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희 “코로나가 여행자에게 내준 숙제를 성실히 풀었어요”
『떠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면』 오소희 저자 인터뷰
일상이든 여행이든, 언제 어디서 무얼 하든, 사실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한 가지 열망일 겁니다. ‘잘 살고 싶다.’ 머무는 것도 떠나는 것도 그 열망 속에서 취하는 행동들이죠. (2021.03.17)
떠남이 제한된 시기, 모두가 집에 머물며 깨달은 사실이 있다. 떠나지 않고도 행복해지는 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어디로도 떠날 수 없는 지금,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장소는 바로 내 집이 아닐까. 반강제적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뜻밖의 행복도 찾아왔다. 인스턴트가 아닌 진짜 음식을 해 먹는 것, 난생처음 반려식물을 기르는 재미를 알게 된 것, 엄마와 통화할 때 ‘바빠 죽겠다’고 짜증 내지 않는 것, 친구와 언제 한번 같이하자고 미뤄둔 동네 산책을 하는 것. 코로나 때문에 하지 못하게 된 것을 나열하는 대신, 할 수 있게 된 것들을 생각해보니 그 리스트 또한 짧지 않다.
지금 머무는 자리에서 행복을 찾는 이들에게 ‘자기만의 세계를 가꾸는 이들의 멘토’ 오소희 작가의 존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지난해 『엄마의 20년』을 통해 수만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저자가 이번에는 ‘집’을 주제로 쓴 산문집 『떠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면』을 펴냈다. 행복의 지혜를 찾아 지구 반대편까지 달려가본 오소희 작가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일상의 행복론’은 무엇일지, 그녀를 만나 들어보았다.
새 책 제목이 『떠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면』입니다. 떠남을 이야기하는 여행기보다는 에세이 성격이 강하던데요. 제목이 내포하는 의미를 설명해주세요.
제가 부암동에 집을 짓고 이사를 했을 때, 코로나가 들이닥쳤어요. 저는 늘 떠남과 머묾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며 살고 있었는데, 강제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거죠. 덕분에 ‘집’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여러 사유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마침 저는 집을 짓는 모든 단계에 직접 참여한 터였어요. 설계부터 인테리어까지. ‘집’이라는 작은 공간을 구석구석, 아주 지겨울 정도로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죠. (네, 집은 정말 지겨울 정도로 들여다봐야 한 채가 지어지더군요.) 처음에 저는 ‘집을 짓는 것’과 ‘여행을 떠나는 것’을 완전히 대척점에 놓인 행위로 생각했어요. 하지만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 두 가지가 한 사람의 삶 속에서 얼마나 면밀히 얽혀 있는가를 관찰하게 되었죠. 어찌 보면 코로나가 여행자에게 내준 숙제를 성실히 풀어낸 것이 이 책이 아닐까 합니다.
이번 산문집에 실린 글들은 일상과 여행의 시공간이 교차 편집되듯 번갈아 나오는 구성이 흥미롭습니다. 마치 저자의 집이 자리한 부암동에서 시작된 이야기라는 바람을 타고, 바다 건너 이국의 장소들을 사이사이 짧게 여행하고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든달까요. 일상과 여행을 오가며 이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일상이든 여행이든, 언제 어디서 무얼 하든, 사실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한 가지 열망일 겁니다. ‘잘 살고 싶다.’ 머무는 것도 떠나는 것도 그 열망 속에서 취하는 행동들이죠. 이 책 속에 담긴 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혀 다른 장소에서, 전혀 다른 일들이 벌어졌지만, 모두 그 한 가지 열망이 뜨겁게 발화한 순간을 엮은 것들이에요. 그래서 거실 소파에서 무릎담요를 덮고 있던 순간이나, 발리에서 스콜을 맞으며 오토바이를 타던 순간이 나란하죠. 서로 대조적인 것 같지만, 각각 동등하게 반짝여요. 어느덧 저는 그 모든 반짝임들을 차별 없이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독자분들도 고르게 음미하실 수 있길 바랍니다.
지나치기 쉽고, 잘 눈에 띄지 않는 일상의 순간들에 대한 포착과 묘사가 무척 섬세합니다. 내 삶에서 그동안 놓치고 살던 것이 무엇인지 문득 되돌아보게 돼요. 바쁜 일상에서 순간순간의 행복을 발견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행복을 찾아 먼 여행을 마친 사람이 간신히 받아낸 선물이라고나 할까요? 무거운 가방을 몇 달씩 짊어지고, 거기에 어린아이까지 매달고, 특히 버스도 도로도 엉망인 제3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밥과 숙소를 전전하며 여행한다면, 누구라도 ‘행복은 무엇일까’에 대한 답을 징하게 배울 수밖에 없을 거예요. (정말로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개고생하지 않아도 자기 자리에서 차곡차곡 알아냈을 것인데 말입니다.)
저는 ‘징하게’ 배울 수 있었던 대신, 여행지에서 배운 것이다 보니 다시 한국의 일상에 적용하는 데 또 격렬한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그 진통을 이겨내지 않으면 ‘잘 살고 싶다’는 소망을 이룰 수 없다는 것도 알았죠. 그래서 견뎠고 그 과정에서 장착된 기술들이 저에게는 행복을 발견하는 힘으로 작동하나 봅니다. 어떤 기술이냐고요? 다름을 존중하기, 현재를 음미하기, 자족하기… 그런 기술들이요.
‘여행자의 집’이라는 글에서 “집에 꾸준히 나다움을 담을 고민을 한다. 그로써 집에 머무는 시간 동안 내가 나다워질 궁리를 한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나다워지기 위해’ 매일 지키려 노력하는 일상의 루틴이 있는지요?
일정한 시간에 글을 쓰고, 일정한 시간에 운동을 합니다. 낮에 네댓 시간 글을 쓰고, 저녁에 두세 시간 운동을 해요. 그 두 활동은 동떨어진 듯 보이지만, 서로의 건강함을 지속적으로 지켜줍니다. 제게는 양질의 글을 계속 쓰고 싶은 만큼, 양질의 근육을 계속 가지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여행을 통해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 방식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고립감, 상실감을 크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일찍이 많은 곳을 여행했고, 여행이 곧 일상이었을 작가님은 답답하지 않으신가요? 한편으로 코로나가 가져다준 뜻밖의 변화, 혹은 여행이 사라진 일상에 새로이 채워진 행복이 있다면?
답답하죠. 하지만 답답한 채로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라, 어떤 식으로든 해소할 방법을 강구합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저는 집 주변을 충실히 발견하고 있어요. 처음 한두 달은 부암동에서 연결된 ‘한양도성길’을 다 걸었고, 그다음 한두 달은 ‘북한산 둘레길’을 다 걸었어요. 그러고 나서는 북한산의 봉우리들을 전부 다 올랐고… 네, 그 사이 자연스럽게 체력이 좋아졌어요. 이제는 주말마다 북한산의 모든 등산로를 다르게 선택해서 오르내리고 있어요. 하루에 20㎞씩. 종아리가 야구선수처럼 되었답니다. 혹시 치마를 원하시는 분은 연락주세요. 이제 제 다리엔 필요 없어졌으니 기꺼이 넘겨드리겠습니다.
베스트셀러 여행작가로 작가님을 기억하고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모처럼 ‘여행자 오소희’의 모습이 담긴 이번 책이 더욱 반가울 것 같습니다. 다시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시기가 오면, 작가님은 비행기를 타고 제일 먼저 어디로 향하실지 궁금하네요. 다음 여행에 대해 계획해둔 바가 있으신지요.
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특권이 있다면 계획 없이 살아도 괜찮다는 걸 겁니다. 제가 계획대로 안 한다고 해서 세상에 잘못될 일이 하나도 없어요. (허허) 극소수의 작가를 제외하고, 본질적으로 작가란, 저 좋아서, 있으나 없으나 세상이 미동도 않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에요. 뭐 어찌 보면 슬픈 일이지만, 덕분에 저에겐 계획 대신 상상을 더 열심히 해도 좋은 자유가 있죠.
어느 날은 무인도에서 수영만 죽도록 하는 여행을 상상하다가, 어느 날에는 『살아갈 용기에 대하여』의 ‘바바라’를 찾아 나서는 여행도 상상하죠. 또 지금은 제가 무언가를 찾아 떠나는 것뿐만 아니라, 제가 있는 자리로 저를 찾아오는 여성들과의 만남도 소중한 여행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지금도 ‘언니공동체’에서 여행을 하고 있고요. 이 여성들과 함께하는 활동에 대한 이야기도 곧 글로 쓰게 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늘 그랬듯이, 앞으로도 특정 시기마다 저를 사로잡고 있는 대상에 충실한 여행을 하고 글을 쓸 거예요.
에세이뿐만 아니라 소설, 동화, 자기계발서 등 다양한 장르에서 무려 열두 권의 책을 쓰셨는데요, 누군가는 시대를 앞서간 여행가로, 주체적인 삶의 롤모델로, 엄마들의 육아 멘토로, ‘오소희 작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다채롭습니다. 먼 훗날 독자들에게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끝으로, 작가님의 책을 기다리고 또 계속 읽어주시는 독자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려요.
삶의 이치는 그대로인데, 책의 수명은 그 어느 때보다 짧아졌습니다. 홍수처럼 밀려드는 콘텐츠들 사이에서, 앞으로 책은 ‘깊이’로만 수명을 지닐 수 있을 거예요. 시간을 견딜 수 있는 깊이를 먼저 저의 삶으로 가져오고, 거기서 알아낸 것을 글로 쓰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책에서는 오랜 시간 제 글을 함께 해오신 독자들께 ‘옥탑방 창문에서 바라보면’, ‘시간이란 무엇인가’, ‘결핍인 줄 알았던 것의 과잉’, ‘인식하는 사람의 운명’, 이 네 편의 글로 안부를 대신하고 싶습니다. 당신 덕분에 지치지 않고, 계속 질문하고 답을 찾아 나설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소희 언제 어디에 머물러 있든, 자기만의 세계를 가꾸는 여성들의 멘토. 서울의 광고 회사에서 일하다 훌쩍 계룡산에 내려가 살던 때도, ‘세 살배기 아이와 세계일주’라는 장르를 개척한 여행작가 시절에도, 그녀의 목적지는 장소가 아닌 사람이었다. 한국과 발리의 우붓을 반년씩 오가며 생활하다 지난해 서울 부암동에 생애 첫 집을 지었다. 그곳에서 공동체를 위한 공간을 나누며, 나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을 찾는 사람들의 여정을 함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엄마의 20년』,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 『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 『하쿠나 마타타 우리 같이 춤출래?』, 『살아갈 용기에 대하여』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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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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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필요한 것은 영화처럼 누군가의 또 다른 삶을 구경하는 일이 아니다. 그냥 내 순간을 사는 것이다.” 떠남이 제한된 시기, 모두가 집에 머물며 깨달은 사실이 있다. 떠나지 않고도 행복해지는 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답답한 일상을 환기해줄 특별한 장소를 찾아 떠나던 과거의 방식 대신, 지금 머무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