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규 “가출 청소년, 우리의 인식부터 바꿔야 할 때”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주원규 저자 인터뷰
한국 사회에서 10대를 대하는 태도와 인식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밤의 괴물’이 끊이지 않고 양산된다고 생각합니다. 가출을 사회문제로 보지 않고, 가족의 사적인 문제 혹은 청소년이 학교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발생하는 문제로 보는 시각이 만연한 것 같습니다. (2021.06.18)
『메이드 인 강남』, 『반인간선언』, 『특별관리대상자』 등의 전작을 통해 정치, 경제, 종교 권력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내 온 주원규 작가의 장편소설. 『메이드 인 강남』이 강남 클럽을 6개월간 잠입 취재한 경험의 결과물이라면, 이번 신작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작가가 2011년부터 10년 동안 꾸준히 만난 가출 청소년의 현실이 고스란히 반영된 소설이다.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통찰하는 작가 특유의 날카로움과,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을 향한 뜨거운 연대 의식이 드디어 만났다. 주원규 작가는 가정 밖 청소년을 인터뷰해 『아이 괴물 희생자』,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를 펴낸 바 있으며 그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청소년 시절을 떠올린다고 말한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상습적인 친족 성폭력을 견디다 못해 탈출을 감행한 주인공 예지의 이야기다. 집을 나온 그를 가장 먼저 반기는 이는 청소년의 성을 구매하려는 중년 남성이며, 예지는 다른 가출 청소년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하지만 랜덤 채팅앱으로 성매매를 시도하는 가출팸의 일원이 되고, 결국에는 실시간 스너프 필름에 출연하는 수모를 겪는다. 세상은 예지의 취약성을 끌어안기는커녕 돈벌이와 쾌락의 수단으로 이용할 뿐이다.
2019년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우리는 피해자의 대다수가 여성 청소년임을 알게 되었고 가해자가 잇따라 검거되었지만, 디지털 성범죄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기에 아직 갈 길이 멀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홀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가출 청소년이 성범죄에 휘말리기 쉬운 구조, 취약한 청소년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어른들,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청소년 쉼터 등 우리가 제대로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 가출 청소년의 실상을 적극 조명한다. 그들이 겪는 폭력을 모른 척 외면하거나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시할 때에야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를 종식할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가족과 학교로부터 버림받은 가출 청소년이 ‘밤의 괴물’로 자라나는 현실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하셨습니다. 원인이 무엇일까요? 그럼에도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편협한 견해일지 몰라도, 한국 사회에서 10대를 대하는 태도와 인식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밤의 괴물’이 끊이지 않고 양산된다고 생각합니다. 가출을 사회문제로 보지 않고, 가족의 사적인 문제 혹은 청소년이 학교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발생하는 문제로 보는 시각이 만연한 것 같습니다. 10대가 가출하는 건 단지 부적응이나 일탈의 문제가 아니라 기성세대를 향한 강한 정서적 반발, 기성세대에게 전달하고픈 절박함의 다른 표현일 수 있거든요. 20년이 지나 2021년을 맞이한 지금도 그들의 절박함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10대를 훈육하고 계도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만연한 가운데, 가출 청소년을 훈육과 계도의 범위를 넘어선 위험한 존재로만 보는 편견이 강화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20년 전에 비해 달라진 점을 생각해보니 안타깝지만 부정적인 측면이 먼저 떠오르네요. 가출 청소년이 탈선하고 범법의 세계에 편입하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습니다. 물론 제도나 사회시스템이 많이 개선되었겠지만, 그들이 탈선하는 속도를 따라잡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10년 넘게 가출 청소년을 만나 글쓰기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청소년 인터뷰집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 『아이 괴물 희생자』를 내시기도 했고요. 글쓰기를 매개로 가출 청소년에게 다가가신 이유가 있을까요?
의외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10여 년 동안 소위 길 위의 10대를 만나면서 그들이 글로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를 무척 선호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미술이나 음악도 좋아하긴 하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뿐이지 한번 글쓰기에 맛을 들이면 때론 놀라운 창의성을 발휘하거나 2시간, 3시간 자리를 뜨지 않고 글을 쓰는 인내심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글쓰기란 매개가 주어지면 쉼터나 소년원에서 혹은 보호관찰관 여러 분이 동행하는 상담 시간에 가출 청소년과 격의 없이 어울릴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처음엔 지겹도록 써온 반성문을 생각해서인지 글쓰기 자체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기만의 상상력을 펼치는 글쓰기를 주문하면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10대 특유의 거침없는 상상을 쏟아내면서 자신의 처지, 삶의 문제를 꺼내 놓는 경우가 많아 글쓰기를 매개로 접근합니다.
『메이드 인 강남』은 강남 클럽에 잠입하여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쓰셨지요. 이번 소설을 쓰기 위해선 어떻게 자료 조사를 하셨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더불어 소설의 특정한 장면이 현실에 얼마나 가까운지도 여쭙고 싶습니다.
10년 넘게 가출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고 필연적으로 자료 조사와 취재가 이뤄진 것 같습니다. 특히 강남과 인천 등지에서 가출팸과 헬퍼를 만나 거리의 삶을 지속하는 친구들을 3~4년간 지켜보면서, 그들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성매매를 시도하고 마약 밀매 같은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과정을 목격하는 게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단순히 소설 집필을 위한 취재가 아니다 보니 그들의 범죄에 개입한 일이 있었습니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가출 청소년이 성인 채팅 앱을 통해 성매매를 시도하려 할 때, 그 친구의 담당 보호관찰관에게 미리 전화해 성매매 행위를 막았던 적도 있고, 마약 거래를 시도하는 걸 말리다가 시비가 붙어 가출 청소년에게 구타를 당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우리가 사는 도시의 이면에서 얼마나 비상식적인 사건이 태연하게 계속 벌어지고 있는지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경험이 제 일상을 휘감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를 소재로 르포소설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제가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 직접 만나 취재했던 친구들 중에서도 가출한 10대 여성이 가출팸의 일원이 되면서 성매매 시장으로 유입되고 성착취 영상물 제작에 동원되는 실상, 그들을 에워싼 음성적이고 기형적인 산업 구조의 실태를 거의 있는 그대로 소설에 반영했습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강남 클럽 장면을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메이드 인 강남』과의 연속성이 느껴집니다. 『메이드 인 강남』의 후속작 격인 르포소설이기도 하고요. 작가님이 생각하시기에 두 작품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공통점이라면 두 소설 모두 사회에서 열외된 존재를 조명한다는 것입니다. 『메이드 인 강남』에서는 천민자본주의로 도색된 강남의 밤에서 결국 희생양처럼 버려지는 건, 얄팍한 쾌락의 도구로서 쓰임새가 없어진 콜걸, 남성 접대부와 어린 웨이터, MD들이었습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역시 신(新)카스트제도가 존재하는 것처럼 가출한 청소년 중에서도 어리고 힘없는 여성들이 계급 피라미드의 최하층에서 신음합니다.
차이점이라면 아무래도 『메이드 인 강남』은 장르소설을 표방하다 보니까 흡인력 있는 사건 전개에 중점을 두었지만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메이드 인 강남』은 허구의 살인 사건과 그 사건을 조작하는 변호사 그리고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강남이란 상징 자본의 늪에 빠진 이들이 이야기의 중심입니다. 하지만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소설의 배경이 강남에 한정되지 않으며, 우리 사회에서 가출한 10대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구조를 해부하듯 살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메이드 인 강남』이 현실에 기반한 장르소설이라면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현실을 폭로하는 르포소설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에는 낮의 시간과 밤의 시간, 낮과 밤의 대비와 관련한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주인공 예지를 포함한 가출팸 구성원들은 밤에 속한 존재로 묘사되고요. 의도하신 바가 있을까요?
첫 번째로, 가출팸 친구들이 지내는 공간의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주로 반지하 혹은 완지하라고 해서 외부로 통하는 창이 작거나 없는 밀폐된 공간에서 살기 때문에 점점 정서적으로 고립되는 것 같았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삶을 꾸려가는 가족과 사회가 일부러 들추고 싶지 않아 의도적으로 은폐하는 공간으로서 밤에 속한 이들이 가출 청소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스한 눈빛을 지닌 이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보통의 삶 바깥을 상상하지 못한다”라는 구절은 소설의 문제의식을 함축하는 것 같습니다. 선의와 시혜적인 태도로 가출 청소년을 대하는 어른들에게 일침을 가하면서,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가출 청소년 문제에 대해 일종의 무력감을 드러내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은 어떤 지점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보시는지, 소설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오늘날 우리 사회와 기성세대가 가출 청소년 문제를 접한 후, 근시안적 해결책을 내놓는 데 집중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나친 비관도, 지나친 낙관도 경계하면서 우리가 함께 이 문제를 고민해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집필하고 발표했습니다. 해결의 실마리라고 한다면, 역설적으로 바로 그 무기력함을 고백하는 타이밍에 있다고 느꼈습니다. 무력함을 인정하는 행위가 하나의 막막하고 느슨하지만 지속가능한 연대의 끈을 만들고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소설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주인공 예지는 가정에서건, 가정 밖에서건 극심한 폭력에 끊임없이 노출됩니다. 집을 나온 후에는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없고 자신을 찾는 가족도 없으니 성착취 산업의 소용돌이에 그저 몸을 내맡겨버리지요. 가출 청소년이 맞닥뜨리는 현실의 폭력성을 소설로 재현할 때 어떤 윤리적인 고민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10대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묘사하고 재현하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폭력의 전시에 대한 윤리적 고민이 늘 따라붙습니다. 책을 펴낸 지금에 와서는 그 고민이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이러한 고민을 지속하면서, 한국 사회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폭력과 성착취가 일상화된 현실을 직시하려 합니다. 그것이 저를 포함한 모두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원규 소설가이자 목사. 서울에서 태어나 2009년부터 소설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했다. 2017년 tvN 드라마 [아르곤]을 집필했고, 2019년 『반인간선언』을 원작으로 한 OCN 오리지널 드라마 [모두의 거짓말]의 기획에 참여했다. JTBC, 연합뉴스, MBN 등에 패널로 출연해 세상과 이야기 사이의 교감에 힘써왔다. 현재는 소수가 모여 성서를 강독하는 종교 활동에 집중하고 있으며, 일상의 예술과 문화 발견을 탐색하는 공유문화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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