을 가지고 사진을 찍고 어제보다 더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참석한 독자들은 하나같이 지친 기색 없이 밝은 표정이었다. 마지막 날이라고 광란(?)의 밤을 보낸 분들도 적지 않았지만 나는 피곤한 덕분에 그날 밤 역시 푹 자기도 했다.
셋째 날, 설악산 권금성과 김유정문학관을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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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내렸다. 케이블카를 타야 하는데 비가 내리다니 조금 속상한 마음이 들었지만 막상 케이블카를 타니 환상적인 풍경에 그 말이 쏙 들어가 버렸다. 다만 권금성에 올라 안개 낀 모습만 바라보니 그게 아쉬웠을 뿐이다. 너무나 오랜만에 온 곳인 데다 언제 또 여길 올 수 있겠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비는 김유정문학관으로 가는 동안 사라지고 없었다. 동해라는 입지조건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점심을 먹으러 갔던 춘천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다.
점심으로 먹은 닭갈비, 예전에 춘천을 찾아 먹었던 그 맛이 어땠는지는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집 부근에서 사 먹던 닭갈비 맛하곤 확실히 달랐다. 점심을 맛있게 먹은 후 마지막 장소인 김유정문학관으로 향했다. 한때 이효석의 작품들을 너무 재미있게 읽은 후 비슷한 시기의 작가며 같은 구인회 소속이었던 김유정의 전집을 구해 읽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태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터라 김유정문학관에 도착해서 그곳 관장님이 설명해주시는 김유정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어 너무나 안타까웠다. 김탁환 작가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곳에 어떤 사람이 다녀왔으며 그곳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곳과 관련된 책을 읽고 여행을 떠난다고 했는데 나는 김유정의 작품 하나 읽지 않고 왔으니 멍청한 여행을 한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해서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김유정 전집을 빌렸다. 관장님이 김유정의 문학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길 너무나 재미있게 말씀을 해주셔서 읽지 않고선 못 배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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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장님의 김유정 문학에 관한 이야기가 끝난 후 이번 여행의 두 번째 하이라이트인 문학 퀴즈 시간이 되었다. 다양하고 많은 선물이 걸려 있었던 문학퀴즈, 올해도 역시 혀를 내두를 만큼 박식한 독자들로 인해 문제 하나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다이어트의 여왕』, 「봄봄」, 『토지』, 『그 여자의 침대』 등 다양한 작품에서 다양한 문제들을 냈지만 다들 온라인 서점 회원들답게 잘 풀었다. ^^ 또한 많은 선물들이 골고루 돌아갈 수 있게끔 은근히 잘 조절했던 주최 측의 노고. 역시 고품격 YES24였다.
돌아오는 길에 3호차 가이드였던 김다은 님은 조별 퀴즈로 탄 선물을 나눠주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따뜻한 이별의 메모지를 주어 감동을 시켰다. 얼떨결에 3호차가 탑승한 나는 선물씩이나 받고 괜히 행복해했다. 작년에 1호차 가이드였던(올해도 1호차를 담당한) 이유미 님 덕분에 즐거운 여행을 보냈는데 올해는 3호차 김다은 님 덕분에 행복해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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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에서 독자 대표로서 마지막 인사를 나눈 한 독자는 2박 3일 동안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며 구경까지 시켜준 YES24에 감사한다고 했다. 나 역시 일이라기보다는 휴가다운 휴가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탓에 이번 문학캠프가 너무나 즐거운 휴가가 되었던 것 같다. 하긴 책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작가와 함께하는 문학캠프만큼 즐겁고 신나는 휴가가 어디 있겠는가마는 말이다.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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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nose
2012.08.24
호호용용
2009.09.16
두레박
2009.09.16
오늘도 다시 또 가고 싶은 욕구가 소낙비처럼 주욱주욱 마음을 적시고 있네요.
가이드 선생님들과 예스24 선생님들께서 수고해주신 덕분으로 8월의 아름다움을 문학을 좋아하는 분들과 함께 문학의 고향을 찾아 그 여정에 동참했다는 시간들이 내내 오늘도 삶의 촉진제가 되고 있습니다. 모두모두 아름다운 가을과 함께 멋진 시간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정말 꼭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이 밤을 설레게 합니다. ~~~~^^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모두모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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