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영화 <남매의 여름밤> 무조건 이 집이다! 생각했죠 (G. 감독 윤단비)
책읽아웃 - 김하나의 측면돌파 (155회) 『남매의 여름밤 각본집』
관객들이 제가 예측하지 않았던 데서 웃거나 울었을 때 ‘그래도 이 영화의 감정선이 잘 가고 있구나’ 싶고 되게 남달랐어요. (2020.09.29)
영화의 각본집 출간을 위해 <남매의 여름밤>의 시나리오를 다시 읽고 있자니 낱낱이 안다고 믿었던 사람의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표정을 목도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표정을 짓기도 하는구나’가 아닌 이 사람이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의 생경함이었다. 영화를 촬영하며 늘 손에, 눈에 붙들려 있던 시나리오가 이리도 낯설게 보이기까지 무수한 과정들을 지나며 가장 달라진 점은 아마도 시나리오가 품고 있는 온도와 영화가 지닌 온도의 차이일 것이다.
『남매의 여름밤 각본집』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오늘 모신 분은 올해 여름 첫 번째 장편 영화를 선보인 감독님입니다. 단 한 편의 영화로 평단과 독자들의 엄청난 호평과 사랑을 받은 분이죠. 그리고 우리를 그 언젠가의 여름밤으로, 오래 전 기억 속의 집으로, 데려다 놓으신 분입니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만드신 윤단비 감독님입니다!
김하나: 1.7만! 이게 무슨 숫자인지 아십니까?
윤단비 : 무슨 숫자죠? (웃음)
김하나: 오늘 네이버에서 찾아보면 <남매의 여름밤> 누적 관객수가 1.7만 명이라고 나와 있어요. 알고 계셨나요?
윤단비: 네, 매일 확인하기 때문에(웃음).
김하나: 이 코로나 시국에 1.7만 명의 관객이 극장을 다녀가셨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고, 영화를 만드실 때 아무리 관객수와는 상관없이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만들고 나서 ‘관객이 몇 명쯤 들지 않을까’ 이런 걸 생각해보게 되잖아요. 어떠셨나요, 처음에 예상하셨던 것은?
윤단비 : 사실 영화를 만들 때는 ‘다 같이 고생을 했는데 영화가 공개됐으면 좋겠다’, ‘묻히지 않고 영화제에서라도 상영이 되면 정말 의의가 있겠다’ 이 정도였는데...
김하나: 그러면 만드실 때는 ‘개봉이고 뭐고 간에 어디 상영이라도 됐으면 좋겠다’였던 거군요.
윤단비 : 네. 그런데 촬영 감독님이나 다른 분은 당연히 개봉을 생각하고 작업을 하셨는데, 저는 ‘이 영화가 대중성이 있을까?’ 싶었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이고 진심을 다해서 만들었지만 대중들의 마음은 제가 파악하기가 어려워서 ‘이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이런 막연함이 있다가, 부산영화제에서 처음 공개가 됐을 때 너무 긴장되더라고요. 첫 상영이고 반응을 처음 눈으로 실감할 수 있으니까. 그때 뭔가 사람들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기억들을 영화에 많이 투영해주는구나 이런 걸 느끼면서 ‘조금 더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김하나 : 부산영화제 때, 반응이 어땠나요? GV 같은 걸 하고 그러셨나요?
윤단비: 네, 네.
김하나: 많은 분들이 자신의 경험도 이야기를 하고, 영화에 대해서 호감도 표현해주시고?
윤단비: 네, 네. 부산영화제 상영 직전에는 사실 저희 영화의 정보가 아예 없다 보니까 느닷없이 튀어나온 작품인 거예요. 다른 감독님들은 정보도 있고 어떤 영화라는 게 유추가 되는데, 저희는 ‘어? <남매의 여름밤>이 뭐지?’ 약간 이렇게 하다가(웃음). GV가 없는 첫 상영 때 가서 봤어요. 관객들이 제가 예측하지 않았던 데서 웃거나 울었을 때 ‘그래도 이 영화의 감정선이 잘 가고 있구나’ 싶고 되게 남달랐어요. GV 할 때도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고 하면서 안아주신 분들도 계셨고, 되게 따뜻했어요.
김하나: 너무 감동적인 일이잖아요. 상영을 할 수 있을까 싶었던 영화가 부산영화제에서 상영이 되고, 게다가 4관왕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 이후로 쏠쏠히 상을 받더니만 로테르담 영화제도 다녀오시고 무주산골영화제에도 다녀오시고, 다양한 활동들을 하시게 됐잖아요. 그리고 지금은 개봉해 있는 상태이고. 그러면 관객수가 늘어가고 이러는 게, 예상을 벗어난 반응이라는 말씀이신 거죠?
윤단비: 네.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영화가 잘, 멀리,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진짜 많이 했어요.
김하나 : <남매의 여름밤>에 대해서 처음부터 살짝 이야기를 해보자면, 처음 영화가 시작하면 반지하 방에서 한 가족이 나오는 걸로 시작이 됩니다. 재개발이 되는 곳 같고, 그 가족이 다마스에 짐을 가득 싣고 골목을 빠져나오는데, 옆에는 헐기 시작하는 집들도 보이고, 차가 나아가는데 음악이 흐르기 시작하죠. 뭐였죠?
윤단비: 임아영 버전의 「미련」이라는 곡이 나옵니다.
김하나 : 저는 그 음악이 흐를 때 이미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 음악 선정은 누가 하신 건가요?
윤단비: 영화에 할아버지랑 옥주랑 음악을 듣는 부분이 있잖아요.
김하나: 여자 주인공인 고1, 옥주.
윤단비 : 네. 그 장면에서 처음에는 김추자 선생님의 곡이었으면 좋겠다...
김하나: 그 생각은 감독님 생각이에요?
윤단비: 네.
김하나 : 이게 범상치 않은 거예요. 왜냐하면 감독님 세대가 김추자의 음악에 쉽게 노출되지는 않을 것 같거든요? 그러면 레트로 취향이라든가, 그런 게 있으신가요?
윤단비: 할아버지가 들을 만한 곡을 생각하다 보니까 김추자 선생님의 곡들이 시대성을 반영하기도 하고...
김하나: 아우라도 있고.
윤단비: 네, 네. 그래서 이 곡이면 이상적이겠다고 생각했는데, 촬영 감독님도 같이 찾다가 「미련」이 영화를 관통하면서 할아버지와 옥주와의 관계를 잘 나타내주겠다, 어떤 멜로드라마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곡을 선택했고, 오프닝과 엔딩 장면에서 임아영 버전 김추자 버전을 넣고, 할아버지와 옥주가 음악을 들을 때는 조금 더 따뜻한 밤의 느낌이 나면 좋을 것 같아서 장현 선생님의 버전으로, 다양한 「미련」의 버전들을 삽입하게 됐어요.
김하나: 「미련」이 흐르는 가운데 터널을 통과하기도 하고 멀리까지 가서 도착한 곳이 2층 양옥집인데. 이 2층 양옥집이 이 영화의, 옥주만큼이나 또는 더, 주인공인 것 같아요. 영화를 본 많은 분들이 그 집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 궁금증을 갖고 계실 것 같은데, 그 집은 세트장이 아니잖아요? 도대체 어떻게 발견하셨나요, 그런 집을?
윤단비: 저희가 일단은 제작 여건상의 문제도 있었겠지만, 조금 생활감이 있는 집을 찾고 싶다는 게 가장 주요했거든요. ‘세트로는 구현되지 못할 생활감이나 흔적들이 있을 수밖에 없겠다’ 해서 ‘할아버지가 아니더라도 실제로 누가 거주하고 있는 집, 손때가 묻어있는 집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예전에 잘 살았을 구옥의 단독주택이었으면 좋겠다’ 라고...
김하나: 한 때 동네에서 제일 잘 살았던 집 같은 분위기의 구옥을 원하셨죠?
윤단비: 네, 네. 그리고 제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주택에 살았거든요. 그래서 아파트를 잘 모르겠는 거예요. 어떤 정서이고 어떤 감정인지. 그리고 구옥이 요새는 조금 사라져가는 추세이니까 구옥이 등장해야 약간의 그리움이나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향수를 잘 담아낼 수 있겠다 해서 찾다가, 동인천 그 골목에 구옥들이 되게 많아요. 그 중에서도 그 집이 개성이 제일 강한 집이었어요. 구조도 그렇고.
김하나: 겉에서 봐도 식물도 엄청 자라고 있고.
윤단비: 네, 네.
김하나: 그런데 살림집 아니었어요?
윤단비: 살림집이었어요.
김하나: 그럼 무작정 ‘집이 아주 간지나는데 한 번 들어가 봐도 될까요?’ 이렇게 찾으신 거예요? (웃음)
윤단비: (웃음) 거기에서 안방에서만 드라마 촬영을 한 번 해본 적이 있대요. 전체 노출은 안 됐었고 안방에서만 잠깐 드라마 촬영을 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어떻게 그 사장님하고 연락이 닿게 돼서 한 번 찾아뵙겠다 하고 갔는데 ‘무조건 여기에서 찍어야겠다’는 강렬함에 사로잡혔고, 당연히 허가는 쉽지 않았지만(웃음)...
김하나: 살던 분들한테 나가라는 거잖아요? (웃음) 영화를 찍겠소, 집기는 다 두고 나가시오. (웃음)
윤단비: 잠깐 빌려주시면 아름답게 찍겠다는 마음으로(웃음). 몇 번 찾아가니까 허락을 해주셨고 그때부터는 촬영하기 전에 그 집에서 시나리오도 쓰고 하면서...
김하나: 그럼 촬영도 전에 이미 쫓아내신 건가요? (웃음)
윤단비: 아뇨, 함께 공존했죠. (웃음)
김하나: 아, 진짜요?
윤단비: 네. 집에 있는 것들을 많이 반영해야겠다 해서 시나리오도 많이 수정했고 2층의 중문이라든가 되게 개성 있는 것들을 없애는 대신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싶어서 공간을 섭외한 다음에 많이 수정을 했어요.
김하나: 진짜 이 공간이 없으면 <남매의 여름밤>은 정말 다른 영화가 됐을 것 같다 싶을 정도로 집의 인상이 너무 강렬하고. 처음에 아빠와 첫째인 옥주와 남동생 동주가 셋이 짐을 단출하게 들고 집 안에 처음 들어가서, 할아버지는 그때 더위를 먹으셔서 병원에 계셨고, 남매가 둘이 들어와서 집 안을 살펴보잖아요. 그런데 집 안의 모습이 나무 패널을 굉장히 많이 쓴 집이고, 거기에 놓여있는 것들을 보면서 ‘저건 만들 수가 없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곳곳에 놓여있는 달마도라든가, 쇼파에 묘하게 놓여있는 안마기라든가, 일력이 있고 일력 위에 걸려있는 모자들, 이런 게 너무 자연스러운데다가 거기에 전축이 있었잖아요. 나중에 할아버지가 음악을 듣게 되는. 그런데 그 전축이 쌓여간 모양새가 만든 게 아니라 점점 집적이 일어난 것 같은, 자생적인 전축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거예요. 감독님도 처음에 그 집에 들어갔을 때 사소한 그런 하나하나를 보고도 반하셨던 거군요?
윤단비: 네. 만약에 미술팀이나 제가 세팅을 한다면 그렇게 놓지 않을 만한 것들이 있는 거예요. 안마기도 그렇고. 그래서 이걸 최대한 반영하자 생각했고. 그런데 원래는 전축이 있는 곳에 텔레비전이 있었거든요. 텔레비전이 있는 순간 거실에서 가족들이 TV를 보느라 대화를 많이 안 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TV 대신에 전축을, 그것도 그 집에 있었던 물건인데, 이게 여기에 놓이면 오히려 좋겠다 해서 그것만 배치를 조금 바꾸고 촬영을 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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