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짓는 사람] 김내리 문학동네 편집자 “무엇도 확신하지 않으려고 한다”
<월간 채널예스> 2021년 9월호
예전에는 작가님들께 연락을 드리는 게 낯설고 어색하고 힘들었는데 요즘은 오히려 제가 힘들 때 안부 연락을 드려요. 작가님들로부터 받는 에너지로 기운을 내고 있죠.”(2021.08.30)
김내리 문학동네 편집자의 이름을 익힌 건 소설가 권여선의 인터뷰였다. 소설집 『아직 멀었다는 말』을 출간하며 책의 목차를 적절하게 구성해준 편집자가 ‘편집계의 금손’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기억. 이후 몇몇 작가와 인터뷰할 때 ‘김내리’라는 이름은 자주 들려왔다. 현장에서 만난 김내리 편집자는 말수가 적었다. 아마도 차분한 성정이 작가들에게 믿음을 주지 않았을까. 그는 문학동네에서 편집 일을 시작해 올해로 9년 차 문학 편집자로 살아가고 있다.
“문학동네가 첫 직장이에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출판사 취직을 준비했고 다행히 입사로 이어졌어요. 시험 문제가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감독을 하던 한 편집자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응시자들에게 시험지를 나눠주고 다른 책상 앞에 앉아 종이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는 모습을 곁눈으로 살폈는데, 연재를 위해 교정을 보고 있었다는 걸 나중에 듣게 됐어요. 제가 구체적으로 접한 편집자의 첫 모습이었어요. 많이 바빠 보였는데도 상냥하게 안내를 해주었던 모습이 떠올라요.”
대학에서는 국문과를 전공했다. 3학년 전공 수업 중에 열 명 남짓한 사람들과 스터디 모임을 했는데 살면서 가장 많은 책을 읽은 시기다. 표3, 해설, 옮긴이의 말을 꼼꼼하게 챙겨 읽으며 언급된 책들을 파도 타듯 읽기 시작했는데 문학동네 책이 가장 많았다. 출판사 취업을 스터디할 때는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포함한 여러 문학상 수상집을 읽었다. 입사 후 처음 만든 책은 2014년에 출간된 『2014 제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다.
“처음 맡은 책이다 보니 의욕이 앞서서 담당 디자이너분과 표지 회의를 할 때, A4 용지에 어설프게 원하는 표지의 그림을 그려서 얘기했던 기억이 나요. 지금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예요. 표지는 시각적으로 바로 판단이 가능해서인지 ‘이게 좋겠다, 저게 좋겠다’라고 말을 얹기가 쉬운 분야일 수 있을 텐데요. 소설을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작가이고, 편집 업무를 꼼꼼히 하는 사람이 편집자인 것처럼, 어떤 작품을 이미지로 가장 잘 구현해낼 수 있는 사람은 디자이너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A4용지에 그림을 그려가며 의견을 전달한 건 디자이너의 영역을 침범한 일이었을 텐데도 디자이너 분이 너그럽게 이해해주셨어요. 『2014 제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책 만드는 일이 여러 사람과 역할을 나눠 갖는 일이라는 걸 알려준 무척 각별한 책이에요.”
김내리 편집자가 신입 시절 가장 힘들었던 일은 작가에게 전화를 거는 일이었다. 몇 개월 동안 함께 작업할 작가가 결정되면 메일로 인사한 뒤 전화 통화를 하는데 몇 번을 경험해도 긴장이 되는 업무였다.
“요즘은 메일로 연락을 더 자주해요. 제가 원래 주저리주저리 타령하듯이 쓰는 편이었는데 2017년에 『바깥은 여름』을 만들 때 김애란 작가님의 메일을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작가님의 메일을 보면 어떤 내용이 중요한지가 한눈에 보이더라고요.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게 색깔도 다르게 적용하시고. 그래서 작가님의 메일 형식을 따라 하게 됐어요. 업무 스킬을 작가님게 배운 셈이죠.”
9년 차가 된 지금, 편집자로 일하며 가장 행복할 때는 작가로부터 긍정적인 답신을 받을 때다. 함께 작업하자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주는 작가들을 마주하면 편집자로서의 시간이 조금 길어진 것 같다.
“돌이켜보면 제 삶이 부드럽게 흘러가지 않았을 때, 작가 분들께 좀더 적극적으로 계약 제안을 드렸던 것 같아요. 앞으로 지켜야 할 약속을 만듦으로써 지금의 상황을 통과해나가고 싶다는 마음이랄까요. 예전에는 작가님들께 연락을 드리는 게 낯설고 어색하고 힘들었는데 요즘은 오히려 제가 힘들 때 안부 연락을 드려요. 작가님들로부터 받는 에너지로 기운을 내고 있죠.”
문학1팀 소속인 김내리 편집자는 올해 개정판을 포함해 벌써 여덟 권의 책을 만들었다. 지금은 <주간 문학동네>에 연재중인 최정나 작가의 첫 장편 「월(wall)」과 송지현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은희경 작가의 연작소설집을 작업하고 있다. 보통 한 권만 작업하는 경우는 드물고 적게는 두 권, 많게는 네 권 정도의 책을 동시에 작업한다. 김내리 편집자에게 소설을 편집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을 물었다.
“지금 내가 마주한 글은 내 글도 아니고 다른 작가의 글도 아니고, 바로 그 작가의 글이라는 생각을 해요. 내 글이 아니기 때문에 나에게 익숙한 표현이나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어떤 걸로 쉽게 고치지 않으려고 하고, 다른 작가의 글도 아니기 때문에 다른 작가의 글에서는 미덕으로 여겨질 수 있는 부분이 이 작가의 글에서는 장점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 작가가 이런 상황에서 쓸 법한 표현은 무엇인지, 혹은 절대 안 할 것 같은 것은 무엇인지 자꾸 떠올려보고 상상해보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편집자라면 작가의 이야기를 모두 수용할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작가가 오랜 시간 동안 쓴 글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존중하는 태도를 갖지만, 고치면 더 좋을 부분은 적극적으로 의견을 낸다. 김내리 편집자는 책을 만들 때마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작가들에게 작품에 관한 피드백을 줄 때 스스로 느낀 바를 속이지 않고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저도 잘 못하는 것이지만, 무엇도 확정하거나 확신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작가의 작품을 읽었는데 그 작품이 마음에 크게 와 닿지 않으면 그 작가의 작품과 자신은 잘 맞지 않는다고 여기거나 자신은 이미 작가의 작품세계를 잘 안다고 확신하고 다음 작품을 조금은 심드렁한 마음으로 대하게 될 때가 있잖아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이번 작품이 아주 좋지 않았더라도 다음 작품은 다를 수 있다고, 작가가 지닌 가능성을 제 안에서 빠르게 확정해서 닫아버리지 말자고 다짐해요.”
어떤 작품을 읽더라도 단점 찾기에 열을 올리지 않으려고 한다. 쉽게 보이는 단점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작가의 빛나는 부분을 찾아 장점을 최대화시키는 일이 편집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책을 만들며 가장 고마웠던 저자는 누굴까. 예상대로 김내리 편집자는 한 명을 콕 집어 말하지 않았다.
“식상한 대답이 되겠지만 책 한 권을 작업할 때마다 저자에게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한 명의 작가가 성장하는 데에는 작가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다른 외부적인 상황도 뒷받침되어야 한다고들 말하잖아요. 예전에 어떤 작가님이 한 인터뷰에서 ‘신인 때 한번 더 해볼지 말지를 결정하는 데에는 바깥에서 받은 기척이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 게 기억에 남는데요, 이 말은 편집자에게도 적용이 되는 것 같아요.”
신입 편집자 시절 다양한 작가들과 책을 만들어야 했을 때, 어떤 작가도 그의 미숙함을 채근하지 않고 기다려줬다. 이 경험으로부터 8년간 책을 만들 수 있었고 더 잘해내는 문학 편집자를 꿈꾸게 됐다. 김내리 편집자의 꿈은 단출하고 분명하다. 출판사에 들어와서 계약한 책들을 빠짐없이 만드는 것, 작가와의 약속을 지켜내는 일이다.
“책을 만드는 일이 고될 때도 있지만 편집자가 됐기 때문에 받을 수 있었던 좋은 영향이 많아요. 몇 번의 강렬한 기억들이 있는데요. 공적인 것을 초과할 때가 있어요. 다른 직업을 선택했어도 얻을 수 있는 경험이었을까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어요.”
소설 단행본의 계약서에는 마감 일자가 따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작가가 원고를 줘야만 시작되는 편집자의 업무. 어찌 보면 편집자는 기다리는 사람이다.
“사실 지금까지의 저는 숲보다는 나무를 보는 일에 집중하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소설이라는 분야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소설은 에세이처럼 편집자가 기획하는 경우가 드물잖아요. 인상적인 인터뷰를 읽으면 ‘아 좋다’라고 생각하지만, 책으로 꾸릴 생각은 아직 못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는 큰 그림도 그리면서 일을 해나가고 싶어요.”
김내리 편집자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최근에 편집한 책 순서대로 SNS의 리뷰를 찾아 읽는다. 공개적인 SNS 활동을 하지 않는 이유는 모든 책에 공평할 자신이 없어서. 좋아하는 작가를 묻는 질문에도 머뭇거리는 사람, 누구라도 함께 일하고 싶은 상대가 아닐까. 독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 번의 경험을 해보라”는 말. “소설을 읽어서 좋았던 강렬한 기억이 한 번이라도 생긴다면 문학은 언제라도 다시 찾게 될 것”이라는 그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연재하는 동안 한 번도 마감을 어긴 적 없는 작가, 사람들의 의견에 언제나 성실히 귀기울이는 작가. 최은영 작가가 인간적으로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끝없이 나열할 수 있지만, 그에 대해 한 가지만 말해야 한다면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때때로 대중성을 작품성의 반대편에 놓는 의견에 단호히 고개를 젓고 싶을 만큼, 그는 좋은 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소설을 왜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이 책을 건네고 싶다. 어떤 소설이 좋은 소설이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이 책을 건네고 싶다. 한국소설의 입문작을 추천해달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이 책을 건네고 싶다.
최은미 지음 / 문학동네
최은미 작가는 그게 무엇이든 끝까지 밀고 나간 뒤, 끝이라고 생각한 지점에서 한번 더 나아가는 글을 쓴다. 이런 표현이 부정확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진짜'를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만드는 동안 교정에 참여한 편집자 모두가 한소리가 되어 감탄하고 마음 아파하고 응원할 수밖에 없던 건 그래서였을 것이다.
전하영, 김메라 외 지음 / 문학동네
수상작이 결정되는 연초면 편집부는 작품집을 만드는 일로 분주해지지만, 그만큼 들뜬 기운으로 차오른다. 입사한 이래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선물한 책이 아마 이 시리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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