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일단 치킨 먹고, 사춘기!』 박효미 작가 서면 인터뷰
따뜻하게 응원해 주고 싶어요. ‘무슨 일이든 다 지나가기 마련이야. 그러니, 괜찮아.’ 하고요. (2024.02.29)
『일단 치킨 먹고, 사춘기!』는 어린이들이 겪는 일상 속 문제와 질문 들을 작품에 담아 온 박효미 작가의 단편 동화집이다. 각 다섯 편의 이야기에는 사춘기를 겪으며 예상치 못한 갈등과 성장을 거듭하는 고학년 어린이들의 내면과 고찰이 담겨 있다. 또래와의 연애 그리고 우정, 그 속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자신의 마음을 어느 때보다 골똘히 들여다보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야기 밖 독자들의 공감과 지지를 사기에 충분하다.
오랜만에 선보이는 단편 동화집입니다. 『일단 치킨 먹고, 사춘기!』에는 작가님의 대표작 『블랙아웃』, 『오메 돈 벌자고?』나 최근 신작 「탁구장의 사회생활」 시리즈 등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의 작품들이 실려 있는데요. 이 다섯 이야기를 쓰시게 된, 그리고 한데 묶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시기를 지나면서 깊은 동굴 안에서 살아가는 느낌이었어요. 그때 쓴 작품들이에요. 동굴 안에서의 생활은 작은 일에 연연하면서 일희일비하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었지요. 틀림없이 나인데, 어찌할 수 없는 나를 발견하는 것. 아주 특이한 경험이었어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어서 힘든 부분이 있었고, 나와 다른 사람 사이의 거리 조절이 어렵기도 했습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없는 나’, ‘다루기 힘든 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나’가 모여 이야기가 되었고요.
『일단 치킨 먹고, 사춘기!』를 하나의 키워드로 표현한다면 ‘관계’ 아닌가 싶어요. 다섯 단편 모두 나와 타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나와 세상, 나와 나 사이의 관계를 그리고 있는데요. 관계 안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며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애틋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춘기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그들의 ‘관계’에 집중하신 이유가 있다면요?
인간관계, 사회생활……. 다들 참으로 쉽게 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것만큼 어려운 게 또 있을까요? 살아가는 일이란 관계에서 시작해 관계로 끝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지요.
사춘기 때는 친구가 하늘이잖아요. 어떤 사람이, 어떤 관계가 자신의 ‘하늘’이라고 여길 때가 누구에게나 있고요. 그런데 되게 사소해 보이는 ‘어느 하나’가 그 관계를 망치기도, 행복하게도 만들어요. 현실이 지옥이 되는 건 찰나의 순간입니다. 물론 그것을 통해 성장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 지난한 과정이 만만치 않아요. 어른인 저도, 날마다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걸요. 이런 부분들을 공감하고 위로해 줄 이야기를 풀어 보고 싶었어요.
편집자로서 인상 깊었던 건 복잡한 갈등 상황에 놓인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음식으로 소화하고 승화시킨다는 점이었어요. 「사랑의 물 분자」 주인공 ‘하나’는 남자 친구와의 이별을 치킨 한 마리로 달래고, 「전류 차단의 원칙」 주인공 ‘희원’이는 언니 ‘희재’와 친한 친구 ‘진원’ 사이에서 흐르는 핑크빛 기류를 못마땅해하고 질투하는데요. 그 마음은 맵고 단 음식을 향한 욕구로도 드러나죠. 아마도 이런 부분은 『일단 치킨 먹고, 사춘기!』라는 제목과도 연결되지 않을까 싶고요. 어린이 독자들에게 가장 공감을 얻을 것 같은 지점이기도 해요.
저는 먹는 걸 좋아해요. 맛있는 음식에 환장해요. 맛없는 음식은 말도 못 하게 싫어하고요. 맛있는 걸 먹는 일이라면 열 일 제쳐 두고 쫓아가는, 아주 일차원적인 인간이죠.(웃음) 그래서 그런지 힘들고 지친 순간을 맞이하면 일부러라도 맛있는 걸 먹으려고 해요. 잠깐일지라도 먹으면서 잊을 수 있으니까요.
먹는다는 건 본능이고 아주 기본적인 욕구잖아요. 내게 충실한 순간들이고요. 감정에 휘둘리는 때이기도 하죠. 그런 찰나들을 이야기에 담고 싶었어요. 사회적인 탈을 벗어 버리는 순간들이요. 그리고 그러한 순간들이 마땅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질 때와 상황이 있다는 것도요.
다섯 단편 중 작가님 마음에 가장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어떤 장면에 특별히 애착이 가는지도 궁금합니다.
작품을 쓰다 보면 제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보여 주고 싶지 않은 하찮은 감정들이 절 지배하죠. 경험이 만든 트라우마일 때도 있고, 치유되지 못한 어린 시절의 저일 때도 있어요. 그걸 표현하는 일이 꽤나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유머를 가미하거나 사건을 크게 확장해 이야기를 만들 때가 많답니다. 이야기 속의 깊은 그늘은 그늘로 남긴 채로요.
그런데 『일단 치킨 먹고, 사춘기!』 속 단편들은 제가 예전에 썼던 작품들에 비하면 트라우마나 감정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어요. 특히 「나는 여기 있다」에서 보여 주는 주인공의 집착이 그러하죠. SNS라는 공간, 문화촌이라는 거리. 전자는 가상의 공간이고 후자는 현실의 공간이에요. 주인공 ‘재희’는 이 두 공간 사이에서 혼동하게 되는데, 그 혼동은 재희가 가진 상처와 연관되어 있어요. 저는 그런 아이를 따뜻하게 응원해 주고 싶어요. ‘무슨 일이든 다 지나가기 마련이야. 그러니, 괜찮아.’ 하고요.
『일단 치킨 먹고, 사춘기!』를 읽고 독자들이 꼭 느꼈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요?
누구나 어렵고 헷갈리는 때를 맞이해요. 그럭저럭 살아가다 모든 게 혼란스러운 시기가 불현듯 찾아오죠.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빠져나가기 힘들 때가 있어요. 내 노력으로 길이 안 보이는 그런 순간들.
누구나 그런 때가 있답니다. 나만 그러한 건 아니란 뜻이에요. 세상천지 나 혼자 그렇다면 무지하게 외로울 텐데, 누구든 그렇다 하면 아주 쪼끔은 지낼 만해요. 그러다가 문득 단단해진 날 발견할 수도 있어요. 다들 그러하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관심을 가지고 계신 이야기 소재나 주제가 있으실까요?
바야흐로 도파민 과잉의 시대예요. 계속해서 강렬한 자극을 원하고, 그럴수록 뇌는 아주 즉각적인 보상을 요구해요. 우리는 뇌가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요. 그러면서도 AI와 공존해야 하죠. 이에 따라 인간의 사고방식, 생활양식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지금의 사회에서 인간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가치는 과연 뭘까요? 예전에는 가족의 가치, 공동체의 이념을 중시했다면 미래 사회에는 어떤 가치가 새롭게 등장할까요?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존재들이 궁금합니다. 이를테면 아주 나이가 많은 노인 세대와 어린이,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형태의 가족관계나 친구 관계, 노동이 사라진 시대의 인간들, 인공지능을 갖게 된 동식물, 기능 이상의 지능을 갖춘 물건들, 사이보그들……. 이들이 품고 있을 이야기에 관심이 가요.
이제 곧 새 학기가 시작될 텐데요. 각자 나름의 사춘기를 보내며 고군분투할 우리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웃으면 좋겠어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일이 함께 웃는 일 같아요. 매일매일 재밌는 일을 딱 한 가지씩만 만들어 보세요. 오늘 우울하다면, 웃기는 일 딱 한 가지만 만들어 보는 거죠. 그것도 어렵다면 거울을 보며 웃어 봅시다. 입꼬리를 올려 미소도 지어 보고 소리 내어 ‘히히히’, ‘하하하’, ‘흐흐흐’, ‘크하학’ 하고 크게요. 그럼 기분이 좋아져요. 전보다 훨씬요. 그러니 우리, 하루에 딱 한 번, 3분만 투자해요. 웃어 보기! 재밌게 웃어 보기! 친구랑 함께 웃어 보기! 딱 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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