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단 한 사람의 편을 드는 소설 (G. 정용준 작가)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150회) 『내가 말하고 있잖아』
지금 제 옆에 영혼은 존재한다고 믿는, 글을 쓰듯 말하고, 말하듯 글 쓰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정용준 작가님 나오셨습니다. (2020.08.27)
알겠지만 말을 더듬는 사람은 말을 말을 말을 입 밖에 꺼내기 전에 이미 그 말을 더듬을 것을 예감하고 있어. 실패할지 몰라, 라는 막연한 예감이 아니라 이미, 이미 실패한 상태로 말이 입속에 들어가 있지. 그래서 말더듬이들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많은 단어를 단어를 단어를 알아야 하고 습득해야 해. 실패한 단어를 대체할 단어가 늘 준비 준비되어 있어야 하거든.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정용준 작가님의 장편소설 『내가 말하고 있잖아』에서 한 부분을 읽어드렸습니다. 말을 더듬는 주인공 소년에게 언어 교정원에서 만난 사람 ‘토스트’가 소년의 노트를 보고 한 말인데요. ‘글쓰기와 말하기는 닮았다. 실패할 단어를 대체할 단어가 늘 필요하다.’ 토스트의 이 말은 ‘말’이라는 것, ‘소통’이라는 것의 진상을 조금 더 들여다보게 하는 이야기예요.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말의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소설가 정용준 작가님을 모셨습니다. 많이 기대 부탁드려요.
오은: 장편소설 『내가 말하고 있잖아』가 지난 6월에 나왔습니다.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해요.
정용준: 전에는 책이 나오면 약간 울적해져서 무엇을 안 하려고 했었는데요. 이번에는 표지도 귀엽고, 이야기도 조금 밝은 내용이기도 해서요. 책이 나오면 이 책의 저자답게 열심히 책 나왔다는 말도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고요. 가까운 사람에게 선물도 하고, 작은 행사도 하고, 홍보도 하면서 지냈습니다.
오은: 『가나』를 좋아하셨던 분들은 그런 느낌의 소설을 원했을 테고요. 『프롬토니오』를 좋아했던 분들은 또 그런 소설을 기대하셨을 텐데 약간씩 다른 결일 수 있잖아요. 저도 그렇거든요. 전작과 달라서 별로다, 전작과 달라서 좋다, 이런 말을 다 들어요. 작가님은 이런 것에 대한 중압감 없으세요?
정용준: 중압감은 없는데요. 제가 비슷한 주제를 계속 쓰는 건 그에 대한 마음이 계속 달라졌기 때문이거든요. 아주 예전에 쓴 단편 「떠떠떠, 떠」의 경우 소재는 아주 같지만 이 소재와 인물에 대한 제 마음은 아주 달라요. 그러니까 일단 쓰는 제 자신이 많이 달라진 거예요. 또 독자들은 당연히 자신의 기대가 있다고 생각하죠. 최근 제 작품을 읽으신 분들은 예전 소설을 보면서 당황하시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지금은 우산 장수와 나막신 장수를 둔 엄마의 마음을 다르게 해석해서 날이 맑아도 좋고, 비가 와도 좋다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어요.
오은: 이제 정용준 작가님 소개를 해드릴게요. “소설가. 질문의 끝에 질문으로 답하면서 살고 싶은 사람. 조용하고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 어린 정용준은 수학을 아주 못했고, 시계 보는 것을 너무나 어려워했었다. 말을 더듬어 언어교정원이라는 곳에 다니기도 했는데 어떤 과정을 거쳐 말을 잘하게 되는지가 매일의 고민이었다. 대학교 때 전공은 러시아어였다. '기형도'가 어느 섬 이름인 줄만 알았던 시절이다.
문학과 비로소 만난 곳은 군대. 그곳에서 읽은 ‘이상문학상 수상작’ 같은 것들은 다 기분이 이상한 채로 끝나는 것이었는데 밤에도 소설 속 인물들이 생각났다. 제대 후 복학해서 문예창작학과 수업을 듣기 시작했고 그때 처음 만난, 글 쓰는 사람들이 너무 충격적이고, 멋있었다.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보다는 이런 사람들과 20대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계속 글을 쓰고 있었다.
소설을 쓸 때마다 몸이 아팠다. 그런데 쓰고 있으면 그 이야기와 인물이 나를 이해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허상의 세계에서 온종일 생활하다 보면 현실감각은 떨어지지만 쓰는 동안에는 아주 생생해진다. 자신을 미워하는 것 외에 달리 살 방법이 없는 존재들, 항상 그를 대신해 뭔가 말하고 싶다. 정용준에게 소설은 불완전한 말을 내뱉는 입술보다 더 나은 입술 같은 것. 좋은 소설은 독자의 몸에 좋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확신을 갖고 있다.
사소한 것에는 깊게 신경 쓰고 중대한 것에는 무심한 편이다. 기타 치는 것을 즐기고, 몇 곡의 자작곡도 갖고 있다. 하마를 좋아한다. 늘 하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여기까지입니다. 『내가 말하고 있잖아』 주인공 소년처럼 작가님이 실제로 언어교정원에 다닌 경험이 있으시군요?
정용준: 제 경험이 주인공 소년과 거의 흡사합니다. 그 동안 말 더듬는 문제, 말을 잘 못 하는 문제를 개인으로서도 고민했지만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도 호기심을 갖곤 했었거든요. 그게 다양한 방식으로 소설화 되었던 것인데요. 이번 소설은 이제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만 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냥 내 안에 있는 것을 쓰자는 마음으로 쓴 거예요. 그래서 배경이나 소년이 처한 상황, 소년이 갖는 세상에 대한 마음 등에 제가 많이 담겼죠. 물론 많은 것들이 픽션이지만요. 그러니까 이 소설을 읽으신 분은 정용준이라는 사람이 이와 비슷하게 살아왔겠구나, 생각하셔도 무방할 정도예요. 그만큼 솔직하게 썼어요.
오은: 그럼 이제 『내가 말하고 있잖아』를 작가님께서 직접 소개해주세요.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는 어떤 이유에선지 말을 더듬게 된 소년의 이야기예요. 이 소년은 자신이 말을 더 이상 더듬지 않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런 기대도 않은 채 그냥 인생이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닫았는데요. 우연치 않게 비슷한 것을 공유하고 있는 어른들이 모인 언어교정원이라는 곳에 가서 강제 힐링을 받게 되는 소설이에요. 소설 쓰는 사람으로 힐링이라는 단어가 썩 좋지는 않아요. 실제 일상에서는 겪기 어려우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말을 잘 못 하는 인물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소설이에요. 어른들에 의한 성장소설이죠.
오은: 작품 배경이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는 때예요. 왜 이때를 택하셨어요?
정용준: 지금도 이 시절이 인상적이에요. 당시 세상이 2000년을 앞두고 꽤 떠들썩했어요. 뉴스에서 비행기가 추락할 거라는 예상을 하기도 했죠. 그래서 아주 불안해 하면서도 떨리는 마음으로, 내심으로는 세상이 한 번 뒤집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도 지냈는데요. 2000년 1월 1일이 되고, 눈도 오지 않는 날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너무 아무 일도 없는 거죠. 저는 그때 너무 실망했어요. 너무 시시한. 이것이 주인공의 마음과도 비슷해요. 너무 불안하고, 떨렸으나 막상 겪고 나면 시시한 것이 이 인물의 감각이고요. 그 감각을 좀 더 상황에 맞추고 싶어서 이때를 배경으로 했어요.
오은: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왜 우리는 잘하는 것을 잘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너무 못하는 것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하려고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읽게 될까라는 질문에 봉착했어요. 소설은 왜 성공보다는 실패에, 풍요보다는 결핍에 기울어져 있는 걸까요?
정용준: 소설이 인간의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이 말은 이승우 소설가의 말이기도 한데요. 이 말은 이야기를 하면서 인간의 편을 들어줘야 한다는 말이고요. 거기 제 생각을 덧붙이면, 단 한 사람의 편을 드는 것이 소설이에요. 이야기 안에서는 그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당시의 윤리 등 여러 가지로부터 고립되어 있죠. 그러나 소설은 그 사람의 편을 들어주고 그 사람의 내면으로 들어가줘요. 제가 군대에서 소설을 통해 받았던 위로도 그것이었고요. 실제로 가까운 사람과도 이토록 내면의 이야기를 하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소설은 할 수만 있다면 심지어 그 인물의 무의식까지도 들어갈 수 있어요. 그런 점에서 소설이 좋고, 또한 그런 부분을 소설이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은: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을 드릴게요. 먼저 <책읽아웃> 청취자에게 영업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정용준: 일주일 동안 이 생각만 했어요.(웃음) 계속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지금 오늘 추천하고 싶은 것은 앤드류 솔로몬의 『한낮의 우울』이에요. 의식적으로 자주 읽는데요. 우울하다는 감정이 얼마나 인간적인지 우울에 대한 해석을 바꾸게 해줘요. 우리는 너무 겁을 내는 것 같거든요. 내 안의 어두운 감정을 자꾸 없애려고 하고요. 그런데 이 책을 보면 그 감정을 아름답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단순히 이 감정을 좋게 해석하는 게 아니라 이 감정을 조금씩 길들이고 마침내 이 감정과 함께 살 수 있게 만들어주죠. 마음이 어둡거나 내 자신이 미울 때 저는 응급처치처럼 이 책을 열어서 밑줄 그었던 부분을 다시 읽곤 해요.
오은: 두 번째 질문, 『내가 말하고 있잖아』가 한 권 있다면 누구에게 선물하고 싶으세요?
정용준: 제 첫째 딸이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래요. 책을 어딘가에 봉인했다가 딸이 중학생 정도 되면 읽게 하고 싶어요.
*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audioclip.naver.com/channels/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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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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