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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토박이도 몰랐던 ‘진짜’ 구로의 위대한 유산

『구로동 헤리티지』 박진서 작가 서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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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동네를 사랑한다는 것이 딱 그런 것 같아요. 혼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 같다가도, 이 동네에 살고 있거나 살았던, 앞으로 살아간 사람들과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는 순간들이 있거든요. (2023.12.12)


24년 구로 토박이인 『구로동 헤리티지』의 박진서 저자는 자기 동네에 대한 외지 사람들의 인식이 세대별로 다르다는 사실에 대한 흥미를 느꼈다. 삶터이자 배움터, 놀이터이자 일터였던 구로동은 언제나 ‘공단, 디지털 단지, 중국인’으로 정의되는 모습 그 이상을 보여 주었다. 동네를 누비고 살피고 맛보고 즐길수록 생경한 매력들을 발견했고 때로 노동, 인권, 차별, 다문화 등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과 맞닥뜨리기도 했다. 그렇게 발견한 구로동의 새로운 매력과 가능성, 불편하지만 외면해서는 안 될 고민과 물음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고 말한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이번에 신간 『구로동 헤리티지』를 출간하셨는데요. 먼저 독자들에게 작가님에 관해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구로동 헤리티지』로 독자 여러분들께 처음 인사드리는 구로동 생활 24년 차, 박진서라고 합니다. 예술경영과 방송 영상을 공부하면서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사람을 둘러싼 공간과 장소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에 특히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번에 제 정체성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구로동이라는 장소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이 책은 그동안 쓴 글을 모아 한 권으로 엮은 것이라고 소개하셨어요. 구로에 살면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어느 날엔가 부모님이 물어보셨습니다. “우리는 이 동네가 마음에 들어서 여기서 살기로 결정했던 건데, 너는 이 동네를 어떻게 생각하니?”라고요. 한 번도 동네를 떠나 보지 않았던지라 부모님이 이주를 결정하신 동네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데, 당신께서 한 선택이 저에게는 어땠는지 궁금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질문에 대해 선뜻 대답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구로동이라는 동네는 저에게 너무나 당연한 디폴트값이었고, ‘구로동이 아닌 곳에 사는 나’를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거죠. 정말 할 얘기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아서 대답을 못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로동에 대한 내 얘기를 하려면 20년이 넘는 시간을 되짚어 보아야 하니까요.

그래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글을 쓰게 된 가장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저 스스로에게조차 답할 수 없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다 보니 한 권의 책으로 이어지게 되었네요.

책 제목에 많은 내용과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구로동 헤리티지』라는 제목은 사실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해 주었는데, 여러 후보 중에 가장 눈에 띄었던 제목이에요. ‘헤리티지(Heritage)’, 즉 ‘유산’이라는 말에 특히 끌렸던 것 같아요. 자연물과 인공물, 유형과 무형을 가리지 않고 시간이 축적된 어떤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잖아요. 과거의 시간들이 유산이라는 형태로 현재에 남아 있고 그것이 미래로 전승되는 것처럼 서로 다른 시간들을 연결한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고요. 최근에는 ‘미래 유산’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만큼 다층적인 시간들을 한 번에 보여 줄 수 있는 단어라고 생각해요. 제가 이 책을 통해 함께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도 구로동을 관통하는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이런 마음이 잘 담긴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 후보 중에 단번에 이 제목을 선택했고요.

이 책은 구로를 향한 작가님의 뜨거운 순애보가 담긴 한 편의 견문록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어떤 독자들이 읽기를 바라시나요?

구로동이라는 이름을 한 번쯤 들어보신 분들이라면 『구로동 헤리티지』를 통해 구로동을 만나 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사실 구로동이 인지도 자체는 상당히 높은 동네인 것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구로동에 산다고 말했을 때 구로동이 어디냐고 되물어 보신 분은 거의 없었거든요. 그런데 인지도가 높은 만큼 편견이나 고정 관념도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구로동이라는 동네가 외부에서 많은 사람들이 놀러 오는 곳이 아니다 보니, 이름은 들어 봤지만 막상 구로동을 다녀간 분들은 별로 없는 것 같거든요. 그런 분들에게 이 책이 구로동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출간 후 독자분들의 후기를 찾아보았는데요. 『구로동 헤리티지』를 읽으면서 구로동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는 분이 많으시더라고요. 저보다 훨씬 예전에 구로동에 사셨던 분들부터 구로동을 스쳐 지나갔던 분들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나누어 주시는 이야기를 읽어 보는 게 재미있었어요. 게다가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를 찬찬히 생각해 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접했습니다. 꼭 구로동이 아니더라도 ‘우리 동네’라는 공간을 통해 더 많은 분과 연결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동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분들이 『구로동 헤리티지』와 함께해 주신다면 더욱 의미가 클 것 같아요.

구로공단이 있던 자리에 구디(구로지디털단지)와 가디(가산디지털단지)가 들어섰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달라졌는데, 공단의 노동자와 디지털 단지의 노동자는 참 다르면서도 닮은 점도 많은 것 같아요. 이런 아이러니를 보고 듣고 느껴 볼 수 있는 공간이나 기획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디지털 단지에 있는 두 개의 박물관을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하나는 책에서도 소개했던 ‘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인데요. 지금은 금천구가 된 가산디지털단지에 위치해 있어요. 또 다른 하나는 구로디지털단지에 있는 ‘G밸리산업박물관’입니다. 노동자와 산업이라는 이름의 차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두 박물관이 구로공단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지만 그 방식에 미묘한 차이가 있어요. 노동자생활체험관이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면, G밸리산업박물관은 디지털 단지에 대한 전시도 더러 진행되고 더 폭넓은 내용을 다루고 있어요. 각각 특장점이 뚜렷한 만큼 두 곳 모두 방문해 보시면 그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특히 최근에 G밸리산업박물관에서 ‘갓생시대: 공부하는 노동자, 일하는 학생’이라는 전시가 진행되고 있는데, 구로공단 시절 야학에 다니는 노동자들과 최근 갓생 열풍과 함께 퇴근 후 자기계발에 열중하는 오늘날의 노동자들을 연결하고 있어요. 그 시절 노동자의 삶이 지금의 우리와 단절된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노동자라는 정체성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전시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관람해 보시길 권해 드려요.

박물관 방문이 부담스러우면 가산디지털단지역 한편에 마련된 전시 공간도 추천드려요. 7호선 연결 통로에 위치해 있는데, 앞에서 소개한 박물관만큼 깊이 있는 전시는 아니지만, 구로공단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시간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엿보기에는 충분합니다. 그리고 그곳을 방문한 분들은 분명 박물관도 방문하고 싶어질 거예요.

구로는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히는 ‘중국인 밀집 지역’이지요. 이색적인 문화를 만끽할 수 있는 동네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 이민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생산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런 오해와 편견을 없애기 위해 지자체가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요. 독자들은 개인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미디어로부터 잠시 벗어나 진짜 사람을 만나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떤 집단에 대해 생각할 때 스스로 생각하기보다 미디어의 영향으로 편견이 생기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그걸 자신이 내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여기면서 편견에 더 깊이 매몰되고요. 우리의 편견들을 돌이켜 보면 경험에서 비롯된 것보다 누군가의 말을 전해 듣거나 미디어가 전해 준 내용에 근거한 것이 훨씬 많을 거예요. 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환경에서, 미디어가 전해 주는 사실에 의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 이민자들을 만날 수 있는 지역을 찾아가보는 걸 제안하고 싶어요. 미디어 속에서 그려지는 사건이나 일화가 아니라 삶을 이어 가는 한 명의 사람으로 그들을 바라본다면 분명 생각이 조금은 달라질 겁니다. 꼭 친구나 지인을 만들 것까지도 없고, 그들이 운영하는 가게를 방문하거나 식당에서 한 끼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요. 이렇게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속에 그들의 삶이 스며들기 시작하면, 결국 차별과 혐오를 흐릿하게 희석해 주는 순간이 찾아올 거예요.

요즘 같은 ‘노마드’ 시대에 한곳에서 오랫동안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그리고 다른 지역에도 작가님처럼 토박이들이나 혹은 자기 동네를 사랑하고 자랑하고 싶은 사람이 있겠지요. 어떤 조언을 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한곳에 정착하거나 이주하는 것이 꼭 공간적인 의미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 공간에서의 생활을 완성하는 건 결국 그곳에서 우리가 보낸 시간들이 있어야 하는 거니까요. 오랫동안 한곳에 산다는 것은 그만큼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더 많은 시간이 쌓여 있다는 의미일 테니까요. 그래서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동네의 특정 장소에 가는 것만으로 마치 친구를 만난 것처럼 편안해지는 순간이 있어요.

어느 동네든 그곳에 살다 보면 동네가 우리의 정체성에 흔적을 남기지만, 반대로 우리 스스로가 동네에 흔적을 남기기도 합니다. ‘이 동네에 나의 이름을 남기겠다’는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나를 아는 사람이 이 동네 어딘가에 있고 내가 자주 찾는 단골 가게가 나를 기억해 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동네에는 우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죠. 이렇게 내가 이 동네에 남긴 흔적들을 발견하며 따라가다 보면 동네에 대한 애정이 점점 커지지 않을까 싶어요. 집 앞에 있는 가게나 공원에서부터 자신의 흔적을 찾기 시작하면 어떨까요?

박솔뫼 작가의 소설 『인터내셔널의 밤』에 이런 말이 나와요. “나는 내가 혼자 서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혼자 서 있을 때가 있지만.” 내가 사는 동네를 사랑한다는 것이 딱 그런 것 같아요. 혼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 같다가도, 이 동네에 살고 있거나 살았던, 앞으로 살아간 사람들과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는 순간들이 있거든요. 더 많은 분이 이런 연결의 감각들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님께서 앞으로 계획하고 계신 일이나 프로젝트가 있다면 살짝 소개해 주세요. 또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구로동 헤리티지』처럼 공간을 문화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작업을 이어 가려 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지역 곳곳에 있는 서점들에 대한 연구와 리서치를 진행하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주제와 방식으로 흘러가게 될지 모르지만, 서점이라는 공간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것을 독자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최근에 공간과 장소에 대해 다루는 창작물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요. 물론 그런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생생한 감각들이 있지만, 사실 공간의 가장 근본적인 매력은 직접 그곳에 가야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생생하고 풍성하게 묘사해도 그 공간에서 실제로 느껴지는 공기와 냄새, 분위기는 그곳에만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그래서 『구로동 헤리티지』를 읽어 보신 독자들이 실제로 구로동에 와서 책에 담긴 그 이상의 무언가를 발견하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지금, 여기, 구로동에서 만나 뵙게 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박진서

구로동에서 태어나 24년째 살고 있다. 한국종합예술학교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하며 다양한 문화 예술 프로젝트에 기획자로 참여했다. 지역을 문화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 속에서 다양성을 발견해 기록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또 누구보다 단단한 ‘읽고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지면을 탐색하며 나아가는 중이다.

저자는 삶터면서 일터, 놀이터였던 구로가 항상 궁금했다. 이 지역에 대해 오해와 편견을 가진 사람은 동네 안팎에 많았다. 자신도 잘 모르거나 엉뚱하게 알고 있는 것투성이였다. 1960~1970년대의 구로는 도시의 변방, 인권의 사각지대인 동시에 수출 경제의 중심, 노동과 민주화 운동의 최전선이었다. 21세기의 구로는 IT와 벤처 산업의 교두보이자 세계화와 다문화의 교차로가 되었다. 과연 구로의 본모습은 어떠한가? 우리에게 남겨 준, 그리고 남겨 줄 유산은 무엇일까?

동네를 누비고 살피고 맛보고 즐길수록 생경한 매혹에 빠져들었다. 때로 노동, 인권, 차별, 다문화 등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글을 써서 남겼고, 구로의 새로운 매력과 가능성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구로동 헤리티지』는 그동안 쓴 글들을 다듬어 엮은 것으로, 구로를 향한 저자의 순애보가 담긴 견문록이다.



구로동 헤리티지
구로동 헤리티지
박진서 저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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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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