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우리가 눈여겨보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
『조선의 등 굽은 정원사』 천영미 저자 인터뷰
우리는 조선의 꼽추,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았던 조선의 ‘송정’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주목받지 못한 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봅니다. (2021.08.30)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한 『조선의 등 굽은 정원사』는 천영미 작가님의 데뷔작이다. 실제 기록으로 남아있는 역사의 공백을 풍부하고 따스한 상상력으로 채워,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도 전해지는 차별에 대한 진중한 고찰을 부드럽고 정취 있게 담아내 잔잔한 감동으로 우리의 인식을 흔들어 놓는다.
『조선의 등 굽은 정원사』는 우리에게 익숙한 세종 시기를 배경으로 하여 팩션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쉽게 입문할 수 있게 해준다. 소설의 기반이 된 역사 기록들을 함께 보여주며 그 기록을 따라 망실된 구간에 어떤 재치 있는 구성을 더했는지 대조해보며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작가님께서는 7여 년간 대학과 고등학교의 강사로 일하셨고, 현재는 외국인에게 한국의 역사에 대해 가르치는 일도 하고 계시지요. 어떤 계기로 이 팩션 소설을 쓰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제 소설은 아이와 함께 한 일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외국에 살다 보니, 아이에게 한국어나 한국 역사를 가르치는 일에 더 신경을 쓰고 있어요. 특히 아이는 다민족이 모여있는 학교에 다니는데, 학교에서는 일 년에 두세 차례 꽤 흥미로운 과제를 내줍니다. 가령 학생들의 모국의 중요한 건축물이나 위인들을 소개하는 스피치(Speech) 시간이 있는데요, 한국 아이들은 세종대왕, 중국 아이들은 만리장성, 호주 아이들은 오페라하우스 같은 소재를 가지고 과제를 준비해요. 제 아이는 특히 세종대왕, 경복궁, 한옥, 거북선 등등 다양한 소재들을 소개하곤 했습니다. 박씨를 물어 나르는 제비처럼 그렇게 한국의 역사를 소개하는 아이를 수 년간 돕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을 대표하는 꽃이나 나무, 동물 등을 더 자세히 찾아보게 된 거죠. 그리고 호프 자런의 『랩걸』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 기회가 된다면 나무에 관한 책을 써 봐도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 책의 시작부터 함께 이야기를 이끄는 인물이 등이 굽은 채 태어난 은수이지요. 장애를 가진 인물을 주연으로 설정하면서 그 인물을 소설로 녹여내기 위해서는 신경 쓸 점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꼽추 은수를 등장인물로 설정하게 된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을까요? 혹은 다른 주변 인물들을 설정하는 데 특별히 고려한 점이 있었나요?
소나무에 관한 자료들을 찾다 보니 안강형 소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언뜻 ‘맞다. 그러고 보니 TV 화면에 애국가가 나올 때도 늘 굽은 소나무가 있었지.’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어요. 그리고 굽은 소나무를 소재로 선택하면서, 비슷한 외형을 가진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면 매칭이 더 잘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떠올렸던 거 같아요. 그리고 기록을 찾아보니, 세종대에 정말 척추 장애를 가진 허조(1396-1440)라는 실존 인물이 있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세종대의 훌륭한 재상으로 황희 정승을 떠올리지만, 허조라는 분도 손꼽힐 만한 능력을 지닌 재상이었어요. 그래서 실존 인물 허조를 모티브로 삼아서 꼽추 은수를 구상하게 되었던 거예요.
『조선의 등 굽은 정원사』는 세종실록을 기반으로 해 세종과 안평대군 시기를 배경으로 두고 있습니다. 세종이 즉위해있던 시기를 배경으로 다룬 여타 작품들도 많은데, 그중에서도 『조선의 등 굽은 정원사』만의 매력포인트를 꼽자면요?
지금껏 세종대왕의 과학적 업적에 대한 책이나 영화, 드라마는 굉장히 많았어요. 그런데 송정(松政)에 대한 작품은 없었던 것 같아요. 조선 시대에 소나무는 궁궐 건축이나 조운선 축조에 쓰이는 나무였기 때문에 나라에서 굉장히 엄격하게 관리했어요. 그래서 소나무를 함부로 베면 곤장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세종실록』 의 기록을 보면, 영동지방의 기근이 심각해서 백성들이 소나무껍질로 연명했는데도, 이들을 처벌했다는 내용은 보이지 않아요. 저는 여기에서 세종의 송정은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조선의 등 굽은 정원사』는 그동안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간과했던 소나무에서 시작된 이야기라, 이런 점에서 더 흥미롭지 않을까 생각이 되네요.
책을 읽다 보면 ‘기근 해결’뿐만 아니라 실제 역사 기록을 토대로 한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전개됩니다. 책을 구성하고 있는 소소하고 재미난 이야기가 많은데, 작가님께서 집필하실 때 가장 재미있게 작업한 구간은 어디일지 궁금합니다.
사실 저는 안평대군이 비해당으로 벗들을 불러모아 시회(詩會)를 여는 장면들이나, 그 시회를 계획하는 안평대군의 재치있는 고민들을 서술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실제 비해당에 모인 문사들이 비해당 48경을 읊은 시가 바로 「비해당사십팔영」이에요. 그리고 당대의 문사들 사이에 분재 가꾸기가 유행하며, 문인문화를 이룩하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아요. 그 한 가운데 안평대군이라는 굵직한 인물이 이런 문화를 주도했던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또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안평대군의 강력한 라이벌, 강희안이 지은 『양화소록』이라는 책에는 노송을 비롯하여 매화나무, 석류나무, 철쭉나무, 귤나무 분재를 가꾸는 기술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어요. 이런 사실적 기록들을 소설 곳곳에 살며시 녹여내는 일이 꽤 재미있었던 거 같아요.
『조선의 등 굽은 정원사』의 다양한 등장인물 중, 주인공 외에 작가님이 가장 애착을 갖게 된 인물을 한 명 고른다면요?
의관 전순의예요. 사실 『산가요록』 은 당시에 의관으로서 저술하기에는 상당히 파격적인 기록이에요. 지금으로 치면, 의사가 요리책이나 농업책을 쓴 거나 다름없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사람은 뭘까? 그는 왜 이토록 독특한 책을 쓰게 된 걸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야말로 ‘정말 괴짜 같은 성격은 아니었을까?’ 뭐 이런 생각을 하며 쓰다 보니, 전의관이라는 인물이 다소 괴짜처럼 묘사된 거 같아요.
소설에서 여러 등장인물이 당면하고 있는 ‘차별’은 현재까지도 많이 대두되고 있는 사회적 문제 중 하나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작가님께서 독자분들께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요즘은 화려한 스펙이 너무 중요한 세상이 되었잖아요. 뭐든 최고여야 대접받고, 주류에 속하지 않으면 소외될 수 있는 세상에서, ‘그렇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조금 하고 싶었어요. 젊은 시절에 품었던 이상이나 야심 찬 꿈들도 세월이 지나다 보면 빛바랜 종이처럼 흐릿해지잖아요. 주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삶이 나도 모르는 새, 무기력하고 맥없어 보일 때가 있잖아요. 그래도 흐릿하게라도 남아있는 작은 꿈, 작은 희망조차도 의미 있고 귀하다는 걸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을 통해서 잔잔히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조선의 등 굽은 정원사』를 읽고 나면 작가님의 차기작도 기대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작가님은 앞으로 어떤 장르, 혹은 어떤 글을 쓰고 싶으신가요?
저는 역사 팩션을 꾸준히 써보고 싶어요.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들의 모습을 철저한 고증을 통해서 살려내면서도, 상상력을 덧입혀 더 생생한 느낌이 드는 그들의 삶을 표현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앞으로의 작품들도 모두 조선 시리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천영미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7여 년간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강사로 일했다. 현재는 호주 시드니에서 인문학 강사로 활동 중이며, 외국인에게 한국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첫 장편 『조선의 등 굽은 정원사』로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글쓰기를 시작했다. 이 작품은 『세종실록』의 기록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농서 『산가요록』의 망실된 부분에 문학적 상상력을 더해 창작한 소설이다. 등 굽은 정원사, 몰락한 양반가의 여인 그리고 괴짜 의관까지, 미약한 존재들의 다정한 연대와 그들이 틔우는 지대한 생명력의 가치를 섬세하고 몰입감 있는 문체로 풀어냈다. 소설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견고하게 뿌리 내린 식물들의 성장 과정을 통해, 주어진 것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견디고 변화하는 삶의 중요성을 말한다. 작가는 조선 시대 역사를 기반으로 한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 역사 속 인물들을 중심으로 한 후속 작품들을 집필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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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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