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 특집] 사실, 사랑이 전부 - 박승호 교수
<월간 채널예스> 2019년 4월호
내가 다시 20대가 된다면? 이 질문을 받고서 쓰는 글. (2019. 04. 09)
“당신은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가겠어?”
얼마 전 아내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한 질문이었다. 몇 년에 한 번은 같은 질문을 다른 색깔로 한다. 내가 아내에게 건네기도 했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아니, 돌아가지 않을래. 지금 여기까지 오는 거 알게 모르게 힘들었어. 되풀이하고 싶지 않네.”라고 답했다. 그날 아침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늘 그런 대답을 했던 것은 아니다. 이전에는 때때로 특정한 어떤 시기로 돌아가고 싶다고도 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도 그리웠다. 입시 미술을 준비하던 화실에서 여학생들과 나누던 수다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또, 아내를 만나기 전 좋아했던 사람에게 건네지 못한 말을 전하러 돌아가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늦봄 목련이 지던 큰길에서 지금의 아내가 헤어지자는 말을 했을 때로 돌아가고 싶기도 했다. 우리는 대학 내내 커플이었으나 졸업과 함께 1년 반쯤 각자의 삶을 살았다. 돌아갈 수 있다면 그 1년 반을 지우고 싶었다. 영국으로 유학 준비를 하다가 돌연 일본으로 가게 된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어떻게든 원래의 목표를 이루려 노력했을 것이다.
‘만약 무엇을 다시 할 수 있다면’이라는 마법 같은 가정은 언제나 해피엔딩을 전제로 한다. 어떤 확신도 가질 수 없으면서 막연하게 다시 하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그 실수들은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단지 다른 색깔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돌아간다면 다른 색깔의 실수들로 채울 것이다. 그렇게 오늘에 다시 이를 것이다. 부분 부분이 그리울 때가 있다. 하지만 전체를 놓고 조금 떨어져 살펴보면 울퉁불퉁 좌충우돌의 삶이었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모든 실수가 즐거웠고 그래서 충분히 행복했다. 추신: 이루지 못한 사랑 타령만 나열했지만, 사실 사랑이 전부다. 아가페든 에로스든 필로스든 말이다.
이화여자대학교 신산업융합대학 융합콘텐츠학과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예술과학융합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