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사실은 영화 전공자입니다 (G. 손희정 영화평론가)
책읽아웃 - 김하나의 측면돌파 (201회)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많은 분들이 제가 여성학 전공자 이거나 여성학자인 줄 아세요. 그런데 사실 여성학 전공은 아니거든요. 대학에서 영화학을 전공했고 영화 비평을 하는 게 계속 꿈이었던 사람이에요. (2021.08.19)
무언가 다른 것을 원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영화에 영향을 미친 만큼이나, 감독들이 공들여 만든 작품이 다시 그 목소리를 거들었다. 서로가 서로를 만나고 연결되면서 ‘여성영화’의 자장은 점점 확장되었다. 한 편 한 편의 작품은 독자적이지만, 그런 고유함들이 연결되고 주저하지 않는 말들과 만나면서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우주, 깊고 넓은 여성영화 유니버스를 형성해나갔다. “참 잘 만든 영화죠, 그런데요......”가 아니라 “참 좋은 영화죠, 참 좋은 영화예요”로 설명이 충분한 작품들이 쌓이면서 나 역시 보태고 싶은 말이 많아졌다. 그래서 쓰기로 했다. 이토록 풍부한 여성영화의 세계에 대해서. 그때가 2019년이었다.
손희정 평론가의 책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오늘 모신 분은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대중문화와 한국사회를 비평하는 영화연구자입니다. 『페미니즘 리부트』 『다시, 쓰는, 세계』에 이어, 최근 네 번째 단독 저서이자 첫 번째 영화책인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를 쓰셨어요. 손희정 평론가님입니다.
김하나 : 워낙 많이 쓰셨습니다. 지금도 쓰고 계시고. 예스24에서 ‘손희정’이라고 치면 엄청나게 많은 뭔가가 나와요. 공저하신 책도 많고. 그런데 단독 저서로 쓰신 책은 4권이 있는 거고 그중에서도 영화 책은 이번이 처음인 거죠.
손희정 : 네 그렇습니다.
김하나 : 감회가 어떠신가요?
손희정 : 어디 가서 소개를 드리면 많은 분들이 제가 여성학 전공자 이거나 여성학자인 줄 아세요. 그런데 사실은 여성학 전공은 아니거든요. 대학에서 영화학을 전공했고 영화 비평을 하는 게 계속 꿈이었던 사람이었던 터라. 편집책에 굉장히 참여를 많이 했었던 건 2015년 이후에, 말하자면 페미니즘 대중화 물결 안에서 페미니스트의 목소리를 한국 사회가 듣고 싶어 한다라고 하는 기회가 왔을 때, 저는 몇 년 안 갈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김하나 : 아, ‘지금 물이 들어왔다, 노를 저어야 된다’라고 생각하셔서 글을 막 쓰기 시작하셨군요.
손희정 : 네. (웃음) 열심히 썼고. ‘기회가 있을 때 가능한 한 많이 남겨놓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리고 한국 사회가 들어줬으면 하는 얘기를 많이 하고 싶다’ 해서 제안이 들어오면 할 수 있는 대로 다 썼었고요. 그러면서 편집책이 굉장히 많이 나왔는데, 그러다 보니까 사회에서 현안마다 목소리를 내는 것이 되게 급했었던 거고, 영화 이야기는 조금씩 뒤로 밀렸었던 것 같아요. 이제 드디어 2021년에 영화 책을 낼 수 있고 있게 되어서 저는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좋고 그 책을 들고 다니면서 ‘저는 영화 전공자입니다’라고 얘기할 수 있어서 신이 납니다.
김하나 : ‘저는 사실은 영화 전공자입니다, 모르셨죠?’ 약간 이런 느낌으로. (웃음)
손희정 : 네, 그렇습니다. '짜잔' 하는 느낌인 거죠. (웃음)
김하나 : 2015년부터 이런저런 활동이나 사건이 있을 때 ‘이것을 내가 기록해 둬야겠다, 이게 또 언제 사그라들지 모르니까’라고 생각하셔서 글을 열심히 쓰셨는데, 한국 사회가 그 이후로 사그라들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손희정 : 그러니까요.
김하나 : 사그라들만 하면 땔감을 확 넣어주고, 지금도 계속해서 그런 느낌인 건데...
손희정 : 이게 굉장히 신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게, 어떻게 보면 한국 사회의 수준이 ‘숏컷을 한 여자는 페미야, 금메달을 뺐자’ 이런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수준이라서 사실은 계속해서 페미니스트의 목소리가 불타오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또 더 계속 얘기를 해가야 된다는 거니까 좀 답답할 때도 있고, 그래서 좋기도 하고 답 답답하기도 하고 이렇게 섞여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페미니스트로서 2015년 이후에 한국 사회를 산다는 건 저한테는 굉장히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고 같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되게 신나고 좋은 거죠.
김하나 :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는 13명의 여성 감독들을 손희정 작가님이 인터뷰한 내용인데요. 이 여성감독들이 시기별로 좀 구분이 되는 거죠.
손희정 : 네.
김하나 : 언제부터 언제까지인가요?
손희정 : 열세 분을 선택을 하는 것도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는 했어요. 굉장히 신나는 일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기준을 정할 때는 2019년부터 2020년 사이에 장편 영화를 극장에 개봉한 여성감독들 중에서 선택하려고 했어요. 2015년부터 여성 대중들이 굉장히 많이 ‘여성영화 보고 싶다, 여성서사를 원한다’ 이런 목소리들을 키워왔잖아요. 그랬을 때 ‘여성영화란 무엇인가’를 가지고 되게 뜨거운 논쟁들이 붙고는 했었어요. 예컨대 ‘탈코한 여성이 나오면 여성 영화다’ 혹은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이 나오면 여성영화다’ 이런 식의 여러 가지 기준들 같은 걸 제시하기도 하고 ‘아니다, 여성영화는 그렇게 정답을 내릴 수 있는 게 아니라 어떤 것이다’ 이런 얘기가 막 섞여서 나오는 이런 담론들이 있었는데요. 처음에는 제가 보기에 ‘여성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저만의 어떤 대답들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은 작품들을 12편을 뽑아서 감독님들을 인터뷰를 했었던 거고요. 그게 <채널예스>에서 ‘손희정의 더 페이보릿’이라는 제목으로 연재가 됐었어요. 그거를 나중에 책으로 묶어내려고 했는데, 그 연재를 마감할 때 즈음에 박지완 감독님의 <내가 죽던 날>이라는 영화가 개봉을 해서 (연재 중에는) 그 작품을 못 다뤘었거든요. 그런데 박지환 감독님을 뵙지 않고는 이 책을 못 내겠더라고요. 그래서 단행본으로 묶기 전에 ‘박지완 감독님 인터뷰만 더 덧붙여가지고 내자’ 해서 박지환 감독님까지 열세 분을 봬서 책을 엮었죠.
김하나 : 그러면 ‘손희정의 더 페이보릿’이라는 지면의 제안이 왔을 때는 반가우셨나요?
손희정 : 너무 신나고 좋았었던 것 같아요. 2019년이 좀 특별한 해였다고 저는 생각하고 그래서 책에서도 굉장히 열심히 쓰기는 했었는데요. 2019년에 ‘여성영화의 새로운 물결’이라고 어떤 웨이브로 묶을 수 있을 만큼 김보라의 <벌새>, 윤가은의 <우리집>, 이옥섭의 <메기> 이런 영화들이 개봉을 했었고 특히나 독립 영화 쪽에서 여성영화들이 굉장히 많이 나왔어요. 그 여성영화들을 묶어서 ‘여성영화의 새로운 물결’이라는 경향성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는 자리를 한번 가졌으면 좋겠다고 서울 종로에 있는 독립영화 전용 상영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연락을 주셨어요. 그래서 거기에 안소연 국장님께서 ‘여성영화의 새로운 물결에 대해서 짚어주면 참 좋을 텐데 어떠냐, 유은정 감독의 <밤의 문이 열린다>로 얘기를 한번 해보자’라고 제안을 해주셨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여성영화의 새로운 물결’이라고 묶을 수 있다는 건, 사실 이 감독들을 여성감독 혹은 여성영화라는 하나가 키워드로 퉁치겠다는 게 아니라, 경향성을 말할 만큼 여성감독의 작품이 많이 나왔다는 의미라는 게 너무 좋았던 것 같고요. 그 행사를 진행하고 난 다음에 인디스페이스에서 좋으셨던 것 같아요. 이때까지 인디스페이스에서 불렀었던 비평가들과 약간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았다고 느끼셨던 것 같기도 하고, 특히나 여성 대중들의 뜨거운 목소리를 인디스페이스가 담아내고 싶다는 욕심도 있으셨던 것 같고요. 그래서 바로 이어서 이옥섭 감독의 <메기>를 상영을 하고 ‘감독과의 대화’를 하는 자리에 저를 불러주셨어요. 그때 또 원 없이 <메기>에 대해서 이옥섭 감독님이랑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걸 하고 난 다음에 인디스페이스 원승환 관장님이 연락을 주셨어요. ‘여성 비평가가 페미니스트의 목소리로 영화를 본다는 게 이렇게 새롭고 재미있는 줄 몰랐다, 더 얘기를 듣고 싶다’고 하셔서 마음산책이라는 출판사 대표님이랑 이야기를 했는데 ‘당신의 목소리와 감독의 목소리를 섞어서 관객들에게 영화를 소개하는 연재를 하고 책을 엮으면 좋겠다’라고 이메일이 굉장히 길게 왔고요. 신나고 좋더라고요. 덥석 하겠다고 했죠.
김하나 : 그 신남이 끝까지 유지됐나요?
손희정 : 하하하.... (웃음)
김하나 : 왜 갑자기 웃으시죠?
손희정 : (웃음) 이 책은 픽션 영화만 다루고 있어요. 다큐나 실험영화를 전혀 건드리지 못하고 있는데, 다큐 감독님들께서 그런 얘기 하세요. ‘이제 다큐멘터리로 한 권 써라.’ 그래서 제가 ‘아, 인터뷰 해서 쓰는 건 이 책이 마지막인 것으로 하겠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는데요. (웃음)
김하나 : 왜죠? (웃음)
손희정 :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인터뷰를 해서 글을 쓴다는 것이, 게다가 2주에 한 번씩 마감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아직까지는 생각이 없다, 나는 좀 더 긴 휴식이 필요하다’ 이런 생각이 들긴 하는데요. 책을 내놓고 나니까 쓰기 시작할 때 신나는 마음이라고 하는 게 다시 오는 것 같아요. 책에 손을 탁 올려놓고 ‘이게 내 책이지’ 이런 마음, ‘아, 잘했다’ 이런 생각이 좀 들기도 해서요.
김하나 : 인터뷰를 즐겁게 읽고 나서 뒤쪽에 보면, 색깔이 다른 종이에 2019년 이후 여성 감독들의 프리퀄이 있습니다. 이 프리퀄을 읽으면 앞의 이야기가 완전히 새롭게 보이는 거죠. 저는 이 부분을 너무 즐겁게 읽었거든요. 작가님이 또 비밀리에 전공을 하신 게 역사이기도 하잖아요. (웃음) 학부 때는 영문학과 한국사를 같이 전공하셨고 대학원에 가서는 영화를 전공하셨지만 모든 사람들은 여성학을 전공한 것으로 알고 있죠. (웃음) 역사를 전공하셔서 그런지, 책 뒤쪽에 있는 ‘이전의 한국 영화의 전환을 이끌었던 여성들의 역사’를 간략하게 써주신 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손희정 : 감사합니다.
김하나 : 이를테면 ‘임순례 감독님이 등장하시기 전에 거의 80년 동안 한국 영화사에는 개봉작을 낸 여성은 5명밖에 없었다’ 이런 내용들을 읽다가 앞의 목차 페이지를 보면, 최근에 개봉작을 내놓은 여성감독들의 면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되게 뭉클한 게 있어요.
손희정 : 그러니까요. 사실은 <채널예스>에서 제안을 주실 때는 ‘(여성감독) 10명으로 하자’라고 제안을 주셨었어요. 그것도 이미 너무 신났거든요. 그런데 쭉 이름을 적는데 10명으로 안 되더라고요. 10명 안에 너무 중요한 감독들이 다 못 들어가서, 두 명만 더 주시면 안 되냐고 해서 12명으로 인터뷰를 하기로 했고요. 그러고 나서도 독자 분들이 ‘내 최애는 빠졌지만 책은 좋다’라거나 ‘내 최애는 어디 갔냐’라거나 이런 소감을 남겨주셨는데, (웃음) 독자 분들이 보시기에는 꼭 들어갔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감독이 빠진 분들도 계실 거예요. 그만큼 다 못 담았다는 거고, 그런 걸 보면 저도 마음이 되게 좋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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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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