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들어진 할리우드 영화 같은 만화 - 『용오』
2005.02.22

러셀 크로우와 맥 라이언이 주연한 <프루프 오브 라이프>에도 교섭인이 나온다. <네고시에이터>의 교섭인과는 달리, 그는 경찰이 아닌 직업인이다. 보험회사에 속해 있거나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유괴 사건의 범인들과 교섭하는 일을 주로 한다. <네고시에이터>처럼 현장에서 교섭을 하는 일은 많지 않다. 주로 전화로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협상을 하고, 다시 조건을 내세우는 등의 일을 전문적으로 한다. 경찰의 교섭인은, 어쨌거나 범인의 체포가 목적이다. 하지만 직업적인 교섭인은 인질의 무사 귀환이 목적이다. 어느 쪽이건 대단히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용오』의 주인공이 교섭인임을 알고,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알고 있던 영화 속의 교섭인과는 약간 달랐다. 1권에서는 파키스탄의 게릴라에게 납치된 일본인을 구하기 위한 교섭을 한다. 파키스탄의 정부군은 게릴라와 협상할 의사가 전혀 없고, 외부인의 개입도 원하지 않는다. 용오는 독자적으로 교섭을 시작하고, 적지로 들어가야 한다. 죽음의 위협을 넘기고, 상대의 신뢰를 얻어낸 후에야 용오는 교섭을 시작한다. 이처럼 용오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극한의 교섭을 성립시킨다. 그 교섭은 단지 인질의 귀환에 국한되지 않는다. 누구, 혹은 무엇을 찾아달라거나 이야기를 전해달라는 것도 교섭에 포함된다. 최고의 교섭전문가인 용오는, 상대방이 원하는 답을 구하기 위해 어떤 고난도 무릅쓴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위험한 상황에서, 용오는 상황을 장악하고 차분하게 풀어간다. 『용오』라는 만화는, 용오라는 캐릭터의 초인적인 능력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다. 두들겨 맞거나 약물을 주사당하는 것은 약과이고 온 몸에 못이 박히는 엄청난 고문을 당하면서도 용오는 결코 이성을 잃지 않는다. 이성을 유지할 엄청난 체력이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제어한다. 외국어 실력과 모든 분야에 통달한 듯한 지식 그리고 한번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그 누구라도 설득하는 말재간까지 용오는 거의 슈퍼 히어로에 가깝다. 그런 교섭인이기에, 용오는 모든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용오의 완벽함이, 『용오』를 어떤 틀에 머무르게 한다. 『용오』를 20권이 넘게 보게 되면, 모든 사건에 일종의 패턴이 있음을 알게 된다. 사건이 들어오고, 용오가 개입하게 되면 반작용이 온다. 대개의 경우 용오는 교섭을 해야 할 상대에게 붙잡히고, 끔찍한 고문을 당한다. 그런 고문 속에서도 용오는 어떤 제안을 한다. 물 위에 동심원이 퍼져나가듯, 용오의 제안은 위력을 발휘하고 기어이 용오가 이미 설정해놓은 해결로 나아간다. 이미 완성된 시나리오를, 초인적인 능력으로 완성시키는 용오의 모습은 매력적이면서도 어딘가 현실감이 없다. 그런 점에서 사라진 미국 사진기자를 찾아가는 에피소드는, 유별난 즐거움을 안겨준다. 용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용오의 친구들이 태국으로 향한다. 용오를 질투하는 소년은, 왜 친구들이 그토록 용오를 숭배하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결국은 알게 된다. “용오라고 내가 아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은 이 방콕에서 죽었어. 하지만 그의 친구들은 그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아. 그의 시체가 발견됐는데도, 걸레조각이 된 유품을 직접 보았는데도, 그들의 마음속에서 용오는 살아 있어. 용오라는 사람은 그 정도로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었어. 할 수만 있다면 나도 그 사람처럼 되고 싶어.”
슈퍼 히어로 만화를 보는 기분으로, 잘 세팅된 드라마틱한 사건 자체를 즐긴다는 기분으로 본다면 『용오』는 잘 구성된 할리우드 영화 같다. 교섭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세상 모든 이해관계를 파헤쳐보는 <용오>를 읽으면, 용오와 함께 세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여전히 인종차별이 아니라 신분 차별이 자행되는 인도, 문화혁명의 상처가 지금도 뚜렷하게 남아있는 중국, 자본주의로 바뀐 후에도 본질은 변하지 않은 러시아 등등 세계의 야만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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