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뿌리 '3.1혁명' 제대로 알기
『3.1혁명과 임시정부』 펴내
임시정부는 말 그대로 대한민국의 뿌리입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이나 민주공화제라는 정체는 임시정부에서 그대로 물려받은 것입니다. (2019. 02. 26)
2019년은 3ㆍ1 혁명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돌을 맞는 뜻 깊은 해이다. 이를 기념해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서,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들의 평전을 활발히 집필하고 있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3ㆍ1 혁명과 임시정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3.1 혁명과 임시정부』를 출간했다. 3ㆍ1 혁명과 임시정부가 어떤 관계인지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 3ㆍ1 혁명이 왜, 어떻게 벌어졌는지, 임시정부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대한민국의 뿌리가 되었는지 깊이 있게 들려준다. 특히 우리가 잘 몰랐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도 재미있게 들려준다.
김상웅 저자는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 현재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 주필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론을 가르쳤으며, 4년여 동안 독립기념관장을 지냈다. 현재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친일파재산환수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맡아 바른 역사 찾기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올해 3ㆍ1 혁명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돌을 맞았습니다. 독립기념관장을 지내셨고, 독립운동사와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서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 어떠신지요?
우리 민족에게 지난 100년 중 전반기는 국치의 아픔 속에서 선열들의 국권회복투쟁기이고, 후반기는 민주공화제를 발전시키는 국가 건설의 시기였습니다. 전반기는 ‘혈사(血史)’이고, 후반기는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아픔의 ‘통사(痛史)’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역사의 구획점이 되는 3ㆍ1 혁명과 임시정부 100돌을 맞아 어찌 감회가 없겠습니까.
『3.1혁명과 임시정부』 책 제목에 ‘3ㆍ1 운동’이 아니라 ‘3ㆍ1 혁명’이라 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1919년 기미년 3~4월 우리 민족은 자주독립, 민주공화, 인간평등, 여성참여, 비폭력 등의 가치를 내걸고 전체 인구의 10분의 1 이상이 독립시위에 참여했습니다. 세계 혁명사에도 유례가 없는 일이죠. 타국의 정치사회적 변혁들은 청교도혁명, 명예혁명, 프랑스혁명, 신해혁명, 러시아혁명 등 혁명이라 부르면서 우리만 유독 기미년의 거사를 3ㆍ1 운동이라 낮추어 부릅니다. 당시 중국 신문과 잡지 그리고 우리 독립운동가들은 이 거사를 3ㆍ1 혁명, 조선혁명, 기미년 대혁명 등으로 불렀습니다. 우리나라 초대 헌법인 제헌헌법 초안에도 3ㆍ1 혁명으로 명시되어 있었죠. 그런데 친일계열 한민당 의원 들의 농간으로 3ㆍ1 운동으로 바뀌었는데, 100돌을 맞이한 지금이 정명(正名), 즉 제 이름을 찾아 부를 수 있는 때라 생각합니다. 그런 뜻에서 제목에 3ㆍ1 혁명이라 넣은 것이죠.
3ㆍ1 혁명과 임시정부를 하나의 주제로 묶으셨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요?
3ㆍ1 혁명의 최대 성과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상하이)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3ㆍ1 혁명은 임시정부의 산모라 말할 수 있죠. 3ㆍ1 혁명이 있었기에 임시정부가 세워졌죠. 3ㆍ1 혁명 후 임시정부가 수립되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3ㆍ1 운동’으로 그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결국 3ㆍ1 혁명과 임시정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지금까지는 3ㆍ1 혁명과 임시정부를 별개의 사건처럼 다루어 온 것 같습니다. 이 책은 3ㆍ1 혁명이 벌어지기 전, 그러니까 우리나라를 일제에게 빼앗긴 1910년 경술국치부터 해방 이후 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하고 김구가 암살당함으로써 사실상 임시정부의 역할이 끝나는 시기까지를 다루고 있기에, 3ㆍ1 혁명과 임시정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3ㆍ1 혁명이 준비되고, 한반도 전체에서 벌어지는 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반외세 자주독립과 함께 4천년 동안 유지되어온 봉건군주제에서 근대적인 민주공화제로 바뀐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또한 여성들이 최초로 역사현장에 주체적으로 등장하고, 기생과 백정 등 천민들까지 나서면서 반상체제가 평등사회로 전환되었다는 것도 큰 의미가 있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한동안 잡음이 많았는데, 그 이유를 말씀해주신다면요.
다양한 집단이 참여하고, 지역ㆍ이념이 제 각각인 인사들이 참여하다 보니 분열과 분쟁이 따르지 않을 수 없었죠. 특히 이승만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의 역할이 중요했는데, 그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임시정부에서 탄핵당하는 등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켰어요. 그러나 만고풍상을 겪으면서도 27년 동안 임시정부는 지켜졌고, 일제에 선전포고를 하는 등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역사적 사명에 충실했습니다.
독립운동은 남성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홀대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은 어떠했나요?
2019년 2월 현재 국가로부터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 1만 5천여 명 중 여성은 2% 정도에 불과합니다. 새 정부가 여성독립운동가를 발굴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흔히 게릴라 활동은 물고기와 물에 비유됩니다. 독립운동도 다르지 않습니다. 물고기가 살기 위해서는 물이 필요하듯이, 독립운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남성들이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여성들의 헌신이 있어야 했고, 우리 여성 중에는 후방 지원뿐만 아니라 직접 나서기도 했죠. 3ㆍ1 혁명 때는 물론 임시정부, 조선의용대, 광복군에 참여한 여성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들 모두가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제가 ‘대한민국의 뿌리’입니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임시정부는 말 그대로 대한민국의 뿌리입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이나 민주공화제라는 정체는 임시정부에서 그대로 물려받은 것입니다. 임시정부가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헌법 전문의 ‘법통승계’를 비롯하여 많은 부문에서 임시정부의 정신과 사상, 정책을 이어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임시정부의 산모는 3ㆍ1 혁명이니 이 역시 대한민국의 뿌리라 할 수 있죠.
3.1 혁명과 임시정부김삼웅 저 | 두레
3ㆍ1 혁명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사와 친일반민족사 연구가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3ㆍ1 혁명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깊이 있고도 재미있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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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은 1919년 3·1 혁명이 벌어진 지 100년, 임시정부가 수립(4월 11일)된 지 100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3·1 혁명은 일제 식민통치를 거부한 민족의 자주독립선언이자, 봉건군주체제를 끝내고 민주공화주의를 지향하는 근대의 횃불이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런 3·1 혁명의 가장 큰 성과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