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창원 “국회에서 목격한 한국 정치는”
『게으른 정의』 표창원 저자 인터뷰
저는 그렇게 정의감을 이용해 선동을 하고, 가짜뉴스를 만드는 일들이 지금의 정치권에서 일어났다고 있다고 봐요. 그런 상태를 ‘게으른 정의’라고 지칭했습니다. (2021.07.16)
『게으른 정의』는 범죄심리학자로 잘 알려진 표창원 전 의원의 정치비평서이다. 범죄현장에서 진실과 정의를 찾듯, 한국 정치에서의 진실과 정의를 찾기 위해 들어선 국회의원의 길, ‘상설 전투장’ 같았던 국회에서의 시간들과 그 안에서 목격한 보수, 진보의 불의에 대한 기록이다. 프로파일링을 하듯, 그간에 전념해온 범죄 분석의 경험과 이론, 잣대를 활용해 정치계를 수사, 분석한다. 보수의 품격을 잃어버린 보수, 촛불 명령을 무력하게 만든 진보를 어느 누구의 눈치 보는 것 없이 대차게 폭로하고 비판한다.
본업 아닌 ‘다른 일’로 바쁜 국회의원들이 알면서도 저지르는 불법들, ‘전쟁 국회’를 부추기는 ‘실세’들을 낱낱이 열거하고, 한국의 청년 정치가 나아갈 바를 세계 각국의 청년 정치와 비교하면서 실현 가능한 전략과 방법으로 제시한다. 저자 스스로 “정치와 무관했던 한 시민이 본의 아니게 정치인이 되어 시민을 대표하기 위해 애쓰면서 겪고 느낀 솔직한 심정의 기록”이라고 밝힌 이 책은, 중요한 선거들을 앞두고 우리에게 필요한 정의가 무엇인지 비교하며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아울러 표창원의 소신 있는 발언을 신뢰해온 독자들에게 오래간만에 속 시원하게 해줄 비평서가 될 것이다.
『게으른 정의』 책 제목에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떤 의미인가요?
어렸을 때 만화영화에 나오는 악당은 응징하고 좋은 사람과 피해자는 구해주고, 이게 가장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정의’잖아요. 그런데 여기에 ‘게으름’이란 게 반영되면(즉 우리가 조금만 게을러지면) ‘저 사람이 나쁜 사람이야’라는 누구의 말에, 그가 실제론 나쁘지도 않은데 나쁜 사람인 것처럼 공격할 수도 있고요. 반대로 정말 나쁜 사람인데, 저 사람이 약한 사람인 것처럼 코스프레를 할 때면 그를 도와주면서 오히려 악에 힘을 더 보탤 수도 있죠.
저는 그렇게 정의감을 이용해 (거짓 정의감에 불을 붙여) 선동을 하고, 가짜뉴스를 만드는 일들이 지금의 정치권에서 일어났다고 있다고 봐요. 그런 상태를 ‘게으른 정의’라고 지칭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태라는 걸 각성하고 인지하며, 정말 정의롭고 싶다면 우리 조금 더 부지런해지자는 뜻으로 책 제목을 정해봤습니다.
이 책은 대한민국에 필요한 ‘정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작가님이 정계에 입문하고, 다시 나오시기까지의 정치생활 이야기도 많이 담겨 있어요. 범죄전문가에서 국회에 들어가셨을 때 어떠셨나요?
정치권에 들어갈 때, 한 반절 정도의 마음은 정치권에 잠입수사를 하러 들어가는 느낌이었어요. 실제로 “저는 정치권 내에 있는 범죄적 요소를 파악하러 들어갑니다”라고 SNS에 밝히기도 했고요. 사회학, 인류학에서 쓰는 조사방법론 중에 ‘참여관찰기법’이란 게 있는데, 실제로 그 안에 들어가서 관찰하는 기법이죠. 시민의 대표로, 시민의 시선으로, 시민이 들여다보지 못했던 내부를 대신 들여다보는 느낌으로 정계에 입문했었고, 이 책에 그러한 관찰 결과를 보고서 쓰듯이 담았습니다.
실제 프로파일링에 활용되는 수사법으로 정치를 논한 부분들도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영화 <기생충>과 범죄분석에 빗대 한국 정치를 ‘아노미 상태’로 본 부분이 인상 깊었는데요. 이렇게 프로파일링 분석법을 정계에 접목해봐야겠다, 생각하신 이유가 있나요?
서문에도 밝혔지만, 저는 독자분들이 이 책을 ‘정치와 무관했던 한 시민이 본의 아니게 정치인이 되어 시민을 대표하기 위해 애쓰면서 겪고 느낀 솔직한 심정의 기록’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시민이 전념하며 천착해온 범죄 분석의 경험과 이론, 잣대가 그 기록의 방식이 된 것이고요, 지금의 한국을 ‘아노미 상태’로 본 이유는, 가치와 목표가 너무 획일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돈이든 권력이든 명예든, 특정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을 패배자로 만들어내는 사회가 바로 아노미 사회인데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보면서 ‘아, 이게 우리 사회, 우리 정치권의 모습이구나. 그대로 축약해놓은 것 같다’라고 생각했고,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범죄분석을 접목해 분석해봤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한국적 아노미’ 속에서 정치는 어떻게 되나요? 작가님이 <기생충>에 빗대 한국 정치인 유형을 5가지로 분류하신 걸 좀 더 듣고 싶습니다.
‘한국적 아노미’ 속에서 사람들은 적응을 합니다. 마치 <기생충>에서 돈, 권력, 명예 가치가 획일화되어 있는 계급적 사회에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적응하듯이요. 몇 가지만 말씀드리자면 가장 성공한 적응방식으론 ‘동조형 적응’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성공하는 줄 아는 부류이지요. 엘리트의 길을 따르는 유형들. 정치권 내에서는 국회의원이 되고 2선, 3선, 다선 하고 장관도 하는, 당내 주요 보직을 맡는 사람들이 ‘동조형 엘리트 정치인’들이죠. 그런데 그렇게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렇게 되고 싶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안 되는 사람들. 이들이 파울 플레이를 할 때는 때론 범죄자가 되기도 하고, 정치자금을 불법적으로 끌어온다든지, 여러 불법을 행하기도 합니다. 이런 적응 방식을 ‘혁신형 적응’이라고 하지요.
반면 목표를 아예 상실해버리는 사람들도 있어요. 돈, 권력, 명예 등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아예 체념해버리는 거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자녀들을 위해, 자신의 남을 삶을 위해 성실성을 유지하는 사람들, 많은 생활인들이 ‘의례형 적응’ 부류에 속합니다. 정치권에서는 야망 없이 생존이 목표인 사람들이 여기에 속하죠.
내년 대선과 총선에 어떤 정치인이 리더가 되는지에 따라 ‘한국 정치인들의 인간유형’에도 변동이 있겠네요. 그럼 작가님께선 다음 리더가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한국적 아노미’ 측면에서 계속 이야기해본다면, 다음 지도자의 과업이자 시스템의 과업이, 가장 다수이고 중추인 이 의례형 부류에게 어떻게 하면 더 희망을 갖게 하고, 다시 삶에 기대를 갖게 하느냐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 정치인들에겐 이 동기부여 능력이 부족합니다. 만약에 다음 리더가 이걸 잘 못한다면, 정치 내에서든 사회에서든 의례형 사람들은 ‘혁신형’이 되거나 ‘은둔형’이 될 거예요. 그렇게 되면 땅투기나 부정부패, 작은 불법적인 이익을 취하려는 것, 각종 편법들, 음주, 도박 같은 일탈 행위는 더욱 심해질 수 있습니다.
정치 리더들뿐만 아니라 정치권 내에 변화를 이끄는 사람들, 개혁지향적인 ‘반항형 적응’ 유형도 꼭 필요합니다. 이들이 사회 변화를 추동해나가죠. 이들이 다수가 되면 사회가 혼란해질 수도 있지만, 소수라 하더라도 역동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등장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 정치권 내에서 이런 사회 혁파형 정치인들이 얼마냐 있느냐, 또 얼마나 힘을 갖고 있느냐 생각해보면, 상당히 부족하다는 게 제가 목격한 한국 정치의 현황입니다.
책에 ‘악의 평범성’ ‘좀비 정치’란 개념을 쓰셨는데요, 이런 진영 논리가 최근에 더 심화된 것 같아요. ‘악의 평범성’이란 무엇이며, 지금 한국에서 자행되는 진영 논리를 어떻게 보시나요?
‘악의 평범성’이란, 평범한 사람들이 학대나 차별 등 인류애적 가치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걸 뜻합니다. 제가 한 30년 가까이 범죄수사 분석과 범죄심리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악의 평범성’을 설명할 때 들던 예시들이 제가 속한 곳에서 그대로 실현되고 있단 느낌을 받고 있어요. 2차 세계대전 때 잔인한 학살을 한 사람들이 대체 누군가, 그들이 다 악마고 괴물이고 사이코패스인가, 그건 아니거든요. 역설적이게도 ‘평범하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일어난 것이었죠. 그들의 위에 있는 사람이 ‘이게 옳은 거야. 이것이 너의 책무이니 이대로 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의 중요하고 숭고한 가치가 훼손돼’ 하니 판단을 그에게 맡기고 따른 것이죠. 그런 일들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진영의 리더가 ‘적이다’라고 규정해버리는 순간, 삽시간에 발생하죠. 진영의 ‘스피커’들이 살을 붙여 과장하고 악독한 말들을 쏟아내면, 평범한 사람들은 잘못된 단결성, 의도를 가지고 똑같이 조롱하고 공격합니다. 저는 2차 세계대전의 인종학살 현장이나 지금의 정치권이나 그 기재는 ‘악의 평범성’으로 같다고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하고 싶으신가요?
‘난 정치를 이미 잘 알아, 어떤 정치인이 좋은 정치인이고 어떤 정치인이 나쁜 정치인인지 알고, 난 어느 편이야’라는 게 확고한 분들은, 이 책을 굳이 안 읽으셔도 될 것 같아요.(웃음) 그보다는 범죄수사의 측면에서 본 한국 정치의 속내가 궁금한 분들, 어느 한 편에 치우쳐서 선전 홍보로 내세우는 이야기가 아니라 동료 시민인 제가 당신을 대신해서 한번 직접 경험해본 부분을 알고 싶으신 분들께 이 책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표창원 국내 최초의 프로파일러이다. 연쇄살인, 엽기 범죄 등 각종 범죄자들의 심리를 날카롭게 분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직 경찰관으로 활동했고 엑시터 대학교에서 경찰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주 샘휴스턴 주립대학교 형사사법대학 초빙교수 및 아시아경찰학회장을 역임했으며 그 외에도 경찰청 강력범죄 분석팀(VICAT) 자문위원, 법무연수원 범죄학 및 범죄심리학 강사 등 우리 사회의 어두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많은 활동을 해 왔다. 현재는 민간 범죄수사분석 전문가로 다수의 책을 출간한 작가이자 방송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2년 12월 ‘경찰의 대변자’ ‘정부의 옹호자’로서의 무언의 부담과 중압감을 벗고 ‘자유인’이 되어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는 대로 제약 없이 말하기 위해 경찰대학 교수직을 사퇴했다. 이후 JTBC [표창원의 시사돌직구] 프로그램 진행을 맡아 특유의 직언으로 돌직구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으며 한겨레 TV [시사게이트] 프로그램의 공동진행을 맡는 등 본격적으로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2014년 4월 1일에 창립한 (주)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를 통해 ‘CSI/Profiling 체험전’을 여는 등 범죄과학에 대한 참여 또한 활발히 하고 있다. 사회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해 발생하는 비극적인 범죄의 피해자들과 잠재적 가해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매일매일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숨겨진 심리학』『정의의 적들』『공범들의 도시』『한국의 연쇄살인』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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