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위 고양이] 언젠가 친구 - 김민섭
북크루 ‘작가 에세이 구독 서비스’
위로 받고 싶었던 어느 날에, 핸드폰 주소록과 카카오톡 친구목록을 아래위로 한참 살피다가, 결국 마땅한 친구를 찾지 못했다. (2020. 05.11)
언스플레쉬
북크루에서 만드는 에세이 구독 서비스 <책장 위 고양이>에서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받은 에세이를 격주 월요일, <채널예스>에서 소개합니다. <책장 위 고양이>는 7명의 작가들이 돌아가며 1편의 에세이를 매일 배달하는 구독 서비스입니다. //www.bookcrew.net/she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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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받고 싶었던 어느 날에, 핸드폰 주소록과 카카오톡 친구목록을 아래위로 한참 살피다가, 결국 마땅한 친구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문득, 나에게는 친구가 별로 없구나, 하고 외로워지고 말았다. 아마도 누구에게나 한 번쯤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실 이제는 핸드폰에 저장된 수백 개의 이름 중 친구의 이름이 얼마나 될지 두려워 그런 이유로 주소록이나 친구목록을 살펴보는 일도 잘하지 않는다.
나처럼 가볍다 못해 개벼운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작가들은 첫 책을 출간하고 나면 그간의 친구 사이가 어느 정도 정리되고 만다. 사실 내가 만난 작가들 거의 모두가 동의한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단순히 요약하면, 그들이 나의 책을 사 주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문제다.
꼭 첫 책이 아니더라도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라고 하더라도 신간이 나오고 나면 정말이지 외롭고 두려운 마음이 되고 만다. 이번 책은 얼마나 팔릴까, 2쇄를 찍는 데 며칠이 걸릴까, 아니 과연 중쇄를 찍을 수는 있을까, 하고 며칠 동안은 인터넷 서점의 판매지수를 검색해 보게 된다. 그러다가 판매지수가 올라가고 있으면 ‘나 계속 글을 써도 되겠구나’하는 안도감이 찾아오고, 그렇지 않으면 ‘출판사에 끼친 손해를 어쩌면 좋지’라든가 ‘나는 이제 글을 쓰면 안 되는 건가’하고 무너진다.
이때 ‘친구’들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대한민국의 출판시장이 그렇게 큰 것도 아니어서 초기에 몇 권만 더 팔려도 판매지수가 올라가고 정말로 몇 권의 차이로 분야 베스트셀러 진입이 결정되기도 한다. 한두 권씩 사 주는 그 역할이 작지 않다. 그러나 친구들에게 단순히 그런 소모적인 도움만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책 한 권을 쓴다는 것은 대개 그 시기 자신의 모든 것을 거기에 집중하고 담아낸다는 의미다. 저마다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소중한 무엇이다. 그래서 “나 책이 나왔어.”하고 말하는 그 마음은 “내 책을 사줘.”라기보다는 “나를 사줘.”라는 말로 번역되어야 한다.
그러나 작가들은 곧 “나 책이 나왔어.”하고 말할 수 있는 타인들이 몇 되지 않는다는 것을 곧 깨닫는다. 나의 책을 사 줘, 나의 글을 사 줘, 나를 사 줘, 하고 말하기가 정말로 민망하고 초라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곧 그 감정을 꾸역꾸역 밀어 넣고 엄선한 친구들 몇에게 청첩장을 돌리듯 출간 소식을 알려나가다 보면, 결국 다음과 같은 말을 듣는다. 이건 내가 직접 들었던 말이기도 하다.
“나, 책 나왔어.”
“어 축하한다. 그런데 내가 책을 안 읽어. 그냥 술 한잔 살게.”
그 순간만큼 내가 초라해진 일이 별로 없었다. 책 한 권의 가격은 15,000원, 술 한 잔의 가격은 아마도 거기에서 0이 하나 더 붙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그의 제안은 오히려 더욱 고마운 것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때의 나는 내가 부정당한 것 같아 답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그 이후에도 “영업 뛰는 거냐.” , “책을 뭐 이리 자주 내냐.”라는 등의 말을 듣다가, 언젠가부터는 책이 나왔을 때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게 되었다. 정확하게는 ‘친구’에게 연락하지 않게 되었다. 거절 당하는 일이 두렵기도 하지만 책, 글, 나의 모든 것, 결국 이것을 두고 영업을 한다는 기분이 되고 나면, 긴 초라함이 찾아온다.
그러고 보니 대학에서 문학을 연구하고 있을 때도 그랬다. 소논문 한 편을 쓰는 데는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이 꼬박 걸렸다. 오래된 자료를 찾기 위해 먼 데 있는 소장처를 찾아가 사진을 찍거나 복사해오기도 했고 그것을 탐독하며 며칠 밤을 새는 일도 많았다. 그렇게 쓴 논문을 학회에 보내고 나면 얼마 후 “게재불가” , “수정 후 게재” , “게재” , 이렇게 셋 중 하나의 답신이 온다. 첫 투고 논문이 ‘수정 후 게재’ 회신을 받았을 때의 기쁨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아마도 메일을 확인하고서 연구실에서 나와서 늘 가는 그 연구동 앞 벤치에 앉았을 것이고, 내가 나오는 것을 보고 괜히 따라나와 담배를 한 대 피우던 친한 선배에게 “나 논문 됐대!”하고 외쳤을 것이고, 결국 그에게서 “와씨, 오늘 그럼 술 한잔 해야지!”하는 말까지 끌어내었을 것이다. 학회의 수정 권고를 받아들여 이것저것 고치고 첫 논문이 정식으로 게재된 날, 그리고 그 별쇄본이 우편으로 학과사무실에 도착한 날, 나는 그 표지의 뒷면에 정성껏 “OOO 학형께, 김민섭 드림.”하는 서명을 해서, 모든 선후배의 연구실 자리에 놓아두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친구들에게도 그 논문을 건넸다. 그들에게 들은 말은 “야 축하한다, 근데 이거 내가 읽어서 뭐 알겠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그것을 라면받침으로 쓰든 책장 어딘가에 두었다가 잃어버리든 별로 상관이 없었다. 그 자체로 내가 연구자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받는 일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민섭아, 논문 정말 잘 읽었어. 사실 나는 읽어도 잘 모르겠지만 잘 쓴 것 같아. 그런데 몇쪽에 오타가 하나 있었어. 나중에 다시 찍게 된다면 여기를 바로잡아주면 좋겠어.”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정말로 고마워졌다. 얼마나 고마웠냐면 ‘너는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이고 평생 함께 가고 싶은 친구야.’라는 심정이 될 만큼, 고마웠다. 그가 나를 친구로 생각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받은 것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보답한다는 훌륭한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어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그 논문이, 그 글쓰기가, 나의 모든 것이었음을 아마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한 편의 글이 아니라 한 사람을 읽는다는 기분으로 그 재미없는 논문을 꾸역꾸역 읽었을 것이다. 그러한 마음은 있는 그대로를 넘어 더욱 큰 감동으로 전달되고 만다.
나의 친구들은 저마다 자신의 일을 하며 살아간다. 오래된 친구들 중 작가는 없지만 그들 역시 자신의 모든 것을 일상에서 만들어 내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부터는 나는 그들에게 어떠한 친구인가, 내가 그들에게 친구이기만을 강요하지 않았나, 하고 돌이켜보게 됐다. 그러고 보면 나는 별로 좋은 친구는 아니었다. 나 역시 그들이 외로울 때 곁에 있지 않았고 그럴 여지를 주지도 않았다. 카카오톡의 친구목록을 넘기는 외롭고 절박한 순간에 나의 이름도 가볍게 화면에서 멀어졌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나의 모든 것’을 써 나가는 존재다. 누군가가 그것을 나의 앞에 가져오는 여정은 아주 길고 힘들고 무엇보다도 외롭다. “나 OO 했어.”하고 말하는 그의 마음을 “어 축하한다.”하는 한 마디로, 혹은 그의 삶을 폄하하는 가벼운 한 마디로 맞이해서는 안 된다. 그의 어색한 다가옴을 우리는 두 팔을 벌려 환영해야 한다. 축하한다, 어디에서 그걸 살 수 있니, 어디로 가면 그걸 볼 수 있니, 라는 말에 더해, 나는 너를 읽었어, 나는 너를 보았어, 나는 이 부분이 좋았어, 다음에도 꼭 너를 나에게 보여줘, 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런 친구를 많이 두고 싶지만, 언젠가는 꼭 ‘그런 친구’가 되고 싶다. 누구라도 나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보일 수 있고 나는 그것을 그의 자존감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언젠가는 정말로 그런 삶의 태도를 가진 친구가 되고 싶다.
<김민섭 작가의 말>
좋은 사람이고 싶습니다. 멀리서 나를 보는, 무대 위의 나를 보는 관객들 말고, 무대에서 내려온 나를 바라보는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습니다. 어쩌면 그게 가장 힘든 일이겠습니다. 글을 쓰는 일은 그런 나를 돌아보며 어제보다 조금은 좋은 사람이 되게 해 줍니다. 그래서 계속 나를 기록하는 일을 해 나가고 싶습니다.
<독자들 반응 - 북크루 게시판에 올라온 글>
해와
아침부터 울컥하게 만드네요. 정말이지 저 아래서 무언가 치밀어 올라와 깊이 울고 싶은 마음입니다. 김민섭 작가님을 와락 안아주고 싶습니다. 나에게도 외롭고 아주 긴 여정으로 서먹하게 어렵게 다가오는 친구가 있다면 두 팔 벌려 환영하는 '그런 친구'가 되고 싶다고 어설픈 다짐을 해봅니다. 울림 있는 글 감사합니다.
지현
일개 독자로 제 자신은 작가도 아니고 주변에 작가인 친구도 없어서, 책 한 권을 출판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헤아리지 못했는데, 오늘 김민섭 작가님의 글을 읽으니 비로소 그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삶을 녹여내고 정성과 노력을 다한 작품인 만큼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나의 책을, 함께 소중히 대해주고 신경 써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고마울까요. 그런 점에서 좋은 독자를 진정한 '친구'라 생각하는 작가님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독자 입장에서 좋은 작가는 어떤 사람인지'만을 생각했던 저였습니다만, 작가님 에세이를 통해 '작가 입장에서 좋은 독자는 어떤 사람일지' 곰곰이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독자가 되기 위해, 수많은 작가님의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어요.
라라
큼직한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 김민섭 작가님의 오늘 글을 읽다가, 자세를 바로 하게 되었습니다.글을 읽는 것이 그 글을 쓰는 사람을 읽는 것이라는 말씀에 뭉클했어요. 매일 한 분씩 조금씩 알아가고, 읽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북크루에도 감사합니다.
화니
아무리 봐도 출석률이 좋은걸 보면 저는 요즘 행복하네요. 고양이는 싫어하지만 북크루의 책장위 고양이를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작가 분들의 글을 메일로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뭔가를 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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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스타트업 북크루의 대표. 『당신이 잘되면좋겠습니다』, 『아무튼, 망원동』, 『대리사회』,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