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책방] 결정 장애 있으신 분들, 드루와 드루와~
『나는 자발적 방콕주의를 선택했다』,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섬의 애슐리』
시작은 책이었으나 끝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코너죠. 삼천포 책방 시간입니다. (2018. 07. 26)
마이너리티를 위한 심리에세이 『나는 자발적 방콕주의를 선택했다』 , 둔중하고 힘 있는 펀치라인이 실려 있는 책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 테이크아웃 커피처럼 어디에서나 즐길 수 있는 소설 『섬의 애슐리』 를 준비했습니다.
그냥의 선택 - 『나는 자발적 방콕주의를 선택했다』
박소진 저 | 마음의숲
이 책은 심리에세이예요. 저자인 박소진 심리학자는 한국인지행동심리학회(협)의 대표이고, 심리학과 관련해서 다수의 책을 썼어요. 저서로 『처음 시작하는 심리검사와 심리평가』 , 『당신이 알아야 할 인지행동치료의 모든 것-행복해지기 위한 기술』 , 『영화 속 심리학 1, 2』 가 있습니다.
책속에 이런 표현이 있어요. “선택의 순간마다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쉽게 여행을 떠나지 못하고, 눈에 띄지 않는 구석자리만 찾아다니거나, 낯선 사람 만나는 것을 꺼리면서 자신만의 세상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저는 이 부분을 읽고 ‘여기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라는 생각에 읽기 시작했어요. 역시나 읽으면서 ‘격공(격하게 공감)’했고요. 방금 읽어드린 부분을 들으시고 ‘나도 그런데?’라고 생각하셨다면 공감하실 만한 이야기가 정말 많습니다.
첫 장의 제목부터 ‘결정 장애는 장애가 아니다’예요. 취업 포털 사이트 ‘사람인’에서 성인 남녀 2,14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70.9%가 평소 결정 장애를 겪고 있다고 이야기했대요. 저도 결정 장애가 있는 편인데요. 한 예로, 상대가 ‘뭐 먹을래?’라고 하면, 친하지 않은 사이에서는, ‘저는 다 잘 먹어요. 아무거나 괜찮아요’라고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왜냐하면 ‘저 사람은 나와 달리 자기가 먹고 싶은 걸 확실하게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고, 나는 저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싶으니까 그냥 따라야겠다’고 생각하는 건데요. 이 책은 ‘다른 사람은 나와 달리 결정을 잘해’라는 전제 자체가 잘못됐다고 이야기해요. ‘다른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모호한 것이고, 그 사람들이 당신과 달리 결정을 잘 할 거라는 근거도 빈약하다는 거죠. 그리고 상대도 당신처럼 결정 못하는 상황에서 선택을 해야 할 때, 그에 대한 결과도 혼자서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그건 상대를 배려하는 게 아니라고 말해요. 상대가 배려 받았다고 느껴야 진정한 배려라는 거죠. 상대가 부담을 느낀다면 배려가 아니고요. 저도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많이 반성했습니다.
이 책은 당신이 뭔가를 하기 싫다면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인정해줘요. 그러면서도 ‘그게 만약 이런 이유라면, 이렇게 실천해 보는 것도 변화에 도움이 된다’고 제안해주는 점이 좋았습니다.
톨콩의 선택 -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황현산 저 | 난다
정말로 누구라도 붙잡고 추천하고 싶은 책이에요. 저는 예전에 종이 신문을 볼 적에 거기에 실린 황현산 선생님의 칼럼이 너무 좋아서 스크랩을 해놨었는데요. 스크랩 해놓은 것들을 한 번씩 들춰볼 때 글을 다시 읽으면 또 너무 좋은 거예요. 그러다가 제가 『힘 빼기의 기술』 을 내고 선생님께 추천사를 부탁드리게 됐는데요. 써주신 글을 읽고, 점잖은 멋스러움이 문장마다 배어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건 정말 성품에서 오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의 앞부분은 이명박근혜 정권 하에서의 짜증이 많이 쌓여있을 때 쓰신 글이에요. 어떤 현상이나 뉴스, 분개할 만한 일이 있을 때 황현산 선생님의 접근법은, 되게 먼 곳에서부터 걸어오는 거예요. 얕게 사이다처럼 시원한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멀고 깊은 곳에서부터 쭉 걸어오는데요. 마지막의 펀치라인은 너무 대단해요. 굉장히 힘이 있는데 신랄한 게 아니에요. 두루뭉술한 이야기인가 싶다가 점점 형체를 갖추면서 다가와서 맨 마지막 줄로 가슴에 뭔가를 안겨줘요. 그게 전혀 얕지가 않고 둔중하면서 힘이 있어요.
책에는 정치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언어에 대한 부분도 많은데요. 또 이 책에는 진보주의와 민주주의 가장 아름다운 정의가 나옵니다.
“진보주의를 삶의 방식으로만 말한다면 불행한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기다. 한 사람의 진보주의자가 미래의 삶을 선취하여 이 세상에서 벌써 미래의 초인으로 살지 않는다면 그 미래에 대한 확신과 미래 세계의 건설 동력을 어디에서 얻을 것인가. 그의 존재는 이 불행한 세상에 점처럼 찍혀 있는 행복의 해방구와 같다.”
여성혐오라는 말에 대해서도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남자 어른이 여성혐오라는 말에 대해서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을까’ 싶고요. 그 말이 학술적으로 어떻게 비롯되었나부터 시작해서, 무엇도 허투룬 게 없어요. 그런데 놀라운 점은 정말 쉬운 말로 되어있다는 거죠. 또 ‘두 개의 시간’이라는 글을 보면 각자의 리듬이 있고, 각자 안에 다른 타자가 있고, 그것을 다 포용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이야기하고 계세요.
황현산 선생님은 문학평론가이시잖아요. 어느 순간 이후로는 자신의 세대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시 읽기를 놓칠 수도 있는데, 이 분은 그러지 않으세요. 가장 최근의 시인들까지 늘 꼼꼼히 들여다 봐주세요. 시의 언어에 대해서는 이렇게 표현하셨어요.
“가질 수도 누릴 수도 없지만 잊어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고 보면 우리가 시에 요청하는 모든 것이 이 짧은 말 속에 들어있는 것 같다. 시는 누릴 수 없는 것을 희망하는 뛰어난 방식이자 그 희망을 가장 오랫동안 전달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황현산 선생님께서 지금 건강이 안 좋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 저는 진짜 계속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고 궁금하거든요. 꼭 쾌차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단호박의 선택 - 『섬의 애슐리』
정세랑 저/한예롤 그림 | 미메시스
『섬의 애슐리』 라는 정세랑 소설가님의 작품을 소개하고 싶기도 했고, 이 시리즈 자체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미메시스 출판사에서 나온 ‘테이크아웃’이라는 시리즈인데요. 판형이 작고 가벼워요. 테이크아웃하듯이 어디든 들고 가서 읽을 수 있는 문학을 기치로 기획됐고요.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소설가와 화가가 협업을 했어요. 책 중간 중간 그림이 나오는데요. 표지도 그림으로 감쌌어요. 이걸 펴면 하나의 그림이 돼서, 어딘가에 붙이거나 이 자체로 감상할 수 있고요. 이 그림을 벗겨내도 표지가 굉장히 예뻐요. 미메시스 출판사가 책의 만듦새와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쓰거든요. 디자인 책을 많이 만드는 출판사라서 그런지, 판형이라든가 이 책의 물성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쓰는 출판사더라고요.
이 시리즈는 한 달에 한 권씩 출간될 계획이라고 해요. 이야기의 순수한 즐거움을 전달하겠다는 목표도 있고요. 이야기라는 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매체이고 확장될 수 있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데 ‘책의 물성, 생김새를 바꿈으로써 그걸 조금 더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컨셉을 가지고 있는 거죠. 저는 이런 문고판이나 책을 조금 가볍게 만드는 시도를 좋게 보는 편이에요.
『섬의 애슐리』 에는 가상의 섬에 살고 있는 애슐리라는 등장인물이 나오는데요. 애슐리는 우리가 흔히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춤추는 사람으로, 모종의 사건을 겪으면서 위기를 헤쳐 나가는 내용이 펼쳐집니다. 이 시리즈의 다른 책도 재밌어요. 『우리집 강아지』 는 김학찬 소설가가 쓴 책이고요. 가장 최신작은 전석순 소설가가 쓴 『밤이 아홉이라도』 라는 책이에요.
책 뒤에는 인터뷰가 실려 있어요. 작가가 이 작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해서 화가와 소설가가 이야기를 나누는데요. 재밌는 부분을 소개해 드리면, 전석순 소설가님은 ‘이 작품을 테이크아웃한다면 어울리는 장소가 어디일까?’라는 질문에 ‘초여름 군자역의 어린이대공원 놀이동산’이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해주셨어요. ‘대관람차가 잘 보이는 벤치에 앉아서 해가 저물기 직전에 읽으면 어울릴 것 같다’고요. 회오리 감자도 먹으라고 하셨어요(웃음). 제가 한 번 가서 읽어볼게요, 어떤 느낌인지(웃음).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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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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