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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지극히 사적인 그림책 처방 체험기

<월간 채널예스> 201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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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말을 건넨다. 어떤 기억을 되살리기도 하고 나아갈 길의 지혜를 비추기도 한다. 한 서점에서 진행하는 그림책 처방 프로그램을 찾아가, 가만가만 책 속에 마음을 기댔다. (2019. 01.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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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사적인 그림책 처방 체험기


영화 <카모메 식당>을 좋아한 여자는 생각했다. 언젠가 가게를 낸다면 그게 무엇이든 ‘카모메’라는 이름을 쓸 것이라고. 그림책과 사랑에 빠진 여자, 시간이 흘러 그녀가 꿈꾸던 작고 단단한 가게는 ‘카모메 그림책방’이 되었다. 책방 안에서는 그림책을 낭독하는 모임,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을 꾸준히 나누는 소모임이 이뤄지고 있다. 가끔은 그림책 작가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갖는다. 그림책에서 받은 위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까지 낸 그녀는 독서치료와 상담심리를 배웠다. 꿈과 신화로 다가간 공부는 틈틈이 손에 쥐고 있던 타로공부도 더 깊이 있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그런 이유로 그녀가 운영하는 책방에는 타로카드로 마음을 읽고 그림책을 처방해주는 ‘그림책톡’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그녀, 책방 주인 정해심을 만나러 간다. 그림책에 마음을 기대 훈훈한 위로를 받고자 ‘그림책톡’ 프로그램을 체험해 볼 참이다. 그녀가 처방해주는 그림책은 무엇일까? 지금의 내겐 어떤 그림책이 위로가 돼줄까? 하지만 책방으로 가는 길 내내 나를 괴롭힌 것은 당최 나의 고민이란 게 무엇이냐는 질문이었다. 마음의 방구석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이런저런 고민들이 서로 나를 끌어내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천천히 아우성을 잠재우고 현재 내가 처한 고민들을 정리해 보았다. 일렬로 줄을 세우고 비슷한 류의 고민끼리 묶어 단어로 만들었다. 어쩌면 체험은 고민에 대한 이런 생각들을 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도 같다는 생각을 하며 책방이 있는 무수막길 언덕을 올랐다.


길고양이가 문지기처럼 자리잡은 문을 열자 책방지기가 반겨준다. 인사를 나누고 따뜻한 차 한잔을 손에 쥐자 서가 가득히 꽂힌 그림책들이 눈에 들어 왔다. 『쫌 이상한 사람들』  , 『마음이 퐁퐁퐁』  , 『같은 달 아래』  , 『갈색 아침』 .... 아이들의 것이라고만 여겼던 그림들이 의젓하게 어른의 마음을 만져주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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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톡의 시작은 내 마음을 꺼내 놓는 일이었다. 준비된 양식에 간단한 자기 정보를 적고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단어’라든가 ‘추천 받고 싶은 그림책의 주제’ ’인상 깊게 본 그림책’ 등을 써 내려 간다. 하나하나 써내려 가는 동안 그림책을 통해 어떤 것을 얻고 싶은지 내면이 정리되는 기분이다. 죽음, 사랑, 화. 내가 꺼내 놓은 화두는 세 가지다. 나는 소중한 이를 잃은 슬픔에서 헤어나올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자주 스스로를 포함한 도처의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관계에서 오는 헛헛함, 구멍 숭숭난 그물코 같은 관계를 메우는 일에 사랑이 필요하리라는 것을 짐작했다. 사는 일의 힘겨움, 살아낼 일에 대한 두려움이 꼭꼭 화라는 눈뭉치가 되어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것도 눈치 챘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이어졌다. 책방주인은 타로 카드를 꺼냈고 책상 위에 펼쳐 보였다. “해결하고 싶은 질문이 있나요?” ”그 질문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세요” ”생각을 이어가며 카드를 골라 주세요” 그녀는 마음을 읽는 상징을 얻기 위해 카드를 활용한다고 했다. 질문을 마음에 품고 카드를 고르면 각각의 상징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 같은 작업은 내 무의식이 멈칫대고 있는 곳, 다다랐으면 하는 곳에 대한 실마리를 여는 방식이었다. 역시 상징으로 가득한 그림들 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는 묘하게도 내 마음의 동요와 맞아떨어졌고 서서히 앞으로의 시간을 향해 나아갔다. 마음을 드러내야 한다는 어색함을 조율하고 쉽게 깊숙한 이야기로 나아가게 해 준다는 점에서 타로카드는 훌륭한 촉매제였다. 

 

지극히 사적인 긴 이야기가 끝난 후 여자는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잠시 후 몸을 일으켜 그림책이 꽂혀 있는 책장 앞을 서성였다. 돌아 온 그녀의 손에 들린 책은 모두 네 권. 『눈 깜짝할 사이』  , 『큰 늑대 작은 늑대』  , 『빨리빨리라고 말하지 마세요』  ,  『꼴찌 강아지』  다. “저는 제 나름의 이유로 추천을 하지만 어떤 부분이 닿을 지는 잘 모르겠어요. 거기까진 제 몫이 아닌 것 같아요” 그녀가 책을 내밀며 들려준 말이다. 이건 진심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들려 주고 싶은 말을 책으로 대신했다. 이건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녀는 이미 나에게 많은 상징의 고리들을 던져 주었다. 골라 준 책을 넘기며 읽어주기도 했다. 침대에 몸을 누인 아이 마냥 가만가만 이야기를 귀로 듣고 그림에 눈으로 맞추는 어떤 다정의 시간도 선물해 주었다.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았어요” 그녀의 담백한 말이 내겐 책 속에 담긴 상징들을 오래 묵혀 내 것으로 만들라는 말처럼 들렸다. 결국 모든 위로는 품는 자의 정성이 좌우하는 것일 테니까. 집으로 돌아간 나는 한동안 그 시간들에 붙들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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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처방전 독해

 

『꼴찌 강아지』  프랭크 애시 지음 / 김서정 옮김ㅣ그림책공작소


꼴찌로 태어난 강아지가 꼴찌를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는 내용. “가만히 존재로 있으면 되지 않을까요? 그러다보면 이 책에서 강아지를 입양한 소년의 말처럼 누군가에겐 ‘첫 번째’가 될 수 있을테니까요” 그녀는 책을 통해 애를 쓰는 일에 드는 과한 에너지, 애를 쓰느라 지니게 되는 여러 가면들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빨리빨리라고 말하지 마세요』  마스다 미리 글 / 히라사와 잇페이 그림 / 김난주 옮김ㅣ뜨인돌어린이

작은 배가 말한다. “잡아당기지 마세요. 누르지 마세요. 우리는 하나하나 달라요. 하나하나 걸리는 시간도 달라요. 그러니까 빨리빨리라고 말하지 마세요” 작은 배는 또 말한다. “우리는 크기가 달라요. 우리는 모양도 달라요. 비교하지 마세요. 비교하면 마음이 작아져요. 마음이 작아지면 떨려요. 마음이 떨리면 몸도 작아져요” 부끄러운 마음이 지그시 나를 눌렀다. 

 

『큰 늑대 작은 늑대』  올리비에 탈레크 그림 / 나딘 브룅코슴 글 / 이주희 옮김 ㅣ 시공주니어


어느 날 큰 늑대 곁으로 아주 작은 늑대가 찾아 왔다. 찾아와선 머물렀다. 아주 작아 이불도 조금 차지하고 먹을 것도 조금 먹고 ‘살짝 봐주니’ 불편할 건 없었다. 하지만 작게 존재했던 작은 늑대는 금세 떠나버렸다. 남겨진 큰 늑대는 오래도록 외로웠고 오래도록 기다렸다. 관계에 대한 이야기. 그러나 책장 가득 따뜻함이 만져지는 책이다.

 

『눈 깜짝할 사이』  호무라 히로시 글 / 사카이 고마코 그림 / 엄혜숙 옮김ㅣ길벗스쿨


‘사-뿐’ ‘째깍’ ‘앗’ ‘퐁-‘ ’「갈래머리 여자아이」’. 책에 등장하는 글 전부다. 하지만 깊게 채색된 그림이 가득하다. 그리고 마지막장은 ‘눈 깜짝할 사이’만큼 반전을 선사한다. 말 없는 책은 시간에 관한 긴 말을 품고 있었고 그걸 이해하는 찰나는 슬프고도 눈부시다.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가 넘겨주는 책장마다 쉼표를 찍으며 보면 더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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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주인과의 짧은 인터뷰  

 

그림책 처방 상담을 마치고 책방 주인과 책의 치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카모메책방에서는 그림책 처방을 위한 1:1 상담뿐만 아니라 부정기적으로 그림책 낭독 모임도 열리고 있다.

 

카모메책방의 그림책 낭독모임


낭독모임의 특징은 책을 정해주는 게 아니라, 참여자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 한 권을 가지고 온다는 거예요. 세상의 수많은 그림책 중 한 권의 책을 선택했다면 그건 나에게 어떤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고 나의 이야기를 숨기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결국 책과 함께 누군가의 삶이 오는 것과 같아요. 책을 읽으며 그런 것들을 나눕니다.

 

함께 읽는 것이 곧 치유 


텍스트에 사람의 이야기가 더해지다 보니 책은 ‘이전의 책’이 아니게 됩니다. 보다 생생해지고 확장되죠. 낭독 모임을 하면서 많이 울어요. 그림책이 독서 치료에 많이 쓰이는데 이유는 그림 안에 철학적인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고 덕분에 풀어낼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거든요. 어른들은 이야기 안에 자기를 투사해요. 이야기 안에 나의 경험과 느낌들을 녹여낼 수 있죠. 또 아이들에게 읽어만 줬지 누군가가 읽어주는 그림책을 듣는 경험은 별로 없거든요. 읽을 때 보지 못했던 것들이 들으면서 보이기도 해요. 이런 경험을 나누다보면 자연스레 자신을 돌아보고 다독이게 되는 것 같아요. 치유라는 말은 조금 부담스럽지만 성찰과 성장이라는 면에서는 그림책이 꽤 좋은 매개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통한 치유의 경험


그림책 치유는 감기약이 아니에요. 책 한 번 읽고 뭐가 확 바뀌고 달라지지 않죠. 애초에 그럴 수도 없고요. 겹겹의 시간이 쌓여서 서서히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죠. 저는 그림책을 통해 제 지난 삶을 돌아봤고 어떻게 살고 싶다는 미래로 나아갔어요. 그 경험의 덩어리가 『이 나이에 그림책이라니』라는 제 책이고 결국 책방을 여는 것으로까지 이어졌지요. 책 따로 삶 따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이 과정 전체를 떠올려보면 제가 변화했고 보다 건강해졌다는 걸 증명하는 것 같아요.

 

어른을 위한 그림책방


처음 책방을 열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림책을 좋아하고 찾아올 줄 예상하지 못했어요. 꾸준히 모임을 이어나가는 분들도 있지만 멀리 지방에서 오시는 분들도 많거든요. 요새는 그림책 관련한 에세이도 많이 나오는데요. 생각해보면 그림책과 사랑에 빠진 어른들은 이미 많았고 호응할만한 계기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저희 책방은 어른들에게 중요한 가치를 품은 그림책을 찾기 위해 노력해요. 그림책에는 책 자체에 어떤 철학적인 질문이나 의미를 담고 있는 것도 많거든요. 이런 책들은 아이가 봐도 좋지만 어른들이 보면 할 얘기가 더 풍부해서 더 좋아요.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 줄 때


사람들은 흔히 책을 읽어주는 일이 아이의 독서력을 키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림책을 읽어준 부모들은 알 거예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엄청나게 정서적인 교감의 시간이라는 것을요. 제가 그렇게 아이를 키웠던 것 같아요. 읽으면서 많은 걸 나눴죠. 그림책은 그런 정서적 토양이 충분해요. 하지만 기억해야 할 점은 강요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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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기낙경

프리랜스 에디터. 결혼과 함께 귀농 했다가 다시 서울로 상경해 빡세게 적응 중이다. 지은 책으로 <서른, 우리가 앉았던 의자들>, <시골은 좀 다를 것 같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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