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마흔에 글을 써야 할까?
『마흔에 글을 쓴다는 것』 권수호 작가 서면 인터뷰
글쓰기는 ‘의미’를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부터가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에, 생활 속에서 발견한 순간의 기쁨과 의미들은 다른 평범한 이들에게도 공감이 됩니다. (2024.01.25)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은 나이, 마흔. 어린 시절에는 마흔이라는 나이가 되면 좀 더 많은 것을 이뤄내고, 안정과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마흔이 되어보면 불안과 후회뿐이다. 인생의 절반 정도를 살아냈지만, 앞으로 그만큼 더 살아가야 하는 우리로서 이 마흔이라는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마흔에 글을 쓴다는 것』은 온갖 걱정으로 하루를 채우며 살아가는 모든 마흔이들에게 행복한 마흔 이후의 삶을 위해 ‘글쓰기’를 권하는 내용이다. 소소하지만 보석 같은 일상의 순간을 찾아내는 기법과 글쓰기의 행복을 담은 책으로, 모든 마흔이들에게 글을 통한 삶의 즐거움과 행복을 찾아볼 것을 권유한다.
마흔은 어떤 나이인가요? 왜 하필 마흔의 글쓰기인가요?
‘불혹’이라는 말은 마흔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마흔을 지나온 분이라면 고개를 끄덕이실 겁니다. 나이를 먹었어도 우리는 끊임없이 휘둘립니다. 건강, 직장, 인간관계, 그리고 내적 갈등까지. 어쩌면 불혹은 모든 마흔이들의 바람이자 지향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흔은 여전히 불안하고, 불완전한 시기입니다. 쇼펜하우어의 말마따나 고통과 권태로 가득 찬 시간이기도 하지요. 열심히 사는데 왜 행복하지 않은 걸까요.
인생의 후반전이 시작되고 나서야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지금의 시간이 무척 소중하게 느껴졌죠. 과거와 미래에서 벗어나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찰나의 시간을 붙잡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힘겨운 일상에서 ‘작지만 빛나는 순간’을 찾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다가 발견한 행복과 삶의 의미를 글로 옮겨 적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삶의 에너지를 되찾게 된 것이죠.
마흔의 글쓰기는 단순히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 묻고 답하는 과정입니다. 이것은 우리 삶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책은 일종의 ‘라이트라이팅’ 청첩장이라고 하셨는데, ‘라이트라이팅’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라이트라이팅’은 일상의 빛나는(light) 순간을 바라보고 가볍게(light) 글을 쓰자(writing)는 의미입니다. 누구에게나 삶의 곳곳에 반짝이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을 써 찾아보려 하기 전까지는 그게 잘 안 보이죠. 라이트라이팅은 마치 낚싯대를 건져 올리듯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일상에서 반짝이는 순간의 의미를 찾아내는 연습인 동시에, 늘 가까이에 있는 행복을 실질로 받아들이는 마음 트레이닝입니다. 부담스러운 것으로만 생각했던 ‘글쓰기’가 사실 친근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기도 하고요.
매일 똑같은 일상, 별반 다르지 않은 하루로 지내는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도 남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요?
마흔이라는 나이가 그렇습니다. 어느 정도 삶의 패턴이 자리 잡은 시기죠. 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냅니다. 저 역시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집에 돌아와 설거지와 청소를 합니다. 밥 먹고 아이와 놀아주다 보면 벌써 잘 시간입니다. 가끔 여행 가는 것 말고는 거기서 거기인 날들이에요. 이런 날이 반복되다 보면 ‘내가 왜 살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는 욕구입니다.
글쓰기는 ‘의미’를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부터가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에, 생활 속에서 발견한 순간의 기쁨과 의미들은 다른 평범한 이들에게도 공감이 됩니다. 이제 막 글을 쓰려는 사람들의 고민 중 하나가 ‘과연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내가 글을 쓸 자격이 있나?’일 겁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럴 때마다 저는 이렇게 마음을 달랬어요. ‘세상엔 나와 비슷한 인간 한 명쯤은 있을 거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불편을 겪고 있을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 보면 어떨까? 결국 나 자신에게 하는 말과 다름없습니다. 나의 글에 동의하고 공감할 사람은 딱 한 사람이면 됩니다. 내가 되었든, 다른 누가 되었든 말이죠.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내 인생도 글이 될 수 있겠구나.
소소한 일상을 빛나는 삶으로 바꿔주는 라이트라이팅을 위해 글감을 어떻게 찾으시나요? 이 책에서 글감을 찾는 방법으로 4가지를 알려주셨는데, 그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관찰과 경험, 행복과 의미를 통해 글감을 찾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관찰이죠. 매일 똑같아 보이는 일상도 자세히 관찰하면 새롭게 다가옵니다. 그동안 너무 익숙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질문을 던져 보는 겁니다. 지나가는 사람, 풍경, 존재들에게 ‘왜?’라고 묻는 것이 관찰입니다.
또한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일이 글쓰기의 소재가 됩니다. 역동적이고 특별한 경험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인생은 작고 평범한 순간으로 채워져 있으니까요. 설사 나쁜 일이라 할지라도 무언가를 배웠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좋은 글감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에 비해 행복한 기분은 아주 잠깐 왔다가 사라집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요. 글쓰기는 이렇게 어물쩍 지나가 버리는 행복의 감정을 붙잡게 해줍니다. 하루하루 발견한 행복한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나를 사랑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글을 쓰든 쓰지 않든 삶의 시간은 쉼 없이 흘러갑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저는 쓰기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자를 결합하고 해체할 때 이루어지는 사고의 확장이죠. 작은 것에 의미를 부여할 때 우리의 생각은 특별해집니다.
작가님은 밥굶글, 타임 어택 글쓰기를 하신다고 하셨는데, 그건 어떤 의미일까요? 또한 글럼프란 무엇이며, 글럼프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하하. 글을 쓰면서 생긴 여러 가지 상황들을 재밌게 풀어 보려다 그런 말을 만든 것 같은데요. 먼저 ‘밥굶글’은 말 그대로 밥 먹을 시간에 쓴 글입니다. 저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게 도무지 안 되어서 점심시간을 활용해 글을 썼는데, 의외로 잘 되더라고요. 게다가 시간이 제한되어 있기에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집중, 또 집중하며 한 글자 한 글자 타이핑을 합니다. 이게 타임 어택 글쓰기죠. (웃음) 벼락을 치듯 마감이 가까워질수록 초인적인(?) 힘이 생기는 건 글쓰기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글럼프는 ‘글 슬럼프’를 합친 말입니다. 쓰긴 써야 하는데, 쓰기도 싫고 뭘 써야 할지도 모르는 일종의 아노미 상태죠. 무엇이든지 오랜만에 하려면 힘이 들지만, 글쓰기는 근력과 감각의 영역이라 더 그런 것 같아요. 글럼프에서 헤어 나오는 방법은 전혀 거창하지 않습니다. 쓰기 싫은 그 마음을 인정하면서 한 글자, 한 줄, 한 문단을 적어 보는 것뿐이죠. 평소 생활에서도 글쓰기와 거리를 두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글감이 떠오를 때 메모하고, 길 가다 만난 장면들을 사진과 글로 간단하게라도 남겨두면 좋겠습니다.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은 다시 시작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작가님에게 글쓰기란 어떤 의미일까요?
‘글’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한 인간이 ‘쓰는 사람’이 되고 6년이 지났습니다. 책을 출간하고 작가가 된 건 제가 겪은 변화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입니다. 저는 그동안 ‘삶을 글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이어오며 하루를 자세히 관찰했고, 일상의 많은 시간을 (멍때리며 흘리지 않고 의식적으로) 깨어 있는 상태로 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글을 통해 팍팍한 인생 속에 숨어 있던 작은 의미에 가까이 다가가자, 신기하게도 그동안 흩뿌려지듯 사라지던 찰나의 행복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단지 글을 썼을 뿐인데 삶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물론 좋은 의미로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글쓰기 즉, ‘라이트라이팅’을 감히 ‘행복을 시도하는 행위’라고 부릅니다.
마지막으로 수많은 마흔이들에게 어떻게 글쓰기를 시작하면 좋을지 조언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비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운이 좋아 글쓰기를 먼저 시작했을 뿐이죠. 쓰기를 모르던 사람이 쓰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에이, 내가 무슨 글이야’라는 생각을 ‘나도 글 한번 써 볼까?’로 바꿔 보는 것입니다. 그동안 부담스럽다고 생각했던 ‘글쓰기’라는 행위가 사실은 무척 가볍고 친근한 일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다음부터는 아주 간단합니다. 시간을 할애해 엉덩이를 붙이고 실제로 글을 쓰면 됩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쓰려고 하지 말고 자신 혹은 나와 비슷한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써보기를 권합니다. 잘 쓰고 못 쓰고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혼자서 시작하기 막연하다면, 쓸 수 있도록 만드는 시스템에 참여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일례로 제가 운영하고 있는 글쓰기 모임에 일주일에 두 번 글을 쓰고 공유하는 형식으로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글을 사랑하고, 쓰려는 꿈을 가진 사람들과 서로 응원을 주고받는다면 어렵게만 여기던 글쓰기도 분명 즐거운 일이 될 겁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져 보면 자신에게 맞는 글쓰기 모임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마흔의 글쓰기가 중요한 이유는 온전히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입니다. 과거의 걱정과 미래의 불안에서 벗어나 하루를 관찰하고, 좋은 것을 기록하며 오래도록 간직하려는 노력은 결국 ‘삶에 대한 사랑’입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 온, 저를 포함한 모든 마흔이가 글쓰기를 통해 자신과 삶과 세상을 사랑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권수호 일상의 빛나는 순간을 찾아 쓰는 라이트라이터. 쓰는 사람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마흔이 다 되어 글쓰기를 시작했다. 이리저리 끌려다니던 일상이 바뀌었고 눈 뜨고 잠들기까지 모든 순간이 명료하게 다가왔다. 인생의 목표는 하루하루 충실하게 보내며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기록하는 것. 허공에 흩뿌려진 시간이 비로소 나의 손아귀에 내려앉는 글쓰기의 놀라운 경험을 전파하는 것. 그리하여 세상에 쓰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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