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인터뷰] 매들린 밀러 "여성들에게 목소리를 주고 싶었어요"
장편소설 『키르케』 매들린 밀러 작가
이야기 중심에 있는 사람은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진 인물이 되는데요. 아킬레우스나 오디세우스는 3천 년 동안 이야기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이제 다른 사람이 중심에 설 차례가 되었죠! (2020.09.04)
SNS에 매일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의 후기가 올라온다. 주로 ‘읽던 책을 덮고 차마 잠을 잘 수가 없었다’는 후기. 바로 여성문학상 수상한 베스트셀러 작가 매들린 밀러의 『키르케』이다.
브라운 대학교에서 고전학으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고, 졸업 후 고등학교에서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 셰익스피어를 가르치는 교사로 일하면서 10년 동안 집필한 첫 장편소설 『아킬레우스의 노래』가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매들린 밀러는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그의 두 번째 신화소설 『키르케』는 첫 소설보다 더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으며, <왕좌의 게임>을 제작했던 HBO에서 드라마로 만들 예정이다.
매들린 밀러의 신화소설 열풍이 한국에도 불기 시작한 걸까. 이 인터뷰는 한국독자들의 질문을 이봄 출판사가 매들린 밀러 작가에게 직접 전달하여 진행된 것이다.
『키르케』가 500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인데도 밤새 다 읽었다는 후기가 많을 정도로 한국독자들의 반응이 뜨겁습니다. 그리스 신화를 기반으로 한 소설이라 독자 진입이 어려우리라는 예상도 깨고 있어요. 『키르케』는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 영감을 받아 쓴 소설이라고 하셨는데요, ‘키르케’라는 인물에 매료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대학교에서 『오디세이아』로 수업을 할 때였어요. 키르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키르케가 그동안 부당하게 오해받은 캐릭터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놀랐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키르케가 오디세우스를 함정에 빠뜨린 사악한 마녀라고 알고 있어요. 하지만 호메로스가 원래 보여주고자 한 것은 그런 모습이 아니었어요.
키르케가 오디세우스 일행을 돼지로 만들려 한 것은 분명해요. 하지만 키르케는 자신의 마법이 먹히지 않자 오디세우스 일행을 자신의 섬으로 인도하여 1년 동안 육체의 피로와 슬픔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요. 오디세우스에게 필요한 지원과 조언을 해줍니다. 오디세우스가 만난 그 누구보다 도움을 준 인물이 바로 키르케입니다.
저는 인간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면서 또 자비롭기도 한 이 복잡한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호메로스는 “키르케는 인간처럼 말하는 무서운 여신이다”라고 했어요. 저는 키르케가 인간처럼 말할 수 있다는 점을 다른 사람을 위하고 공감할 수 있는 요소로 해석했답니다.
그리고 키르케의 신비함에도 끌렸죠. 그는 왜 남자를 돼지로 만들었을까? 오디세우스가 섬을 떠난 후 그는 어떻게 지냈을까? 호메로스는 알려주지 않아요. 남자들의 영웅 서사 속에서 카메오로 등장하는 정도죠. 저는 제 소설 속에서는 키르케의 위치를 역전시키고 싶었어요. 키르케를 중심에 놓고, 오디세우스를 카메오로 등장시키는 거죠.
키르케는 매우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서양 문학에서 등장한 사상 첫 마녀인데요. 자체적으로 힘을 만들어낼 수 있는 마녀이기도 해요.
『키르케』를 읽고 있으면 단 한 문장도 놓치지 아깝다는 생각이 들 만큼 명문장이어서 결국 모든 페이지에 밑줄을 그을 수밖에 없다는 독자들의 이야기도 전하고 싶습니다.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연구하고 집필하셨기에, 이렇게 아름다운 소설로 탄생할 수 있었던 걸까요?
책을 완성하는 데 7년이 걸렸습니다. 첫 장편소설 『아킬레우스의 노래』를 마치고, ‘키르케’를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찾을 수 있는 모든 고대 문학과 다양한 판본을 찾아 읽으며 영감을 얻었어요. 집필하면서도 조사는 계속 했어요.
고대 직조 기술이나 컵, 단검, 보석류와 같은 재료에 대해서도 많은 조사를 했어요. 이렇게 조사한 내용은 제 상상력을 풀가동시킵니다. 참, 식물에 대한 조사도 많이 했지요! 어릴 때부터 약초에 관심이 많아서 공부하기도 했는데요, 『키르케』에서 제가 언급한 모든 식물은 고대 문학을 참고한 것이에요.
한 인터뷰에서 『키르케』는 전적으로 페미니즘 프로젝트였다고 하셨는데요. 한국 독자들도 여성서사에 즐겨 읽습니다. 한국 독자들은 『키르케』를 통해 키르케의 여동생인 ‘파시파에’에게도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파시파에’는 어떤 인물인가요
키르케와 마찬가지로 그동안 묻혀 있던 여성들에게 목소리를 주고 싶었어요. 마녀이며 미노타우로스의 어머니인 파시파에에게 매력을 느꼈습니다. 반인반우(半人半牛)의 괴물인 미노타우르스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만 그의 어머니인 파시파에를 조명한 이야기는 별로 없어요. 소설 시작에는 키르케와 적대적인 캐릭터로 등장하지만, 저는 키르케가 파시파에 역시 부당한 현실 속에서 애써 싸우고 있다는 걸 알아주길 바랐어요. 파시파에는 단지 키르케와 다른 선택을 했을 뿐이죠. 키르케는 고립되어 사는 걸 선택했고, 파시파에는 권력을 휘두르고 싶어한 것뿐이고요.
키르케에 작가님의 모습이 얼마나 투영되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작가님은 키르케의 어떤 모습과 닮았나요? (또는 어떤 모습을 좋아하나요?)
키르케와 함께 한 7년은 행복했습니다. 그는 다층적이며, 상냥하고, 사납고, 단호하고, 열정적이고, 강렬한 캐릭터에요. 저는 키르케의 근면성실함을 높게 평가해요. 완벽하지 않지만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인물이에요. 거기다 직조와 마법의 예술가라는 점이 너무 좋아요.
전작인 『아킬레우스의 노래』는 화자가 영웅 아킬레우스가 아니라 파트로클로스였습니다. 작가님은 고전에서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물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인물들에게 유독 눈길이 가는 이유가 있나요?
저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알려지고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묻히는지 관심이 많았어요. 이야기 중심에 있는 사람은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진 인물이 되는데요. 아킬레우스나 오디세우스는 3천 년동안 이야기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이제 다른 사람이 중심에 설 차례가 되었죠!
소설가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보라색 히비스커스』 『아메리카나』 등 인종, 이민자, 여성에 대한 문제를 다룬 소설과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의 작가)는 “유일한 이야기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어떤 이야기이든 단 하나의 버전만 존재한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객관적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오디세우스가 돋보이게 서술되어 있죠. 저는 시점을 바꿔 키르케 입장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를 상상해보고 싶었답니다.
『키르케』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구절이나 장면은 무엇인가요?
저는 소설 속 등장인물과 장면이 저에게 주는 깜짝 선물이 좋아요. 쓰면서 가장 즐거웠던 장면은 키르케가 트리곤과 말하기 위해 바다로 가는 장면이에요. 바다로 가기 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거든요. 키르케와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을 그릴 때도 즐거웠습니다. 둘 다 재능 넘치고, 창의적이고, 매력적인 여성들인데, 둘이 같은 공간에 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했어요.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고 몰입했어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죠.
작가님의 차기작이 궁금합니다. 한국독자들은 매들린 밀러 작가님이 그리는 메데이아가 보고 싶다고 하네요.
저는 메데이아의 이야기를 좋아해요. 메데이아도 또다른 열정적이면서 복잡한 캐릭터이지요. 언젠가 다루고 싶지만 제 다음 소설은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서 영감을 받아 쓰고 있어요. 제가 하는 일 중에 셰익스피어 연극을 연출하는 일이 있는데요. 셰익스피어 세계관을 접할 수 있는 생활이 너무나도 즐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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