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라이브 펑크 “고군분투한 시절, 로맨스로 기억하고 싶었다”
이즘 특집
고군분투했던 모습을 멋지게 기억하고 싶었다. 나중에 돌아보면 분명 미숙한 부분이 보이거나 불안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 시절의 나는 노력했다는 징표니까. 일종의 로맨스인 셈이다. (2021.06.17)
2020년을 통틀어 가장 충격적인 앨범 한 장을 뽑으라면, 단연 그 주인공은 <Di-Ana>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다. '가상 악기와 샘플링을 배제하고 모든 소스를 직접 연주'했다는 공격적인 문구 아래, 편리함에 마비되어가는 음악계를 향해 반발감을 당당히 내비친 이 문제적인 작품은 아날로그의 비연속성 색채와 순수한 창작력이라는 통속적인 무기만으로 현존하는 음악 시장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민다. 예술가의 뚜렷한 목표 의식이 반영된 <Di-Ana>의 극단적 태도 속에서 우리는 순도 높은 숭고함을, 그리고 본인이 설계한 과업을 멋지게 수행하는 과정에서 보기 드문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 어쩌면 이 시대 프로듀서가 갖춰야 할 '멋'을 진정 추구할 줄 아는 낭만주의자, 얼라이브 펑크(Alive Funk)를 만나 그의 방대한 음악 세계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IZM을 보는 독자분들에게 간략한 소개 부탁한다.
안녕하세요.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는 얼라이브 펑크(Alive Funk)입니다. 블랙 뮤직의 코어가 되는 알앤비와 디스코, 그리고 힙합 외에도 UK 신스팝 같은 다양한 장르를 계속 연구하고 실험하고 있습니다.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처음 음악을 시작한 건 중학교 때 밴드에서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면서부터다. 우선 밴드는 약속이 정말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합주를 해도 시간이나 인원 같은 조건이 맞아야 하고 이에 따른 변수가 많다. 그러던 도중, 문득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작곡에 도전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더 잘해지고 싶어 연구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굉장히 수동적인 내가 딱 하나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능동적으로 하는 게 바로 음악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본격적으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라이브 펑크의 음악을 논하기 위해서는 빼놓을 수 없는 게 멀티 인스트루멘탈에서 비롯된 넓은 스펙트럼이다. 이 다양한 악기들은 어떻게 익히게 되었나.
물론 베이스 기타를 치긴 했지만, 그 외에도 다른 악기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드럼이나 일렉 기타, 혹은 키보드라던가. 일단 기본적으로 밴드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사실 또래 남학생들은 게임을 하거나 노래방을 많이 가지 않나. 나는 그것보다 악기를 만지고 좋아하는 곡을 카피해 연습하는 게 더 재미있었고, 그 습관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 같다.
그 당시 주로 듣던 음악이 뭐가 있을지.
내 세대라면 많이 공감할 텐데 밴드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된 건 엑스 재팬(X-Japan)이다. 최초로 산 앨범이 그들의 베스트 CD다. 이후 멜로디 메탈에서 스트라토베리우스(Stratovarius) 같은 강력한 스피드 메탈로 넘어가다가, 나중에는 영국 쪽의 라디오헤드나 핑크 플로이드 같은 밴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음악을 따라 하면서 기본적인 믹스나 사운드 구조를 알게 된 것 같다.
그렇다면 힙합 음악은 언제부터 접하게 되었나.
우선 나는 딱히 장르를 정해 놓고 하나만 듣는 편은 아니다. 그 당시 처음으로 접한 가장 흑인 음악에 가까운 음악이 한국에 나온 아소토 유니온의 1집 <Sound Renovates A Structure>다. 처음에는 강력한 헤비메탈이나 일명 멜스메(멜로딕 스피드 메탈)에 비하면 사운드가 다소 심심하기도 하고, 흔히 쓰는 표현인 '그루브'가 잘 느껴지지 않더라. 근데 점점 듣다 보니 눈을 뜨게 되고, 아소토 유니온과 함께 작업한 다이나믹 듀오를 거쳐 에픽하이를 듣게 되고, 조금 더 파고들어 소울 컴퍼니와 빅딜 레코즈의 음악을 접하면서 블랙 뮤직에 완전히 반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자메이카 리듬이나 NY 브루클린에서 비롯된 붐뱁 리듬같이 다양한 뿌리가 뻗어 나가면서 서로 연관성을 가진다는 점. 여러 장르가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이고 상관관계가 존재하지만, 그러면서도 다른 캐릭터를 보여준다는 점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정규 1집 <DI-ANA>에 실린 도발적인 앨범 소개가 화제를 끌었다.
예전에 쓴 문구가 비난의 어조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원했던 것은 '그 방법을 쓰지 마라'가 아닌 프로듀서의 양심에 대한 토론이었다. 확실히 스플라이스나 프라임 룹스, 룹질라 같은 좋은 사이트가 많이 생겨났고, 그만큼 음악의 접근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사이트를 이용하다 보면 나조차도 이 곡이 정녕 내가 만든 게 맞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데, 이는 그 시점에서 이미 양심의 가책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만약 방금 언급한 그런 것만을 가지고 음악을 생산하는 사람이 이것 또한 하나의 방법이고 창작이라 말한다면, 물론 거기에 대해서는 존중을 표할 것이다. 그저 이 주제에 대해 꼭 한번 토론을 해보고 싶었다.
작품의 제목을 'Di-ana'로 택한 것이 'Di'와 'Ana'에 각각 다이(Die)와 아날로그(Analogue)라는 의미를 가져와, 아날로그를 배척하는 현 음악 신의 흐름을 고발하려는 의도로 알고 있다. 심지어 작업 과정에서 전부 직접 연주했다고 들었는데, 이러한 특수한 제작 방식이 힘들지는 않았나.
기본적으로 가상 악기나 루프를 쓰지 않으려면 구축된 하드웨어 장비로만 작업해야 하는데, 그게 굉장히 제한적인 방법이다. 한 마디로 지금 가진 신시사이저와 기타 이펙터만 가지고 곡을 만들어야 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그런 방식을 택한 것은 작품을 만들 때 극한에 한번 놓이고 싶었고, 그런 환경에 닥쳤을 때 어떤 음악이 나올지에 대해서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성장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작업하다 보면 래퍼마다 요구하는 사운드 어프로치(Approach)가 각각 다를 때가 있다. 트랩이라는 범주 안에서도 UK 드릴과 미국 드릴이 다르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르가 무엇이 되고 어떻게 접근하든 간에 언젠가 작품을 꺼냈을 때 분명 아쉬움이 남을 거라 생각했고, 그럼에도 첫 커리어를 장식하는 앨범인 만큼 최선을 다했다는 상징성을 남기고 싶었다. 예전 유튜브에서 루드윅(Ludwig Göransson)이라는 프로듀서가 차일디쉬 감비노의 'Redbone'을 실시간으로 메이킹하는 영상을 본 적 있다. 그 모습을 보고 나 또한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기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동기부여를 받았다.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섞인 앨범 같다. 오히려 확장성보다 제한된 상황을 만든 것처럼 보인다.
어떤 의미로 보면 맞다. 제한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니 하드웨어 하나를 가지고도 면밀히 연구하게 되더라. 그리고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의 경우에는 증명하는 과정이 늘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일단 내가 그런 능력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가치 있는 뮤지션임을 증명하기 위한 과정이었던 셈이다.
어찌 보면 과거에 사용하던 작법과도 많이 달랐을 텐데.
일단 가상 악기는 편의성이 좋다. 작업 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데다, 내가 피아니스트가 아니더라도 피아니스트처럼 보이게 해주는 게 미디(MIDI) 시스템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번 작업을 통해 가상 악기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날로그 소스는 한번 녹음해서 기록해도, 다음 날 일어나서 프로그램으로 만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래도 요즘 다시 바이닐 붐이 일어나는 걸 보면 아날로그의 시대가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다.
그래서인지 유독 <Di-Ana>를 들을 때는 여타 앨범과는 달리, 건조한 기타 리프와 베이스가 가진 잔향, 혹은 신시사이저 루프 하나하나에도 집중하게 된다. 무엇보다 많은 아티스트가 참여했음에도 통일감이 우수하다. 전반적으로 그루비하고 늘어지는 로파이 톤의 사운드가 주축이 된다.
앨범을 구상하는 프로듀서라면 모두 직면하게 될 문제인데, 여러 플레이어와 작업을 하게 되면 사람마다 가진 이미지가 다른 만큼 그들이 쓰는 미장센이나 장치가 다른 경우가 많다. 어쨌든 나는 앨범에 열다섯 곡이 그냥 들어가는 게 아니라 하나의 앨범으로 연결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아무래도 그걸 조금 상쇄할 수 있던 건 모든 곡의 주제와 테마를 내가 직접 정해서 요청한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평소 산문집을 좋아하기도 하고, 피처링 의뢰를 하기 전에 에세이를 써서 먼저 드리는 습관이 있다. 이 곡의 내가 생각한 오브제는 이렇고, 이걸 읽고 작업에 임해달라고 부탁한다. 물론 이게 완전히 맞을 때고 있고 아닐 때도 있지만, 전혀 맞지 않더라도 이의는 제기하지 않는 편이다. 어쨌든 기본적인 오브제를 상대에게 제시했을 때, 단어나 내용 같은 부분까지 검열하게 되면 표현의 자유를 막는 거고, 단순 '내가 보컬이 아니기 때문에 너에게 부탁하는 것'이라는 의미밖에 더 되나.
로파이 질감과 그루브한 면은 평소 듣는 음악에 영향을 받지 않았나 예상한다. 스톤 스로우 레코드(Stones Throw Record) 소속의 댐 펑크(Dam-Funk)나 제이 딜라(J Dilla), MF 둠(MF DOOM), 매드립(Madlib) 같은 뮤지션의 음악을 자주 들은 게 믹스 과정에서 작용하지 않았을까. 평소 이런 오버 프레싱 기법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에는 마인드 컴바인드가 있겠다.
사실 <DI-ANA>가 취한 접근법에 비해 앨범 자체의 이슈가 덜된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앨범을 만들 때 신경 쓴 부분이 있나.
앨범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어떤 앨범을 가져오는지'에 대해서였고, 그런 면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인 켄드릭 라마의 <To Pimp a Butterfly>가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이 앨범에는 흑인 음악의 코어가 되는 요소가 모두 담겨 있다. 그의 이전 행보만 보고 당연히 다음 작품도 엄청난 랩으로 가져오리라 생각했는데, 예상이 와장창 무너진 앨범이다. 나 역시 <DI-ANA>를 만들 때 집중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여러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다양한 사운드의 재미를 주고자 했다. 사실 가벼운 앨범은 아니다. 조금 염세적이기도 하고, 신인 아티스트의 에고(Ego)가 나조차도 느껴지니까. 통일성을 주면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한 셈이다.
혹시 앨범이 그런 비타협적인 뉘앙스를 풍기게 된 경위가 있을까.
음악뿐만이 아니라, 사람은 무엇이든 간에 성취감을 느끼고 싶어 하지 않나. 앨범을 한창 준비할 당시 점점 그 성취감이라는 원동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비겁하게도 타인에게서 그 이유를 찾았다. 왜 내 음악에 관심이 없을까, 생각해보면 리스너도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권리가 있는 건데 당시에는 신인이나 뉴 제너레이션의 음악에 평가가 박하다고 생각한 거다. 실제로 그런 생각이 드러난 앨범이라 조금은 일기 같은 앨범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밝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도 했다. 많은 사람을 만나 작업을 하고 있지만 외로운 에너지를 갖고 있었고, 혼자 작업하는 과정에서 느낀 고립감이 점점 표출되었다.
독특하게도 피처링 진을 구할 때 인맥을 활용하지 않고, 일일이 메일이나 DM을 이용해 직접 연락했다.
보통 젊은 감각을 지닌 분들은 파티나 클럽 같은 사교의 장에서 삶을 즐기고 사람을 사귀는데, 일단 나는 성격 자체가 그렇지 않다. 그러다 보니 앨범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정작 아는 분이 하나도 없더라. 참여진 중에 이미 알던 사람은 내가 속한 'KeepNews' 크루 친구들과 부현석, 그리고 오도마 뿐이었다. 그래서 아티스트 섭외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방법인 래퍼의 이메일이나 DM으로 연락하는 방식을 택했다. 일종의 정공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음악 신에서 누구를 통해 연락하는 행위가 비겁한 것은 아니지만, 조금 더 낭만적인 방법을 시도하고 싶었다. 만약 음악이 충분한 설득력을 지닌다면 수락해 주리라는 믿음이었다.
딥플로우의 경우에는 DM으로 연락을 보냈더니, 바로 기꺼이 참여하고 싶다는 답장과 함께 핸드폰 번호가 왔다. 성사되어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테이크원 같은 경우에는 아무리 흔적을 찾아봐도 도저히 메일 주소를 알아낼 수가 없어서 하프타임 레코즈에 직접 문의를 넣었는데, 그 글을 보고 매니저를 통해 연락이 와서 참여하게 되었다. 나머지 분도 거의 유사하게 곡이 마음에 든다고 흔쾌히 참여해 줬다. 열린 마음으로 들어줘서 정말 감사하다. 그리고 이 방법을 택한 건 어떻게 보면 성취의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원한 아티스트에게 닿는 것만큼 기쁜 일도 없지 않나. 물론 방식 자체가 필연적으로 피드백이 늦기 때문에 힘들게 기다린 기억이 난다. (웃음)
아날로그 작법을 필두로 한 고전적 접근이나 신인 아티스트의 고집 등 다양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앨범이지만, 모두 돌고 돌아 결국 낭만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나한테는 그게 굉장히 중요했다. 아까도 말했듯 앨범에 상징성을 담고 싶었고, 적어도 그 과정에서 고군분투했던 모습을 멋지게 기억하고 싶었다. 나중에 돌아보면 분명 미숙한 부분이 보이거나 불안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 시절의 나는 노력했다는 징표니까. 일종의 로맨스인 셈이다. 내가 생각한 고유의 멋을 지키는 게 중요한 축으로 작용했다.
단연 두드러지는 트랙은 '신도시'로, 인스트루멘탈 트랙 'Tesla'와 같이 게스트 없이 혼자 주조한 트랙이다. 앨범을 한 편의 영화라고 본다면 직접 캐스팅을 한 뒤 중간에 잠깐 참조 출연한 셈인데, 직접 노래를 쓰고 부른 이유가 있을까.
'신도시'라는 곡은 이번 앨범에서 가장 밝은 곡 중 하나임에도, 어느 것보다도 컨셔스한 주제를 다루고 역설적인 면을 지닌 트랙이다. 무엇보다 내가 처한 상황에 관해 얘기하고 동시에 가장 솔직해야 하는 곡이었기 때문에 다른 아티스트의 에너지를 끌어오기보다 내가 직접 주는 편이 더 크게 감동이 작용할 거라 생각했다. 곡이 앨범 내에서 어떠한 기능을 하고 순환을 이루는지 집중하며 작업을 했고, '신도시'가 그런 곡이었다.
전반적으로 얼라이브 펑크라는 틀 아래 잘 응집된 것 같다. 그럼에도 참여진 가운데 특히 인상적이었던 아티스트나 기억에 남는 곡을 꼽는다면.
우선 참여진으로는 'DNCE'의 자메즈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랩을 잘한다는 의미를 넘어 일단 내가 의도한 오브제를 잘 이해한 아티스트였다. <DI-ANA>는 발매 2주 전까지도 타이틀을 못 정한 상황이었는데, 자메즈의 버스가 도착하자마자 이 곡이 타이틀이 되리라는 생각이 스쳤다. 여러 악기를 태깅하듯 펼쳐 놓은 후반 구간에서는 누가 와도 온전하게 표현하기 어려울 거라 예상했는데, 그걸 가뿐히 뛰어넘더라. 굉장히 놀라운 경험이었다.
기억에 남을 만큼 피드백이 많이 오고 호불호가 갈린 트랙은 네버언더스투드(neverunderstood)가 참여한 '아류'다. 마지막 트랙인 만큼 어려운 주제를 다루는 데다 무엇보다 사운드 어프로치가 말이 안 되는 곡이다. 여러 FX 소스는 물론 모듈러 신스를 이용해 회로도 직접 만들면서 만든 곡이다. 진짜 힘들었다.
네버언더스투드의 이름이 언급된 김에 본인이 속한 'KeepNews' 크루에 대한 소개를 간략하게 부탁한다.
우선 프로듀서는 얼라이브 펑크가 있고, 플레이어로는 보나조이(Bona Zoe)와 네버언더스투드, 쿠엔틴 파이브(Quentin 5ive), 코지마이(Kojimai), 칼리 킴(Kali Qim), 그리고 오엘프라이스(OL'Price)로 구성된 크루다. 혼자 음악 하는 친구들을 내버려 두기 싫어 결성된 크루다. 그렇다고 해서 모였으니 막연하게 노는 것 역시 불필요한 시간이라 생각하기에 몇 년 전 1집 컴필레이션 앨범 <Radio>를 제작했다. 같이 작업하면서 시너지가 많이 나오고 있고, 최근에도 2집을 만들자는 제안이 나온 상황인데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일단 내가 엄두가 안 나서. (웃음)
최근 'POP-UP STORE'의 슬로건을 내건 싱글이 두 개 나왔다. 하나는 서사무엘과 함께한 'To-kyo', 또 하나는 던말릭과 수비(Soovi)가 참여한 '없어도 돼'다. 어떻게 구상하게 된 프로젝트인가.
예전에는 프로듀서가 싱글 앨범을 릴리즈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싱글은 포맷 상 기본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요소가 적은 데 정녕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느냐는 입장이었던 거다. 근데 <DI-ANA>를 만들면서 고생을 너무 많이 하기도 했고 조금은 가벼운 기분으로 창작을 해보고 싶었다. 시리즈별로 기획을 짜고 'POP-UP STORE'라는 슬로건을 짜면서 본격적으로 곡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일단 대중적으로 가고 싶었고, 내가 생각하는 기준의 커머셜한 사운드를 많이 차용했다. 기존의 공격적인 신시사이저보다는 듣기 편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확실히 <DI-ANA> 때와는 달리 지치지 않고 즐기면서 하게 되더라.
뭔가 기존 스타일에서 공간감이 확장된 것 같다.
내가 원한 의도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고 보면 된다. 'To-Kyo'는 일종의 워드 플레이인데, 찾아보니 'Kyo'가 공허라는 뜻이 있더라. 그 앞에 'Too'가 붙은 셈이다. 사람들과 부딪히고 섞이면서 살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고, 가끔 혼자 있고 싶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런 편안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청각으로 표현한 곡이다. 그렇기에 듣기 부담스럽지 않은 앰비언트하고 칠 아웃한 사운드가 나오게 되었다.
서사무엘과의 작업은 어땠나.
우선 'To-Kyo' 곡 자체로 가지고자 한 목적은 '편안함'이었는데, 서사무엘은 직접적인 요청 없이도 알아서 듣기 편한 최적의 루트로 채워냈다. 그리고 이제껏 같이 작업한 이들 가운데 베이스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다. 두 번째 버스의 도입부에서 베이스 프레이즈를 긁으며 들어가는 구간에 소리를 비워 놓은 걸 보고 굉장히 놀랐다. 본인의 앨범 <Frameworks>를 인용한 듯한 가사도 무척 마음에 들고.
'없어도 돼'에서 던말릭이 펼친 퍼포먼스도 인상적이다. 특히 메시지가 얼라이브 펑크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준 느낌이 들었다.
너무 좋은 질문이다. 사실 던말릭은 저번 앨범에서 같이 하기로 한 곡이 있었고, 완성까지 했는데 그 결과물이 둘 다 만족스럽지가 않아 미처 발매하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작업이 재밌었고 평소 너무 좋아하는 래퍼라 다시 한번 만나 작업을 도모했다. 하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준 느낌이 들었다'고 하지 않았나. 실수로 작업 전에 수비에게만 에세이를 주고 실수로 던말릭에게는 안 보냈더라. 결국 던말릭은 '없어도 돼'라는 제목 하나만 듣고 참여한 거다. 근데도 멋지게 가사를 써줬고, 심지어 발매 기간이 촉박했던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작업 분위기도 정말 좋았다. 서로 장난도 치고.
어떻게 보면 또 에세이를 보내지 않은 게 새로운 시너지를 만든 게 아닐까.
앞으로도 그렇게 해볼까 생각 중이다. (웃음)
다양한 시도를 준비하고 있다는 만큼, 향후 발매될 팝업스토어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가 크다.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음악으로 구성될 예정인지.
사실 그 점에 관해서는 내 작업 스타일에 대해 먼저 설명을 하고 싶다. 나는 앨범을 제작할 때 앨범을 위한 곡을 만드는 편은 아니다. 오히려 곡을 만들어 놓고 언젠가 아카이빙된 그 수많은 곡을 나중에 펼쳐 보았을 때 느낌이 오면 수록을 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이불 위 DI-ANA' 같은 곡은 앨범 발매 4년 전에 쓴 곡이고, <DI-ANA>를 만들면서 버린 곡만 해도 63개에 달한다. 심지어 전부 아날로그로 작업했다.
물론 곡이 별로라서 뺀 건 아니다. 그저 넣으면 안 되는, 이 <DI-ANA>라는 앨범 안에서는 생명력을 지니지 못하는 트랙이었던 거다. 지금도 팝업스토어 프로젝트를 겨냥하고 쓴 곡이 벌써 열다섯 곡 정도 되지만, 그 곡이 수록될 가능성은 미지수다. 처음 목표로는 볼륨 1부터 3까지 발매한 뒤 후에 새로운 곡을 추가한 디럭스 버전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그때부터는 또 하나의 앨범이 되는 거니까 또 통일성을 생각해야 할 테고. 그래도 차근차근 주제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다.
아날로그 세션을 자주 사용하는 만큼 밴드 라이브에 대한 관심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렇게 큰 욕심은 없다. 아직 드러나는 것보다는, 대중에게 먼저 작품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다. 만약 하게 되더라도 다른 세션을 쓰기보다는 혼자 원맨밴드 식의 작업 방식을 고수할 것 같다. 예를 들어 멀티 트랙을 깔아놓고 공연을 한다거나. 정직한 앨범을 냈기 때문에 라이브 현장에서도 정직해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 시기에 대해 아쉬움이 남을 것 같은데.
이건 참여한 래퍼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앨범을 내고 파티 같은 것도 기획하고 있었는데 전부 무산되었다. 아쉽기는 하지만 앞으로도 보여줄 것이 아직 많이 남아있고, 조금 더 열심히 해서 대중에게 다가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많은 아티스트와 협업을 하고 있지만, 꼭 한번 같이 작업해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한국에서 모두가 원할 테지만, 빈지노와 작업을 해보고 싶다. 어떤 음악의 기준이나 특수한 사운드 접근법에 구애받지 않고, 또한 각종 리듬과 장르를 전부 소화할 수 있는 뮤지션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다. 빈지노는 정규 1집의 수록곡 'Break'에서는 로큰롤 리듬을 선보이지만 'Dali, van, picasso'로는 재즈틱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최근 발매된 'Blurry'는 또 트랜스 음악과 많이 닮았다. 그런 면에서 이해도가 높고 스펙트럼도 넓은 아티스트라 꼭 한 번 원 엠시 원 피디로 작업을 해보는 게 꿈이다. 멋진 작업을 할 자신도 있고.
다양한 음악을 듣는 만큼 추천하고 싶은 음악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얼라이브 펑크가 좋아하는 여러 장르에서 대표로 한두 장씩 소개 부탁한다.
일단 힙합 앨범에서는 DJ Shadow의 <Endtroducing……>을 꼭 들어봤으면 좋겠다. 최초의 샘플러와 턴테이블로만 만든 앨범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데다, 브레이크 비트 같은 개념이나 트립 합 등에 영향을 끼친 앨범이다. 턴테이블리즘이 일어났을 때 그 중심에 있던 음악가기도 하다. 만약 샘플링을 공부하는 분이라면 DJ Shadow의 음악이 좋은 소재가 되리라 생각한다.
디스코에서는 스타일리스틱스(The Stylistics), 코모도스나 팔리아먼트 등 괴물 같은 그룹에 가려진 감이 있지만 이에 필적할 만한 그루브를 가진 팀이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 순수 재즈는 아니지만 재즈틱한 앨범 중에서는 아이작 헤이즈(Isaac Haves)의 <Chocolate Chip>을 뽑고 싶다. 어쿠스틱하고 애시드한 사운드를 많이 썼기에 지금 들어도 촌스럽지 않고 유행에 구애받지 않을 앨범이다. 소울 음악이라 하면 소울 폴 리얼(Soul for Real)의 앨범을 추천한다. 뉴 잭 스윙이나 슬로우 잼 같은 다양한 소울 펑크 리듬이 있고, 나 역시도 거기서 악기의 어레인지 같은 것을 많이 참고한 것 같다.
일렉트로니카에서는 Teebs의 <Anicca>. 앰비언트한 요소도 있지만 강력한 드럼도 있고, 이 앨범에서 사운드 접근법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공부가 많이 된 뮤지션이라 추천을 하고 싶다. 록은 다들 많이 알 테지만,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를 권한다. 내 기준에서 가장 완벽에 가까운 앨범이고, 아직까지 이걸 뛰어넘은 앨범은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나 더 있다면 핑크 플로이드의 <The Dark Side Of The Moon>을 꼽고 싶다.
최근 재밌게 들은 앨범이 있을까.
일단 한국에서는 마인드 컴바인드가 있고, 그리고 외국에서는 조금 아쉽지만 키드 커디(Kid Cudi)의 <Man On The Moon III : The Chosen>을 뽑고 싶다. 물론 첫 등장이 워낙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Man on the moon'이라는 타이틀을 붙이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리고 작년 발매된 프레디 깁스(Freddie Gibbs)와 알케미스트(The Alchemist)가 같이 작업한 <Alfredo>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음악 팬들이 얼라이브 펑크의 음악을 들을 때 어떻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는지.
아까도 말했듯, 결국 시간이 지나면 작품의 하자나 허점은 분명 내 눈에도 보일 거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영원히 미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음악을 완성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청자다. 최고의 칭찬이던, 혹은 정말 별로라는 말을 남기든 간에, 어쨌든 평이 나온 것 자체가 음악을 완성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청자분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앞으로 얼라이브 펑크로 활동하면서 솔직한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 나의 일기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그 당시의 얼라이브 펑크가 이걸 좋아했고, 이런 생각을 했다고 유추해도 좋다. 어쨌든 솔직함은 소중한 가치고, 그걸 고수하는 게 멋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니까. 정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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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